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0:1~31)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이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 (28절)
이 구절에 덜컥 걱정부터 느껴졌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의 전격적 단절이 옳은 것이라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인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걱정.
성경에 나온 일점일획도 변경시키지 말라는 말이
문맥이나, 상황의 변경, 취지의 적용 등의 선량한
정당하고 선량한 의견조차 사탄의 융통성이라고 공격받는 것이
기독교의 종교적 분위기이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그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
첫째, 집회에 이스라엘 사람들만 참석하도록 했다는 주장.
둘째, 우상숭배 등 이방인들의 악한 풍습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였다는 주장.
셋째, 결혼이나 사업상 관계를 맺었던 이방인들과 단절한 것.
이방인 중에서 매우 심각하게 교회를 핍박하거나
공격적이거나, 또는 매우 사단적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멀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맞는가? 복음의 대상이며, 어떤 영혼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는데?
그래서 나는 위의 둘째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이방의 우상숭배 등 악한 풍습으로부터의 단절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의견을 감안 한다 해도,
결국은 우리가 구별된 삶, 즉 거룩을 지켜나가기 위한
결단의 모습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죄에게는 단호하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대상이다.
요즘 묵상이 느헤미야인데,
좋은 기분을 가지게 만든다.
직전 본문이 열왕기서여서
지칠 정도로 악행을 저지르는 왕들의
모습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잡는 내용으로
쭉 채워져 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것을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이것을 행동으로 이행하는 태도를 견지했으면 좋겠다.
느헤미야의 행적처럼,
철저히 회복시키는 삶, 인생 되기를 소원한다.
<오늘의 명언>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억압도 가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분께 기쁘게 복종할 수 있는 이유다. -마르바 던
오늘 명언에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그대로 담겼다. 아멘!
“하나님, 오늘 왠지 육체가 찌뿌둥하고 마음도 집중이 잘 안 됩니다.
잘 참고 하루를 의미 있게 살게 해 주십시오. 느헤미야의 삶이 참으로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비정상으로 흐뜨러진 모든 것을 바르게, 제자리로 정리하고 회복시키는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정환이가 몸과 마음을 잘 지켜 나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선주가 이훈석과 결혼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믿음을 가진 가족들이 먼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눌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지현이와 수연이에게도 같은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십시오. 단국대 학생들, 영혼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