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둘째가 초음파 검사로는 딸로 나오자 그렇게 기뻐했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예쁜 드레스 하나 해 보내라 해서 받기까지 했습니다만... 그런데 고추가 튀어나왔습니다. 전 졸지에 팔자에 없을 것만 같았던 아들 둘을 갖게 된 거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속설에 의하면 딸 둘이면 금메달이고 딸 하나에 아들 하나면 은메달, 그리고 아들만 둘이라면 동메달감도 아니라 '목매달'이라고 하던데, 딱 그 꼴이 난 것입니다. 초음파검사가 잘못될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그걸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다는 것도 이 경험을 통해 절절히 체험한 셈이랄까요. 작은아들 지원이는 그렇게 우리 옆에 왔었습니다. 전혀 엉뚱하게 고추를 달고. 사회보장 카드에 영어 이름으로 '레이첼'이라고 썼던 걸 박박 두 줄로 그은 다음 바로 '저스틴'으로 고쳤는데, 아마 그것은 당시 제가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공부하고 졸업을 일주일도 채 안 남겨 놓았던 때라, 거기서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지원'이란 이름은 원래 딸이라 생각하고 어머니께서 지어주셨던 것인데, 한자만 바꾸어 그대로 쓰게 됐습니다. 어쨌든, 이녀석은 요즘 딸 노릇을 합니다. 어렸을 땐 제 형을 그렇게 때리고 못살게 굴더니, 이제 지호와 체격 차이가 엄청 나 버리는지라, 아마 이것도 자기의 생존 방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제 형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어 아빠 엄마를 재밌게 해 줍니다. 그런 녀석이 요즘 자기 여자친구 문제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군요. 한 두어달 전부터 계속해 5학년을 건너뛰어 6학년으로 가겠다고 우기길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성적은 늘 좋고 이미 킨더가튼도 건너뛰고 1학년으로 들어온 경험이 있기에,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계속 그래도 중학교에 가서 공부 잘 하겠다면서 우기는 겁니다. 이유를 캐고 봤더니, 지원이의 '첫사랑' 인 앤지 - 먼저 월반해서 중학교로 가 버린- 가 페이스북을 통해 꼬시고 있는 거였습니다. 가서 잘 할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애가 중학교 문화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아니다 싶어서 딱 잘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풀이 푹 죽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데, 그것도 참 보기 힘들더군요. 그런데 그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제 어렸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대략 지원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나온다는 겁니다. 지호도 마찬가지구요. 아마 딸이 없는 것이 우리 부부에겐 좀 섭한 일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끔씩 '작당해서' 우리를 골탕먹이는 저 두 형제넘들에겐 좋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무엇보다 제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아무래도 쉽기 때문에 저한테는 좋은 일 같습니다. 아내는 항상 "아들 셋 키우느라(?) 죽을 맛"이라고 하지만. 며칠전에 지원이의 친한 여자친구인 니콜의 생일에 갔다 왔는데, 사진 예쁘게 폼 잡고 찍으랬더니 자꾸 얼굴을 가리고 이상한 표정을 하고 찍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아빠는 살살 캐물어 봅니다. "왜, 이 사진 혹시 앤지가 볼까봐서?" 애가 가타부타 말을 안 하고 딴곳만 쳐다봅니다. 자식아, 내가 니 속을 다 훤히 안다. 당장 사진 페이스북에 올려야겠습니다. -_-;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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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eattle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권종상
첫댓글 이렇게 사춘기가 오는 모양입니다.
니콜 양이 크면 아주 예쁘겠습니다. ^^
더 어렸을때하고 변한게 없습니다. 키까지... -_-; 2세를 위해서 키는 좀 컸으면 하는데. 풋.
종상님 어렸을 때와 똑~같지 않았나요?? ㅎㅎ
흐흐... 솔직히 지호가 저랑 생긴건 비슷한데, 지원이가 성격이 좀 비슷하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