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필요악 아닌 절대악, 이젠 '탈핵'이다"
[토론회] 미래 세대를 위한 한국 원전정책의 길
지난 14일 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열렸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 국가들이 탈핵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시점에 여전히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이헌석 에너지 정의행동 대표는 이날 "우리나라 정부의 핵발전 정책에서 후쿠시마 사고는 고려할 필요 없는 작은 사건에 불과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날 참여한 토론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우리나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동의했다. 원전에 대한 인식 국민의 인식 변화를 어떻게 탈핵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원자력 전문가 이마나카 데츠지 씨의 강연이 있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일본 교토대 조교이며,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과학자 그룹 '쿠마토리'의 한 사람이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강연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드러난 일본 원전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관련 기사 보기)
"원전 사고, 다음은 우리나라 차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전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그 나라가 가진 원전의 개수"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 원전 현황 현황을 보면 미국이 제일 많고 구소련, 프랑스, 일본 순서로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형 원전 사고 순서를 보면 미국의 스리마일, 구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순서"라며 "프랑스와 일본의 원전 개수는 58개와 54개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순서대로라면 원전 사고의 다음 차례는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방사선 호메시스(Hormesis) 이론'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호메시스'란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안전하고 오히려 미량의 방사선은 몸에 이롭다는 이론이다.
김 교수는 "호메시스 이론은 인체 데이터가 없으며 주로 세포 수준의 연구결과일 뿐"이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이비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 국가방사선방호및측정위원회와 유엔 전리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 등 많은 과학자가 '의학적인 안전기준은 0.0밀리시버트(mSv)'라는 무역치선형 모델(LNT)을 지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캐나다, 영국, 미국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저선량 방사능에 피폭되면 코피, 어지럼증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고선량 방사능에 피폭되면 암, 백혈병의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어떤 방사능도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역주행으로 모자라 과속주행까지"
이헌석 에너지 정의행동 대표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못했다"며 "오히려 그 해에 고리 4호기와 영광 1호기 등 2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며 사고 소식보다 핵발전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양한 매체에 찬핵에 대한 광고가 실리고 핵발전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까지 제작되는 등 그동안 국민은 찬핵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교과서에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같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며 "반면에 핵발전소, 핵폐기장에 대한 반대 운동은 모두 '지역 이기주의'로 설명되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가운데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는 우리나라 국민이 경험한 사실상 첫 번째 대규모 핵발전소 사고였다"며 "체르노빌 사고 당시 전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이 방사능 물질 공포에 떨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며 "우리나라의 핵발전 정책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 발표된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오히려 사고 이전보다 핵 산업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라며 "우리나라 정부는 역주행으로 모자라 과속주행까지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은 '필요악'→'절대악"
이헌석 대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오히려 '진보진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간 한국의 진보진영은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며 "반핵운동은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사안으로 치부되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더욱 문제인 것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핵발전소를 '필요악'으로 인식한 것"이라며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지만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광우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기획홍보실장은 "진보진영은 사실상 핵발전소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상황이었다"며 "관성적인 운동이 이미 진보진영 내에서도 지방단위까지 만연해 있었다"고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 원전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대표는 "일부 인사들은 그간 자신이 핵발전소에 대해 무관심하고 일정 부분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것에 대해 공개적인 반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면서 "내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로 인해 조심스러웠던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핵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앞으로 진보진영 내부에서 핵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함께 반핵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핵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며 생명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핵발전소 유치 밀어붙이는 삼척시…시민사회로 견제해야"
이광우 실장은 "삼척에서 1990년대 덕산 핵발전소 반대 투쟁, 2000년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 투쟁 등 두 번의 반핵 투쟁이 승리했지만 이번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부지 선정 반대 투쟁은 양상이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에 따르면 삼척시는 지난 1월 원전 유치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걸도록 관변단체, 기업체, 식당 등에 요구했다. 그 결과로 1000여 장의 현수막이 삼척시에 걸리게 되었다. 지난 2월에는 '유치 결의 대회'를 열고 대학생을 포함해 2500여 명을 강제 동원하기도 했다.
이 실장은 "시장이 직접 핵발전소 유치에 나서면서 온갖 이권과 연관된 관변단체들과 지역업체들이 주축이 되어 시장권력과 함께 유치 분위기를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반핵 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사회 확장'"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자치단체장과 시의회를 포함한 지방토호 세력은 이익이 있는 곳이면 민주주의를 헌신짝 버리듯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는 시민사회를 형성해 지방권력과 국가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핵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반핵운동의 분기점이 되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헌석 대표는 "지난 4월 로이터 통신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1%가 핵발전소에 반대하고 특히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는 68%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반적으로 반핵 정서가 확대되었지만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탈핵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를 완전한 탈핵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온전히 한국반핵운동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 탈핵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법은 '탈핵을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 핵폐기장 건설문제는 언제나 청와대와 대통령이 직접 챙겨왔던 의제들"이라며 "이처럼 중앙집중식 정치구조가 견고한 우리나라에서 핵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역주민의 의사를 중앙정부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국한되어 있다"며 "핵 문제는 정치적 의제라기보다 하나의 '지역 갈등' 사안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핵 문제는 몇몇 전문가들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에서 반핵 운동은 큰 힘을 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운동가들은 내년 3월 한 달 동안 '탈핵의 달' 선포와 반핵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이러한 대중 행동은 탈핵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간 의제화되지 못했던 핵문제를 우리의 일상적인 주제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싸울 때 핵 없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