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역사학계에서 소외되어 왔던 고대 해양사 연구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양사와 관련된 연구성과가 학회를 통해 자주 발표되거나 서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공간의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면 내륙사와 해양사로 나뉜다. 국내 사학자들의 경우 내륙사에 집중된 시각을 보이면서도 해양사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내 해양사 연구는 해군사관학교에 의해서 사료중심에 근거하여 진행되어 온 연구와 해양수산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전부였다. 10년 전만해도 해양사는 역사학계에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해양사 연구자료 턱없이 빈약
이는 대륙과 바다가 서로 연결된 지정학적인 측면을 간과한 체 동아시아 역사를 온건하게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이런 편향된 학계의 발전 원인으로 사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고려시대까지 해양에 개방적이던 정책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海禁과 空島 등의 폐쇄적인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해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해양을 천시하는 뿌리깊은 사회분위기가 역사학계에서도 예외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식민사관, 즉 일본인들이 대륙에 붙은 부수적인 존재로 축소시키고자 했던 반도사관의 인식이 고스란히 학계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넘어 동북아시아 역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류로 인한 무정부성이나 타문화의 공유성과 기록자체가 쉽지 않다는 해양문화의 특성과도 관련이 깊다.
무엇보다 해저고고학과 자연과학, 지리학 등의 기본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재당 신라인사회 연구’(일조각, 2005)를 펴낸 권덕영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재당신라인 가운데, 9세기 후반 일본으로 건너간 무역상인들이 어떤 해양경로를 거쳐서 출입했는 지 상세히 규명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중국적 신라인에 대한 자료를 이소정, 김진, 김자백, 왕초 같은 이중국적 신라인의 일대기를 상세히 재구성함으로써, 이를 근거로 일본 지배층의 신라인식을 규명하는 작업을 해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10세기 이전 일본자료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서 향후 연구가 기대된다.
권덕영 교수가 비교적 최근에 해양사 연구에 나섰다면, 해양사 연구와 관련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학자로는 윤명철 동국대 교수를 들 수 있다. 윤 교수는 해양문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데 ‘고구려 해양사 연구’(사계절 刊)라는 박사논문부터 줄곧 ‘해륙사관’의 균형적 입장에서 역사를 연구해 왔다. 그는 대한해협과 황해, 동중국해를 직접 뗏목으로 건너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고대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해양사를 시대흐름으로 구분한 저서를 발간 예정인 강 교수는 목포대 산하 도서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역사인식에서 해양을 배제시켰던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주로 해상교역활동사와 도서문화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중국 청도대 해양문화연구소와 일본 도쿄 입교대일본학연구소와 함께 한·중·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동북아고대사연구소에서는 ‘동아시아 역사상과 우리 문화의 형성’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열었다. 첫 번째 발표자인 윤 교수는 ‘동해문화권의 설정 가능성 검토’라는 글을 통해 기존 역사학계의 협소한 시각에 대한 질타와 동아지중해문명이라는 새로운 연구모델을 설정하였다.
윤명철 교수, ‘동아시아지중해문명’ 모델 설정
여기서 윤 교수는 우리의 역사가 폐쇄적인 한반도 관점과 미시적이고 일국사적 관점이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총제적인 관점의 필요성과 함께 황해와 남해와 더불어 동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우리의 역사영역이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활용하여 연해주 및 북부지역으로 연결되는 동해, 일본과 연결되는 남해, 그리고 중국 사이의 황해와 동중국해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동아지중해의 중핵’에 위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봉룡 목포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연구자다. “15세기를 전후해서 동북아는 폐쇄적인 정책으로 쇠퇴하고, 유럽은 지중해시대에서 대서양시대로 나서면서 세계사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즉, 해양사의 교차가 세계사의 교차와 일치한다는 것이다”라며 해양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우리나라의 해양사는 사회주의 정책을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중국과 더불어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해양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일, 중일간의 영해분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