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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스크랩 조선조 관직과 품계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39 09.11.11 21: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구 분 동반(東班) 서반(西班) 외명부(外命婦)
문무관처(文武官妻)

 

당상/堂上 정1품
正一品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부부인(府夫人)
(왕비모; 王妃母)
정경부인(貞敬夫人)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종1품
從一品
숭록대부(崇祿大夫)
숭정대부(崇政大夫)
봉보부인(奉保夫人)
(대전유모;大殿乳母)
정경부인(貞敬夫人)
좌찬성
우찬성
정2품
正二品
정헌대부(正憲大夫)
자헌대부(資憲大夫)
정부인(貞夫人) 판서, 좌참판
우참판
종2품
從二品
가정대부(嘉靖大夫)
가선대부(嘉善大夫)
정부인(貞夫人) 참관, 관찰사
정3품
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숙부인(淑夫人) 참의, 목사
도호부사
당하
堂下
정3품正三品 통훈대부(通訓大府) 어모장군(禦侮將軍) 숙인(淑人)
종3품
從三品
중직대부(中直大夫)
중훈대부(中訓大夫)
건공장군(建功將軍)
보공장군(保功將軍)
숙인(淑人) 집의, 사간
정4품
正四品

봉정대부(奉正大夫)
봉렬대부(奉列大夫)
진위장군(振威將軍)
소위장군(昭威將軍)
영인(令人) 군수, 사인,
장령
종4품
從四品
조산대부(朝散大夫)
조봉대부(朝奉大夫)
정략장군(定略將軍)
선략장군(宣略將軍)
영인(令人) 경력, 첨정

★ 동반관직(東班官職) :
문관(文官)의 관직으로서 종친(宗親)은 왕의 친족 부계친(父系親)으로서 4대손까지로 하고, 의빈(議賓)은 왕과 왕세자자의 사위를 말하는 것이다.

★ 서반관직(西班官職) :
무관(武官)의 관직으로 정1품으로부터 종2품까지는 동반관직과 같다.
★ 당상관(堂上官)
관계(官階)의 한 구분. 문신은 정 3품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 무관은 정 3품인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을 말한다.

★ 당하관(堂下官)
문신은 정 3품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 종(從통) 9품인 장사랑(將仕郞훈)까지, 무관은 정 3품인 어모장군(禦侮將軍) 이하에서 종 9품인 전력부위(展力副尉)까지를 통칭한다.
★관직정식명칭(官職正式名稱)과 행수법(行守法)
관직의 정식 명칭은  계(階), 사(司), 직(職)의 순서로 되어 있다.
예) 영의정(領議政)은 대광보국숭록대부(階), 의정부(司), 영의정(職)이 된다. 계는 곧 품계이고, 사는 소속 관청이며, 직은 직위를 가르킨다. 그런데 "행수법(行守法)" 아리는 것이 있어서 품계가 높으면서 관직이 낮은 경우(계고직비; 階高職卑)에는 "행(行)"이라하고, 반대로 품계가 낮은데 관직이 높은 경우(階卑職高)에는 "수(守)"자를 붙이게 되어있다. 예로서 종1품인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품직인 대제학(大提學)이 되면, "가선대부수홍문관대제학(嘉善大夫守弘文館大提學)"이라한다. 고려시대의 인물에 "수대보(守太保)"ㄴ; "수사공(守司空)"이나 하는 관직이 많은 것도 모두 같은 예이다. 또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인물에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이니 "검교정승(檢校政丞)"이니 하여 "검교(檢校)"란 용어가 많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실제의 직책은 맡지 않은 임시직(臨時職), 또는 명예직(名譽職)을 말한다.
★관직의 임기
임만(任滿)이라하며, 중앙 각관사(各官司)의 6품이상의 당상관(堂上官)은 대개 30개월(900일), 7품 이하는 450일, 무록관(無祿官)은 360일 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 관찰사(觀察使) 유수(留守)는 24개월. 단, 지방관은 조만(爪滿)이라하여 관찰사, 도사(都事)는 360일(1년), 수령(守令)은 1800일(5년). 급지(及至)는 60개월, 병사(兵使)와 수사(水使)는 24개월 등.
★권지(權知)
새로 문과에 급제(及第)한 사람을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에 분속(分屬)하여 권지라는 명칭으로 실무(實務)를 수습(修習)하게 한다. 즉 벼슬 후보자.
★호당(湖當)
족보(族譜)를 보면 높은 벼슬을 지낸 문신 중에는 호당을 거친이가 많이 눈에 뜨인다. 호당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서 세종(世宗)때 젊고 유능한 문신을 뽑아 이들에게 은가(恩暇)를 주어 독서(공부)에 전념하게 한데서 비롯된 제도인데, 이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하여 문신의 명예로 여겼으며, 출세길도 빨랐다.
★문형(文衡)
문과를 거친 문신이라도 호당출신이라야만 문형(文衡)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문형이란 대제학의 별칭인데, 문형의 칭호를 얻으려면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그리고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또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직해야만 했다. 문형은 이를 3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ㅈ거으로 대표하는 직(職)이므로 더 할 수 없는 명예로 여겼고, 품계(品階)는 비록 판서급(判書級)인 정2품(正二品)이었지만, 명예로는 三公(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나, 6경(六卿)보다 윗길로 쳤다. 역사상에서 여러 벼슬에서 최연소 기록을 세운 이는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인데, 그는 20세에 문과에 올라 3세에 호당에 들었고, 31세에 문형이 되었으며, 38세에 벌써 우의정이 되어 42세에 영의정에 이르렀다.
★전조(銓曹)
요즈음에도 행정부의 각 부에서 서열이 있드시, 6조(六曹) 중에서도 문관의 인사전형을 맡은 이조(吏曹)와, 무관의 인사 전형을 맡은 병조(兵曹)를 전조(銓曹)라 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조와 병조의 관원은 "상피(相避)"라 하여 친척이나 인척이 되는 사람이 함께 전조에 벼슬하는 것을 막았다. 이를테면 명종(明宗) 때에 신광한(申光漢)이 병조참판(兵曹參判)이 되고 송기수(宋麒壽)가 이조참판(吏曹參判)이 되었는데, 서로 혼인관계가 있다하여 신광한을 신영(申瑛)으로 교체했다. 또 숙종(肅宗) 때에는 홍명하(洪命夏)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있을 때, 홍중보(洪重普)가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은데, 홍중보는 홍명하의 형 명구(命耉)의 아들이므로 대간(臺諫)이 이의를 제기하여 병조판서를 딴 사람으로 바꾸었다. 또 정승은 병조판서를 겸직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박원종(朴元宗), 유성룡(柳成龍), 박순(朴淳), 김석주(金錫胄) 등이 예외로 겸직했다. 명종 때 비변사(備邊司가) 상설되면서 임란(壬亂) 후로는 비변사가 군정을 관장하여 전조의 권한이 약화되었다.
★이조정랑(吏曹正郞), 좌랑(佐郞)의 권한
이조(吏曹)에서도 특히 정랑(正郞; 정 5품)과 좌랑(佐郞; 정 6품)이 인사(人事) 행정의 실무 기안자(起案者)로서 권한이 컸는데, 이들을 전랑(銓郞)이라 일컬었다. 전랑은 3사(三司) 관원중에서 명망이 특출한 사라으로 임명했는데, 이들의 임면(任免)은 이조판서(吏曹判書)도 간여하지 못했고 전랑 자신이 후임자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전랑을 지낸 사람은 특별한 과오가 없는한 대체로 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마련이었다. 선조(宣祖) 때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이 이 전랑직을 둘러싸고 다툰 것이 동인, 서인의 분당을 가져온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원군(大院君)
왕의 장인(丈人), 또는 1등 공신에게 주던 칭호로서 받은 사람의 관지명(貫地名)을 앞에 붙인다. 예) 海恩府院君

제상(帝相)
국왕을 보필하고 문무 백관(文武百官)을 지휘감독하는 지위(地位)에 있는 2품이상의 관직을 통칭한다. ★삼공육경(三公六卿)
이조때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등 3정승(政丞)을 3공이라 하고, 6조(六曹)의 판서를 육경(六卿)이라 한다.
★낭청(郎廳)
각 관사에 근무하는 당하관의 총칭

★사림(士林)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는 덕망이 높은 선비

★유학(幼學)
사대부(士大夫)의 자손으로서 벼슬하지 아니한 선비

★통제사(統制使)
임진왜란때 설치. 충청, 전라, 경상도 등 3도의 수군(水軍)을 통할(統轄)하는 무관직. 전라수사가 겸직한다.
★자(字)
가명(家名, 본명;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아명이라고고 하는 초명(初名)이 있다. 초명(初名)이란 아이가 출생하면 그 집안의 항렬자에 따라 지은 이름을 말한다. 자(字)는 아이가 성장하여 20세가 되면, 관례(冠禮 아이로서 성인이 되는 예식으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던 예식)라 해서 성년의식을 갖추는데 서당의 훈장이나 가문의 덕망 있는 어른이 이름을 지어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호(號)는 학문을 연구하는 선비가 어느 한계를 깨우치고 진리를 터득했을 때 그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스승이 호를 내려 주었는데 스승으로부터 호를 받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알았다.
또 동문수학(同文修學)한 벗끼리 호를 지어 불러주기도 했고, 뜻이 맞는 시우(詩友)나 문우(文友)끼리 호를지어 존경해주기도 했으며,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비유하여 호를 짓기도 했는데 이를 자호(自號)라고 한다. 호는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여러 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휘호(徽號)
종친과 문(文), 무관(武官) 중에서 정 2품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시호(諡號)를 주었는데, 뒤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 절신(節臣) 등은 정 2품이 못되어도 시호를 주었다
시호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이의 생장(行狀)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禮曹)에 제출하면 예조에서 이를 심의한 뒤에 봉상사(奉常寺)를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를 정하게된다. 시호를 정하는 법으로는 "周公諡法"이나 "春秋諡法"이나 하여 중국고대(中國古代) 이래의 시법(諡法)이 많이 적용되었던 듯하다. 시호에 사용된 글자는 문(文), 충(忠), 정(貞), 공(恭), 양(襄), 정(靖), 효(孝), 장(莊), 안(安), 경(景), 익(翼), 무(武), 경(敬) 등 120 자인데, 한자한자마다 정의(定義)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에 알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두자로 만들고, 시호 아래 "공(公)" 자를 붙이어 부른다.

▶ 유현(儒賢)들의 시호
임금의 특별한 교시(敎示)가 있을 때는 자손의 시장을 기다리지 않고 홍문관과 봉상사에서 직접 시호를 정의 했는데, 이는 퇴계이이(退溪李滉)에게 문순(文純)이란 시호를 내려준데서 비롯했다. 정 2품 벼슬이 못되었으면서 시호를 추증받은 유현으로는 김굉필, 정여창, 서경덕, 조광조, 김장생 등이 있다.


▶武人의 시호

무인의 시호로는 "충무(忠武)"가  가장 영예로움 직하며, 특히 충무공하면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 밖에도 조영무, 남이(南怡), 구성군준(龜城君浚), 정충신, 김시민, 김응하, 이수일, 구인후 등 충무공이 8명이나 더 있다.
★청백리(淸白吏)
청백리는 그의 인품, 경력, 치적 등이 능히 몸든 관리(官吏)의 모범이 될만한 인물이어야만 청백리로 녹선(錄選)된다. 청백리로 뽑히면 품계(品階)가 오르고, 그 자손은 음덕(蔭德)으로 벼슬할 수 있는 특전이 있다. 따라서 본인은 물론, 일문(一門)의 큰 영예로 여기었다. 청백리는 의정부(議政府), 6조(六曹), 한성부(漢城府)의 2품 이상의 관원(官員)과 대사헌(大司憲), 대사간(大司諫) 등이 후보자(候補者)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왕의 재가(裁可)를 얻어 녹선한다.

★불천위(不遷位)
덕망이 높고,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가한 신위(神位)
★기사(耆社), 기로소(耆老所)
기사(耆社)라는 것은 기로소의 별칭으로서, 태조(太祖) 때부터 노신(老臣)들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기사에 들려면 정 2품 이상의 실직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이가 70세 이상이어여 했으며, 임금도 늙으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올렸다. 이러므로 기사는 임금과 신하가 동참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로서도 으뜸으로 쳤으며, 조정에서는 매년 3월 삼짓날과 9월 중양절(重陽節)에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를 기로연(耆老宴), 또는 기영회(耆英會)라 했다. 따라서 기사에 드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는데, 사천목씨(泗川睦氏)의 3대가 기사에 연입(連入)하여 이 방면에 기록을 세웠다
기사에 들려면 반드시 문과를 거친 문관이어야 했으며, 무관이나 음관(蔭官)은 들 수 없었다. 허목(許穆) 같은 이는 정승을 지내고 나이가 8세나 되고서도 문과를 거치지 않았다 하여 기사에 들지 못하다가 신하들의 주청으로 뒤늦게 기사에 들엇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조 초기에는 문과를 거치지 않은 음관이나 무관 또는 나이 70세가 되지 않은 사람도 기사에 들었는데, 권희(權僖), 김사형(金士衡), 이거역(李居易), 이무(李茂), 조준(趙逡), 최윤덕(崔潤德), 최항(崔恒) 등이 그런 예이다.
★배향(配享)
공신, 명신, 또는 학덕이 높은 학자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나 문묘(文廟), 서원(書院) 등에 향사(享祀)하는 일

★치제(致祭)
구각에 공노가 많은 사람, 또는 학행과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사후 국왕이 내려주는 제사

★정려(旌閭) :
특이한 행실에 대한 국가이 표창(表彰). 충신, 효자, 열녀(烈女)들을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추증(追贈)
본인이 죽은 뒤에 벼슬을 주는 제도로서 가문을 빛내게 하는 일종의 명예직인데, 추증의 기준을 보면 종친과 문무관으로서 실직(實職) 2품인 자는 그의 3대를 추증한다. 그 부모는 본인의 품계(品階)에 주낳고, 조부모, 중부모는 각각 1품계씩 강등(降等) 한다. 죽은 처는 그 남편의 벼슬에 준한다. 대군(大君)의 장인은 정 1품, 왕지인 군(君)의 장인은 종 1품을 증직하고, 친공신(親功臣)이면 비록 벼슬의 직위자가 낮아도 정 3품을 증직한다. 1등 공신의 아버지는 순충, 적덕, 병의, 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을 추증하고, 2등 고잇ㄴ의 아버지는 순충, 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을 추증하여 모두 군(君)을 봉한다. 왕비의 죽은 아버지에게는 영의정을 추증하고, 그 이상의 3대는 따로 정한 국구추은(國舅推恩)의 예에 의한다. 세자빈(世子嬪)의 죽은 아버지에게는 좌의정을 추증하고, 대군의 장인에게는 우의정을, 왕자의 장인에게는 좌찬성을 추증한다.
※ 국구(國舅) : 임금의 장인, 왕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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