마야 엔젤루, 별꽃 엄마
오클랜드 공항에 내리니, 아침공기가 맛있다. 고국에서는 마스크 속에서 깊은 숨을 쉬지 못했는데, 마스크 없이 큰 숨을 몇 번 들이쉬니, 속까지 뒤집어 청소한 것같이 후련하다. 코니퍼 그로브에 들어서니, 가로수 단풍이 전설 같다. 그린 크린(green clean) 뉴질랜드에서 단풍 보기란 쉽지 않은데, 행운이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날린다. 고국의 5월이 한더위였기에, 가을이 자연스럽다. 집에 들어서니, 포도나무는 덩굴만 남았고, 뒤뜰 감나무 두 그루는 잎을 떨군 채 이십여 개의 감을 달고 있고, 피조아는 과일바구니에만 몇 개 남았다. 내 집에서 딴 과일은 특별하다. 십 년을 가꾸어 겨우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비료도 없이, 농약도 없이 열매를 맺다니 장하구나!’나뭇가지를 쓰다듬으며 속삭여 본다. 과일 바구니 속의 가을은 찬란하다. 피조아의 초록빛과 진홍색 감, 빨간 사과, 노란 바나나가 잘 어울린다. 가을은 색깔과 향기로 온다.
TV를 켜니, 마야 엔젤루(Maya Angelou)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마야 엔젤루(1928-2014)는 내 어머니와 동갑이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걸까? 마야 엔젤루는 미국에서 출생했고, 우리 엄마는 일제시대 충청도 공주 산골에서 태어나셨다. 마야 엔젤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이다.
“인간의 마음은 워낙 섬세하고 예민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격려해 주어야 지쳐 비틀거리 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워낙 굳세고 튼튼해서 한 번 격려를 받으면 분명 하고 꾸준하게 박동을 계속한다.”
“네가 무엇이 싫으며 바꿔, 바꿀 수 없으면 네 태도를 바꿔, 불평하지 마.”
"If you don't like something, change it, If you can't change it, change your attitude, don't complain."
“누군가의 구름에 무지개가 되어라.”“Try to be a rainbow in someone's cloud."
그녀가 생각하는 현명한 여인은 누구의 적이 되지 않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이다.
“A wise woman wishes to no one's enemy
A wise woman refuses to be a anyone's victim.“
마야 엔젤루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해서 아버지에 의해 한 살 위인 오빠 베일리와 함께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의 아칸소 주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보내졌다가, 8살 때 연락없이 찾아온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집으로 와서 어머니의 남자 친구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녀를 강간한 남자는 법정에 보내지고, 그녀도 8살의 나이에 법정에 섰지만, 그 남자는 하룻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난다. 강간자는 풀려 나온 후, 눈군가에 의해 살해 당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의 충격으로 마야 엔젤루는 실어증 증세를 보인다. 마야 엔젤루는 자신이 강간당한 사실을 오빠에게 털어 놓았고, 오빠는 이 사실을 삼촌에게 이야기해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자신의 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다시 할머니집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이웃에 사는 베다 훌라워즈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찰스 디킨스, 세익스피어, 에드거 엘렌 포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흑인 예술가들의 미술 작품 등을 보기 시작하면서 실어증 증세에서 벗어나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녀는 14 살에 다시 어머니집으로 돌아와 고교 재학시절에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전차 차장이 되었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 주 후에 아들을 낳고 미혼모가 된다. 그녀는 생후 두 달된 아이를 안고 16살에 호텔을 경영하는 엄마 집에서 나온다. 그녀의 엄마는 독립하는 딸에게 어려우면 아무때나 돌아와도 좋다고 했지만, 그녀는 나이트 크럽의 댄서, 요리사, 바디 숍 등에서 일하다가 켈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창녀촌의 마담노릇까지 했다. 그녀는 결혼 삼 년 만인 1954 년 첫 남편과 이혼하고 유럽을 여행하며 오페라단에서 노래하면서 그녀의 첫 엘범 ‘미스 칼립소 (Miss Calypso)와 CD를 낸다. 그리고 그녀는 공연에 다니면서 프랑스어, 이태리어, 아프리카어 등을 익힌다.
그녀는 1954년 소설가 제임스 킬렌즈를 만나 <할렘 작가 길드 Harlem writers guld>에 가입하여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또, 그녀는 흑인 인권운동을 하며 마르틴 루터 킹목사의 요청으로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의 북부 협력자가 되어 활동한다(1960). 그 후 그녀는 뉴욕 타임즈 최장기 베스트 셀러였던 <나는 새장 속의 새가 왜 우는 지 안다.>( 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 1969) 자서전을 출간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내게 찬물 한 대접만 주오> 시집으로 프리쳐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째 결혼(1973-1981)에도 실패한 후,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의 종신 교수가 되었다.(1981)
또, 그녀는 영화< 뿌리>에 출연하여 에이미상 후보에 올랐고, <아메리칸 퀼트>에 출연하면서 두 편의 각본도 썼다. 그녀는 시 낭송 앨범으로 그래미(grammy)상을 세 번 수상했다. 그녀는 또 영화에서 자신이 작곡한 ‘칼립소 힛 웨브(Calypso Heat Wave)’도 불렀다.
한 사람으로 열 명의 삶을 살며서 86세, 천세를 누린 그녀는 호칭도 많다. 가수, 작곡가, 연극배우, 극작가, 영화배우, 영화감독, 소설가, 시인, 여성운동가, 흑인인권 운동가, 역사학자, 대학교수, 강연가, 정비공, 비서가 그것이다.
그녀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미국 건국 200 주년 기념 고문위원으로, 카터 대통령에게는 국제여성의 해 미국 준비위원으로 위촉 받고,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낭송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자작시 <아침의 맥박 On the pulse of Morning>을 낭송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에게 미국 대통령 자유메달,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그녀는 이외에도 30 개 이상의 명예학위를 받았다. 그녀에게 이웃 아줌마, 베다 훌라워즈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었을끼?
나의 어머니 이름 앞에는 호칭이 없다. 굳이 찾는다면 ‘교장 사모님’과 ‘ -- 엄마’란 호칭이다. 어머니는 일제식민지 시대, 마야 엔젤루와 같은 해에 오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마야 엔젤루와 똑같이 스무 살에 결혼하셨다. 제주도에 학도병으로 징용당했던 남편과 만나 한국전쟁을 겪으시며 이혼의 위기에 처했지만, 고비를 잘 넘기시고 8남매를 낳아 5남매를 잘 키우셨다. 그러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시자, 이웃이 부끄럽다며 한동안 두문불출하신 적도 있다. 지금 어머니는 그 좋아하시던 민요도, 가끔 부르신던 오기택의 ‘충청도 아줌마’ 현철의 ‘내 마음 별과 같이‘ 도 잊으셨다. 어머니는 ‘죽기도 쉽지 않구나. 점쟁이가 명이 짧다더니 왜 이렇게 길어?’ ‘나더러 오래 살라고 하지 마라.’ ‘어렸울 때 내가 너 많이 혼줬지?‘ ’돈 모으지 말고 쓰면서 살아.‘ ’나 죽기 전에 너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아?’ .
감밭에 가서 감을 따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감인데 한국이 이렇게도 먼 곳이던가? 어머니 자서전 <별꽃>을 꺼내 들고 다시 읽어 본다. 부드러운 잎 속에 단단한 실줄을 가지고 있어 사람의 발에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 남는 별꽃! 벌레가 오지 않으면 아예 꽃을 닫고 자가수분하는 별꽃. 어머니는 지금 꽃을 닫은 채 살고 계신다.
첫댓글 잘,그리고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우리도 필연코 가는, 가야할 길인데......
마음이.....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냅니다.
제빵왕 김탁구, 성균관 스켄들, 별에서 온 그대, 미스코리아 등등
그리고 귀국 후 매일 어머니께 몇 번씩 전화했었는데,
벌써 하루 한 두번으로 줄었네요.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네요.
필연코 가야 할 길이 오기 전에......
오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