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산(紫陽山 401.6m,함안)은 산인면과 칠원면에 걸쳐 있으며, 옛 자료에는 '자양산'이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자구산(紫丘山)'이라고만 기록되고 있다.
‘자구산은 군의 동북쪽 15리에 포덕산에 이어 있다.’라고 수록하고 있고, "자구산이 마을의 주산"이라고 추기(追記)하고 있다.
자구산이 자양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872년 이후로 보인다.
자양산은 국제신문에서 도천 원점회귀의 가이드가 올라왔지만 최근 ‘월간산’ 2019년 1월호에 ‘자양산환종주’ 코스가 올라왔다.
설연휴로 인하여 부산한마음산악회 자양산 정기 산행은 불참을 하고 다음날 홀연히 자양산으로 혼산을 떠났다.
'자양산환종주'는 15km가 넘는 다소 긴 코스에다 미로처럼 얽힌 산길에 찾는 이도 없어 독도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 산길에다 '저산(146.4m)'을 추가해 네 산을 이어타면서 ‘저골자룡’ 환종주라고 별칭을 붙였다.
홀로 걷는 소나무 숲길은 호젓해서 좋았지만 산짐승의 흔적들만 있는 잡목 성가신 산길에서 네 차례의 알바는 자책의 경험이었다.
그러한 거친 산길에서 만난 자양산의 조망은 벅찬 감동과 희열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였다.
자골산에서 접속한 ‘화개지맥’은 낙남정맥 광려산에서 북으로 분기하여 남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가는 34km의 산줄기로
동쪽 광려천의 울타리가 된다.
칠원산성(漆原山城)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로 지정되었지만 그 흔적마저도 희미한 그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유적지로 허허롭기 이를 데 없었다.
'저골자룡'이란 이름을 낳게한 ‘저산’은 삼인칭 대명사에서 생긴 이름인지, 멧돼지가 많아 ‘멧돼지 저(猪)’자를 붙인 이름인지 알 수가 없다.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산행후 ‘고려동유적지’를 탐방할려고 하였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입곡군립공원’을 원점으로 검암산(190.6m)을 산행하고, 다시 ‘문암산성’을 지나 자양산 남릉으로 올라 갈전으로 내려와 '고려동유적지'를 답사한 뒤
입곡군립공원을 돌아본다면 짧은 겨울 하루해는 저물 것이다.
코스: 유원리경로당-저산-와룡재-칠원산성-자골산(화개지맥)-자양산-정자사거리-갈전갈림길-도천갈림길-화개지맥갈림길-와룡산-유원리경로당(약15km,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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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월간 산>
참고 <국제신문>, 도천 원점회귀
화개지맥
네비엔 '유원리경로당'을 입력하여... <월간 산>의 가이드는 유원리노인회관 뒤 느티나무 옆을 지나 와룡재로 오르는 임도로 접근하게 된다.
유원노인회관 앞에 차를 댔다.
'저산'을 가기 위해서는 유원노인회관 앞의 유원교를 건너 ...
태영상사 옆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다리를 건너'저산'을 바라보고 트럭 앞 농로를 따른다.
농로는 구불구불 우측 야트막한 능선을 향하여...
이어지더니...
금세 능선에 올라선다.
'ㅜ'자 갈림길에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창원 황씨 가족묘원을 지나고...
또다른 묘원을 지난다.
'저산' 봉우리를 정면에 버려두고 산길은 좌측으로 에돌아가지만 '저산' 봉우리는 무덤을 지나...
일군의 무덤들이 있는 고스락에 오르면...
저산(146.4m)이다. 산악회 시그널에다 조그마하게 저산이라고 적어 넣었다.
낮은 저산을 내려서면 와룡재.
무덤 옆에 작은 빗돌은 후손인 듯하여 보기가 좋다.
부모님 옆이든, 할아버지 옆이든, 더 윗대 조상의 옆이든 화장을 한 뒤 작은 빗돌하나 놓는 게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공원묘지에 계셔서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한 뒤 바람이 지나는 산길에 뿌려달라고 하였다.
포장임도가 올라온 와룡재엔 요즘 유독 자주 보이는 가족묘원이 있다.
이후 능선을 고수하면 ...
무덤들이 흩어져 있고...
'동암처사밀성박공묘도비'는 유원리경로당 옆에서 본 비석과 똑 같다. 훼손된 봉분은 멧돼지들의 소행일 터. 저산이 저산(猪山)인가?
멧돼지들이 하도 많이 설쳐 무덤을 훼손하니 이렇게 휀스를 쳐서 보호하고 있나보다.
작은 봉우리의 참호를 지나고...
칠원산성으로 오르는 산길에 휀스가 쳐져 있다. 사유지인가?
휀스를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봉우리가 보여 안국산(安國山 344.1m)인가 하였으나 안국산을 뒤로 감춘 231m봉이다.
그냥 잡목 우거진 밋밋한 봉우리에...
빛바랜 안내판하나 비스듬히 누워있다. 경남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칠원산성(漆原山城)이다.
산성이 있었다고하니 산성이지, 그냥 널버러진 돌무더기들만이 산성지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진행방향으로 고개를 내민 봉우리를 살짝 당겨보니...
시설물이 있는 자양산이다.
옆으로 살짝 벗어나 조망이 열리는 바위 위에 올라서니 진행방향으로 능선길이 이어지고...
그나마 갑갑하던 산길에 숨통이 트인다.
아래 보이는 도로는 칠원 대산간 4차선 도로이고, 도로 뒤로 보이는 산줄기는 화개지맥.
더 뒤의 실루엣을 당겨보니 창녕 화왕산인가?
화개지맥을 만나는 묵묘지점에서...
안국산과 귀인봉을 향하는 화개지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등로 옆뽈떼기에 살짝 비켜선 자골산에서 나의 키작은 삼각대를 놓고 인증샷을 하며 정상주를 곁들인다. 이 행위는 나의 소박한 정상 세러머니.
자골산의 표지판.
편백숲을 지나...
유순한 능선을 걷노라니...
좌측으로 자양산으로 향하는 임도가 보이지만 나는 계속해서 능선을 고수...
정상 직전 덩쿨식물이 우거진 수풀을 헤집고...
산불초소와 무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고스락에 오른다. WOW~
사방이 탁 트인 도드라진 바위엔..
자양산 정상석이 서있어...
아라가야 함안의 자주빛 따스한 볕을 내리고 있다. 이 펜촉을 닮은 자양산 정상석은 새천년 원년 때 세운 것.
서기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millennium) 때이다. 아래 마을은 골짜기 안에 있다고 골안. 멀리 낙동강 너머 낮은 산자락들은 화왕지맥.
지형도에는 자양산 정상이 통신탑이 있는 곳으로 나와 있지만, 1m 낮은 이 봉우리가 자양산의 실질적 정상으로 손색이 없다.
북쪽 멀리 창녕 방향으로...
줌인하니 아까도 보았던 화왕산이 맞을 터.
골안마을과 운봉저수지.
능선 좌측은 어연마을과 어연저수지. 도로 너머는 안산(242.3m).
통신탑이 있는 허울뿐인 자양산을 쳐다보다 의령방면을 더 당겨 보았더니...
의령쪽 산군들이 잡힌다. 자굴산(?), 한우산(?)
이제 통신탑 방향 임도로 내려서서...
이정표를 확인한다. 통신탑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임도를 걸으며 우측으로 산그리메를 감상한다.
좌측 화개산 뒤로 고개내민 무학산. 우로 이어지는 낙남정맥과 화개지맥의 접점엔 광려산이 있다.
더 우측으로 서북산과 여항산.
클릭. <파노라마> 무학산에서 여항산과 방어산까지.
서북산과 여항산.
화개지맥과 낙남정맥의 만남봉인 광려산과 뒤로 대산.
우측 끄트머리엔 방어산.
이제 포장임도를 따라...
정자가 있는 사거리에 닿았다. 임도사거리에선 빨간화살표 방향.
임도를 따라 곧장 진행하다...
10여분 만에 임도를 버리고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입구의 이정표.
철탑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작대산과 중앙에 천주산, 그리고 맨 우측에 팔용산인 듯.
평상이 있는 솔숲길에서...
갈전(고려동유적지) 갈림길 이정표가 있고...
다시 17분이 지나서 '도천 0.9km' 이정표를 만나면 독도에 유의해야만 할 것. 나는 무심코 도천으로 500여m 내려가다 되올라 왔다.
검은 색 이정표 금동굴 호곡 방향을 따를 것.
알바를 하고 가파른 산길을 되올라 올려니 숨이 턱에 닿아 우측 사면을 비스듬히 미끄러지듯 타고 우측 능선으로 붙었다. 대략 30분을 알바하였다.
화개지맥 갈림길을 벗어나는 지점은...
226m라는 준.희 님의 푯말이 달려있다. 이 지점은 함안제1터널이 지나가는 곳으로 뽕나무고개라고도 불린다.
뽕나무고개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좌측에 장암천과 우측의 유원천을 가르는 솔숲 작은 능선길.
그물망이 쳐진 무덤을 만나면 이 지점이 또 독도주의 지점.
나는 길이 빤한 능선으로 무심코 내려가다 되올라 오는데, 다시 10분의 알바시간이 걸렸다.
다시 무덤을 지나고...
능선인 듯 분지인 듯 펑퍼짐한 임도를 더듬으며...
능선을 고수한다. 말이 능선이지 그저 찾는 이 끊긴 야산자락.
제법 반듯한 솔숲길에 오르니 산꼭대기에 냉장고가 버려져 있다. 냉장고가 산꼭대기에 올라온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잘 가꿔진 무덤을 만났는데, 에구~ 이 또한 세 번째 알바.
정재처사회산황공 무덤을 만나거든 되올라 가야만 할 것.
작은 봉(180.2m)에 되올라온 후 지팡이가 가리키는 방향이 와룡산 갈림길.
한마음산악회 시그널에다 와룡산 갈림길이라 적어 매달아 두었다.
갈림길 찾기가 상당히 애매하여 냉장고가 있는 지점을 만나면 가까운 지점에 갈림길이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
철탑을 지나고...
이장된 무덤과...
또다른 무덤을 지나면...
아랫달전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곧장 올라 무덤을 지나면...
누각처럼 생긴 산불초소의 지붕이 보인다.
2층 망루에 올라있는 초록색 산불초소,
와룡산에서 뜻밖의 일몰을 만난다.
동쪽으로 아까도 보았던 작대산과 천주산, 그리고 팔용산과 무학산의 모습.
건너편 처음 올랐던 저산과 잘록한 와룡재.
산불지기 아저씨는 이미 퇴근을 하였고...
이제 나도 하산을 서둘러야만 할 것.
유상동 마을 반듯한 길로...
내려서노라니 자꾸만 시선을 가로 막는 작대산과 천주산.
벤치가 있는 지점에선 유상동마을이 눈 아래로 펼쳐지더니...
잘 가꿔진 봉분 큰 무덤군들이 나타난다.
울타리쳐진 무덤 안 비석을 당겨...
확인하니 청백리창원황씨지묘. 청백리(淸白吏)는 고려, 조선시대의 모범 관료에게 수여되는 명칭.
봉분 큰 몇 기의 무덤을 내려와 올려다 본다.
그리고 곧 만난 마을 고샅엔 사각정자와 이정표가 서있다.
그 옆에 광재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정면 세칸 팔작지붕의 상봉서원을 카메라에 담는다.
상봉서원(祥鳳書院)은 1696년(숙종 22)에 황협(黃悏, 황열(黃悅) 등 8현을 추향하기 위하여 칠원면 유원리에 설립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자 용산서당을 중건하여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다가 1935년 상봉서당을 용산사(龍山祠)의 옛 터에 중건하여
석채례를 속행하였다.
광복 후 1984년 사림과 후손의 협의 하에 서원으로 중건하고 1985년에 용산사를 복원하여 황협과 황열 두 사람을 배향하게 되었다.<자료>
앞에는 상봉서원, 마루 안에는 상봉서당의 현판이 걸렸다.
낙관이 있는 상봉서원 현판을 당겨서 관지(款識)를 확인하니 황철주(黃喆柱)로 읽히지만 알 길이 없다.
길가에 빗돌이 서있어 카메라에 담았더니 아까 산에서 보았던 비석과 같은 글자다. '동암처사밀성박공묘도비'
네 차례의 알바끝에 15km가 넘는 '저골자룡' 환종주가 끝난다.
유상도노인회관 뒷편의 노거수는 은행나무로...
수령 600년이 다됐다.
- 산그늘 -
먼산바라기만 하던 스님도
바람난 강아지며 늙은 산고양이도
달포 째 돌아오지 않는다
자기 누울 묏자리밖에 모르는 늙은 보살 따라
죄 없는 돌소나무밭 돌멩이를 일궜다
문득,
호미 끝에 찍히는 얼굴들
절집 생활 몇 년이면 나도
그만 이 산그늘에 마음 부릴 만도 하건만,
속세 떠난 절 있기나 한가
미움도 고이면 맛난 정이 든다더니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하필 그리워져서
눈물 찔끔 떨구는 참 맑은 겨울날
<박 규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