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연애시절 남편은 가난한 백수였는데 어느날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스테이크였지만 남편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호떡이 먹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남편은 지하철 몇 구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가에서 맛있는 호떡을 사서는 행여 식을까
가슴에 꼭 품고 와서는 호떡 봉지를 내밀었다. 봉지를 열어보니 호떡이 터져서 설탕물이
군데군데 묻어져 나왔는데 그래도 너무 맛있었다고...
요즘 남편이 하는 말, "길거리에서 뭐 사먹는 여자, 정말 싫더라~~"
(아마 남편의 주머니 사정이 많이 좋아진 모양..ㅋㅋ)
난 서울의 남산에 자리잡은 B여고를 나왔다.
남산순환도로에서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한겨울이면 칼바람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날, 하교길에 친구들과 걷다가 가끔 호떡을 사먹곤 했다.
분주하게 구워내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호떡을 보면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내가 좋아하던 그 호떡집은 호떡의 속이 더 알차고 맛있었다.
뜨겁게 녹은 흑설탕 시럽속에 간간히 땅콩 알갱이가 박혀있어서 달콤하면서도 고소했다.
추운날 친구들과 호떡을 먹으면 버스정류장 가는 길이 얼마나 짧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교복치마를 들추던 얄미운 바람도 잊어버리고 달콤한 호떡시럽처럼 뱃속이 뜨끈했던 거 같다.
이제는 원하면 얼마든지 호떡을 사먹을 수 있지만, 그다지 맛있지 않다.
고교시절, 교복을 입고서 먹던 그 호떡만이 나의 기억속에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뿜고 있을뿐.
어제는 아들에게 호떡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밀가루와 이스트, 소금과 물을 섞어 제빵기에 넣어서 반죽코스로 맞춰 놓은뒤, 호떡에 넣을
소를 만들었다.
흑설탕과 적당히 부순 땅콩, 그리고 계피가루를 살짝 뿌리면 준비가 끝이다.
얼마뒤 부풀어 오른 반죽을 꺼내 조금씩 뜯어서 흑설탕 소를 넣고서 오무렸다.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호떡을 넣고 지그시 눌러주면서 노릇하게 구워내니까 제법 호떡다웠다.
아들에게는 먹기좋게 미니호떡을 만들어주고 난 추억의 남산호떡을 생각하며 한 입 먹었다.
흑설탕속의 땅콩이 그때 그시절의 맛을 조금 느끼게 해주었다.
남산표 호떡을 다시는 먹을 수 없지만 그렇게나마 잠시 추억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울아들이 그런 추억을 어찌 알까?
먹는 것 만큼은 아쉬운 게 없어서인지 늘 안먹어서 엄마 속을 태우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런 추억을 하나씩 펼치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미가 있다.
얼마전에는 팥앙꼬를 가득 넣고서 찜통 한가득 찐빵을 쪄냈다.
편집실에도 가져가고 새가족에게도 주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산적을 꽂는 나무꼬치에 어묵을 끼워서 다시국물에 푹 끓여서 어묵꼬치도 해먹고...ㅋㅋ
그렇게 길거리표 음식에 얽힌 추억을 생각하면서, 엄마표음식을 하나 둘 만들어주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