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잃지 말고 주인으로 살라 / 혜남 스님
열반재일 특별기고 / ‘마음은 항상 열반에 두고’
3월7일은 음력 2월 보름으로 부처님의 열반 2556주기를 맞는 날이다.
열반(涅槃)이란 범어 ‘니르바나’를 발음대로 번역한 말로서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등 으로 번역하는데
본래의 뜻은 ‘불어끈다’는 뜻으로 ‘취멸(吹滅)’이라고도 한다.
즉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끄고 위없는 깨달음의 경지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상태를 말한다.
불교의 4대명절의 의미를 북방불교의 전통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음력 4월8일은 인간 싯다르타의 탄신일이고
2월8일은 출가하여 ‘구담’이라는 사문이 된 날이며
12월8일은 도(道)를 이루어 깨달은, 즉 부처님이 된 날이다.
부처님은 태어남도 열반도 오직 중생을 위한 것…
‘청정한 법신’은 본래 나고 죽음이 없지만 대자비 원력으로
시현해 보이는 것… 그러나 소승불교의 교리로 보면
비록 부처님 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번뇌의 불길을
다 끄지는 못했음으로 아직 유여열반(裕餘涅槃)의 상태이고
이 육신까지 버림으로서 비로소 미세한 번뇌까지도 완전히 소멸한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열반을 불자들이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것이다.
불교의 기원은 그리스도교와 같이 교조의 탄생일을 기원으로 삼지 않는다.
또 이슬람교가 그들의 메카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여
기원으로 삼듯이 성도하신 날이나 전도 선언을 하신 날을
기원으로 삼지도 않고 열반하신 날을 기원으로 삼는다.
후대에 중국의 선사들이 이해하는 열반이란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열반이라는 것이 고요하고 적멸하여
아무 것에도 머물지 아니하지만 인연 따라 중생을 구제함으로
“생사(生死)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열반에도 머물지 아니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생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에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음으로 현대어로 번역할 적에
일부의 학자들은 “거룩한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큰스님들의 죽음을 ‘원적(圓寂)’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열반의 한 뜻이다.
탐진치 삼독심 번뇌망상 놓아버리고 이웃위해 열심히 노력하되
마음은 열반에 있어야 한다 혹은 ‘시적(示寂)’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본래 부처님은 생사를 초월하신 분이지만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들에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그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태어나심도 열반에 드심도 오직 중생을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청정한 법신(法身)은 본래 나고 죽음이 없지만
대자비 원력으로서 생사(生死)를 시현하여 보인다” 고 말씀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부처님의 출가절에서 열반절까지를
뜻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마음속의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고 일체의 번뇌망상을 놓아버리고
각자가 처한 장소에서 자기의 본분을 잃지 않고
주인으로 살면서 불교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되
마음은 항상 열반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혜남스님 / 영축총림 통도사 전계사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