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설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중에 정겨운 것은 역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는 모습입니다. 집안의 어른들은 자연스레 덕담 한마디씩 내놓기 마련이며 아이들은 듣는지 마는지 제 먹을 것 먹기에 바쁜 것이 설날입니다.
사실 떡은 우리가 흔히 먹는 밥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먹어 왔던 음식입니다. 떡은 쌀이나 다른 곡물을 가루를 내어 흙으로 빚은 시루에 쪄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시루는
흙으로 빚어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철의 생산이 본격화 된 삼국시대 이전에 대표적인 조리도구입니다. 그래 이
시절의 사람들은 쌀이나 다른 곡물을 가루를 내어 시루에 쪄서 먹었을 것입니다 (분식-粉食). 밥은 철로 만들어진 솥에 쌀과 물을 함께 넣고 끓여서 먹는 음식입니다
(입식-粒食). 그래 밥을 짓기 위해서는 철로
만들어진 솥이 꼭 필요한데, 솥은 철의 생산이 늘기 시작한 삼한시대를 거쳐 군대에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삼국시대에서나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로 군대에서 사용되었던, 요새로 말하자면 최첨단
무기를 장착한 전투기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철기가 우리 조상네들 부엌에 자리잡은 것은 당시의
기술 전파 속도가 느린점을 감안하면 고려 시대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 솥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당시 첨단기술의 총아였고 따라서 서민들이 아닌 국가나 왕 또는 제사를 상징하는 제물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중국의 솥은 발이 네개, 조선의 솥은 발을 세개로 만들어 중화사상의 요체인 중국과 주변국을 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남경의 손문 사당을 들렀을 때 제례용 솥의 발이 네개인 것을 보고 참 지랄들 한다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 삼국시대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생각해 보면, 곡물의 가루를 물에 개어서 시루에 쪄서 먹었기에 지금으로 치면 떡이나 빵의 형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이런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불 또한 귀했던 시절이기에 아마도 개별가족단위의 취사보다는 마을이나 공동체 단위의 취사가 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귀한 음식인 떡의 단점은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떡을
바짝 말려서 보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이렇게 말린 떡을 한해의 시작인 설날에 함께
모여 물에 불려서 끓여 먹었던 것이 떡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떡국에 여러가지 의미가
붙어서 돈이나 장수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떡국은 공동체의 결사의식 같은 것이었을테고
떡국을 함께 먹는 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증표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뉴욕 마지막
산행에서 서양떡인 케잌과 함께 송별의 정을 나눠주신 선배님들이 생각나 몇자 적어 봅니다. 비바람 막을 곳 없는 산속에서 매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산악회는 분명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에 가까운 형태중의 하나 일것입니다. 제가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여러 선배님들은
분명 저에게 공동체의 아버지 같기도 했고 삼촌 이모들 같기도 했습니다. 모쪼록 서로에게 든든한 공동체가 되어서
서로 즐거움을 나눠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찾아 뵙고 설날 인사 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이렇게 멀리서
글로 새해 인사를 대신함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강건하시고 평안한 한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기회 되는 대로 찾아 뵙겠습니다.
강현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