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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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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사랑 소식방 스크랩 심마니와 농민이 보는 산삼과 장뇌삼...현실과 과제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22 07.01.05 2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삼과 장뇌삼에 대한 수요가 소득에 향상과 웰빙의 열풍과 더불어 이에 대한 관심으로 재배면적도 점차적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장뇌삼의 재배면적은 불과 몇년전에 비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재배면적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에 농촌은 날로 피폐해져만 가고 대체작목 또한 뚜렸이 없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자치단체의 지원아래 많이 뛰어들것으로 보이며 재배면적의 확대로 점치 일반대중화됨에 따라 기존의 텃밭인 인삼에 범주를 서서히 파고들 가능성도 많다.


그러나 장뇌삼에 대한 재배의 확대와 관심과는 달리 지금까지 어떠한 자료나 관리도 부족하고 취약하며 일원화되어 있지도 못하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그 가능성은 다른작목보다 크게 열려있으며 판매를 년도별로 조절할 수 있는 융통성이 넓고 무한한 산림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 그 어느작목보다 매력이 끌리는 것이 사실이나 일반인들이 그 재배방법이나 특성을 잘 알고 있지도 못하며 어느누가 그리쉽게 알려줄 수도 없는 부분이다.


우선 이러한 관심에 첫접하는부분인 장뇌삼과 원종산삼의 품종이 같으냐하는 문제는 어찌보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태생적 원론에 문제로 보는것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어찌보면 누구나 갖는 당연한 의구심 일련지 모르겠다. 

과연 이땅에 원종(천종)산삼이 존재하느냐는 어느 누구도 단언하기 힘든 부분이며 그만큼 귀하고 평생 구경도 하기 힘들며 입증하는 것 자체도 무의미한게 현실이다. 다만 오늘의 원종산삼 입증여부는 힘들더라도 확실히 오래되어 보이고 뇌두 등이 많아 보이는 것만 으로도 대체적으로 좋은산삼으로 인정하거나 그렇게 받아주는 것뿐이다.


원종산삼에 대한 애착은 장사꾼에게는 결코 놓칠수 없는 기회와 호기이며 심마니에게는 희망이며 자존심이다. 그만큼 이에 대한 기대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지금도 심마니들은 발품을 판다.

천종에 가깝거나 인삼씨종에서 대를 많이 거친삼들은 가지수가 3~4구가 대부분이며 그런삼들에게서 대개 좋은삼들이 나온다.

 

과거에 일부분에 악덕업자나 잡마니들이 5구,6구하며 좋은삼의 3,4구 삼들보다 우수한것처럼 가지수를 가지고 좋은 천종이나 좋은삼인 것처럼 악용해왔고 얼마간의 뇌두만으로 천종이라 속이거나 우리에 씨종보다 좋아보이는 중국삼들을 천종으로 속여파는 행위가 빈번해왔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인삼씨종이나 야생삼에 가까울수록 수명을 다하는 시점에 가지수는 5구와 6구가 대부분이다.

 

이를 이렇게 파는 잡마니나 거간꾼도 문제지만 삼을 사는 일반 사람들도 좀처럼 자기에 신분을 드려내려 하지 않는 이유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부담없이 사고 대중화되는 시기는 얼마남아 있지 않다.


깊은산이나 남이 보지 않는 집주변에 중국삼 등을 몰래 심어놓거나 아예 장뇌삼농장이나 밭에서 가꾸어 몇 년후에 국내산이나 좋은삼으로 유통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세관에는 많은 양의 중국씨종과 장뇌삼이 적발되도 밀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밀수 장뇌삼도 뚜렷한 농약검출이나 하자부분 이외에는 적발이후에 적법하게 공매되어 유통되고 그 과정에서 언제든지 부풀려지고 과장되어 유통될 가능성은 많다. 대부분에 농산물이 그러하듯 이러한 맹점을 안고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혼탁해질 수 잇는 것이다. 인삼이나 수입되는 외국삼은 일정한 통제나 농약잔류 등에 통제가 있다. 그러나 장뇌삼은 어떠한가?

별천지이다. 너무 속된 얘기같지만 현실이다.

 

지금도 장뇌삼에 대부분은 밭이나 산밭에서 이식삼 위주로 인위적관리하에 가꾸어지는 묘장뇌가 대부분이며 결코 이런한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유통에 관한 관리와 추적도 부족하며 앞으로 보다 철저한 관리체계가 이루어져야할 부분이다.


과거 장뇌삼의 재배역사는 원종산삼이 밭으로 옮겨져 인삼으로 심겨진 600여년전의 100년이후부터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뇌삼은 어떠한 기록이나 재배방법, 유통경로 등이 확인되고 있지 못하며 우리가 장뇌삼으로 알게된 수년전까지만해도 산삼으로 취급되어 왔고 판매되어 왔다는 반증이다.

 

어찌보면 장뇌삼을 시작한지 조상대부터 몇수십년이 되어 왔다는 나름대로에 주장은 지금에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원종(천종)산삼에 씨앗을 받아 재배하여 왔다는 장뇌농장은 장뇌농장이 아니라 당연히 천종산삼에 농장으로 불려져야 하며 인정을 받아야만 할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에도 그러하듯이 천종산삼을 재배하던지 인삼씨종으로 재배하던지간에 적어도 천종산삼에 버듬가는 좋은산삼에 취급을 받으려면 족히 수십년내지 수백년을 넘겨야만 그런대로 대충 인정이 가능할 것이다.

그 오랜시간을 기다려 후대손손 이러한 노력에 결과는 반드시 우리들만이라도 인정해야할 부분이며 천연기념물이라도 지정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우리네 선배인 심마니들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듯 대부분이 호구지책으로 입문하거나 가난의 그러한 축에 끼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지금은 취미나 동호회에서의 소일거리 요량으로 심을 돋으러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심마니들은 어찌보면 양반대접을 받지 못하는 계층인 하류층이였거나 농사일을 같이하며 산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 또한 그들만에 울타리였으며 보다 더 신성시되고 어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성벽이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산삼은 더 부풀려지고 신성시되고 하늘이 계시한 영물로 거듭태어나 취급되어 왔는지 모른다.

물론 산삼은 다른 약초보다 뛰어난 효능을 지녔다는 것은 그 어느누구라도 인정하는것이며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에 애환과 효심에 상징으로도 그러한 정서를 담아 우리들 가슴한켠에 희망으로 자리잡아 더한 애착을 갖게한다.

 

                      자연적으로 길러지고 있는 장뇌삼(산양산삼)        


우리가 만약 지금 천종에 씨앗을 산에 심어 수확하려면 족히 50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한다. 빨리 크라고 이런저런 별짓 다한다면 10년도 안걸려 수확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른 수명도 끝이다.  환경에 맞는 산에 심어 방치한다면 몰라도... 

 

자식대에 늙으막에 가서나 어떻게 구경들이라도 할련지 모르겠으나 장뇌삼을 재배하는 농장주 입장에서는 택도없이 기다려야 하는 현실과 자금회전이라는 입장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100년, 200년 이상된 나무들도 많지만 그러한 경우와는 다르다. 적어도 우리는 그 이상에 세월을 바라보며 산에 그런삼만을 고대할 수는 없는일이다. 다만 옛날에 존재하던 원종산삼에 가깝게 되돌리려는 노력은 이러한 관련종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하며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


장뇌삼은 그동안 대개 밭에 차광막을 치거나 산밭에서 조그마하게 남몰래 재배되고 유통되어 왔다. 그러한 것이 지금처럼 광대하게 심겨질 수도 없었으며 유통과 신비스런 한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인삼씨종에 가까울수록 상품성은 다소 빨라지며 크기도 또한 크다. 대부분에 장뇌삼이 그러하듯 주로 이식삼들이 많으며 순수히 씨종을 산에 뿌려 그대로 키운 장뇌삼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여기에서 그동안 장뇌삼의 허물이나 벗기고 남을 헐뜻기 위함을 절대로 아니며 이젠 산삼도 하나의 작물로 봐야하며 농민에 입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심겨져야 한다, 신성한 산삼을 작물로 취급한다고 얹쟎아 한다하더라도 이미 하나에 작물로 자리잡고 있다. 언제까지나 부풀려지고 신성시하고 음성적 거래행태만을 고집할것이 아니라 일반인에게 바르게 알리고 선택에 폭을 넓히도록 도와 주워야만 한다.

 

이곳저곳 산에 다니는 일도 옛날같지 못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관광차까지 동원하여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그 어느 깊은산에도 사람에 흔적이 없는곳이 없다. 그만큼 산삼에 수도 줄었고 좋은 산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산삼이래봐야 극히 적은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인삼밭 주변을 축으로한 곳에서 채취되고 전파된다. 몇 달 몇년을 인삼밭이라곤 하나도 없던 심산유곡을 헤멘다 하더라도 실낱같은 한뿌리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허구헌날 까먹은 빈도시락만 부뚜막에 꺼내 놓기가 부끄러울뿐이다. 그만큼 기대하기가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에 산에 자생하는 삼은 야생삼이거나 이들이 대수를 거듭한 삼으로 그렇게 이해하여야 하는것이다.


아무리 좋은 천종삼이라 하더라도 밭에 심으면 빠르게 인삼화가 되고 반면 인삼씨종을 산에 심으면 점차 산삼화가 이루어 진다, 그만큼 환경에 따라 빨리 변화하며 적응하며 이는 후대에 그대로 적용된다.

산에서 그대로 자라 대수를 거듭하여 자랐다면 좋은 삼을 기대할 수 있으며 수명도 점차 대수를 거듭할 수록 오래 살게되고 뇌두에 흔적도 촘촘히 많아지며 일정한 가지수에 이르기까지 년수도 많이 걸린다.  또한 오래된 산삼은 결코 장뇌삼처럼 몸통이 그리 크지도 못하고 촘촘한 뇌두에 흔적과 작은 몸통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야생삼이 일정한 몸통의 크기까지 15년이 걸린다면 대수를 거친 삼들은 최소한 30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한다. 여기에서 밭이나 산밭, 산에서 씨앗을 심어 일정한 크기로 키운후 산이나 밭에 다시 이식을 하게되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생명은 짧아진다.

 

옮겨 심는 자체만으로도 생리적 특성상 몸통에 크기는 비대해진다. 이러한 방식이 묘장뇌이며 수확에 시기를 빠를게 할수 있는 방법이나 장기적으로 좋은 삼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지금 거래되는 가격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형성된다.

산이나 밭에 있는 더덕이나 약초류도 마찬가지이다 하물며 밭에서 자라는 당근이나 무우도 마찬가지이다. 옮겨 심으면 몸통이 커지고 보다 빠른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나 심이 박히고 상품성이 떨어지며 수명은 짧아진다.


또한 어느정도 대수를 거친 삼을 심는 것이 장뇌삼의 가장 효과적이고 우수한삼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생존가능성, 자금회전문제.장기적인 방향, 현실적인 문제, 일반인들이 받아 들이는 인식 등등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나 삼 자체로만 본다면 어느정도 대를 거친 씨종선택은 말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랜 대수를 거친삼을 선택한다면 본인이 살아있는 당대에서는 포기해야만 할것이다.


전자에 말하였듯이 이식삼 위주보다 씨앗위주로 밭보다는 산에서 인위적인 관리보다 자연방치적 관리, 적합한 적지의 선택, 적합한 씨종의 선택이 향후 장뇌삼 재배의 적합한 선택이라 보여지며 장기적인 투자와 안목으로 보는 선택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산삼은 산에서 자라면 산삼이거나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산삼만을 산삼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삼씨종이 산에 올라가도 산삼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더구나 새에 의해 인삼씨가 산에 옮겨져 자연적으로 발아하여 자라난 삼은 산삼(야생삼)이고 사람에 의해 뿌려져 자연적으로 자라난 삼은 장뇌삼으로 불려지는 것도 앞뒤가 맞질 못하다.

 

장뇌삼이란 사람에 의해 인위적관리하에 심겨져 뇌두의 길이(오래된 산삼처럼 보이게 할 목적으로 뇌두를 길게 뽑기 위해 복토나 깊게 심거나 추비, 농약시비 등의 관리로  질병이나 생존율을 높이려 인위적으로 키운 삼)를 길게 뽑아 키운 삼인 재배삼이다. 엄밀히 산에서 자연적 환경으로 씨를 뿌려 키운 삼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얼마전부터는 산양산삼이란 말이 자주 씌여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용어인듯 하지만  혼란을 느끼기에는 여전한것 같다.

믹연히 산양산삼이란  " 산에서 인삼에 씨앗이나 산삼의 씨앗 또는 묘를 심어 키운 삼" 등으로 불려지고 알려지는 일반적 추세이다. 나름대로에 또다른 이해에따라 구분될 수도 많다. 어찌하여든 아마도 산에서 키웠다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구분되어진 측면이다. 

 

오래된 야생삼을  산삼으로 취급하기에도 어렵다. 원종산삼은 그 어디에서도 기대하기도 힘들다. 원종산삼은 구경하기도 힘들고 없다라고 가정한다면 산삼은 없다.  그렇다면 25년 혹은 30년 이상된 것 만을 산삼으로만 취급하는 것 자체도 앞뒤가 맞질 못하다. 다만 좋은 삼이라는 우리가 대부분이 그렇게 통상 인식하고자 하는 한부분으로 갈라놓은것 뿐이다.


앞으로 친환경적이고 자연적 농산물과 자연물을 찾고자하는 마음은 더 높아지고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만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천종산삼이라도 인위적인 관리하에 일반타작물과 같이 키워진다면 좋은 삼으로 취급받기는 곤란 할 것이다.

 

‘산삼농장“ 이란 이름을 보면 왜 산삼농장인가?라는 의심에 눈초리도 있을지 모른다. 산삼농장이라서 그런것은 당연 아니다.

 

천종산삼을 심어서도 아니며 다만 친자연적인 환경에서 인위적인 관리없이 그 옛날의 원종산삼으로 되돌리고자하는 노력이며 이는 삼을 이해하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인식하에 우리 모두가 이를 극복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며  농민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꾸준히 노력해 나갈 과제만이 있을 뿐이다.

 

출처;http://blog.naver.com/wlwndgo09/14002221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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