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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미국 동부 지역을 강타한 ‘폭탄 사이클론(bomb cyclone).’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항공기 수천 편이 결항하고 수십명이 숨졌다. ⓒ TIME |
이탈리아·스페인 등 비교적 따뜻한 지대인 남유럽도 지난겨울 갑작스러운 폭설로 도로가 통제됐고,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에 속하는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사상 처음으로 40cm의 눈이 쌓이기도 했다.
반면 북반구가 겨울일 때 여름을 맞는 호주 등 남반구 지역은 폭염과 가뭄을 겪는다. 올해 초 호주 시드니의 낮 최고기온은 79년 만에 가장 높은 47℃까지 올라갔다. 같은 시기 북반구와 남반구 온도 차가 100℃ 가까이 벌어지는 극한 기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 강해진 태풍, 기록적인 인명·경제 피해
북극 지방의 제트기류처럼 기상 질서가 교란되면 태풍, 허리케인 등 막대한 피해를 유발하는 열대저기압 역시 더 잦고 심해진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손띤’은 14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뒤 베트남까지 강타, 최소 27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중국 역시 제8호 태풍 ‘마리아’, 제10호 태풍 ‘암필’의 영향으로 40여만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겨울철에 태풍이 발생하는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지난겨울(12월~2월) 발생한 태풍은 모두 4개로, 평년(1.6개) 대비 2배 이상이었다. 지난해 12월 필리핀을 강타한 ‘덴빈’은 240명 사망, 100여명 실종의 인명 피해를 냈다. 필리핀에서 지난 2013년 이후 태풍과 폭풍으로 집을 떠난 사람이 약 1500만 명에 이른다.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이 8000명 넘는 사상자를 낸 직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9)에서는 예브 사노(44)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사무총장이 눈물을 흘리며 국제사회의 각성을 호소했다. 필리핀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그는 단식을 선언하며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필리핀을 방문하라”고 절규했다.
▲ 필리핀 정부 대표 자격으로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예브 사노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사무총장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 The Daily Conversation, 단비뉴스 |
동남아에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서태평양 부근 해수 온도가 높아지는 라니냐의 영향이 크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와 순환 관계에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강한 엘니뇨가 발생하고 물이 순환하며 다시 더 강한 라니냐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따뜻해진 바다는 태풍과 열대성 폭풍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함유근(37)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난 6월 2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아직 태풍 횟수가 과거보다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최근 들어 강한 엘니뇨가 발생하는 횟수는 늘어나고 있다”며 “태풍 발생 역학 중에는 해수면 온도가 27~28℃ 이상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언제든 태풍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지구온난화는 가뭄, 태풍, 허리케인 등 위험한 기후재난을 일으킨다. ⓒ 그린피스 |
대서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 허리케인 역시 해수 온도 상승이 그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지난해 8월 텍사스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가 뿌린 비의 양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19~38% 더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하비는 텍사스 지역 연간 강수량을 훌쩍 넘는 1200밀리미터(mm) 이상의 비를 뿌리고 91명의 사망·실종자를 내, 2005년 ‘카트리나’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남긴 허리케인이 됐다. 뒤이어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주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어마’까지 합하면 두 허리케인이 일으킨 경제적 피해는 2620억달러(약 28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강수 양극화' 뚜렷
미국 오바마 정부 백악관에서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지냈던 존 홀드런(74) 하버드대 환경과학·정책학과 교수는 지난 2007년부터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말 대신 ‘지구 기후붕괴(global climate disruption)’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변화는 과거보다 예측하기 어렵고, 인간이 적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조용하고 점진적이며 온화한 느낌을 주는 ‘온난화’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서남부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기록적인 가뭄과 산불, 홍수를 동시에 겪었다. 올해 주 영토의 44%가 가뭄 지역으로 분류됐고, 지난해 12월 발생한 산불 ‘토마스’는 35일간 서울 면적의 1.8배인 1100㎢를 태웠다. 소방관 1만여명을 투입하고도 한 달 넘게 잡히지 않던 산불은 올해 1월 초 내린 폭우로 완전히 꺼졌는데, 불행히도 이 폭우로 홍수가 나 수십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정반대 기상재해인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함유근 교수는 “지구 온도가 올라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아지면서 가뭄이 심해지고, 대기 중으로 증발한 수증기는 비가 한번 올 때 몰아서 내리기 때문”이라며 “건조한 지역은 갈수록 더 건조해지고, 습윤한 지역은 비가 더 많이 오는 ‘강수 양극화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해마다 12만㎢에 달하는 땅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건조화로 ‘죽은 땅’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매년 420억달러(약 45조5000억원)에 이른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팀이 지난 1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전 세계 사막화 예측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처럼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050년경 전 세계 지표면 중 24~34%, 세계 인구 중 18~26%가 사막화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중남미, 남부 유럽, 남아프리카, 호주, 중국 남부 등은 2040년부터 사막화 현상이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 연구에 함께 참여한 박창의(33)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과학공학대 연구교수는 6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서는 전 지구 평균 온도 증가량을 산업화 이후 2℃가 아닌 1.5℃ 이하로 낮추는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지표 건조화로 인한 사막화 정도는 약 1/3가량 줄어들 수 있지만,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위험성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팀이 온실가스가 지금처럼 배출될 경우 전 세계적으로 사막화 현상이 극심해지는 시점을 예측한 결과. 색이 진할수록 사막화가 더 빨리 진행된다는 의미다. ⓒ 한국환경산업기술원 |
물부족, 식량난이 국가안보 위기도 촉발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은 이미 매년 약 10km씩 확장되고 있다. 중국 역시 신장 위구르·네이멍구·티베트 등 내륙 지역 자치구 등이 사막화로 인한 물 부족 및 식량난 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지역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 발원지이기도 하다. UNCCD는 오는 2025년이면 전 세계 인구 중 18억명이 절대적 물 부족 상태(absolute water scarcity)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뭄·홍수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불러오는 식수난·식량난은 국가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 2011년 이후 10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2006년부터 지속된 극심한 가뭄과 이로 인한 식량난, 여기서 촉발된 시위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피터 글릭(62) 미국 태평양재단 수석연구원은 2014년 미국기상학회(AMS) 학술지에 기고한 ‘물, 가뭄, 기후변화 그리고 시리아 내전’에서 이같이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들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극도로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2011년 시리아 내전을 촉발한 반정부 시위의 배경에는 직전 5년간 극심했던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이 있었다. ⓒ Flickr |
해수면 상승 탓 물에 잠겨 사라지는 섬나라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고 바닷물 부피가 커지면서 해수면이 올라가는 문제는 국가 존립, 주민 생존과 직결된다. 평균 해발 고도가 2.2m에 불과한 남태평양 도서 국가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고통받는 대표적인 나라다. 지대가 낮아 폭풍과 해일에 취약한 이 나라는 해수면이 매년 5mm씩 올라가 2060년쯤에는 섬 9개가 모두 물에 잠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투발루 주민 중 일부는 주변국인 호주, 뉴질랜드 등에 ‘기후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이민을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투발루와 인접한 키리바시·나우루, 낭만적인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진 인도양의 몰디브 역시 국토 수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 남태평양 도서 국가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 투발루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는 나라다. ⓒ Flickr |
IPCC 보고서에 따르면 1901년부터 2010년까지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약 19cm 상승했다. 연평균 1.7mm씩 해수면이 올라간 셈인데, 이 추세는 갈수록 빨라져 지난 20년 동안에만 약 6cm(연평균 3.2mm)가 높아졌다. IPCC는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돼 바닷물이 따뜻해지고 북극 빙하가 녹으면 2100년쯤에는 지금보다 최대 1m까지 해수면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전 세계 모든 도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높이다. 마이클 만 교수는 2016년 저서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에서 “전 세계 인구 중 33%가 해안선으로부터 100km 이내에 살고 있고, 이 중 10%는 해발 9m 미만 저지대에 산다”며 해수면 상승이 끼칠 위험을 경고했다.
인간이 초래한 온난화, 해결책은 화석연료 퇴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프레온가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중 주범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를 과연 인간이 촉발한 것인가’를 두고 그동안 논쟁이 있었지만 2014년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95% 확실하다”고 명시해 논란을 사실상 종결시켰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76%이며 이중 화석연료 연소 및 산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65%다.
▲ 1970~2010년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발생량 및 비중 추이. 맨 밑 주황색 부분부터 위쪽으로 화석연료 및 산업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산림 및 기타 토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프레온가스를 나타낸다. 화석연료 및 산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IPCC |
18세기 산업혁명 이전 280피피엠(ppm)이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11년 391ppm으로 증가했고, 2017년 현재 400ppm을 넘어섰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같은 기간 지구 평균기온은 1℃ 상승했다. IPCC는 인류가 지금부터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하더라도 이번 세기 중반까지 최소 0.4℃ 이상의 온도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화석연료를 계속 태우면 30년 뒤에는 북극 얼음이 모두 녹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550ppm에 이른다. 지구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2℃ 오르고, 2100년쯤에는 최대 4.8℃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현존하는 동식물 중 40%가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고, 농작물 수확량 역시 60%에서 최대 80%까지 급감할 수 있다. 2015년 채택된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기로 명시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손민우(32)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8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한번에 앗아간 2013년 태풍 하이옌이나 수천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낸 지난해 허리케인 하비처럼 자연재해는 이제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의 재앙이 됐다”며 “기후변화 대응은 전쟁을 막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 재앙을 막고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 사용을 멈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후과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OECD 국가는 2030년까지, 그 외의 국가들은 적어도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지구상에서 퇴출하고 가능한 한 빨리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