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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한국의 美_가족
ysoo 추천 0 조회 161 18.05.08 08: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국의 美_가족



우리집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
음악처럼 즐겁다


멀리 밖에 나와
우리집을 바라보면
잠시 낯설다가
오래 그리운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
눈물 글썽이는 마음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나 보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주고받은 상처를
서로 다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따뜻한 눈길로 하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
우리집 우리집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고마움 가득한
송진 향기가 난다




소중한 선물, 가족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힘을 주는 아버지,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는,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어머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는 형제자매…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사랑’이라면,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가족’은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이름일 것입니다.


하늘은 맑고 산천이 짙은 녹음으로 뒤덮이는 5월은 부모 됨과 자녀 됨,
부부로 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가정의 달입니다.


<GOLD & WISE>는 늘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기 쉬운,하지만 삶의 존재 이유이자 마르지 않는 행복의 샘인 ‘가족?의 참의미를 되새겨보겠습니다.KB고객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에디터 조민진 캘리그래피 강병인

사진 김재이, 최충식(속표지) 어시스턴트 이승헌, 박혜미
제품협찬 오동나무 액자(채율), 집 오브제·나무 받침(신현문 作), 선물보자기(금단제)




예술작품의 영원한 모티브, 가족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버리고 싶은 존재다.”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여기엔 가족에 대한 해묵은 오해가 전제되어 있다. 가족에겐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것이 선(善)이든 악(惡)이든 모두 쏟아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누가 보지 않으면 어딘가에 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세월이 보태지면, 보고 싶어 미칠 것같은 후회로 변한다. 애증(愛憎)이다. 그리고 이는 예술 작품의 영원한 모티브가 된다.



“내리사랑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 만큼이나 많은가 보다”


바보와 엄마는 동의어
최문정의 <바보엄마>


인류가 살아오면서 체결한 가장 큰 불평등 조약은, 아마 부모와 자식 간에 존재할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어렵다는 속담이 이를 대변한다. 최문정의 소설 <바보엄마>는 이 불평등한 사랑에 기인한다.

날 때부터 바보였던 선영은 열다섯 살에 강간을 당해 미치고서도 딸을 낳아 헌신적으로 기른다. 자식에게 ‘언니’라고 불리면서도 언제나 더 잘해주지 못해 종종거리는 바보엄마다.

그러나 딸 영주는 친척들이 수군대는 ‘출생의 비밀’ 을 알고 있다. 언니라고도 부를 수 없고, 엄마라고도 부를 수 없는 도망치고 싶은 현실. 영주는 엄마에게 대놓고 패악을 부리는 것으로 현실을 버텨낸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도 그랬다. 입맛이 없어, 아침을 먹으라는 엄마의 닦달에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리며 밥상을 엎어버린 것이다. 그런 영주 앞에 밤이 이슥해서야 돌아온 엄마는 치마 가득 따온 복숭아를 펼쳐놓는다.

복숭아는 영주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과일이다. 허겁지겁 복숭아를 먹는 딸에게, 뒀다가 혼자만 몰래 먹으라고 말하는 엄마. 그제야 복숭아 알레르기로 붉게 부어 오른 엄마의 팔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아, 복숭아밭이라니. 복숭아밭은 엄마가 미쳐버린 바로 그 범죄의 현장이었다.
무서웠다. 강간을 당하고도, 그래서 미쳐버리고도, 미혼모라는 이름을 달고도,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나를 위해 강간당한 복숭아밭으로 복숭아를 따러 갔을 엄마가. 그 복숭아밭에서 얻은 알레르기가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계속 주지시키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복숭아를 땄을 엄마가 무서웠다. 그 지독한 사랑이 무서웠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저주이자 횡포였다.


영주는 결국 지독한 사랑을 피해 도망치듯 결혼하고 오갈 데 없는 엄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런데 내리사랑은 영주에게도 대물림된다. 대상은 우울증을 앓아 툭하면 손목을 긋는 천재 소녀 닻별이다.

열 살짜리 딸 닻별이 앞에서 영주는 예전의 선영이 그랬듯, 더 주지 못해 절절매고 더 주고 싶어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엄마의 내리사랑을 깨달은 영주는 퇴원한 엄마와 자신의 딸과 함께 3대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라고 이야기가 끝나면 참으로 좋으련만. 소설은 눈물 나는 결말로 치닫는다.


심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죽는 딸 영주와 뇌종양에 걸린 엄마.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뇌사 판정을 받아 펄떡이는 심장을 딸에게 선물해주는 것이다. 끝까지 바보인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도 드라마틱해 TV 드라마로도 나온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절대적이면서도 불평등한 내리사랑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만큼이나 많은가 보다.



아버지의 부재를 긍정하는,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우리 문단의 젊은 작가 김애란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상 속의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반
지하 단칸방. 아버지는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두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이쯤 되면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 법한데, 주인공 ‘나’ 는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고 희구의 의지를 보인다.

아버지는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갔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마치 달동네 맨 꼭대기 셋방에서 어머니와의 첫 거사를 위해 피임약을 사러 내달린 것처럼.

그래, ‘나’에겐 아버지가 없지만 단지 여기 없다는 것뿐, 아버지는 계속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다고 상상하면 그뿐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어느 날 뜬금없이 배달되어온 항공우편. 낯선 억양의 인사를 건네며 돌아온 아버지의 부고(訃告)였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이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엔 아버지의 비루한 죽음의 사연이 들어 있었다.

이혼한 부인에게 줄 위자료가 없어 주말마다 그 집에 잔디를 깎아주러 가야 했던 아버지.

그러다가 부인의 새 남편과 시비가 붙었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운 나쁘게도 그 남편에게 상처를 입힌 채 덜컥 겁이 나서 최신식 가솔린 잔디깎이 기계를 타고 내달렸다는 참으로 아버지다운 도주.

편지는, 아버지가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걸로 끝이 나 있었다. 그러나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할 순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야 만다.


“아버지가…
미안하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이 사람 말로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나는 내친김에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부분에?”


나는 편지를 훑는 시늉을 하다가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에 와서 매주 잔디를 깎았습니다’라는 부분을 짚어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기.”


어머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부분을 한동안 들여다보더니 손으로 곱게 매만졌다. 그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상상 속에서 야광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아버지에게 눈이 부시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씌워준다.

앞으로도 더 잘 뛰라는 얼굴 모를 딸의 선물이다. 부재하는 아버지를 긍정하는 딸의 마음이다.




‘저짝 사람’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예요,
영화 <완득이>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완득이>.

주인공 완득이에게도 가족은 부재중이다. 굽은 등과 작은 키로 카바레에서 춤을 추는 난쟁이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고 열일곱 해를 살았다.

그런데 완득이를 언제나 “얌마 도완득!” 이라고 부르는 담임 ‘똥주’가 심드렁한 듯 일러준 출생의 비밀.


“너희 어머니 필리핀 사람이더라.”
“네?”
“아버님이 얘기 안 해?”
“저 어머니 없는데요?”


책가방도 그대로 둔 채 운동장을 질러 달아나버리는 소년. 그러나 한 번 각인된 어머니의 존재는 완득이를 계속 괴롭힌다. 가출을 해볼까? 가난, 장애인 아버지, 필리핀 어머니까지.

가출을 위한 완벽한 조건은 갖춰졌는데, 집을 나간다고 해서 완득이가 남긴 쪽지를 읽을 사람은 없다.

카바레를 그만두고 시골장을 도는 아버지는 언제 집에 올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완득이네 옥탑방으로 찾아온 어머니. 아들에게 존댓말로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어요?”
“….”
“잘 커 줘서 고마워요.”
“라면 드실래요?”


라면을 끓이는 시간은 고작 5분. 그러나 억겁과 같은 긴 시간이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곁눈질로 살피는 서로의 안녕.

아들은 어머니가 벗어둔 낡은 분홍색 단화가 속상하고, 어머니는 김치도 없이 매일 라면을 먹었을 아들이 안쓰럽다. 그 모성이 맞춤법이 엉망인 편지로 남는다.


‘정말 미않해요.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그 후 아들이 없을 때 찾아와 반찬통만 슬쩍 놓고 가는 어머니와 이제 라면이 아닌 즉석밥에 엄마표 반찬을 볼이 미어져라 먹는 아들. 이제 완득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부재중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입안에서만 맴도는 ‘어머니’란 세 글자.

완득이의 말문은 신발 가게에서 터진다. 말의 첫머리는 데면데면하다.


“신발 몇 신으세요?”

하나라도 더 팔고 싶은 장사치만 호들갑을 떤다.


“아, 사준다 할 때 얼른 신어봐. 예쁜 걸로 잘 골랐네. 그런데 저짝 사람 같은데 둘이 무슨 사이드래요?

아이고 꼭 맞네. 그걸로 해.”


“그냥 신고 가세요. 얼마예요?”

“3만 5천원 하는 건데 3만 3천원만 내.

(…) 둘이 무슨 사인데 이렇게 쩔쩔매나? 응?”


“… 어머니예요… 어머니.”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구두코에 아직 앉지도 않은 먼지를 닦고 또 닦는 어머니. 드디어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다.

 ‘완득아, 완득아!’

김춘수는 이럴 때가 올 줄 알고 ‘꽃’이라는 시를 지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완득이가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가 완득이를 부를 때,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오목오목 디뎌놓은 아들 발자국 따라,
이청준의 <눈길>


이청준의 단편 <눈길> 속의 ‘나’도 ‘노인’의 답답한 사랑이 싫다.
아내와 모처럼 내려왔건만 매정스레 내일 아침 올라가겠다는 아들의 한마디에 너무도 간단하고 무연하게 체념해버리는 모양새에도 짜증이 돋는다. 뭐가 그리 미안하기에 원망기도 없을까.

어머니는 매사에 그랬다. 이가 완전히 삭아 없어졌으면서도 싸구려 가치라도 하는 게 어떠냐는 아들의 말선심에는 늘그막에 웬 딴 세상을 보겠느냐며 단자리에서 사양이었다.


그런 노인이 슬그머니 엉뚱한 욕심을 내비친다. 초가지붕 대신 기와를 올리고 싶단다. 마을 사람 모두가 했다는 지붕 개량 사업이다. 한술 더 떠서 이참에 방 한 칸 늘리고 싶은 속내도 드러낸다.

당신의 숨이 끊어진 후 단칸방 아랫목에 시신을 늘여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잠까지 청해야 할 아들이 걱정된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언제나 따뜻하고 번듯한 방에서 아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잠자리를 봐주고 싶어 했다.

가세가 기울어 큰집을 팔아야 했을 때도 기어이 새 주인에게 양해를 얻어 그 집에서 아들을 기다렸던 노인이다.

아직도 살 만한 척, 너는 걱정할것 없다는 척, 밥을 해 먹이고 하룻밤 재우며 혼자만의 연극을했던 어머니.

알면서도 책임지기 싫어 묵묵히 그 연극에 동참해 준 아들….

문득 연극 다음 날의 흰 새벽이 떠오른다. 아들을 첫차로 태워 보내기 위해 시오리나 되는 장터 차부까지 둘이서 걸어가던 눈길. 동구 밖까지만, 마을 뒷산 잿길까지만, 새 신작로가 나설 때까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함께 가자던 어머니는 결국 그 먼 길을 모두 걸어 막 출발하려는 차에 아들을 실어 보냈다.


그 후에 노인네가 어떻게 혼자 새벽 눈길을 넘어 집으로 갔을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거처가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고 싶었다. 기억의 피안으로 사라지길 바랐던 새벽 눈길의 기억.

그런데 노인이 옆에 누운 ‘내’ 아내의 성화에 그 새벽의 일을 마지못해 털어놓는다. 아들이 슬며시 잠에서 깬 줄은 세상에도 모르고….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

오목오목 디뎌놓은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한알 한알 염주를 굴리며 기원을 하듯, 아들이 디딘 걸음 자국마다 눈물로 기도를 드렸을 어머니.

이제 그 아들의 감은 눈꺼풀 안으로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그 수많은 발자국 중 어머니 자신을 위한 기도는 단 한 걸음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기도가 그러하듯.


글 전희영(방송작가)

일러스트 김다한




김홍도 ‘나들이’ (39.7×26.7cm, 조선시대,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 두 아이와 함께 길을 가고 있는 부부를 그린 그림이다.


천년을 오롯이, 선조의 가족 사랑과 마주하다


내 곧 돌아오마 약조하고 떠난 남편에게서 소식이 없자, 남편이 떠난 먼 길을 바라보며 통곡하던 아내.
심장이 돌이 되고, 눈물이 돌이 되고, 결국 그 자리에 선 채로 온몸이 돌이 되어버린다.

망부석(望夫石)의 전설이다.


조금이라도 멀리까지 내다보고자 대체로 고개나 산마루에서 남편을 기다렸기에, 높은 곳에 있는 사람 형상의 돌에는 대개 비슷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궤와 틀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을 향한 절절한 마음은 우리네 정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 외에도, 선조는 편지와 문헌을 통해 그들의 가족 사랑을 후손인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원이엄마의 한글편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이들은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살았음을 알수 있 다. ⓒ안동대학교박물관


못다 한 말을 편지로 담아

첫 번째, 망자에게 보내는 원이 어머니의 연서


때로는 말보다 글에 힘이 더 실린다. 속으로 몇 번을 곱씹고 삭힌 정수(精髓)만 남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가족에게 써서 보낸 편지엔, 그래서 사랑이 더 절절하다. 멀기로 치자면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 한 게 있을까.

1998년 봄, 경북 안동의 산기슭에서 주인 모를 무덤이 발견됐다. 아파트 택지 개발 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포클레인으로 무덤을 파내려가자 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관을 열자 시공이 달라진다.

400여 년 전의 편지가 망자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수신자는 원이 아버지. 망자의 아내가 보낸 편지다.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이 머리 셰도록 사다가 같이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여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


‘둘이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더니 어찌해서 나를 두고 먼저 가시는지.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찌 살라는 건지.’

다 버리고 먼저 떠나버린 지아비에 대한 원망이다. 애달픈 그리움이다.

가로 60cm, 세로 33cm의 한지 위엔 원이 어머니의 급한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관 뚜껑이 닫히기 전에 편지를 넣기 위해, 눈물범벅된 얼굴을 훔칠 새도 없이 써내려갔을 마지막 연서.

한지 위의 붓글씨는 솔 숲처럼 빼곡하다.

전할 말이 넘쳐흘러 종이를 돌려가면서까지 써내려간 까닭이다.


애끓는 편지는 계속된다.

내 마음은 한도 끝도 없어 대강밖에 못 적으니, 이 편지를 보면 꿈속에서라도 찾아와달라는 애원이다.

돌아올 때 신으라고 아내는 신까지 넣어주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한 켤레다.

남편은 그 신 신고 아내의 꿈속에 찾아와 가만히 등이라도 쓰다듬어주었을까.



정약용 ‘매조도’(비단에 수묵 담채, 45×19cm, 1818년,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귀양살이 10년째,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던 다산의 아내 홍씨가 남편에게 시집올 때 입고 온 다홍치마 6폭을 인편에 보냈는데, 이것을 가위로 잘라 네 개의 첩(帖)을 만들어 두아들에게 글을 써주었고, 그 나머지 천으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주었는데 딸아이가 시집을 잘 가서 훌륭한 남편과 아름다운 삶을 보내고 후손도 많이 길러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라는 부정이 넘치는 글이다.



두 번째, 유배지에서 쓴 다산 정약용의 편지


다산(茶山) 정약용도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 태어난 지 겨우 3년 만에 역병으로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 농아에게다. 정약용은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도 가보지 못할 처지였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귀양살이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영혼이라도 위로하고 싶어 무덤에 보낸 아버지의 곡(哭)은 그래서 더 비통하다.


爾魂潔白如雪 (영혼은 눈처럼 맑고 하얗게)
飛飛去入雲間 (날아올라 구름 안에 가득하지만)
雲間千里萬里 (그 구름 사이가 천리만리로구나)
父母淚落潛潛 (가슴에 이는 부모 마음 슬픔에 잠겨 눈물만 떨어뜨리네)


그러나 한 여인의 지아비이자 또 다른 자식들의 아버지인 다산은 마냥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을 터. 그는 상심하고 있을 아내가 걱정되어 두 아들에게 당부 편지도 함께 보낸다.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위로하고, 며느리들로 하여금 방이 따뜻한지를 잘 살피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드리라는 인정이 밴 편지다.


가족 간의 사랑은 그의 유배 생활 18년 동안 이렇게 편지에서 편지로 전해졌다. 18년의 편지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피첩(霞帖)이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인 하피첩은, 문자 그대로 붉은빛이 바래 저녁노을이 되어버린 치마에 글을 써서 묶은 책이다. 노을빛 치마는 부인 홍 씨가 시집올 때 입은 붉은색 활옷을 보내온 것이었는데, 정약용은 이를 알맞게 재단해 아들에게 남기는 가르침을 적었다.


 ‘근검하여라, 하찮은 음식이라도 맛있다고 생각하며 먹어라, 호연지기를 길러라….’


먼 곳에서도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애틋한 부정은 2004년 어느 개인 사업자가 고물을 줍는 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천년을 뛰어넘은 가족 사랑이다.



명성왕후간찰(明聖王后簡札)(21.5×24cm, 17세기, 보물 1220호, 오죽헌시립박물관소장)

명성왕후가 명안공주에게 보낸 간찰로 명안공주가 보낸 간찰에 대한 답신으로 보인다. 명안공주가 보낸 편씨를 보고 친히 보는 듯 반가워하며,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정이 잘 드러나 있다. 역병을 잘 이겨낸 딸을 대견해하고 그런 딸에게 먹을 것을 챙겨보내는 것이 여염집 어머니와 다를 바 없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딸을 시집보낸 아비가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없이 자란 딸이 시집가는 날,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부디 귀염받는 며느리, 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어머니가 되어다오, 소원은 그것뿐이라고 마음속으로 수천 번을 빌었을 아버지.
그런데 시집간 딸의 병고 소식이 들려온다. 아버지는 딸이 혹여 시댁에서 눈 밖에 날까 저어돼 사돈댁에 예를 다해 편지를 쓴다.
1910~20년대 즈음, 전북 임실의 성암 이공 일가에서 보관해오던 서한이다.


간밤에 딸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고는 잠을 도저히 이룰 수 없어 제발 사랑스러운 딸에게 아무 변고가 없기를 바라면서 날이 새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의 병환이 다시 심해졌다는 소식을 받고는 간장이 오므라지듯 해 견딜 수 없습니다.

가정의 화목은 가족이 건강해야 지켜지는 것인데, 며느리의 병이 사돈댁 걱정거리와 우환이 되고 있으니 어찌 고개를 들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나 부모 된 마음이 그러하겠지만 더욱 가슴이 미어지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면목 없게도 여쭙니다. 지금 딸아이의 몸 상태는 어떠한지요?


아버지는 날이 풀리는 기미가 보이기라도 하면 찾아뵙겠노라 정중한 다짐으로 편지를 끝맺는다.

딸에게 괜한 불똥이 튈까 근심하면서도 딸의 병 수발이나 약 처방에 소홀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압력을 내비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러나 딸의 병은 점점 깊어져 친정에서 요양을 하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날이라도 풀리면 떠날 것을… 엄동설한에 먼 길을 떠난 야속한 딸아이를 차마 언 땅에 묻을 수 없어, 아버지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사돈댁에 숱하게 보낸 아버지의 서찰은 이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아픈 부성만 후세에 남았다.


네 번째, 선비의 손자 사랑 - 이문건의 육아 일기 <양아록>


“다정(多情)도 병(病)”이라고 읊은 것은 고려 500년 역사의 제1인자라 일컬어지는 이조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8대손인 조선 중기의 문신 이문건은 선조의 ‘다정병’을 물려받아 손자 사랑이 각별했다. 명문 집안 사대부의 몸으로 육아 일기까지 세상에 남겼는데, 이는 그의 집안이 유독 죽음과 각별했기 때문이다.

이른 나이에 부모 형제를 차례로 모두 여의고, 자식 6명 중에서도 스무살을 넘긴 것은 아들 ‘온’ 뿐이었다. 그런데 온도 어려서 걸린 열병과 풍 때문에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희망은 오직 손자뿐이었으니 다정병이 생길 만도 했다.


이문건은 어렵게 얻은 손자가 커가는 과정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육아 일기인 <양아록>이다.

태어난 장소는 물론, 태를 묻은 곳, 이름을 지은 연유까지, 손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요즘 사람이라면 파워 블로거라도 됐을법한 열정이다.


손자가 태어난 곳은 성주성 동남쪽 아래 옥산리에 사는 아전 배순의 집 북쪽 방이다. 나이 든 아내와 여종 돌금
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아이가 나오자 돌금이 배꼽의 탯줄을 자르고 싸맸다. (…)

손자의 얼굴은 단정하지만 묘한 구석이 있고 겉으로 보이는 얼굴뼈나 머리뼈의 생김새가 평범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고 숙길(淑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문건은 귀한 손자가 병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부모 형제는 물론 자식운까지 없었기에, 손자

만큼은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게다.

그런데, 행여 닳을까 만지기도 아까운 손자를 이와 벼룩이 물어뜯었다.

화가 난 마음에 한시까지 지은 할아버지. 제목은 ‘증조슬(憎蚤蝨)’, 즉‘얄미운 이와 벼룩’이란 뜻이다.


살결과 피부가 무르고 약해 핏줄이 보이는데
얄미운 이와 벼룩이 다투어 달라붙는다
젖먹이가 속으로는 괴로워도 어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온몸에 침을 놓은 듯 붉은 상처 보기 괴롭다
작은 벌레가 날카롭고 뾰족한 입을 가진 것은
조물주 역시 시기심이 많기 때문인가
차라리 내게 오도록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가엾구나, 어린아이는 물어뜯지 말거라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이문건에게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유일한 환희 그 자체였다. 문살을 붙잡고 걸음마 연습을 하는 것도, 돌잡이 때 이것저것 잡아 가지고 노는 것도 그저 어여뻐서 소상히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마냥 오냐오냐 귀이 여긴 것만은 아니었다. 공부를 게을리하고 나가 놀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바로잡기
위해 따끔한 매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술을 탐하는 모습엔 눈물로 호소하는 편지를 적기도 했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손자가 할아버지의 글을 보고 그 마음을 헤아려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 연유다.


 <양아록>은 1566년 4월 20일에 그 기록을 끝맺는다. 글을 익히는 데 게으른 손자를 심하게 매질한 후였다. 어
릴 때는 늘 어여삐 여기고 안타깝게 생각해서 차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지만, 글을 가르치는 지금은 늘 성급하게 화를 내고 손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가.

할아비의 난폭함을 진심으로 경계한다. 이때 이문건의 나이는 이미 일흔을 넘긴 때였다. 가르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급했던 걸까.


얼마 후 이문건은 세상을 떠나고, 그가 애지중지하던 손자는 비록 과거에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다. 게다가 당연한 일을 했을뿐이라며 나라에서 내리는 상도 거절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양아록>에 절절이 써내려간 할아버지의 바람이 손자의 인생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전희영(방송 작가)

참고도서 <천 년의 향기 편지로 남다>(이재원 지음, 점자 펴냄),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김찬웅 지음, 글항아리 펴냄) 자료협조 오죽헌시립박물관, 고려대학교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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