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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民村)
이 기 영
1
태조봉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은 ‘향교말’을 안고 돌다가 동구(洞口) 앞 버들숲 사이를 뚫고 흐르는데 동막골로 넘어가는 실뱀 같은 길이 개울 건너 논둑 밭둑 사이로 요리조리 꼬불거리며 산잔등으로 기어올라갔다. 그 길가 냇둑 옆에 늙은 향나무 한 주가 마치 등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형상을 하고 섰는데 그 언덕 옆으로는 돌담으로 쌓은 옹달샘이 있고 거기에는 언제든지 맑은 물이 남실남실 두덩을 넘어 흐른다.
그런데 그 앞개울은 가뭄에 바짝 말라붙었던 개천에 이 샘물이 겨우 ‘메기’ 침같이 흐르던 것이 이마적* 장마봉에 그만 물이 버쩍 늘었다.
양청*물같이 푸른 하늘에는 당태솜* 같은 흰 구름이 둥둥 떠도는데 녹음이 우거진 버들숲 사이로는 서늘한 매미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쪽 숲 앞으로 툭 터진 들 안에는 장잎*이 갈라진 벼포기가 일면으로 퍼렇고 멀리 보이는 설화산이 가물가물 남쪽 하늘가에 닿았다. 푹푹 찌는 중복허리*에 불볕이 쨍쨍 나는 저녁 때이다.
조첨지 며느리, 점백이 마누라, 성삼이 처, 또는 점순이 이쁜이는 지금 샘가에 늘어앉아서 한편에서는 보리쌀을 씻고 또 한편에서는 푸성귀를 헹구는데 수다하기로 유명한 성삼이 처는 이런 때에도 입을 다물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웃을 때마다 두 뺨에다 샘을 파고 말할 때에는 고개를 빼뚜름하면서 쌍꺼풀진 눈을 할금할금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어떻든지 ――해반주그레한* 얼굴이 눈웃음 잘 치고 퍽 산들거리는―― 이 동리에서는 제일 하이칼라상이란다. 그래 주전부리(?)도 곧잘 한다는 소문이 나기는 벌써 오래 전부터이다마는 시아비와 서방은 도무지 그런 줄을 모른다고 멍텅구리 한 쌍이라고 흉이 자자하단다. 지금 성삼이 처는 전과 같은 표정으로 점백이 마누라를 할끗* 쳐다보며
“아주머니!”
하고 열쌔게* 불렀다. 그의 날카롭고 윤나는 목소리로……
‘또 무슨 소리가 나올라누?’
일상 뚱하니 남의 말만 듣고 있는 조첨지 며느리는 은근히 가슴속으로 생각하였다. 하긴 그는 아직 파겁*을 못한 숫각시로서 이런 자리에서 그들과 같이 말참례하기는* 어려웠다.
안동포 적삼 소매를 활짝 걷어붙인 뿌연 살이 포동포동 찐 팔뚝으로 보리쌀을 이리저리 헤쳐서 푹 눌렀다, 썩싹 푹 눌렀다 썩싹 하고 한참 장단을 맞춰서 재미있게 씻던 성삼이 처는 바가지로 물을 퐁퐁 퍼붓고는 한번 휘둘러서 보리쌀을 헹구더니만 그 옆에 놓인 옹배기*에다 뽀얗게 우러난 뜨물을 쪽 따라놓는다. 하더니만 무슨 의미인지 점백이 마누라를 할끗 쳐다보고 한번 쌩끗 웃는다.
“아주머니! 박주사 아들은 또 첩을 얻었다지요?”
“그렇다네. 돈 많은 이들이니까 우리네 ‘소’를 개비하듯*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점백이 마누라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볼먹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그의 목소리는 원래 예사로 하는 말도 퉁명스럽게 들리었다.
“그런데 그전 첩은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쫓었대요! 동전 한푼 안 주고…… 그래 울며불며 나갔다던가.”
“그럼 웨 아니 그렇겠나. 아무리 첩이라 하기로니 같이 살겠다고 데려다놓고 불과 일 년에 맨손으로 나가라니!”
“그야 그렇지요만 나 같으면 그대로 쫓겨나지는 않겠어요!”
하고 성삼이 처는 별안간 두 눈초리가 샐쭉해진다.*
“그럼 어찌하나? 첫째는 당자가 싫다 하고 왼 집안사람이 돌려내는 바에야. 그 눈칫밥을 먹고 어떻게 살겠나? 그러기에 예전 말에도 예편네는 뒵박* 팔자라고 했다네. 더군다나 민적*도 없는 남의 첩 된 신세가 아닌가?”
“그러면 그까짓 놈 고장*을 들어서 메붙이고* 한바탕 분풀이도 실컷 좀 못할까?”
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눈앞을 흘끗 쳐다보던 점백이 마누라는 별안간
“쉬.”
하고 성삼이 처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이 바람에 성삼이 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이켰다. 과연 거기에는 지금 말하던 박주사 아들이 보였다. 그래 그는 시치미를 뚝 따고 정신없이 보리쌀을 헹구는 체하였다.
모시 두루마기에 맥고모를 쓴 박주사 아들은 살이 너무 쪄서 아랫볼이 터덜터덜하는 얼굴을 들고 점잖은 걸음새로 조를 빼며* 걸어온다. 그는 어느 틈에 나왔는지 모르는 개천가 논둑에서 뒷짐지고 섰는 조첨지를 보고는
“영감 근력 좋은가?”
하고 거침없이 하소*를 내붙인다. 그런데 조첨지는 그게 누구인지 의아한 모양으로 한참 동안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비로소 알아차린 모양으로 아주 반색을 하면서
“아! 나으리십니까. 웬수의 눈이 어두어서……·해마다 달습니다그려. 어서 죽어야 할 터인데…… 아! 그런데 어디를 가십 니까?”
하고 그는 박주사 아들이 오는 편으로 꼬부랑꼬부랑 따라나온다.
“응! 이 아래 들에 좀……”
그는 이런 대답을 거만하게 던지고 샘둑에 둘러앉은 여자들을 자존심이 가득한 눈매로 한번을 쓱 둘러보더니만 다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만치 가다가
“그래도 좀더 살어야지!”
하는 말을 고개를 홱 돌이키며 하였다. 이 바람에 그는 다시 한번 샘둑을 보았다.
“더 살면 무엇합니까? 살수록 고생이지요, 아하!”
조첨지는 한숨 섞인 말을 하며 동구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양을 우두커니 서서 보더니 다시 돌아서서 멀리 설화산 쪽을 바라본다. 그는 부지중* 후 하는 한숨을 내쉬고 가까스로 등을 좀 펴보았다.
“새파란 젊은 놈이 제 할아비뻘이 되는 노인보고 하소를 깍듯이 한담!”
하고 성삼이 처는 또 입을 삐쭉하는데
“할아비뻘은커녕 증조할아비뻘도 넉넉하겠네!”
하고 지금 막 바가지로 물을 퍼붓던 점백이 마누라는 또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그는 다시 조첨지 며느리를 쳐다보며
“참, 자네 시아버니 연세가 올에 몇에나 섰나?”
“여든……· 일곱이시래요!”
하는 말에 그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었다.
“같은 양반이라도 이 아랫말 서울댁 양반은 그렇지 않더구만.”
“응, 그 양반은 원체 얌전하니까 무얼! 저희가 우리보고 하소해주기로니 근본이 안 떨어지기나 우리가 저희보고 하오를 않기로니 근본이 안 올러스기는 피차 일반이지. 지금 세상은 저만 잘나면 예전같이 판에 박은 상놈 노릇은 않는가 보데. 저만 잘나고 돈만 있으면 아조 고만인 세상인데 무얼!”
“아이구! 아주머니는 아들을 잘 두섰으니까 그러시지. 학교 공부에도 번번이 일등 간다지요?”
"글쎄!·……·장래가 어떠할는지. 우리 늙은 내외는 그저 저 하나만 바라고 사네마는 그나마 뒤대기가* 여간 어려워야지. 참, 자네도 어서 아들을 나야 할 테인데 도모지 웬 심인가? 소식이 감감하니!…… 좀! 단골한테나 물어보지?”
“그러지 않어도 물어보았대요!”
“그래 뭬라구?”
점백이 마누라는 별안간 목소리를 죽이며 은근히 쳐다본다.
“살풀이를 해야 한대요!”
‘살은 무슨 살? 서방질을 작작 하지!’
점백이 마누라는 속으로 이런 말을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럼 그 살을 풀어야지! 무슨 터줏살이라던가?”
하고 다시 의심스러운 듯이 물어보았다.
“아니 궁합이 안 맞는대요!”
‘핑곗김에 잘됐군!’
그는 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체하고 고개를 끄텍끄텍하였다. 그는 이야기에 팔려서 볼일을 못 본 것이 생각난 것처럼 소두방* 같은 손으로 보리쌀을 씻기 시작하였다. 큼직한 얼굴에는 얽은 구멍이 벌집 같이 숭숭 뚫렸다.
지금까지 기척 없이 열무를 씻고 있던 점순이는 별안간 고개를 반짝 쳐들며
“그런 젊디젊은 이가 노인을 보고 어떻게 허소가 나온대요?”
하고 이상스러운 표정으로 점백이 마누라를 쳐다본다. 그는 마치 여태까지 그 생각을 하느라고 잠자코 있었던 것처럼.
“양반이라 그렇단다!”
하고 점백이 마누라는 대답하였다. 이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성삼이 처는 또 이야기를 끄집 어내놓는다.
“아주머니! 니는 참 저승에 가서라도 양반 될까봐 겁이 나요! 잔뜩 갇혀 앉어서 그게 무슨 자미로 산대요? 해!해!·…….”
“그래도 지금 그까짓 것은 아주 약과라네. 예전에는 참말로 지독하였느니. 어디가 남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뻔이나 하며 시부모 앞에 철퍽 앉어보기를 할까. 꼭 양수거지*를 하고 섰지. 어떻던지 양반이란 것은 마치 옷 치수금*을 말르듯이 한 치 반 푼을 다토고 매사에 점잔하기로만 위주하였느니!”
한참 말끄러미 쳐다보던 성삼이 처는 별안간
“그런 이들이 내외 잠자리는 어찌했을까?”
하고 고만 웃음을 내뿜는 바람에 조첨지 며느리는
“아이 형님도·…….”
하고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렇던 양반이 지금은 차차 상놈을 닮어간다네!”
하고 점백이 마누라도 빙그레 웃었다. 이쁜이는 고만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그들도 자네 말마따나 양반을 ‘결박’으로 알었던지 지금은 아주 상놈 행세를 하며 그저 말버릇만 ‘양반’이 남은 모양이데. 다른 것은 모두 상놈을 닮어가며 상놈보고 하대하는 것만 그대로 가지고 있느니. 하기는 그것마저 없어지면 아주 상놈과 마찬가지가 될 터이니까. 이 양반 꺼풀만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참말로 예전 양반은 양반다운 행세가 있었다네!”
“박주사 양반 같은 것은 양반탕반* 개 팔어 두 냥 반*만도 못한 것이 무슨 양반이라구?”
“예전 양반은 돈을 알면 못 쓴댔는데 지금 양반은 돈을 잘 알어야만 되나부데. 그이도 돈으로 양반이지, 만일 돈이 없어보게. 누가 그리 대단히 알겠나. 그러니까 그에게 돈이 떨어지는 날에는 양반도 떨어지는 날이란 말일세. 그러니까 돈을 제 할아비 신주보다 더 위할밖에. 우리네 가난한 사람의 통깝대기를 벗겨서라도 돈을 더 모으자는 것은 좀더 양반노릇을 힘 있게 하자는 수작이지.”
“참, 돈이 그른지 사람이 그른지 지금 세상은 모두 돈만 아는 세상인가봐요. 의리도 없고 인정도 없고…….”
“사람이 글러서 돈이 생겼다네. 돈 없는 짐승들은 제각기 벌어먹고 잘들 살지 않나!”
“참 그래요. 예전 이야기에도 짐승들이 돈을 맨들어 썼단 말은 못들었구먼!”
“그렇지만 힘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지 않어요! 짐승들은?”
하고 별안간 점순이는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이런 말이 쑥 나왔다.
“잡아먹힐 놈은 먹히더래도. 무얼 사람들도 그런 셈이지. 얘! 나는 제멋대로만 살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다 죽더래도 좋겠다!”
“봄 하늘에 훨훨 나는 종달새같이요?”
“그래, 참 네가 잘 말했다.”
하고 점백이 마누라는 슬쩍 웃는다. 그가 제법 이런 소리를 하게 된 것은 실상은 자기 아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서울 양반댁이란 이는 역시 양반으로 서울 가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온 청년인데 이 동리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르는 터였다. 그가 집에 있을 때면 점백이 아들은 늘 그를 찾아가서 놀았으므로 그에게 이런 말을 듣고 와서는 저의 부모에게 옮긴 것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에는 언제든지 신기한 것처럼 영감은 고개를 끄덱끄덱하며
“하긴 그도 그리여…….”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같이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하나씩 둘씩 제집으로 흩어져 갔다. 성삼이 처는 보리쌀 든 자배기*에다 물을 하나 가뜩 이고 한 손에는 뜨물 옹배기*를 들고서는 자배기 전*으로 물이 넘어 흘러서 입으로 대드는 것을 푸푸 내뿜으며 걸어간다. 이 집 저 집에서는 저녁 연기가 꾸역꾸역 떠오른다.
2
향교말이란 동리는 자래*로 상놈만 사는 민촌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과연 사오십 호나 되는 동리에 양반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구해도 없는 상놈 천지였다. 어쩌다 못생긴 양반이 이 동리로 이사를 왔다가는 그들에게 돌려서 얼마를 못 살고 떠나고 떠나고 하였다.
그러나 그전에는 양반의 덕으로(?) 향교(鄕校) 하나를 중심하여 향교 논도 부쳐먹고 향교 소임* 노릇도 해서 먹고살기는 그렇게 걱정이 없더니 시체* 양반은 잇속이 어찌 밝은지 종의 턱찌끼까지 핥아먹는 더러운 양반이 생긴 뒤로는 그나마 죄다 떨어지고 지금은 향교 고지기*가 겨우 논 여남은 마지기를 얻어 부치는 것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모두 권세 좋은 양반들이 얻어 하고 얻어주기도 하는데 박주사 아들이 제 하인으로 부리는 이웃 상놈에게도 이 논을 더러 얻어 준 일이 있다.
그래 이 동리 사람들은 점점 더 못살게만 되는데 작년에 흉년을 만나서 더구나 못살 지경이 되었다. 그들 중에 조금 살기 낫다는 이가 남의 논섬지기나 얻어 부치는 것인데 박주사집 논을 얻어 짓는 사람도 몇 집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나무장사와 짚신장사와 산전(山田)을 파서 굶다 먹다 하는 이들뿐으로 올에는 또 물난리가 나서 수패*를 당한 사람도 많다. 그중에는 점순이 집도 논 댓 마지기를 지은 것이 온통 떠내려가버려서 가을이 된대야 벼 한 톨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한다. 그것은 박주사집 땅을 올에도 다행히 그대로 부치다가 고만 그 지경이 된 것이었다. 박주사집에서 이 논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다만 점순이 모친이 안으로 조른 보람만이 아니라 어떤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박주사는 그때 그 논을 벌써 언제부터 맨입으로 드.난*을 하며 논 좀 달라고 지성껏 조르는 성룡이를 주자는 것을 박주사 아들이 우겨서 그대로 둔 것을 보아도……
그 박주사집이란 벌써 몇 대(代)째로 이웃 말에서 사는 집인데 해마다 형세가 늘어가서 이 통 안에서는 제일 부명을 듣는 터이다. 안팎으로 잇구멍*은 몹시 밝아서 박주사의 어머니 귀머거리노인도 잇속에 들어서는 귀가 초롱같이 밝아진다는, 어떻든지 모두 그런 식구끼리 잘 만나서 사는 집이란다. 그래 그의 아들은 지금 스물이 겨우 넘은 젊은 친구가 어떻게도 이심스럽든지* 또한 남만 못지않은 그 아버지 박주사가 아주 세간살이를 맡기었다 한다. 그는 지금 동척회사 마름*이요, 변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평의원으로 세력이 당당하여 내년에는 보통학교 학무위원으로 추천해준다는 셋줄*도 있다는데, 칼 찬 순사나 군 직원들이 출장을 나오게 되면 으레 그 집으로 먼저 와서 네냐, 내냐, 막 터놓고 희영수*를 하고 보통학교 훈도*까지 가끔 나와서 그와 술잔을 기울이는 터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장황히 늘어놀 것은 없겠다. 왜 그러냐 하면 이런 박주사집이나 박주사 아들 같은 사람은 어느 시골이든지 결코 절종(絶種)은 되지 않았을 터 이므로.
지금 샘에서 돌아온 점순이는 푸성귀 담은 바구니와 물동이를 부뚜막에 놓았다. 모친은 벌써 보리쌀을 안치고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보릿짚이 화르르 화르르 타오른다.
“물은 그렇게 많이 이고 무겁지 않으냐? 순영이가 왔다 갔다.”
“네! 언제쯤?”
“지금 막. 또 온다구 하더라만. 그럼 너는 순영이와 같이 네 오빠 등거리*나 박어라.”
“어머니 혼자 바쁘잖아?”
“아니.”
하는 모친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새 왔니?”
하고 순영이가 들어왔다. 그는 해죽이 웃는 낮으로 점순이를 쳐다보며. 그는 점순이보다 이쁘다 할 수는 없지마는 얼굴이 좀 동그스름한게 살이 토실토실 올라서 탐스럽게 생긴 처녀였다. 역시 점순이와 동갑으로 올에 열여섯 살이라 하는데 엉덩이가 제법 펴지고 기다란 머리채가 발꿈치까지 치렁치렁 하였다. 점순이는 키가 날씬하고 얼굴이 가름한 게 그리 살찌지도 또한 마르지도 않은 그리고 살빛이 무척 희었다.
“나는 지금 샘으로 가볼까 하다가 이리 왔다. 웨 그렇게 늦었니?”
“열무에 버러지가 어떻게 먹었는지 좀 정하게* 씻느라고. 자, 방으로 들어가자.”
“더운데 무엇 하러 들어가니? 여기서 하자꾸나!”
“아니, 뒷문 앞은 시연하단다.”
그래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서 손그릇을 벌여놓고 앉았다.
“그것은 뉘 버선이냐?”
“아버지 해* 란다!”
“요새 삼복머리*에 버선은 왜?”
하고 점순이는 순영이 얼굴을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 표정은 갑자기 웃음으로 변하여졌다. 확실히 빈정거리는 웃음으로.
“옳지! 알겠다. 그렇지!”
“무에 그래여? 삼복에는 왜 버선을 못 신니!”
“선보러 갈 버선?…….”
하는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순영이는 달려들어서 점순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한 손으로는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었다.
“아야! 야……·안하께! 내 다시는 안하오리다! 호호호……·그럼 거짓말이냐? 또!”
“얘, 그런 소리는 하지 말고 어서 바누질이나 가리쳐주렴! 얼른 해 가지고 오라는데 기 애가.”
하는 순영이는 오히려 부끄러운 듯이 두 뺨이 가만히 붉었다.
“왜 그리 또 급한가?”
“기애는, 또! 어머니가 얼른 오라구 하니까 그렇지. 우리 어머니는 늬 집에 올 때마다 그런단다.”
“그는 웨?”
“누가 아니. 커드란 머슴애 있는 집에 가서 웨 그리 오래 있느냐고 그런다는구만. 커드란 계집애가 철을 몰러두 분수가 있지 않으냐구.”
“너는 우리 오빠가 좋으냐?”
별안간 밑도 끝도 없이 점순이는 이런 말을 불쑥 물어보았다. 그래 순영이는 얼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럼 또 너는 좋지 않으냐?”
“나는 좋지 않다. 아주 심술꾸러긴데 무얼.”
“얘, 사내들은 그래야 쓴다더라. 숫기가 좋아야.”
“그럼, 너는 우리 오빠가 좋은 게로구나!”
“누가 좋댔니?……·그렇단 말이지.”
순영이는 얄미운 듯이 점순이를 흘겨보는데 눈 흰자위가 외로* 쓸리고 입에는 벙싯벙싯 웃음이 괴었다.*
“오빠는 아주 너한테 반했단다.”
“아이, 기애는·…….”
순영이는 어이가 없는 듯이 점순이를 쳐다보았다.
“무얼 나도 다 아는데……·늬들은 어젯밤에 담 모통이에서 속살거리지 않었니?”
이 말에 고만 순영이는 실쭉해지더니
“그럼 또 너는 어제 저녁때 ‘서울댁’하고 늬 원두막에서 단둘이 있지 않었니? 나두 개울창에서 똑똑히 좀 보았다나.”
“그리여. 기애는 누가 아니라남! 그럼 그때 너두 왜 놀러오지 않구?”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점순이를 순영이는 은근히 놀랐다. 그럴 줄 알았더면 나도 숭을 보지 말걸 하는 생각이 났다.
“남의 재미있게 노는 걸 훼방치면 좋으냐? 무얼! 그때 갔어봐. 속으로 눈딱총*을 놓았을 것이…….”
“아니야. 나도 어제 첨으로 그이하고 이야기해봤단다. 그런데……”
“그런데 뭐? 그때 너는 어째 혼자 있었니? 자옥 맞이하랴고 호호호…….”
“기애는 별소리를 다 하네. 글쎄 들어봐요! 점심을 해놓고 기다리니까 어머니가 원두막에서 들어오시더니 나보고 이라시겠지. ‘어서 밥 먹고 원두막에 가보아라. 내가 들에 밥 내다주고 올 동안만.’ 아버지와 우리 오빠는 어제 산 너머 있는 집의 화중밭을 매섰단다.”
“오 참, 어제도 늬 집은 일했지. 점심때 연기가 꼬약꼬약 나더라!”
“그래 막 나가 앉어서 바누질거리를 손에 잡으랴니까 별안간 인기척이 나더구나. 깜짝 놀래 쳐다보니까 그이겠지! 나는 그때 어짤 줄을 몰라서 고개를 푹 숙였단다.”
“그래 그이가 뭐라고 하든?”
“번히 알면서 웨 모르는 체하니!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 무엇이 부끄러워’ 이라겠지.”
“얼레! 그이도 꽤 우숩잖다! 그래 그때 너는 뭐라구 했니?”
“그런 때 무슨 말이 나오겠니. 거저 웃고 쳐다보았지. 그랬더니 그는 ‘그렇지! 그렇지! 진작 그렇게 고개를 들 것이지’ 하고 나를 꿰뚫을 듯이 쳐다보던가. 구리더니 무작정하고 망택기에서 참외를 끄내먹으며 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겠지!”
“얼레! 그이가 왜 그렇다니? 그래 어떻게 되였니!”
순영이는 한 걸음 다가앉으며 이상스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점순이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그담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단다. 참외를 어귀어귀 먹으면서 ‘나를 양반이라고 늬들이 돌려내나부다마는 양반도 역시 사람이란다. 하기는 같은 사람으로 누구는 양반이니 누구는 상놈이니 하고 또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사는 것이 발써 못생긴 인간이다. 그렇다면 너하고 나하고 같이 노는 것이 어떨 것 무엇 있니? 다 같은 사람인데 나는 너한테 창순아! 하고 불러주는 소리를 들었으면 제일 좋겠다’ 구.”
“얼레! 그것은 또 무슨 소리라니?”
“그라지 않어도 그때 나는 ‘그것은 웨요?’ 하고 깜짝 놀래며 물어보았단다. 그랬드니 그이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너하고 나하고 동무가 되지 않니?’”
“그럼 같이 놀잔 말이라구나!”
“그래 나는 ‘당신도 우리네 상놈 같구려!’ 하였더니, 그이는 ‘나는 상놈이 되고 싶다’ 하겠지. 내 원 어찌 우수운지!”
“왜 그런다니? 그이가 미치지 않었을까?”
“몰라·……그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단다. 서울 이야기, 여학생 이야기, 이 세상이 악하고 어떻고 어떻다고 한참 떠들었단다.”
“그건 또 웬 소린가. 아니 참말로 들을 만했었구나! 그럴 줄 알었더면 나도 좀 가서 들을 것을!”
“그리다가 주머니를 부시럭부시럭 하더니만 돈을 집히는 대로 끄내서 세보도 않고 내놓고는 고만 뒤도 안 돌아다보고 휘적휘적 가겠지!”
“얼레! 그래 얼마나?”
“동전하고 백통전*하고 한 네댓 냥은 되여 보이드라. 그래 나는 한참 동안 덩둘하다가* ‘나 봐요!’ 하고 암만 불러도 세상 와야지. ‘그만둬 그만둬’ 하고 손을 내젓고 가겠지.”
“참외는 몇 개를 먹었는데?”
“세 개를 먹었단다. 하기는 잘 안 익은 놈을 두 개는 도려놓았지만두. 먹은 값으로 치면 한 개에 닷 돈을 치더래도 냥반밖에 더 되니?”
“그렇지!”
“그런데 나는 참욋값을 안 받을라고 하였는데. 부끄럽게 그것을 어떻게 받니? 그런데 나종에 세여보니까 넉 냥 일곱 돈이던가!”
말을 마치자 눈앞을 할끗 쳐다보던 점순이는 몸을 소스라쳐 놀란다.
“아이 오빠두 도독괴마냥 왜 거기가 찰딱 붙어섰어?”
이 소리에 순영이는 기겁을 하여 몸을 옴츠렸다.
“나도 좀 같이 놀자꾸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니?”
하고 사내는 벙글벙글 웃는다. 그는 깎은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였는데 서근서근한* 얼굴이 매우 귀인성* 있어 보인다. 지금 열팔구 세밖에 안돼 보이는 소년티가 있긴 하나 그의 힘줄 켕긴* 장딴지라든지 굵은 팔뚝이 한 장정같이 기운차 보였다. 그는 지금 들에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 손에는 흙가루가 뽀얗게 묻었다.
“순영이가 오빠의 흉을 보았다우. 커다란 머슴애가 남의 색시 궁둥이를 줄줄 따러다닌다구.”
“누가 그래여? 기애는 참!…….”
하고 순영 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불안한 웃음을 웃는데
“아, 참말로 그랬니?”
하고 사내는 순영이에게 팩 달려들었다……· 점순이는 뱅글뱅글 웃는 눈으로 그의 오빠를 할겨보면서 밖으로 살짝 나와버렸다.
“아! 왜 이래? 저리 가래두!……”
하고 순영이의 징징 우는 소리가 들리자 부엌에서 모친의 목소리가 났다.
“점동아! 왜 그리니? 남의 낼모레 시집갈 색시를·…‥ 가만두어라! 성이나 내라구.”
“시집가기 전은 상관없지!”
사내는 빙그레 웃고 다시 순영이를 쳐다볼 때 그는 얄미운 눈초리로 사내를 할겨보았다. 별안간 고개를 폭 수그리더니 어느덧 그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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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와 하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한줄금*을 퍼븟는다.
이제까지 조용하던 천지는 갑자기 난리 난 세상같이 소란하다.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헐헐 느끼며 뛰어들어온다. 낙숫물*이 떨어져서 개울물같이 흐르고 황톳물이 또랑이 부듯하게* 나간다. 앞 논에 볏잎과 마당가에 있는 포플러나무 잎새가 빗방울을 맞는 대로 까땍까땍 너울거린다. 그러는 대로 우 와 소리를 친다. 하자 어느 틈에 그쳤는지 가는 비가 솔솔 내리며 번개가 번쩍번쩍하고 무서운 천둥소리가 우르르 나더니 거먹구름이 북쪽으로 몰려간다. 어디서 자끈자끈하는 것은 벼락을 쳤나보다! 한데 어느 틈에 씻은 듯 가신 듯한 맑은 하늘이 되었다. 그러자 초생달이 동천에 두렷이 떠오른다.
보리죽 보리밥으로 저녁이라고 끼니를 에운* 뒤에 그들은 항상 모이는 점백이집 마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점순이 아버지도 저녁 숟갈을 놓자 담뱃대를 들고 그리로 마을을 갔다. 멍텅구리 한 쌍이라는 조첨지 부자도 벌써 왔고 이 동리에서 어른 중에는 제일 유식하다는――하긴 겨우 언문을 깨쳐서 겨울에 이야기책을 뜨덤뜨덤 볼 줄 아는 것뿐이다마는 어떻든지 이 동리에서는 제일 유식한 ‘지식계급’이라는――원득이도 왔다. 총각대방 수돌이, 코똥* 잘 뀌는 박첨지커니 죽 늘어앉아서 하루 동안 피곤한 몸을 쉬는 판이다. 노인들은
장죽에다 담배를 피워 물고一―그것도 ‘희연’ 이 너무 비싸서 사 먹는 사람도 별로 없지마는 보짱* 크고 담대하기로 유명하고 노름 잘하고 개평 잘 떼는 순익이는 몰래 담배를 심어서 순썰이*로 썰어서 말려 먹는 것을 한 대씩 노나주었다.
노인들은 구성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이 그중 많고 이야기 잘하는 조첨지가 이 동리에서는 제일 어른이었다. 젊은 축들은 저만치 따로 자리를 펴고 앉고 누워서 담배를 먹는 축에, 또는 어른들 앉은 자리로 와서 이야기를 듣는 이도 있다. 요사이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경향 각처에 물난리 난 소문이었다.
안마당에서는 내일 논맬 밥거리 *――보리방아를 찧는 데 성삼이 처도 방아꾼으로 뽑혀와서 지금 세마치장단으로 쿵쿵 쿵더쿵 하고 한참 재미있게 찧는 판이다. 성삼이 처는 방아를 찧는 데도 멋이 잔뜩 들어서 절굿전에다 ‘사잇가락’을 넣어서 부딪치는데 그게 아주 흥취있게 들리었다.
점백이 마누라, 이쁜이 어머니커니 조첨지 며느리는 저편에서 키질을 하고, 멋거리진* 순이 어머니, 말 잘하는 수돌이 처,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성삼이 처는 이렇게 한패가 되어서 방아를 찧는다. 어떻든지 얼리기도* 잘들 얼렸다.
성삼이 처는 물론 이런 때에도 입을 가만두지 않고 숨이 차서 쌔근쌔근하면서도 무엇을 속살거리고는 그 유명한 윤나는 웃음을 웃었다. 그러면 수돌이 처가 또 우스운 소리를 해서 그만 웃음통이 터지고 절굿공이를 맞부딪치며 허리를 잡는데 별안간 순이 어머니가 이런 노래를 내었다.
쿵덕 쿵덕 쿵더 쿵
잘두 잘두 찧는다!
이 방아를 다 찧어서
누구하고 먹고 살까?
그래서 그들은 방아가 다시 얼렸는데 별안간 어디서 생겼는지 절구통갈보라는 술장사하는 순옥이 처가 엉덩춤을 추며 절굿공이를 들고 대들었다.
한 말 닷 되 술을 빚고
말 두 될랑 떡 쳐서
동무님 네 불러다가
먹고 뛰고 놀아보세
얼싸절싸 쿵더쿵!
그는 이렇게 소리를 받자 절굿공이를 들고 한 번 핑그르 맴돌아서 다시 장단을 맞춰 찧는데 여러 사람들은 고만 일시에 웃음통이 터졌다. 조첨지 며느리는 배를 움켜지고 속으로 웃느라고 땀이 다 났다. 그러나 절구질꾼들은 더욱 세차게 내리찧으며 모두 신명이 나서 어깨가 으쓱으쓱하여 졌다.
어떤 년은 팔자 좋아
금의옥식*에 싸였는데
이내 팔자 어인 일고
절구질에 손 터지 네.
아이구지 구 쿵더쿵!
이번에는 수돌이 처가 이렇게 받자 잇대어서 성삼이 처가 또 받았다.
시뉘 잡년 화냥년!
말전주*는 왜 하누?
콩밭고랑 김맬 적에
정든 님을 어짜라구
얼싸절싸 쿵더쿵!
그래 그들은 다시 웃음을 내뿜고 절굿공이를 맞부딪고 보리쌀을 퍼헤치고 한바탕 야단이 났다. 더구나 성삼이 처의 웃음소리라니 까투리 나는 소리로 얄바가지*를 있는 대로 뒤떨었다.*
바깥마당에는 지금 서울댁 양반이 왔다. 그래 그들은 인사하기에 한참 부산하였다. 그들은 모두 서울댁 양반을 좋아하였다. 그것은 비단 그에게는 양반티가 없다는 것뿐 아니라 그의 호활하고 의리 있는 것이 마음을 끌었음이다. 생김 생김도 눈이 큼직하고 콧날이 서고 준수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니 말이지 그에게 먼저 반하기는 성삼이 처였다. 그들은 마치 서울댁을 지식주머니로 아는 듯이 그를 만나면 우선 세상 형편을 물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신문에서 본 말, 자기가 아는 일, 이 세상 여러 가지 문제를 이야기해 들려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모두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요새는 물난리에 서울 사는 민부자가 돈 천 원을 기민 구제에 기부했다는 말을 할 때 그들은 모두 입이 딱 벌어지도록 놀랐다.
그는 또한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것은 부자들의 사탕발림이다. 그리하여 더 짜먹으려는 수작이다.”
하는 것이 그의 말투이었다. 물론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는 그들은 깜짝 놀라고 의심하였다마는 그는 어디까지 자기 말을 주장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한 말을 간단하게 추려 말하면 이러하였다.
“첫째 한말로 할 것은 돈이 쌀이 아니요 돈이 옷감이 될 수 없는데, 또한 그 쌀이나 옷감은 가만히 앉았는 사람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닌데, 어찌해서 누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돈이라는 종잇조각을 가지면 당장에 부자가 되느냐? 그게 벌써 틀린 일이다. 가령 지금 쌀 한 말에 이 원을 한다 하면 그 쌀 한 말을 만들어내기에는 봄으로부터 가을까지 전후 비용이, 더구나 남의 장리*를 얻어서 농사를 진 사람으로는 지금 그 값에 몇 동갑*이 더 들었을 것인데 이러한 품밥* 든 생각은 않고 장사하는 놈들이 제 맘대로 값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불공평 한 일이다.
이것이 모두 장사치의 잇속으로 따진, 사람까지도 상품(商品)으로 만들어서 저희의 부(富)만 늘리자는 짓이다. 그러므로 만일 돈을 쓸 터이면 그것은 반드시 그만큼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쓸 것이지 결코 놀고먹는 놈이나 악한 짓을 하는 놈은 못 쓰도록, 그래 병신, 노인, 어린이들 외에는 모두 제각기 재간대로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그는 부자를 욕하고 박주사 아들을 욕하고 이 너머 이진사집보고도 욕을 하며 그놈들은 양반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요 똥내만 맡고 사는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처음으로 이 말을 들을 때는 대단히 놀랐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그중 쳐다보고 훌륭한 사람으로 알던 그이들을 보고 이렇게 욕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을수록 그런 의심은 차차 풀리었다. 그래 민부자의 천 원 기부도 그리 놀랄 것이 아닌 줄을 알았다.
그 언제인가도 그가 또 이런 말을 하다가
“지금은 돈만 아는 세상이다. 만일 개가 돈을 가졌다면 멍첨지(僉知)라고 공대할 세상이야!”
하는 말에 그들은 모두 웃음통이 터졌었다.
그는 지금도 한참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간다고 일어섰다.
“아! 더 놀다 가시지유.”
하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만류하는 말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어디 볼일이 좀 있다고 그길로 바로 발길을 돌리었다. 그는 이 아랫말에서 사는 자기 백부의 집에 와 있는데 서울서 내려온 지가 며칠 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장가도 아니 든 스물두서넛밖에 안되어 보이는 소년으로 어려서부터 큰집에서 커났다.
지금 그 길로 가다가 그는 점순이 집에를 들리었다. 싸리문 안에 들어서 보아도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집이 빈 줄 알고 막 도로 나오려는데 별안간 안방에서 누가 쫓아나온다. 알고 보니 그는 점순이였다.
“나 봐요! 저…… 어저께 그 돈 받으서요!”
하고 그는 당황한 모양으로 부르짖는다.
“무슨 돈? 아! 참욋값을 도로 받으라구.”
“참욋값이 더 된대두!”
“더 되나 덜 되나 너는 그것만 그저 생각하고 있니? 더 되거든 네가 쓰려무나!”
“얼레! 남이 흉보게.”
“흉은 무슨 흉?”
“남의 사내에게 거저 돈을 받는다구.”
“그게 무슨 흉될 게 있니? 깨끗한 마음으로 주고받었다면. 너두 참 퍽 고지식하구나. 그러면 이 담에 참외로 대신 주랴무나!”
“그럼 내일 와요! 참외막으로.”
“응! 그래.”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바로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그는 자기가 점순이 집에를 왜 들리고 싶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날 밤에 점순이는 베개를 여러 번 고쳐 베고 생각하였다. ‘퍽두 이상한 사람이다…….’ 하고.
4
그 이튿날 밤이었다. 점순이 모친이 원두막에 나가는 길에 점순이도 따라나갔다. 서울댁은 오지 않았다. 그래 점순이는 은근히 기다렸지마는 지금은 그가 오려니 해서 나간 것은 아니다. 웬일인지 가고 싶은 마음이 키어서*―그것은 달이 한창 밝아서 이상스럽게도 어떤 궁금한 생각이, 그대로 방 안에 앉았기가 싫었음이다.
그런데 순영이가 아까 저녁때 와서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저도 같이 놀러가겠닥폭 그래 저의 어믹니한테 허락을 맡아가지고 오겠다 하였다. 과연 나갈 무렵에 그는 벙긋벙긋 웃고 뛰어왔다. 그래 지금 원두막으로 같이 나가는 길이다. 무슨 일인지 점순이 부친은 산 너머에 볼일이 있다고 저녁을 먹고 바로 나갔다. 그래 점순이 모친이 원두막을 지키러 나가게 된 것이다.
원두막은 앞산 모퉁이 개울 옆으로 기다랗게 생긴 원두밭둑에다 지었다. 거기는 냇물소리가 쏴 하게 들리고 물에서 일어나는 서늘한 바람이 원두막 위로 솔솔 불어왔다.
냇물은 달빛에 어른어른하고 저편 백모래밭에는 돌비늘*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편 언덕 위로는 포플러의 푸른 숲이 어슴푸레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다시 눈앞으로는 설화산 쪽이 아지랑이 속같이 몽롱한데 푸른 하늘에는 뭇별*이 깜박깜박 눈웃음을 치고 인간을 내려다본다.
점순이와 순영 이는 지금 홀린 듯이 이 밤경치에 취하여 한참 재미있게 노는데 별안간 인기척이 나는 바람에 마주 보니 그는 뜻밖에 서울댁과 점동이 였다.
“너는 웨 또 오니? 집 보라니까……·저이는 누구야?”
하는 점순이 모친은 점동이 뒤에 또 한 사람이 있는 줄을 비로소 알고 묻는 말이었다. 그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안 것처럼 그는 다시 정답게 알은체를 한다.
“아! 밤에 다 마실을 오시유? 나는 누구라구. 어서 올라오시지유!”
“네, 참외 먹으러 왔습니다. 접동이를 만나서.”
하고 서울댁은 원두막 밑에서 대답하였다.
“참외를 따온 것이 아마 없지. 그럼 점동아, 네가 좀 따랴무나. 그럼 여기서 노다 가시유. 나는 밭을 좀 매야!”
하고 노파는 원두막에 꽂은 호미를 빼들고 내려왔다.
“달 밝고 서늘해서 밭 매기는 썩 좋겠다. 기왕 나왔으니 너두 밭이나 좀 매람!”
“가만 있수! 저 양반하고 이야기 좀 할라우. 어서 어머니 먼처 매시유!”
참외 망태기*를 메고 원두밭으로 가는 점동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 참외나 하나 자시고 매시지요!”
서울댁은 이렇게 권하여보았다.
“지금은 생각 없어유. 내야 먹고 싶으면 이따가 따 먹지요.”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맨 윗고랑으로 올라가서 그루밭*을 매기 시작하였다. 호미가 흙덩이에 부딪는 소리가 사각사각 난다.
그동안에 점동이는 참외를 한 망태기 따가지고 왔다. 그래 서울댁 보고 원두막으로 올라가자 하였다.
“무얼 여기서 먹지.”
하고 서울댁은 사양하였다.
“아니요, 올라가요! 앉일 자리두 없는데. 얘들아! 올라가도 괜찮지! 응? 우리 큰애기들아!”
원두막 위에서는 킬킬 웃는 소리가 들리었다. 소곤소곤하는 소리도 난다. 뒤미쳐
“맘대로 해요!”
하는 점순이의 날카롭게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원두막 위루 올라갔다. 그런데 점순이는 그들이 앉기도 전에 서울댁 앞에다 웬 돈을 절그럭 하고 꺼내놓았다.
“그게 뭬야?”
점동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색시들은 또 웃었다.
“아, 참욋값!”
하고 서울댁은 그 사연을 이야기하고 이런 말을 하였다. 서울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안 주어서 못 받는다고.
“그럼 그 돈으로 지금 참외나 먹읍시다. 아무 돈이나 쓰면 됐지. 계집애들이란 저렇게 꼼꼼해. 담배씨로 뒤웅*을 파랴듯이.”
하고 점동이는 참외를 한 개씩 안기었다.
“그럼 또 턱없이 남의 돈을 받어?”
점순이는 얄미운 표정으로 점동이를 쳐다보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점동이는 참외를 깎아서’ 어석 어석 먹으면서
“그래 잘했다. 상급으로 참외나 더 먹어라. 그리고 소리나 한마디씩 하구!”
“아이구 망측해라! 누가 소리를 한담. 사내들 있는 데서!”
“사내들 있는 데서는 웨 못하는 법이냐? 늬들끼리는 곧잘 하면서.”
“무슨 소리를 했어?”
“늬들이 이렇게 하지 않었니?”
하더니 점동이는 고개를 외로 꼬고 청승스런 목소리로 군소리하는 흉내를 내었다.
가세 가세!
나물 가세.
동산으로
나물 가세.
나물 캐고
피리 불고
노다 노다
임도 보고
“아이 우리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어!”
하고 색시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이 우는소리를 한다. 그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로.
“안했걸랑 고만두람! 오 참, 성삼이네가 하던가? 아니, 서울댁양반! 서울 색시들드 노래를 하나요. 여학생도?”
하고 점동이는 서울댁을 쳐다본다.
“하고말고 창가를 하지.”¨
“오, 창가. 이렇게 하는 것 말이지.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이렇게.”
색시들은 또 킬킬 웃었다. 점동이의 털털한 수작에 그들은 적이 부끄럼이 가시었다. 그들은 이렇게 재미있게 노는데 나중에는 서울댁의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역시 이 세상이 악하고 부자가 악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 우리 젊으나 젊은 청춘이 꽃동산과 같은 아름다운 세상에서 잘살 것을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흥분하였다.
“보아라! 이 아름다운 경치를. 져 안타까운 별들을. 저 밝은 달빛! 저 그윽한 물소리. 저 은근한 수풀 속 나무나무 가지가지에 녹음이 우거진 이때, 우리들은 경치 좋은 이 산속에다 정결하게 집을 짓고 옷밥 걱정이 없이 살어본다고 생각해보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우리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며 뛰고 놀다가 저녁 때 돌아와서는 들에 나가서 부모님의 일도 거들어주고 저 산 밖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놀러다닌다면 얼마나 우리의 사는 것이 아름답겠니? 모든 사람이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벌어서 부자와 가난이 없이 산다면 그때에야말로 이웃 사람은 진정으로 정답고 사랑하고 싶어서 오늘은 늬 집에 모이자, 내일은 우리 집에 모이자 하고 즐기며 뛰놀 것이다. 그때야말로 공중에 나는 새도 인간의 행복을 노래하고 땅 위에 피는 꽃도 사람의 즐거움을 웃어줌일 게다. 그때야말로 참으로 이 세상 만물이 인간을 위하여 축복을 드릴 것이요, 저 달을 보아도 우리의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하냐? 우리는 공부할 나이에 공부도 못하고 늙으신 부모는 밤낮 일을 해도 가난에 허덕허덕하지 않느냐? 처녀의 고운 손은 방아 찧기에 악마디*가 지고 청춘남녀는 맘대로 사랑할 수도 없지 않으냐? 못 먹고 혈벗으며 게딱지만한 오막살이 속에서 모기 빈대 벼룩에게 뜯겨가며 이렇게 하루 살기가 지겹도록 고생고생하게 된 것은 그게 모두 몇 놈의 악한 놈들이 돈을 모두 독차지해가지고 착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난의 구렁으로 잡아 처넣은 까닭이다. 아! 지금 저 달이 밝지마는 우리에게 좋을 것이 무엇이며, 지금 이 바람이 서늘하다마는 우리의 가슴은 더욱 답답하지 않으냐?
낮에는 햇빛 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달 아래서 하루의 피곤한 몸을 쉬는 천만 사람이 다같이 일해서 먹고사는 세상이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는 그가 열정으로 부르짖는 말에 그들은 모두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다. 점순이와 순영이는 하염없이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참으로 그런 세상을 어서 보고 싶도록…… 그래 그렇지 못한 자기네의 지금 생활이 몹시도 분하고 애달팠다. 그렇게 허튼소리를 하던 점동이까지 잠자코 앉아서 무엇을 우두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사방은 괴괴하니 오직 물소리만 요란히 들리었다.
점동이가 눈짓을 하자 순영이는 슬그머니 원두막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원두막 위에 단둘이 앉았던 점순이는 별안간 ‘서울댁’ 무릎 앞에 푹 엎드러지며 흑흑 느껴 울었다. 그것은 무슨 그를 사랑하고 싶어서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에게 들은 말에 감격하여 견디지 못한 발작이었다. 과연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생각할 때 오직 ‘불행’ 그것으로만 느껴졌다.
“당신은 웨 그런 말을 일러주섰소.”
하는 것처럼 그는 이제까지 모르던 슬픔을 깨도한* 것 같다.
이때 남자는 그를 마주 껴안고 그의 뜨거운 입술에다 자기 입술을 대었다.
저편 나무 속에서도 목메어 우는 소리가 가늘게 들리었다. 점동이와 순영이도 거기서 우는 게다. 아직 인생의 대문에도 못 들어간 그들을 울리게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달아! 혹시 네나 아는가?·……
물소리, 울음소리! 또는 모친의 밭 매는 호미소리, 이 소리들이 서로 어울리어 이 밤의 씸포니를 싸고 고요히 흐른다.
5
그 후 한 달이 지나서이다. 가난한 집안에는 보리양식이 떨어질 칠궁(七窮) *으로 유명한 음력으로 칠월달을 접어들었다. 향교말에는 양식이 안 떨어진 집이 별로 없는데 점순이 집에도 벌써부터 보리가 떨어졌다.
그동안에는 어떻게 부자가 품도 팔고 이럭저럭 지내왔으나 앞으로는 앞뒤가 꼭 막혀서 살아갈 길이 망연하였다. 그것은 논밭에 김도 다 매고 두렁도 다 깎은 터이므로 일꾼들은 모두 나뭇갓으로 올라갈 때이다. 인제는 품을 팔아먹을 일거리라고는 없어졌다. 벼는 벌써 부옇게 패었다.
그러므로 점순이네 부자도 나무나 해서 팔아먹는 수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원두도 인제는 다 되어서 더 팔아먹을 것은 없었다.
산이 없는 점순이네는 나뭇갓*을 얻기도 용이치 않았다마는 그래도 부자가 일을 하기만 하면 남의 나무를 베어주고라도 나뭇갓을 조금 얻을 수도 있었는데 화불단행*이란 엣말이 거짓말이 아니던지 이런 때에 뜻밖에 김첨지가 덜컥 병이 났다. 그는 벌써 한 이레째나 생인발*을 앓느라고 꼼짝을 못하고 드러누웠는데 그게 순색으로 더치게 되었다. 그래 뚱뚱 부었다. 그런데 양식은 똑 떨어졌다. 점순이 모친은 생각다 못하여 마지막으로 박주사 아들한테 장릿벼 한 섬을 얻으러 갔다.
박주사 아들이 흉악한 불깍쟁인 줄은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마는 거번에 논을 좀 달라고 할 적에도 그리 할 듯한 대답을 한 것이라든지 그때 은근히 한번 놀러오라던 말을 생각해보면 어디로 보든지 호의를 가졌던 것만은 확실한 모양이다. 나중에 알고 보면 이 호의가 무척 고가(高價) 임을 알고 그는 악연실색할 것이다마는 지금은 두수없이* 꼭 죽었다 할 판이므로 이런 때에는 턱에 없는 것도 믿고 바라는 것이 사람의 정리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붙잡는다 하지 않는가? 한번 놀러오라 하고 더구나 논까지 줄 듯이 대답한 그런 고마운 사람에게 어찌 구원의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있으랴? 그자가 도척(盜跖)이거나 동척회사 마름이거나 이런 때는 그런 것이 상관없다. 그저 한번 놀러오라는 말과 논을 줄 듯이 대답한 그런 고마운 생각만 나는 것이다. 하기는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 할는지 모른다. 과연 박주사 아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러나 이런 죄없는 어리석은 사람을 농락하려는 사람은 또한 어떠한 사람이라 할까? 옳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물론 이런 사람을 잘났다 하겠지! 남을 잘 속여서 제 낭탁*을 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칭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박주사 아들도 물론 똑똑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을 터인데 다만 너무 똑똑해서 알깍쟁이가 된 까닭에 똑똑한 사람을 칭찬하는 이 지방 사람들까지도 그를 좀 비방하게 되었단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지금 여기서 옥신각신할 때가 아니다. 점순이 모친은 지금 등이 달아서 많은 희망을 품고 박주사 아들을 찾아갔다.
과연 박주사 아들은 서슴지 않고 한마디로 선뜻 승낙하였다. 한 섬으로 만일 부족하거든 두 섬 이라도 갖다 먹으라고.
이때 점순이 모친은 얼마나 기뻐하였던가? 과연 자기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래 그는 무수히 감사하다는 치사를 두리고 마치 승전고나 울리고 돌아오는 장수의 마음같이 걷잡을 수 없는 기쁜 마음으로 그 집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박주사 아들이 대문 밖에까지 따라나오더니 잠깐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구석진 곳으로 손짓을 한다.
그것은 이러한 조건이었다. 장릿벼는 지금 말한 대로 줄 터이니 그 대신 자네 딸을 나 달라고.
그래도 집에서는 이런 줄은 모르고 행여나 무슨 수가 있나 하고 은근히 기다리었다. 고정하기로* 유명 한 김 첨지까지――가지 말라고 큰소리를 지르던――도 무슨 수가 있는가 하고 바라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마누라는 눈물만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그때 박주사 아들한테 그 소리를 들을 때에 고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별안간 두 눈이 캄캄하였다. 그는 아무 대답도 않고 그 길로 돌아서서 눈물만 비 오듯 쏟으며 정신없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 눈가가 퉁퉁 분 눈으로 안산*만 우두커니 쳐다보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풀이 없이 앉았다. 그래 김첨지는 화가 버럭났다.
“아! 뭬라구 하던가?”
그는 돌아누우며 궁금한 듯이 이렇게 물었다.
“한 섬은 말고 두 섬이라도 갖다 먹으랍디다.”
“그럼 잘되지 않었나! 무얼?”
“그 대신 점순이를…….”
마누라는 목이 메어 말끝을 못다 마치고 우는 얼굴을 외로 돌렸다. 이 소리에 별안간 김첨지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무엇이 어짜고어 째?”
하고 그는 갈범*의 소리로 부르짖는다. 온 집안이 찌르릉 울렸다. 이 바람에 점순이 모친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무르춤하고* 부엌에서 무엇을 하던 점순이는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이때 김첨지는 수염 속으로 쭉 찢어진 입을 실룩실룩하더니 무섭게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큰 눈에서는 불덩이가 왔다갔다 하였다.
“글쎄 가지 말라니까 웨 기어이 가서 그런 드러운 소리를 듣느냐 말야. 이것아! 응?”
“누가 그럴 줄 알었소.”
마누라는 주먹으로 때릴까봐 겁이 나는 듯이 몸을 움츠렸다.
“내가 굶어 죽어보아라! 그런 짓을 하나. 글쎄 셋째첩 넷째첩으로 딸을 팔어먹는단 말이냐? 그래 뭬라고 대답하였나! 이편은 응?”
“뭬라긴 무얼 뭬래요. 하두 기가 막혀서 아무 말두 안했지!”
“그래!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이년아! 그놈의 낯짝에다 침을 뱉지 못하고 응! 예이 드러운 놈! 네까짓 놈이 양반의 자식이냐 하고. 어서 가서 그래라, 어서! 네까짓 놈에게 딸을 주느니 차라리 개에게 주겠다고. 개만도 못한 놈아, 박주사 아들놈아! 이 드러운 양반놈아! 였다! 너는 이것이 상당하다! 하고 그놈의 낯짝에다 침을 탁 뱉어줘라! 자 어서 가서 그래, 응! 어서 가서.”
하고 그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마누라를 자꾸 주장질하였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무 말이 없이 그만 흑흑 느끼어 울기만 한다. 그래 점순이도 따라 울었다. 이때 별안간
“어 ―”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김 첨지는 쾅 하고 방바닥에 거꾸러졌다. 이 바람에 그들의 모녀는 “에구머니” 소리를 쳤다. 점순이는 한걸음에 뛰어들며
“아버지!”
하고 그의 몸을 얼싸안고 모친은 창황망조하여* 오직 “찬물 찬물” 하였다. 그래 점순이는 얼른 냉수를 떠다가 부친의 이마에 뿜었다. 김첨지는 고만 딱 까무러쳤다.
모녀는 어찔 줄을 모르고 다만 사지가 벌벌 떨리었다.
점순이는 아까 순영이가 갖다주던 좁쌀 한 되로 미음을 쑤느라고 부엌에 있었던 까닭에 그들이 수작하는 말을 낱낱이 들었었다. 그래 그는 부친의 까무러친 까닭도 잘 알 수 있었다.
이 소문이 난 뒤로는 향교말 사람들은 모두 박주사 아들을 욕하며 점순이 집 식구를 구제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성삼이 처까지도 그리하였다. 아래윗동리로 돌아다니며 상놈의 반반한 계집이라고는 모조리 주워먹던 박주사 아들도 웬일인지 성삼이 처만은 건드리지 못하였다. 아니, 그는 벌써 언제부터 성삼이 처를 상관하려고 애써보았지마는 서방질 잘하기로 유명한 성삼이 처는 박주사 아들이라면 고만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동리마다 박주사 아들의 뚜쟁이가 있는데 향교말 뚜쟁이가 박주사 아들의 말을 넌지시 비춰볼라치면 성삼이 처는 대번에 입을 비쭉거리며
“그까짓 자식이 사람인가. 양반인지는 모르지마는 사람은 아닌데 무얼!”
하고 다시는 두말도 못하게 하였다.
이 유명한 처가 우선 쌀 닷 되와 돈 열 냥을 가지고 왔다. 그래 점순이 모친은 은근히 놀랐다. 점백이 집에서도 보리 두 말을 가져왔다. 수돌이 집에서도 보리 한 말을 가져왔다. 이쁜이 집에서는 밀가루 두 되, 만엽이 집에서는 좁쌀 한 되. 심지어 밥 한 그릇 죽 한 사발이라도 모두 가지고 와서는 김첨지의 고정한 마음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고 허구한 날에 그들을 구제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 점동이도 일하고 돌아와서 이 소리를 듣고는 역시 김첨지만 못지않게 펄펄 뛰었다. 그는 자기 혼자 벌어먹일 터이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한 몸으로 온 집안 식구를 건져가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올라가서 별 따기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김첨지는 그 후에 다시 깨어나기는 났지마는 그 뒤로 병은 점점 더 치었다. 약 쓸 일에 무엇에 돈 쓸 일은 그전보다 몇 갑절 더 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박주사 아들의 말은 다시는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점순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조금도 사색 없이 공손한 말로 박주사 아들한테 시집가지란 말을 자청해보았다. 그러나 김첨지는 역시 펄필 뛰며 듣지 않았다.
“그러면 내 자식이 아니라고!”
그 후로 그의 병세는 더욱 위중하여 아주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데 약을 써보려야 돈 한푼 없고 미음 한 그릇을 쓸 거리가 없었다. 그래 모친은 생병 이 나서 울기만 하고 점동이가 겨우 나뭇짐을 해 팔아서 그날그날을 간신히 지나간다.
점동이는 이를 악물고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의 한 몸이 부서지기까지 어떻게든지 자기의 힘으로 버티어보려 하였다. 그는 밤에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날 궂은 날은 짚신도 삼아 팔았다. 조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 그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다가 만일 되지 않으면 나중에는 어떠한 짓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는 자기의 누이를 더러운 돈에 팔아먹고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도적질을 하든지 강도질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점순이는 또한 점순이대로 자기 한몸을 어떻게 처치할 것을 단단히 결심하였다. 그것은 지금 다시 자기의 부모에게나 오빠에게는 박주사 아들한테 시집가겠다는 허락은 당초에 얻을 수가 없을 줄을 밝히 알았다. 그래 그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 혼자 결행(決行)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내일이라도 이 동리에 있는 박주사 아들의 뚜쟁이에게 간단한 한마디 대답을 기별해주면 고만이다.
그러나 점순이가 이 일을 작정하기에는 며칠을 두고 밤잠을 못 자고 그의 조그만 가슴을 태울 대로 태웠다. 그는 울기도 많이 하고 참으로 어찌해야 좋을는지 가슴이 답답하였다. 그런 자에게 자기의 한 몸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죽기보다 쓰라린 일이었다. 만일 지금 누가 그보고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네 집 식구를 먹여살릴 터이니 그 대신 네가 죽어라!” 한다면 그는 선뜻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그런 의협심을 가진 고마운 사람도 없다. 과연 그는 이 일만 말고는 다른 어떠한 일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겠다고 아무리 발버둥치고 허공을 우러러보았다마는 역시 이 일밖에는 다른 도리는 없었다. 그도저도 할 수 없다면 좌이대사(坐而待死)*나 한다지만 자기의 한 몸을 바치게 되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데 어떻게 모르는 체할 수 있으랴? 그들의 목숨의 자물쇠는 오직 자기 한 손에만 쥐어졌다. 더구나 부친은 병석에 누워 신음하는데 미음 한 그릇을 쑬 거리가 없는 이때가 아닌가? 아무리 할 수 없는 일이라도――슬프고 또 슬프고 죽기보다 쓰라린 슬픔이라도――자기는 그것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아니, 자기는 살다가 살 수 없거든 그때는 자기 혼자 조용히 죽자. 비록 박주사 아들은 말고 도척이한테라도 지금 사정으로는 갈 수밖에 없다! 하고 그는 악에 받쳐 부르짖었다.
하기는 이 근처에도 다른 부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행세한다는 양반부자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 체하였다. 자기 집안 형편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모두 모르는 체하였다. 장릿벼 한 섬이나 두 섬은 그게 몇 푼어치나 되는가? 그들이 그것을 줄 생각만 있으면 가난한 집의 쌀 한 줌이나 동전 한 푼보다도 하찮고 쉬운 일인데――그것도 자기 부친의 고정한 심사는 여태까지 남의 것을 떼먹은 일은 없는데도, 어떻게든지 해 갚을 마음을 먹고 장릿벼를 달라는데도――그들은 벼 한 톨을 주지 않았다. 그것도 더구나 이런 때에 한 집안 식구가 몰사할 지경에 벼 한 섬이나 두 섬으로 죽을 사람이 살겠다는데도 그들은 모두 모르는 체하였다. 그것은 마치 자기네는 봉황선(선유배) 타고 뱃놀이를 하면서 바로 지척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억!억! 소리를 치며 물을 켜고 허우적거리는데도 그들은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닻줄 하나만 내리던져주면 살겠다는데도 그들은 모르는 체하고 내려다보기만 하고 있다. 아니, 내려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웃고 본다. 그리고 자기네의 행복을 더욱 느끼고 있다.
그렇다! 이것이 지금 세상이다. 이것이 짐승보다 낫다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부자의 착취, 이것이 옳다 한다. 거룩한 하느님의 교회는 이것을 찬미한다. 아! 이 땅에다 어서 유황불을 던지소서! 소돔 고모라 성에다가. 아멘! 아멘……
점순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는 이 당장에 부엌으로 뛰어들어 가서 식칼을 들고 나설 것이다. 그는 희미하나마 ‘서울댁’의 하던 말이 옳게 생각되었다. 과연 그는 이 세상이 악한 줄을 직각적(直覺的)*으로 깨달았다. 가난은 전생의 죄얼*이요 부귀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알게 되었다. 그래 그는 서울댁과 같이 얄미운 생쥐 같은 도적놈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 생쥐 같은 다라운* 도적놈에게 몸을 바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깨끗한 처녀를 바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마침내 점순이는 내일 아침에 박주사 아들에게 기별하기로 마음을 작정하였다. 그는 지금 마지막으로 이 하룻밤을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보내려 하였다. 아까까지도 악에 받쳐서 두 눈이 뽀송뽀송하던 그로도 별안간 이런 생각은 다시금 설움에 목메었다. 그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아무도 모르게 울 밖에 나와 섰다. 그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음 놓고 실컷 울어나보려 함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다마는 달은 뜨려면 아직도 먼 모양! 어슴푸레한 황혼이 차차 어둠의 장막으로 싸여가는데 적막한 산촌은 죽음의 나라 같이 괴괴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운명도 이 밤과 같이 점점 어두워서 앞길이 캄캄해지는 것 같다. 하늘에는 뭇별이 깜박거리고 은하수는 높직이 매달렸는데 직녀성은 견우성을 바라다보고 있다. 산뜻한 바람이 어디서 이는지 양버들 잎새를 바르르 떨리우는데 아랫말로 가는 산길이 희미하게 뒷산 잔등 위로 보인다. 억새가 바삭바삭 맞비비는 야릇하고 갑갑한 소리가 나자 무슨 새인지 ‘빽’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날아간다. 벌써 지랑폭에는 이슬이 축축이 내리었다. 그는 이때의 모든 것이 다만 슬픔의 상징으로 보였다. 그래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 울었다. 땅을 굽어보고 울었다. 산을 바라보고 울었다. 저 으슥한 숲을 보고 울었다. 그리고 아무 하소연하는 말은 나오지 않고 오직 어머니…… 아버지…… 오빠…… 하고 부르짖으며 울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왔는지 서울댁이 와서 자기 옆에 섰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 그는 소스라쳐 놀라며 고개를 푹 숙이었다. 과연 그가 밤에 여기 오려니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아! 웬일이야?”
하고 ‘서울댁’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아니요! 저……저…….”
하고 점순이는 고만 울음을 삼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서울댁’도 이 소문은 벌써부터 들은 터이다. 그도 자기의 있는 돈을 몇 냥간 점동이를 갖다준 일이 있었다.
“나두 다 아는데 무얼!”
하는 그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점순이는 와락 달려들어 그를 얼싸안고 고개를 고만 그의 가슴에다 푹 처박았다. 그리고 열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용서해주서요! 용서해주서요! 부잣집 첩으로 가는……· 당신이 미워하는…… 박…… 박주사 아들에게로…….”
하고 그는 가늘게 부르짖는데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껴안은 채 다만 멍 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때에 하늘에서는 유성이 죽 흘렀다.
6
그 이튿날 박주사 집에서는 벼 한 바리하고 돈 쉰 냥을 점순이 집으로 보내었다. 하인의 전갈에는 특별히 돈을 보낸 것은 병인의 약시시를 하란다고,* 그런 친절한 분부가 다 있었다 한다.
그런데 점순이는 밤 동안에 아주 딴 사람이 되어서 종일 가도 말 한마디 않는 음울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생기있고 상냥하던 그의 표정이 다 어디로 가버렸다. 김첨지는 이런 일도 모를 만치 위독해 누웠는데 그는 이상히도 오늘부터 시룽시룽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눈을 뜰 때마다 누구든지 쳐다보일 때는
“저놈이 벼 한 섬에 부잣집 첩으로 딸을 팔어먹은 놈이야!”
하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래도 모진 것은 목숨이다. 점순이 모친은 그 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 안 먹는다고ㅡ―굶어 죽어도 안 먹는다고――울며불며 야단을 치던 점동이도 그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하기는 점순이가 그 벼를 찧어서 얼른 밥을 지어다놓고 지성으로 모친을 권하고 또한 오빠를 권하였었다. 그날 점동이는 아침도 굶고 산에 가서 나무를 종일 베다가 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보니 점순이는 난데없는 하얀 쌀밥을 차려다 준다. 그래 행여나 무슨 수가 있었나 하고 우선 한 숟가락을 뜨며 모친에게 물어보다가 그만 그 눈치를 채고는 숟갈을 내동댕이쳤다. 그는 그때 엉엉 울었다. 그때 점순이는 뛰어가서 오빠의 무릎 앞에 엎드러지며
“오빠 용서 해줘요!”
하고 빌며 울었다. 그길로 점동이는 머리를 싸고 드러누웠었다. 다만 모친만은 아무 말 없이 마치 혼망이가 다 빠진 사람처럼 하고 앉아서 그들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마저 어린 딸의 속을 태워서는 안되겠다 하였다. 그것은 점동이같이 하는 것은 다만 딸의 속을 자지리* 태워줄 것밖에 안되는 것이라 하였다. 다만 아들 딸 남매를 둔 늙은 내외는 그것들이나 잘 길러서 착실한 데로 장가나 들이고 시집을 보내서 그것들의 사는 재미로나 말년을 보내려 하였더니 아들은 스물이 가깝도록 여태 장가도 못 들이고, 딸마저 이렇게 내주게 될 줄은 참으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영감의 마음씨로 보든지 자기 집안 식구는 누구나 다 같이 그렇게 악인은 아니건만 웬일인지 아무쪼록 남과 같이 살아보려고 밤낮으로 애를 써보아도 늘 제턱으로* 가난에 허덕허덕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벌역*이나 아닌가 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뜻밖에 일이 생기고 해서 나중에는 이렇게 누명을 입고 딸자식까지 팔아먹게 되었다. 아, 이것이 도무지 무슨 운명인가? 그는 이것을 모두 사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생으로 타고난 사주팔자라 하였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누구는 어찌하랴. 자기 한 몸이 이 당장에 칼을 물고 엎드러져 죽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병든 늙은 영감하고 어린 자식들을 두고서 자기만 차마 죽을 수가 있는가? 그러면 영감도 죽는 게다! 그것들도 죽는다. 한집안 식구가 몰사를 하고 말 것이다. 아! 참, 아 차마 그것은 못할 일이다. 그래 그 쌀로 지은 밥을 자기가 먼저 먹었다. 그는 이렇게 마음을 도슬러먹고* 자기도 먹으며 영감도 먹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딸에게 못할 노릇을 했다, 그의 어린 가슴에다 못을 박았다는 생각이 날라치면 뼈가 저리고 간이 녹는 듯! 그는 고만 목이 메어서 밥숟갈을 내던졌다. 그러면 점순이는 얼른 달려들어 그를 얼싸안고 모친의 등을 탁탁 쳐주며
“어머니, 어머니! 그라시지 말어. 그러면 나도 죽을 테요!…….”
하고 마주 울었다. 그러면 밥상을 앞에 놓고 모녀는 서로 얼싸안고 슬피 통곡하였다. 이런 때에 김첨지가 눈을 떠볼 때에는 역시 손가락질을 하며
“저놈들이 장릿벼 한 섬 에 딸 팔어먹은 놈들이여 !”
하고 중얼 렸다.
아! 이게 도무지 무슨 일이냐?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차마 병든 영감을 굶어 죽일 수는 없었다.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할 병든 영감을……
점동이도 또한 점동이 깐으로 이미 이 지경이 된 바에는 할 수 없다 하였다. 그는 그래도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버티어보려 하였더니 점순이가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누이를 탓하지 않았다. 결국은 모든 것이 자기가 못나서 그렇다 하였다. 명색이 사내 코빼기로 생겨서 많지 않은 식구를 못 건져가고 이 지경이 되게 한 것은 오직 자기의 못생긴 탓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그로서는 하루 진종일 가서 나무를 해다가 이십 리나 되는 읍내 가서 판대야 기껏 받아야 오륙십 전에 지나지 못하였다. 하루 진종일 꼬부리고 앉아서 짚신을 삼는대야 역시 사오십 전에 불과하였다. 아! 이것으로 어떻게 한집안 식구를 구할 수 있는가? 그래 부자가 벌어야 간신히 지내던 것을 고만 부친이 저렇게 병나고 보니――더구나 농사진 것도 다 떠나가서 장릿벼도 얻어먹을 수 없고――꼼짝 두수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는 별수가 없다. 여북해서 점순이가 그런 맘을 먹었을까? 철모르는 저로서도 이밖에 두수가 없음을 알았음이다. 자기가 그 밥을 먹고 사는 것은 참으로 낯이 뜨뜻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순영이도 그 후 며칠 뒤에 쌀 두 섬을 미리 받아먹은 데로 고만 가마를 타고 갔다. 가던 날 식전에 그는 점순이를 찾아와서 손목을 붙들고 흑흑 울었다. 그는 차마 점동이를 붙들고 울 수는 없어서 점순이를 보고 대신 울었음이다. 점순이도 마주 보고 눈물을 흘렸었다마는 그 후로 점동이는 마치 얼빠진 사람같이 되었다. ‘서울댁’도 또한 확실히 그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역 실심하니* 무슨 깊은 근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침착하고 굳건한 신념이 있어 보이는 모양은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게 한다. 그렇게 보이도록 그는 무섭게 침통한 얼굴로 변하였다.
물론 점순이 모친도 반실성을 하다시피, 그러나 잠시도 영감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병구완을 지성으로 하면서 부질없이 한숨과 눈물을 짜내었다. 다만 박주사 아들만이 홀로 자기의 성공을 기뻐하며 어서 김첨지의 병이 낫기를 고대하였다. 그것은 병인이 낫기만 하면 점순이를 어서 데려가려 함이었다.
7
그런데 김첨지의 병은 점점 더하다는 소문이 났다. 그래 그는 만일 그러다가 김첨지가 죽으면 어찌하나 하는 겁이 펄쩍 났다. 그것은 잇속만 아는 박주사 아들도 부모가 죽었다는대야 어찌 차마 그를 바로 데려올 수가 있으랴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생각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 밖의 고마운 일이다마는 그래도 그는 이런 체면만은 볼 줄 알았다. 그것은 마음으로야 어쨌든지 겉으로는 부모를 위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대한 일인 줄을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배운 터이라 남의 부모도 역시 존중하다는 생각이 있게 하였다. 그러면 적어도 몇 달 혹은 반년은 될 터이니 더구나 저편의 핑곗거리가 생겨서 이것으로 구실을 삼아가지고 소상를 치르고 오느니 대상을 치르고 오느니 하면 더욱 큰일이라고. 그래 그는 점순이를 속히 데려오려 하였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그가 이렇게 속히 점순이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나게 한 이유는 새로 얻어온 첩이 벌써 마땅치 못하게 틈이 벌어진 까닭이었다. 물론 좀더 그의 사랑을 핥아보지 않고는 그를 내박차기까지 하기는 아직 좀 이르다마는 이번 첩은 성미가 너무 괄괄하여 어떤 때는 자기를 깔보는 때까지 있단 말이다. 그래 그 분풀이로 점순이를 얼른 데려다가 이것 좀 보아라 하고 그의 기를 꺾어놓고 싶을 뿐 아니라 저거번에 점순이를 보니까 작년보다도 훨씬 큰 것이 아주 처녀의 티가 제법 났다. 그만하면…… 하는 생각이 더구나 그의 아리따운 자태에 그만 욕심 이 부쩍 난 것이다. 그래 한편에서는 피려는 꽃송아리* 같은 나긋나긋한 어린 사랑을 맛보고 또 한편으로는 은근하고도 땅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큰첩의 사랑을 받다가 그만 싫증이 나거든 이것저것을 모두 후 불어세자는* 수작이다. 그래 그는 오늘 아침에 가마를 꾸며서 별안간 김첨지 집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어느덧 칠월도 다 가고 팔월 초승이 되었다. 점순이 집에서는 지금 막 아침을 치르고 난 판인데 간밤까지도 청명하던 하늘은 어느 틈에 구름이 잔뜩 낀 음랭한 날이 되었다. 이마적*은 더욱 원기가 쇠진하여 미친 소리도 잘 못하는 김첨지는 겨우 미음 한 모금을 마시고는 아랫목에서 끙끙하고 누웠는데, 그 옆에서 세 식구가 경황없이 아침이라고 치르고 났다. 모친은 오늘 아침에도 그 생각이 나서 밥도 변변히 못 먹고 세 식구가 울기만 실컷 하였는데 점동이는 그래도 나무를 하러 간다고 지금 지게를 지고 나서는 참이다. 그런데 거기에 박주사집 하인들이 가마를 메고 싸리문 안으로 대들었다.
이때에 점동이는 고만 얼어붙은 듯이 마치 장승같이 하고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친은 별안간 눈앞이 캄캄하였다. 점순이는 그저 얼떨떨하였다. 그는 잠깐 당황하다가 다시 한번 부친을 쳐다보던 눈을 모친에게로 옮기며 .
“어머니……”
하는 한마디 말을 간신히 입 밖으로 꺼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가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때에 별안간 애끊는 소리로
“점순아! 점순아! 점순아! 점순아……”
하고 모친은 한달음에 뛰어나와 딸의 발 앞에 고꾸라졌다.
“앗!”
하고 점동이는 뛰어들어 또 그를 얼싸안았다. 그런데 이마적은 미친 소리도 못하고 인사불성으로 드러누웠던 김첨지가 마치 기적같이 안방문 앞에 일어나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며
“저놈들이 장릿벼 한 섬에 딸을 팔어먹은 놈들이여!”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중얼거리더니 또 히히 하고 웃는다. '이 바람에 점순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며
“아! 아버지…….”
하고 다시 가늘게 부르짖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점순이가 마지막으로 그들을 휘 둘러보고 막 가마 안으로 들어앉으려 할 때 언뜻 무섭게 빛나는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것은 지금 들어오다가 싸리문 앞에서 발이 붙어서 맥 놓고 쳐다보는 ‘서울댁’의 눈이었다. 점순이는 고만 가마 안으로 폭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힘은 벼 두 섬 값만 못하였다! 부친의 실성과 모친의 기절과 오빠의 울음과 또한 ‘서울댁’의 무서운 눈도 벼 두 섬의 힘만은 못하였다!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우애와 ‘서울댁’의 순결한 사랑의 힘도 벼 두 섬의 힘만은 못하였다! 벼 두 섬은 부친을 미치게 하고 딸의 가슴에 못을 박고 모친을, 오빠를, 영원히 슬프게 하고도 남았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귀엽게 길러온 부모의 사랑도 동기간의 따뜻한 우애도 또한 인간의 행복아 어서 오너라 하고 동경(憧憬)하고 바라던 처녀의 꽃다운 희망도, 이 벼 두 섬 앞에는 아무 힘이 없이 물거품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열여섯 살이나 먹도록 곱게곱게 키워논 남의 외동딸을 박주사 아들은 다만 벼 두 섬으로 뺏어갈 수 있었다. 아! 그러나 벼 두 섬 값은 대체 얼마나 되는가? 점순이는 이 벼 두 섬에 팔리어서 지금 박주사 아들 집으로 가마에 실려갔다.
『조선지광』 50호(1925. 12); 『이기영단편집』 (학예사 1939); 『민촌』 (건설출판사 1946)
이기영
민촌(民村) 이기영(李箕永)은 189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천안 영진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세이소꾸(正則) 영어학교에서 수학했다. 1924년 『개벽』 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 되면서 등단했고, 카프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했다. 해방 후 월북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북한의 문학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민촌」 「서화」 등의 단편과, 프로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고향』을 비롯한 『신개지』 『봄』 『땅」 『두만강』 등의 장편이 있다.
198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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