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11.15(토)
<산행코스>
서무새마을회관~정봉~황산(699m)~명석재~방고개~방현마을~대방정이고개(명품송)~방현고개(백두대간기점)
유치재~매요마을~유치봉~통안재~고남산~방아치~방아산~여원재~주지봉(왕복)~여원재
~서림공원(석장승)~람천둑방길~황산대첩비~송흥록.박초월 생가~피바위~서무새마을회관
산행거리: 31 km
날씨: 맑음
언제부터인가 가고 싶었던 그곳
"주지암"
백두대간 수정봉~여원재를 지날때면 늘 보이는
주지사 이정목 그 뒷산에 있는 주지암,,
그 곳에는 제법 웅장한 암릉이 있고 암릉 위에는 불상이 있다.
아기자기한 암릉과 주변 조망이 압권인 곳인데
간만에 시간이 나는 주말이라 들려 본다.
그리고 고려 우왕때 이성계 장군이 왜구대군을 물리친 황산대첩의 현장을 가볼까한다.
황산·람천 품은 길, 왜구 무찌른 핏빛 전쟁터였다.
2m 한 쌍의 석장승이 마주보고 있는 서림공원,
이성계 활 맞은 왜장의 피로 붉게 물든 피바우,
뜻깊은 전승 기리기 위해 만든 황산대첩비지,
동편제 시조 송흥록과 기생 맹렬 사랑도 서려 있는 국악의 성지 등
가볼 곳이 많았지만 당일로 모두 감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무새마을회관
회관 앞에 주차하고 산행 시작합니다.
정봉 오름길에 있는 서무리 명품송,,
하산길에 다시 보기로 하고 간단한 인증 후 지났지만 결과적으로 하산길에는 보지 못하였다.
정봉 오름길에 여명이 붉어온다. 연비지맥의 연비산,오봉산이 가까이 자리한다.
연비지맥 투구봉과 곁봉인 서룡산과 우측뒤로 지리산이 보인다.
올해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단풍을 서무리 뒷산에서 보네요.
억새밭도 지나고..
정봉(552.8m)
십승지환종주 중의 하나인 운봉환종주 그길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황산 가는길에 들려 보았다.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이다.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역사적 용어이며, 십승지라고도 한다.
십승지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 중에 감결(鑑訣),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策),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 나타난다.
대체적으로 공통된 장소는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현 봉화읍),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이다.
그리고, 빠진 한 곳 공주시 유구마곡 일대, 십승지4코스 유구천환종주가 있다.
정봉에선 조망은 별로이지만 대봉산이 보인다.
대봉산 계관봉과 천왕봉이 선명히 보인다.
남덕유산환종주길에 계관봉, 천왕봉 도숭산으로 이어지는 라인 보여진다.
좌측으로 자리를 조금 이동해서 보니 백두대간 백운산도 잘 보인다.
당겨 본 모습이고 서래봉과 대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서무마을에서 올라오는 십승지환종주길과 만나고..황산으로 향한다.
황산( (荒山) ,697m)
높이 697m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과 아영면, 인월면에 걸쳐 있다.
기반암은 편마상 화강암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변의 분지가 침식작용에 의해 점점 깎이면서 황산은 산지(山地)로 남게 되었다.
예로부터 운봉분지(운봉읍·주천면에 형성된 분지)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지역이었는데,
황산은 덕두산과 함께 남원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외적을 막았던 목이었다.
황산 남사면과 덕두산 사이는 폭이 좁은 데다 남천(람천)이 흘러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황산은 1380년(고려 우왕 6) 삼도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조선 태조)가 왜적을 대파한 황산대첩(荒山大捷)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황산 인근의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2번지에 사적 제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가 있다.
황산에 도착하니 조망이 정말 좋다.
날씨까지 도와줘서 조망에 취해 황산에서 한참을 머물게 된다.
연비산 좌측으로 가야산이 보이고,
오봉산과 서룡산사이로 황매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당겨 본 황매산,
진양기맥이 이어오며 상봉뒤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감암,부암 등 손항지환종주길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역시 인월에서 본 지리산은 가까이 조망된다.
만복대와 고리봉,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운봉환종주길, 그리고 백두대간길
조금 일찍 왔으면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늦은 일출을 본다.
함양 구룡천환종주길의 금대산과 서룡산도 가늠해보고 지리산은 역시나 멋진 모습이다.
억새와 어울린 풍경들...가야산과 황매산은 여전히 눈길이 간다.
가야산을 당겨보고 앞으로 남산제일봉 능선도 구분이 되네요.
아침의 색감 짙은 풍경을 즐기고..
덕두산 아래 옥계천 모습도 담아본다.
황산 전경입니다.
장안산,백운산,대봉산,연비산
연비산 좌측으로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나즈막한 연비지맥의 산들도 보인다.
조망 구경도하고 간식도 먹고 놀다보니 아직 정상 인증도 안했네요.
인증 사진 몇장 남겨봅니다.
황매산을 손안에 담아도 보구요.
이렇게 맑은 조망을 언제나 또 볼 수 있을까 풍경을 좀 더 담아둡니다.
연비산,오봉산 사이 산이 오도산이 아닐까 싶어 당겨보니...
역시나 오도산이다.
당겨 본 감악산,,
백운산
대봉산,,
가야산
오도산, 감악산
황매산,,
감투봉과 서룡산
지리산 천왕봉
운봉 407 삼각점,,
사실 오늘의 주된 산행의 포인트는 주지암의 신비스런 모습,
고남산의 조망, 황산대첩의 흔적 찾기 등이었다.
황산에서의 황홀한 풍경은 생각지 못한 멋진 선물이었다.
더 멋진 조망을 기대하며 다음 행선지인 고남산으로 진행 한다.
내려서기전 아쉬움에...
잠시 내려서니 있는 조망 암릉.. 운봉의 모습이다.
분지형인 운봉, 십승지 운봉환종주의 중심이다.
아 근데 뭔가 이상해 생각해보니 명석재로 내려서야 하는데
국악의성지로 바로 내려가고 있는데 아닌가..잠시 알바 ㅋㅋ
다시 되돌아 온 황산,,
철쭉이 왜 겨울에 핀다야? ㅎ
황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막상 진행하려니 길이 안 보인다.
길이 안보이는 직벽을 대충치고내려가면 될것 같긴한데,
조금 되돌아가서 우회하니 희미한 흔적이 보이긴 한다.
정상 암릉군을 우회해서 돌아 내려설 마루금을 찾아 든다.
산죽을 잠시 헤치고..
또 다른 작은 암릉을 우회않고 바로 치고 내려서니 시그널도 보이고
여기가 십승지길 임을 알 수 있다.
암릉 사이로 바로 내려선다. 낙엽이 많아 조금 미끄럽지만 괜찮다.
이후도 선명한 길은 없고 희미한길을 대충 걸어내려 간다.
중간 중간 시그널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길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다 내려와 마지막은 산길로는 망개 등 기타 가시덤불 때문에 갈수가 없어
좌측 논둑으로 돌아 간다.
논둑으로 내려서는 중...
저 앞에 차가보이는 곳을 넘어서면 명석재이다.
한참 밭을 갈고 계시고...
두분은 일하시는데, 어르신은 뒷짐지고 감독하시는 듯 ㅋ
내려선 길과 황산..
명석제 넘어가는길.. 멋진 묘가 있고 뒤로 눈길이 가는 바위가 있다.
명석재에서 뒷산으로 가지않고 가산리 양촌저수지 옆 방고개로 진행한다.
방현마을 어귀에 있는 소나무 군락이 멋스럽다.
가산리 방현마을 명품송,,
500년이 넘었네요.
반대쪽에서 봤는데 더 멋있다.
대방정이고개를 지나고..
방현고개를 오른다. 방현고개는 백두대간 합류지점이다.
방현고개..
드디어 백두대간을 만나고 이제부터 주지사 갈림길까지 백두대간을 걷는다.
로커스맵에 무덤산이라 이름 지어진 곳에 올라보니 진짜 묘가 있네요.
봉우리 이름을 너무 성의 없게 짓고 그걸 맵에 표기하다니 검증이 필요 할 것 같다.
개념도 상 625m봉이다.
△ 625m
유치재 가는길 또 다른 봉우리에 민박집 광고판,,
비실이부부 시그널이 반가운데 빨간색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유치재 지나고..
매요마을 가는길에 본 지리 서북능선 세걸산 전후 능선 같습니다.
고남산이 지척으로 보인다.
많은 대간꾼과 지리국공길에 쉼터가 되었던 매요휴게실..
요즘은 조용한 것 같습니다.
많은 추억이 있는 매요마을을 지나고..
매요마을
매요마을을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백두대간을 지나다 보면 흔히들 놓치기 쉬운 것이 몇 가지들 있다.
육당 최남선은 그의 명저 심춘순례에서
'조선의 국토는 산하 그대로 조선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詩이며 정신이다.
문자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
예로부터 幹은 줄기요 脈은 가지라 했습니다.
도선국사의 옥룡기에서 출발한 우리 조상들의 산줄기에 대한 인식이
백두산과 두류산의 이음이라는 인식에 이르러 산경표가 만들어지고 백두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하나밖에 없는 간이니 대간으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백두대간은 자연스럽게 지방을 경계하는 기준이 되고
그 대간을 사이로 양 지방은 서로 언어, 풍습을 달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결과가 되기도 한 것이고,
우리는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지도를 통하여 그런 것들을 인식하며 걸었고 또 걷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올바른 대간길을 꼭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한 번쯤은 올바른 대간길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긴하다.
하지만 몇번이고 걸은 그 길을 매번 걸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줄기 주변 마을도 지나보고,
때로는 걷지 못하는 실제 대간길이나 맥길을 가보기도 하는 그런 길을 걷고 싶다.
오늘도 자유로운 길을 걷는다.
집 담벼락에 백두대간 이정표가 ㅋ
집주인이 표기한 것일까? 궁금하네요.
도로를 따라걷다가 산길로 진입,,
통안재
어느듯 고남산 안내도가 있는 안부에 도착하고..
정상아래에 있는 고남산 정상석에서 백두대간 BAC 인증
고남산 정상은 남원이지만 장수군에도 조금 걸쳐있다.
정상에 있는 안내도
고남산 제단지 표지판
운봉21 이등삼각점도 있는데 많이 훼손이 되었다.
고남산의 조망은 정말 좋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다.
너무 좋아 고남산에서 조망 구경 삼매경에 빠져 버리는 바람에 전체 계획도 바뀌어 버렸다.
원래는 갓바래봉 넘어 입망치에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주지봉까지만 갔다가 내려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에 왔을때는 천황산과 대성산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날은 9정맥 다음 구간에 가야할 호남정맥 경각산과 모악지맥의 모악산도 보이고,
얼마전 지났던 팔공산과 삿갓,시루,천상데미도 가까이 보인다.
덕유산 서봉을 당겨보니 선명하게 보인다.
남덕유산과 덕유주능은 장안산에 가린듯하고...
거망,기백산 우측으로 대봉산의 산들이 보이고 비계산과 오도산이 이어진다.
오도산, 감악산, 연비산,오봉산, 뒤로 황매산이고, 연비지맥 삼봉산과 서룡산이 보인다.
남쪽 조망은 더욱 장관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수려하게 이어지고 뒤로 지리주능이 정상쪽만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잘 보여주는군요.
지리주능중 의외로 명선봉이 우뚝하게 보인다.
만복대 어깨에서 분기된 견두지맥이 이어진 모습이구요.
견두지맥 뒤로 호남정맥의 명산인 조계산이 살짝 보인다.
모후산도 보이고 줌으로 당겨보니 강우관측소 건물도 확인된다.
동악산과 무등산 천황지맥의 고리봉까지 보인다.
고남산에서 근 60km 거리의 무등산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다니 복 받은 날이다.
견두산 뒤로 동악산까지 곡성의 동악산환종주길의 산들인 통명산등 올망 졸망하게 보인다.
무등산 우측으로 천황지맥의 산들인 매봉과 문덕봉,고리봉이 이어진 모습이고,
병풍지맥의 병풍산과 주변산도 선명하게 보인다.
남원 교룡산성의 교룡산이 눈길을 확 사로잡으며 중심을 잡아주고
호남의 명산들인 강천산,추월산 등이 보인다.
순창의 회문산과 옥정호 주변의 백련산과 나래산,
땅통종주하며 들려 보았던 산들이다.
주변 조망이 너무 좋았던...
모악산, 경각산까지 동서남북 한바퀴 돌아보았네요.
모후산 줌인..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선명하다.
무등산 줌인..
아미산, 병풍산 줌인, 우측으로 강천산
지리천왕,,
반야봉,,
조계산 줌인
다음달엔 보게될 무등산,,
견두산과 모후산 줌인..
견두산, 모후산, 무등산까지 같이 줌인..
고리봉 줌인 하다보니 뒤로 호남정맥길에 또 다른 명산인 설산과 곁봉으로 홀대 받는 서암산도 보인다.
좀 있다가 가야할 주지봉입니다.
오늘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지암 줌인...
주지암을 먼저 조금 소개하자면,
지리산에는 소위 기돗발이 먹힌다는 곳이 몇 곳 있다.
얼마전 들렸던 문수대, 종석대,묘향대, 향운대 등 이른바 지리 10대라 불리는 곳들은 특히 그러하여
국립공원에서 철저한 단속을 하기 전까지는 늘 기도꾼들로 붐빌 정도였다지요.
지리산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고 하여 지리 10대에는 들지 못한 주지봉이지만,
이 주지봉에는 자연 석굴이 있고 주지봉 정상 또한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 주지봉의 기를 받기 위하여 늘 기도꾼들로 붐볐다고 한다.
지금도 나름의 찾는이들이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어 찾은 주지암입니다.
좀 있다가 가야할 방어산성의 쌍봉이 눈에 들어오고..
비교적 무관심이던 팔공산 라인도 한번 담아줍니다.
우측으로 성수산도 보인다.
모악산, 경각산
회문산, 백련산
비계,오도,감악
황매산
감악산
덕유산 서봉
점심 먹고 정상 인증,,
고남산 내려서며 파란 하늘이 너무 이쁘다.
방아치
방아산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방아산 2봉은 패스한다.
마루금인 장봉을 벗어나 벗어나 장동을 지난다.
괄호안에 한자는 장치인데 그리 쓴 연유가 무엇일까?
여원치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주지암을 디니러 간다.
가는길에 우측으로 주지암이 보인다.
당겨본 주지암 정상 위에 불상이 서 있는 모습이다.
주지사 갈림길..
주지암갈림길..
주지암 가다보니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현재 카카오맵이나 로커스 등도 그 흔한 숫자봉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주지사(住智寺) 주위를 보면 주지봉이
그저 648.3봉 옆에 위치한 것으로만 나와 있다.
조선 영조때(1724~1776) 간행된 해동지도에는 注之山(주지산)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있다.
대동여지도에도 같은 이름이다.
1870년대에는 周之峯(주지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왜 이 이름이 사라진지는 알수가 없다.
그리고 백두대간 마루금도 주지암 갈림길로 이어지는게 맞는 것 같은데,
모두 우회를 하고 있다.
우회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별 의미는 없지만 궁금한 것 뿐이다.
주지암 가는길이 그리 쉽지는 않다.
암릉길이고 위험한 곳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안전 장치는 되어 있었다.
가장 까다로울 것 같은 곳에 철사다리가 놓여 있다.
정상 모습..
불상의 자세는 부처님의 수인(手印)이 통인이라고도 불리는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는거라네요.
고남산에서 본 조망과 비슷하지만 조망이 탁월한 건 분명하다.
무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무등산
발원문을 새긴 석판들..
천황산(만행산), 대성산, 고남산
황산도 보이구요.
황산과 뒤로 연비지맥 오봉산
고남산 줌인
장안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앞에 뽀족한 산은 속금산인 듯 하고, 뒤로 영취산도 보인다.
불상 아래쪽은 기도드릴 공간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이 곳은 비도 피할수 있고 안전한 공간으로 보입니다.
뽀뽀하는 모습 같기도하네요 ㅎ
기대보다 생각보다 좋았던 주지암을 내려서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주지암에서의 석양과 노을이 너무 예쁠 것 같아 두어시간 더 놀고
일몰을 감상하고 싶었으나 또 다른 목표한 길이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 섰다.
원래 예정이었던 입망치(갓바래재)로 가지 않고 다시 여원재로 내려섰다가
서림공원을 향한다.
서림공원의 석장승 두 석장승이 바라보고 있다.
<서천리 석장승>
여원재를 지나 제일 먼저 서림공원을 들렸다.
서림공원 입구에는 한 쌍의 석장승이 서로 마주하고 서 있는데,
왼쪽에는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오른쪽에는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라는 이름의 장승으로,이를 서천리 석장승이라 부른다.
양쪽 모두 약 2m가 넘는 키에 머리에는 벙거지가 씌워져 있다.
방어대장군은 튀어나온 왕방울 눈과 주먹코,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있으며,
턱에서부터 가슴까지 한 가닥의 수염이 있는 남장승으로 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설명판에는 여장승으로 되어 있다.)
진서대장군은 1989년에 도난당했다가 뒤에 목이 부러진 상태로 발견되어 되찾았다고 하는데,
동그랗게 뜬 눈과 주먹코, 입을 꽉 다물어 굵은 윗니를 드러낸 것이 특징이며,
부러진 목을 연결해 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얼핏 보면 사납고 우악스러운 표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순박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힘없고 초라한 자신들의 모습에 없는 강기(剛氣)를 억지로 그려 넣다 보니 오히려 해학적 형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진서대장군이 목이 부러진 것과 방어대장군의 귀가 없는 것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남편인 방어대장군과 아내 진서대장군이 부부 싸움을 하였다.
진서대장군이 남편의 귀를 물어뜯었는데 이에 화가 난 방어대장군이 아내의 목을 쳐서 목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엄청 무식하게 했는 것 같다.
운봉고원 골골에서 발원한 물이 인월과 산내를 거치고 함양 마천의 임천을 만나기까지 이어지는 람천.
람천 뒤로 황산대첩의 역사가 서려 있는 황산이 계속 보인다.
지리산둘레길 제2구간에서 람천은 서림공원에서 옥계저수지 초입까지 함께 하다가
옥계저수지 임도에 들어서면서 잠시 헤어지고 인월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람천의 둑방길은 한적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특별한 것이라곤 찾을 수 없는 그저 그런 둑방길에 불과하다.그래도 좋았다.
지리서북능이 석양에 비쳐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람천의 둑방길은 계속해 정면의 황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황산은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들의 준동을 잠재웠던 황산대첩의 현장이다.
1380년(고려 우왕 6년), 이성계는 황산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구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고 왜구들을 총공격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시체가 언덕을 이루고 그 피로 강이 물들어 6~7일간이나 물빛에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왜구는 겨우 70여 명에 불과했는데, 그들은 지리산으로 도망했다.
이 전투가 고려 말 왜구의 발호를 잠재운 황산대첩이었고,
함흥 출신의 변방 무장인 이성계의 이름이 중앙 정계에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람천
람천은 운봉고원의 골골에서 발원한 물들이 만나 인월과 산내를 거치고 함양 마천의 임천을 만나기까지의 하천을 이르는 말이다.
황산
황산대첩과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과 그로 인한 지명들이 이 일대에 산재한다.
황산 아래 군화동에서 인월 방향 람천의 중간 어름에는 왜장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활에 맞아
피를 흘려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고 하는 ‘피바우’가 있고,
당시 긴박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날이 어두워져서 달뜨기를 기원했던바,
마침 동쪽 하늘에서 밝은 달이 떠올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 ‘인월(引月)’이란 마을 이름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외에도 여원치(女院峙)의 마애여래상과 관련된 전설, 적정을 살피며 솥에 밥을 지었다는 정산봉(鼎山峰) 이야기,
바람을 끌어들여 그 위력으로 화살을 쏘아 아지발도의 목을 관통케 했다는 인풍리(引風里) 전설 등 황산대첩과 관련된 이곳의 지명들이다.
어두워져 피바우는 구경하지 못했는데, 둑방길 걸으며 담은 이바위가 피바우와 비슷하다.
황산이 점점 가까워오고 어둠은 내린다.
해는 졌지만 노을은 더 진해지고 있다.
홀로 고고하게 홀로 선 소나무가 눈길이 간다.
동편제 마을 주차장을 지나며.. 국창 박초월과 함께
아직도 여운이 남은 모습이다.
황산대첩비지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황산에서의 뜻깊은 전승을 기리기 위해 이성계는 다음 해인
1381년 황산을 찾아와 현재의 어휘각 암벽에다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8원수 4종사관의 이름을 새기게 했다.
1577년에는 선조가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의 건의를 받고 지금의 자리에 황산대첩비를 세우게 했다.
그 15년 후 1592년에는 또다시 왜군이 침입해 온 국토를 유린하는 임진왜란을 겪게 된다.
아무튼 일본의 입장에서 어휘 암각과 대첩비는 치욕의 기록이다.
일본은 일제 말기인 1945년에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이곳 대첩비를 폭파하게 했다.
그리고 어휘(御諱) 암각의 글씨도 정으로 쪼아 뭉개버린 뒤 총질까지 해 글자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글자는 지울 수 있었으나 결코 악연의 역사는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일까?
1957년에 이르러 파손된 비석을 짜맞추어 옛 모습을 되찾고자 했으나, 파손이 심해 복원이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귀부와 이수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고,
이를 복원해 새로 만든 비신과 조립해 현재의 대첩비를 만들었다.
황산대첩비지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대첩비각이 있고,
오른쪽에 파비각, 왼쪽에는 사적비각이 있으며, 어휘각은 바깥의 좌측 약 50m 떨어진 곳에 있다.
대첩비각
동편제의 탯줄, 비전마을.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 생가를 들려봅니다.
가왕 송흥록 생가
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소리꾼과 추임새 넣는 고수의 상이
보이고, 그 너머 보이는 초가집 한채가 송흥록 선생의 생가인듯하다.
아마도 여기서 창(唱)하시는 분은 가왕 송흥록 선생이고,
북과 북채를 잡고 추임새 넣는 분은 아우되시는 송광록 선생 같습니다.
송광록 선생은 처음엔 고수로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고수가 소리꾼만큼 주목 받지 못하고..
소리를 익히고, 또 정진하여 명창이 되어 한 일가를 이룬 분입니다.
송광록 선생도 명창으로 이름 날린 분이지만, 형 송흥록 선생이 가왕 소리를 듣는 워낙 대단한 분이였다합니다.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
황산대첩비지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이 비전마을 송흥록, 박초월의 생가터이다.
송흥록은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해 동편제 소리의 시조로 꼽히고, 그의 소리는 그의 동생 송광록과 수제자 박만순에게 전승됐다.
송흥록은 8세 때 아버지 송 첨지에게서 ‘춘향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12세 때 백운산에 들어가 월광선사에게 글을 배우면서 그의 도움으로 소리 공부에 전념했다.
입산한 지 5년 만에 소리를 터득했고 10년 만에 득음 대성했다.
1858년 한양에 올라가 철종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를 했으며, 그로 인해 정3품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이후 그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져 당시 판소리 명창 모흥갑으로부터 ‘가왕(歌王)’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송흥록을 이야기하려면 기생 맹렬과의 재미난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춘향가의 ‘귀곡성(鬼哭聲)’에 반한 맹렬은 무작정 송흥록을 따라나섰다.
관의 허락 없이 떠날 수 없는 관기임에도 불구하고 맹렬은 죽음을 무릅쓰고 송흥록을 따라 도망치게 된다.
맹렬은 정열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여자였다.
툭하면 집을 나갔다가 재결합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들은 또다시 사랑싸움을 했고, 맹렬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집을 나간다.
송흥록은 맹렬과 영영 헤어진다는 절망감을 노래로 불렀다.
단장곡이다.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네 이년, 잘 가거라. 날 버리고 네가 가면 내가 너를 잊을쏘냐….”
맹렬은 문밖에서 듣고 있다가, 그만 봇짐을 내던지고 다시 돌아와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했다고 한다.
박초월(朴初月,삼순, 三順):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본명은 삼순.
1934년 김정문(金正文)에게 소리를 배웠고,
1935년부터 10년간 송만갑(宋萬甲)에게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 등을 배웠다.
1930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7세에오케·포리돌·빅타레코드사와 계약하고,흥보가〉·〈춘향가〉·〈심청가〉등을 취입하여큰 성공을 거두었다.
창제는 동편제이고, 조통달(趙通達)·남해성·김수연(金壽蓮)·김정민(金貞民)에게 〈수궁가〉를 가르쳤다.
1955년 박귀희와 함께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창립해 후진을 양성했고, 1962년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맡았다.
196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활동했고, 1971년 국악협회 상임고문, 1974년 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다.
1976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민속음악제에 참가했다. 〈춘향가〉·〈심청가〉에 특히 뛰어났다.
밤이되어 원래 가려던 국악의성지와 박초월 묘가 있는 곳에도 가고 싶었지만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차가 있는 서무리로 빠른 걸음을 한다.
돌비석 이정표를 지나고..
인월 야경인 듯하다.
짧은 시간 지리산 한켠, 십승지 운봉환종주길에 있는 황산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주지암, 황산대첩, 국악의 성지와 가왕과 국창의 생가도 찾아보고
참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주지암은 조만간 다시 찾고 싶을 만큼 너무 좋았다.
끝.

첫댓글 모처럼 두건님 산행기를 보니 여유와 멋진 그림이 눈을 땔수가 없게 만들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고마워요~~^-^
형님 인터뷰 잘 봤어요~~
방송 체질 이신 듯요~ㅎㅎ
산에서 내려와 잠시 텅빈 논바닥을 걷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늦가을에 볼수있는 풍경으로 우리를 쓸쓸하게 만드는 모습이며 한해가 또 쓸쓸하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네요
매요마을 할매께 라면부탁하던 그때도 그립고
후기글 잘보고 갑니다
가시덤불과 잡목이 너무 심한데 옆에 논이 보이니
자연스레 그리로 가게 되네요~ㅎㅎ
보내주신 선물 감사합니다^^
황매산은 호수님 손 안에, 나는 황매산 안에. 날짜 하루 차이로.
암튼 잘 읽었고, 옛지도도 인상 깊네요.
호남정맥에서 서암산 다녀오기 그닥 힘들지 않던데 발길이 뜸해보이긴 하대요.
그리고 유구천환종주가 십승지길로 알고 있는데 지리서에선 빠지나봐요. ㅋ
명품 산행기, 읽을 거리 주셔서 고맙습니다.
황매산에 계셨군요~~ 황매산 참 좋았겠네요.
서암산은 처음 길에 한번 가고 나서는 별로 안가고 싶더라구요 ㅎ
그러고 보니 유구마곡이 빠져 있네요.
하필 공주 유구마곡을 빼 먹다니..
팔개님께 면목이 없구먼유~ ㅎㅎ
@두건(頭巾) ㅎㅎ 면목은. 요즘 우리집 거실에선 유구천환 날머리쪽에서 뜨는 해를 매일 본답니다. ^^
서암산이 운봉의 진산이어서 거기도 주변 조망이 좋지요.
황매산 후기 대충 써 놓은 게 있지만 12km밖에 안 되는 거라서 차마 우리 카페에 올리진 못하고 있어요.
신불산 홍류폭포와 칼바위능선도 마차가지. ㅋ
@팔개 아, 지금 보니 제가 산을 서로 섞여 생각했군요. 운봉과 옥과도 혼동하고.
거기도 한바퀴 둘러봤지만 발자국이 희미한 건 마찬가지. 정상 바로 아래에 참샘이 인상깊었고.
지금 보니까 서암산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가면 심심할 것 같아서
이목마을에서 남서쪽 방면에 있는 이름모를 계곡으로 들어가 하천길로 올랐던 산이군요.
비가 많이 내려 계곡이 엉망이었던.
그 서암산의 서쪽으로 높이는 거의 서암산과 같은데 산 이름도 없고, 정상표지도,
심지어는 시그널 한 장 없는 봉우리가 나란히 있더군요.
길도 없는 봉우리들을 둘러보느라 애먹었던 기억 탓으로 설산과 혼동했어요.
서암산 내려올 때 사람들 다니는 길로 내려왔는데 거리가 얼마 안 되니 바위 몇 개 줄 타고 내려오니 끝이더군요.
@팔개 아~ 그러셨군요~ㅎ
설산은 조망도 좋고 샘터도 있어서 항상 들리는 곳입니다. ㅎ
서암산은 첫 걸음에 한번 갔었죠^^
맛점하세요^^
올봄 대간 북진때 주지봉을 올랐었는데요~~요렇게 걸으셨네요~~두건선배님 뒤만 따라다니면 눈이 호강하겠어요ㅎㅎ
구경 잘 하고 갑니다~산행기 구독자로써 늘 안산 응원합니다~^^
꾹꾹이님 반가워요~~
웬만해선 주지봉을 잘 모르는데
대간길에 주지봉을 가셨군요~
그날도 날씨가 무척 좋아보이네요.
쪼매 더워 보이기도 하네요 ㅎㅎ
잘 다니지 않은곳도있고 대간길로 이어지는곳도 있고 십승지길도 진행하고
주변의 조망이 좋은곳 주지봉 정상의 부처님도 계시고 인산적인 모습과 멋지곳 이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주지봉이 예전에는 주지산으로 줄기의 한축이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듯 해요..
대간길에 누구나 들려보는 그런 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산은 지리산과 가까워 지리를 보면서 걷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중에 지부산행으로 운봉환종주도 좋을 듯..
곱다... 참으로 곱다...
두건님의 재주는 형용키 어렵고 그저 리얼한 산하를 이렇게 친견 할 수 있으메 감사드려요^^
수고많았습니당^^
전국구 행님,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날이 차가워 졌네요.
항시 감기 조심하시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멋진 조망과 풍류를 즐기려고
암릉미가 물신 풍기는곳만 찾아
다니시던데 이번에도 역시나 입니다.
안타까운건 아직도 시골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공공연하게 소각이 이루어 진다는거...
이거 나라에서 이장님한테 특별사법권을 주더라도
근절하였으면 좋겠습니다....ㅎ
그러게요~
시골에는 농작물이나 폐비닐 등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소각도 눈치도 안보더라구요.
오늘 밤엔 날이 제법 차네요.
내일이면 다시 날이 풀릴 것 같은데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황산과 고남산은 저도 사진속 조망을 보느냐고 한참 머물렸습니다!ㅋㅋ 폰이 갤럭시 울트라 인지요? 저도 다음에는 울트라로 갈아탈거라~ 고남산에서 줌인된 지리주능 명선봉과 반야봉 사이 오뚝 솟은 건 토끼봉이겠죠? 서북능선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은 알듯말듯입니다.ㅋㅋ
고남산은 뛰어지부장님 지리국공 유투브에서 항상 욕 먹었던 산이라 힘든산으로만 알고 있는데 이렇게 조망이 뛰어나는지 몰랐습니다. 내년에는 거기에 올라 저도 멋진 조망 보고싶네요! 후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세걸산,토끼봉 넣어 새로 조망도 수정했어요. ㅎ
@두건(頭巾) 오! 감사합니다.^^ 토끼봉은 맞췄습니다.ㅎㅎ 그런데 바로 앞이 징글징글한 세걸산이군요!^^
@래선생 지리태극 걸을 때 세걸산 지날때 쯤엔 슬슬 짜증이 ㅋㅋ
특히 비가 오는날에는 더 징글 징글...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폰은 S25 울트라입니다.
곧 지나게 될 대간길 고남산 조망 즐겨 보시고,
주지봉도 한번 찾아보시길요^^
황산과 주지봉..
황산은 참 조망이 좋고
주지봉은 부처님을 세워놓아 참 독특한 곳이네요..
산행기 읽으면서 부러워 합니당..^^
좋은날 잡아서 언제 운봉환종주 한바퀴 돌아봅시다. ㅎㅎ
@두건(頭巾) 콜~~~~
입니당~~^^
황산에서의 조망이 아련하니 분위기 좋습니다~~
지부장님 본지도 좀 되었네요.
보고 싶은데 일정이 자꾸 엇갈리네요.
일간 한 번 봬요~~
두건님 산행기행문을 읽으며 사진을 보면 가고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지맥하며 걸었던 여러 산이름이 나오니 지맥 서너개는 둘러본 느낌입니다.
정맥없는 주말도 쉬지 않는 걸음 참 대단하시고 늘 느끼지만 산에 관한한 최고의 박사님 입니다^^
별 말씀을요~~ ㅎㅎ
감사합니다.
목표한 지맥 끝나면 좋은산 실컷 다녀야죠?
마지막 졸업산행으로 정해놓은 지맥이 있을까요?
물론 집이랑 가까운 곳이겠죠...?
@두건(頭巾) 졸업까진 아직 2년이나 남아서 어디로 정할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고 집과 가까운 곳은 이미 다 완주 했습니다^^
@포근한빛 아~ 그랬군요~~
100개 넘어도 아직 2년을 더 해야하는군요.
정말 대장정이긴 합니다. ㅎㅎ
화이팅하세요.^^
궁금해서 찾아가 보는 걸음...
그 걸음 속에서 흐뭇한 기행문을 접하니
저까지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집니다.
백조님, 두건님... 낙엽길, 노을길... 역사길...^^
걸음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후기로 남겨 함께 즐기게 해주셔서 감사~
두건님 후기는 주위 산 이름이며 찾아봐도 아리송~ 궁금할 때 함께 보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때 보면 도움이 되더라구요.
글을 남기는 건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어제는 춥더니 오늘은 또 봄날 같이 따스하네요.
마치 춘곤증을 느끼듯 졸립기도 하고요 ㅎㅎ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