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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역곡에 살 때 석왕사에 다녔다는 얘기는 지난 번에 했습니다.
이러저런 일들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이 아니라 완전 자의로 석왕사 청년회 활동을 접었습니다.
단체활동은 접었지만 그래도 큰 날엔 석왕사에 갔고
해외출장 오갈 땐 석왕사 부처님께 항상 출필고반필면 했더랬습니다.
After 석왕사.
바로 암자였습니다.
그 당시에 주말에는 스쿠버다이빙도 다니고 트래킹도 다니고 했지만
찬스를 만들어서 경기도 일대 암자를 찾아다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영혼의 쉼터인 암자가 있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암자 두 곳과 저의 인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파주 고령산 도솔암
우리 분야의 어떤 잡지사 편집장하고 가까웠는데
어느날 그가 ‘파주 보광사 뒷산에 암자가 하나 있는데 유사장이 좋아할 스타일이니까 한번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산이름이 고령산인데 거기 등산 갔다가 들렸다고 하더군요.
금서향하고 암자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파주 고령산 도솔암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4년 8월에 써서 여기저기 보낸 <파주 고령산 도솔암을 소개합니다>라는 글이 있는데
20년 가까이 된 옛날 이야기지만 한번 읽어보십시오.
좀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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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得虛空任往來 바람은 허공을 얻어 마음대로 다니네!
김포공항에서 의정부 가는 39번 국도를 가다 보면 벽제역을 지나 오른편으로 광탄 가는 315번 지방도가 나옵니다.
이 길이 보광사 가는 길입니다.
보광사는 도솔암과 같이 창건된 고찰이고 또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잘 알려진 절이라서
서울역 앞에서 보광사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있습니다.
도솔암을 가려면 315번 지방도를 따라 한참 가다가 꼬불꼬불 산 하나를 넘어서면
왼편으로 보광사 일주문이 나오는데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화로 갈아 신으시면 됩니다.
여기서 보광사 입구까지 걸어 올라가서 담을 끼고 오른편으로 돌아 조금 더 올라가면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도솔암 올라가는 입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가 시작입니다.
저 기왓장을 제가 다 등짐으로 올릴 생각이 사실 조금은 있는데,
한번 올라갈 때 마다 5장씩 진다고 해도 족히 100번은 올라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할까 지금 생각 중입니다.
언제든 인연닫는 사람이올리기는 올려야 할 일인걸 생각하면 그게 바로 내가 아닌가 싶어 당장 시작하고 싶기도한 데,
도솔암에 냉장고 들일 때 장정 열일곱이 반나절 큰 고생했다는 얘길 떠올리면,
아무리 제 전생이 불목하니였다고 해도 지레 겁이나서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어느 암자나 초입이 비슷하지만 특히 도솔암 입구는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사 올라가는 –주차장 쪽에서- 입구하고 느낌이 비슷합니다.
도솔암 올라가는 입구를 지나면 보이는 첫 경치 입니다.
경기도의 어느 암자를 갔었는데 세면장에서 편액에 쓰여진 멋진 글을 보았습니다.
세면장에는 유리창이 없었고 밖으로는 숲이 보였으며 머리 위에 그 편액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에는 관목세심 觀木洗心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세수간에 와서 물로 손발만 씻지 말고 밖에 보이는 나무를 보고 마음도 씻으라는 말.
관목세심이라! 여러분들 느낌은 어떠신가요?
사진 속의 길바닥에 보이는 푸른 잎사귀는 도토리가 3~4개씩 실하게 열린 나무의 끄트머리 부분인데,
청설모들이 갉아먹어서 마치 톱으로 썰어버린 듯 모두 일정한 모양으로 잘려서 땅 위에 떨어져있었습니다.
산밑 만 그런 게 아니라 산 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에 이르기 까지 계속해서 이런 흔적을 보면서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청설모에게 치솔을?
입구에서올라오면소나무오른편으로오게되는데소나무뒤로보이는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보광사 뒷마당이 나오고 그냥 쭉 올라가면 도솔암으로 갑니다.
가파른 산길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워밍업 코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입구에서부터 목적지인 도솔암까지 등을 매달아 놓아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고,
길 왼편으로는 낭떠러지고 밑에는 가재가 사는 작은 개울이 흐릅니다.
산길 부근으로 군사시설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팻말이 더러 있고
지뢰표시는 없지만 스님은 그래도 길 옆으로 너무 벗어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위 석장의 사진은 위에서 아래를 향해 찍은 것인데 쉼터 아래로 난 갈之자 길이 잘 보이고 있습니다.
입구에서 도솔암까지 이런 쉼터가 8군데 있습니다.
배낭을 맨 체로 서서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쉼터입니다.
제가 그날 둘러맸던 배낭이 보이는데 이 배낭 속에는 쪽파 한 단과 라면 20개가 들어있었습니다.
도솔암은 텃밭도 일구기가 마땅치 않은지라 쌀 한 톨 국수 한 가락 모두 밑에서 사람이 일일이 등짐으로 날라야 합니다.
라면은 가볍지만 전에 백미 10Kg을 지고 올라갔는데 정말 힘들었었습니다.
등산객이나 암자를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대접할게 그저 라면이 가장 무난하다 해서 그날 라면을 졌습니다.
힘드시죠?
이제 거의 다 올라왔습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어느 수필에서, 하잘것이 없는 인간주제에 경망스럽게도 감히 산에 올라간다고 표현한다시면서,
산에 올라간다고 하지 말고 산에 든다고 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정복 대상으로써의 산이 아니라 나를 기대킬 수 있는 품으로써의 산을 즐기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땅 위의 최고봉 이름인 에베레스트는 나중에 사람 이름을 따서 붙인 거고,
원래 티베트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은 초모룽마였는데 초모룽마의 뜻은 ‘대지의 여신’이라고 한답니다.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한다는 것이 여신의 품에 안긴다는 뜻이지 대지의 여신에 올라간다는 표현은 좀 그렇죠?
저는 개인적으로 티베트 사람들과 옛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고방식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마지막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 얘기도 좀 해드릴까 합니다.
저 바위 위에 서서 왼쪽을 보면 나무 사이로 암자가 보입니다.
길 끝나는 곳에 영혼의 쉼터인 암자가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따라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목을 축이셔야지요.
졸졸 흐르는 꿀물입니다.
살아있을 때 남을 위해 짓는 여러 가지 공덕 가운데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급수공덕이 제일공덕이라는데,
어느 암자를 가든 졸졸 흐르는 샘이 없는 곳이 없는 걸 보면
속인들한테 몸소 공덕을 가르치는 곳이 또한 암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종고련 禪宗古聯에 나오는 <산 밑의 우물>
마르지 않는 산 밑의 우물
산중 친구들께 공양하오니
표주박 하나씩 가지고 와서
저마다 둥근 달 건져 가시오.
도솔암이 위치한 고령산에 비가오면 없던 폭포가 두 개 생기는데
하나는 도솔암 내 삼성각 뒤편 절벽에 생기고 다른 하나는 극락전 앞에서 밑의 계곡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폭포는 좋은데 큰 비 오면 암주는 밤새도록 마당을 서성거려야 하는 수고로운 업보를 마다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스님께서 저에게 법당 개축 당시에 시주를 모으는 모연문을 보여주셨는데,
이 모연문에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도솔암 역사를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도솔암은 서울 서 북방 육십 리에 용출한 영봉 아래 위치하며
기암묘봉에 백운이 왕래하고 서산낙조의 자연풍광을 이루어 관람인사는 매일 연락부절하는 일대의 명승사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 8년에 보광사와 동시에 창건된 사찰이며
고려태조 왕건의 국사인 도선국사가 초암을 구축하여 수도 정진하였으며
이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와 함허 스님이 머물렀으며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었던 용성 스님이 득도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모연문은 극락전 주불이신 아미타 부처님 몸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금년이 불기 2549년 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연문에는 불기2995년으로 되어있는데
그 당시에는 불기를 그렇게 계산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진 찍으러 가기 수일 전에는,
스님께서 어디 쓸 곳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솔암 상량문을 찾으려고
먼지 두껍게 쌓인 도솔암 천정에 올라가서 샅샅이 뒤져봤는데 없더랍니다.
낙심하시던 모습에 오히려 객이 송구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도솔암에는 건물이 5채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건물이 아까 보셨던 샘터위로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바라다보이는 법당인 극락전입니다.
주불은 아미타부처님이시고 오른편으로 약사여래와 왼편으로 약사관음보살님이 모셔져있습니다.
작년 가을 볕 좋던 어느 날 극락전 앞 댓돌에 앉아있다가 따스한 햇볕에 그만 깜박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뭔가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도마뱀 녀석이 발 밑까지 와서
이상한 놈이라는 듯이 고갯짓을 해가며 쳐다보고 있더군요.
한참 동안 눈을 마주보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녀석 갸우뚱 갸우뚱하던 고갯짓이 생각납니다.
야부冶父스님의 시 하나
바라보니 산에는 빛이 있고
귀 기울이면 소리 없이 흐르는 물
봄은 가도 꽃은 남고
사람이 와도 새는 놀라지 않더라
극락전 천정에 걸려있는 제가 지난 초파일 날 걸었던 연등과 발원지에 쓴 저의 발원문입니다.
여러 해 전에 유명한 비구니 사찰인 가지산 석남사를 다룬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건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외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의 부모되고 형제되고 친척되고 이웃되고
그리고 벗 되는 세상 모든 이들이 넉넉하고 행복하게 하소서
발원지에는 주소와 출생년과 이름을 쓰는 게 보통인데, 저는 그게 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네요.
제 자랑이 아니라, 초파일 날 나 보다는 남을 위하여 등을 밝히고 기도하는 것이 참뜻이 아닌가 싶어서
저는 남들처럼 발원지를 쓰지 않는 고집을 부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고 부처님도 이타행 利他行을 가르치셨고
마더 테레사도 성철 스님도 …. 모든 성인들이 남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 않습니까?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런 종교의 본질이 왜곡되어서 세계 제일의 청동대불이 명산 마다 세워지고 십자가 불빛이 서울의 밤을 더욱 휘황찬란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회는 점점 무섭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만 보고 있으니 절마다 우리스님 너희 스님 편을 가르고 교회마다 우리 목사님 너희 목사님 하는 게 현실이니, 모두 다 본래로 돌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참뜻을 따르고,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부처님이 설하신 법대로 따른다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이 술술 풀려갈 것으로 믿습니다.
제 친구 가운데 서울의 어느 대학교 교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은퇴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 선교활동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친구가 전에 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이 알고 보면 전부 if … , then 문장이라고.
예컨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케 하리라’ (맞나??)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짐을 지는 수고는 하지도 않으면서 왜 편하게 해주지 않느냐고 투덜거린다는 겁니다.
맞는말이아닙니까?
지금 이 땅의 종교는 종교 본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솔암 소개하다가 옆길로 빠졌네요!
다시 도솔암으로 가겠습니다.
극락전에서 샘물 방향으로 바라 본 도솔암 입니다. 어째 뒤로 넘어가는 듯이 보이네요.
극락전도 삼성각도 이 도솔암도 목발을 집고 판초우의를 쓴 체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보내드린 눈 속의 도솔암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상량문도 없고 도솔암이 고찰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이 집의 현판인 도솔암 편액 뿐이라고 합니다.
노산 이은상님께서 지으신 시에 곡을 붙인 ‘장안사’라는 유명한 가곡이 있지요.
장하던 금전 벽우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도솔암 마당에 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장안사를 불러보면 천년 세월이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해인사 일주문 양 쪽 기둥에는 해강 김규진의 필체로 이런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百千劫而不古 백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 긍만세이장금
천년세월이옛아니듯
만년을 흘러도 오늘 이 자리!
도솔암 다실인데 용성 스님이 바로 저 자리에 앉아서 한 소식 이뤘다고 합니다.
암주는 다상 오른편에 앉으시고 객은 사진 상으로 보면 등을 보이게 앉습니다.
여러분들도 미리 전화해서 약속을 한 후에 도솔암을 찾아가서 암주와 차 한잔 나누며
千江流水千江月천강유수천강월을느끼시고
月白雪白天地白 월백설백천지백을 즐기시고
山深水深客愁深 산심수심객수심을 맛보시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도솔암 전화번호는 031-948-7703입니다
근대 우리나라 선종의 중흥조로 鏡虛경허 스님을 꼽습니다.
별들의 고향을 쓴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이라는 4권짜리 소설이 경허의 치열한 구도 과정을 그린 책인데
이 책에 경허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좀 추려보면 …
경허가, 하루 한번 물과 밥을 들여보내고 요강을 낼 수 있는 구멍 하나 만 뚫린 토굴을 짓고,
한소식 하지 못하면 결코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않으리라 각오하고 화두를 틀어쥐는데,
수마를 이기기 위해 턱 밑에 거꾸로 꽂아 둔 송곳에 턱을 얼마나 찌었던지
피가 무릎으로 떨어져 어겨서 옷과 살이 붙었다고 합니다.
치열한 정진을 함에도 한소식은 멀던 차에 시봉하던 사미(동은)가 구멍으로 뭐 한가지를 물어봅니다.
그 당시 절집에는 중이 시주를 받아 수행하면서 도를 깨치지 못하면
나중에 죽어서 소가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동은 사미가 물은 것은,
‘소가 되어도 코를 뚫을 구멍이 없다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한마디가 화살이 되어 경허의 화두를 뚫었고
마침내 흙벽을 차고 밖으로 나와 ‘동은아, 삭도를 가져오너라’고 소리치는데
서캐 허연 머리카락은 허리에 닿고 수염은 한 자나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솔암에 그런 식의 토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솔암 옆으로 해우소 가는 길이 있고 이 길은 고령산 정상 올라가는 등산로입니다. 토굴은
도솔암과 해우소 중간쯤의 오른편 기슭에 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여유공간이 별로 없을 거 같아 보이는 방 하나 만 덜렁 있습니다.
긴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수도자들이 이 토굴에서 화두 하나에 목숨 걸었을까 생각해보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도솔암 삼성각三聖閣 입니다.
삼성三聖이란 산의 신령님과 바다의 용왕님 그리고 하늘의 칠성님을 삼성이라고 합니다.
목발을 집고 서있는 누각이 많이 불쌍해 보이죠?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유입된 불교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민간신앙과 접목되어
우리 민중의 삶 속에 자리잡아 왔습니다.
민간신앙과 결합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산중에 있는 사찰에서 흔히 보는 삼성각입니다.
부처님 집인 절에 왠 산신령 집이 있을까 의아해 하셨던 분들께서는 이제 이해가 되시지요?
보통 산신의 성별은 남성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묘향산 보현사와 계룡산 신원사 그리고 고령산 도솔암이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女산신을 모신 유명한 기도처 세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에 보여드린 법당건축 모연문을 읽어보면 도솔암에서 기도해서 소원성취한 사람들이 여럿 실명으로 기술되어있는데, 혹시 압니까? 나중에 지금의 도솔암을 개 보수 하고자 다시 모연문을 쓸 때 소원성취한 제 이름이 거기 올라 갈라는지 말입니다.
제 소원이요?
이 글 맨 위에 썼습니다.
그게 제 소원이죠.
風得虛空任往來 풍득허공임왕래!
바람은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 잘 지어서
이생에 이토록 걸리는 바 없이 왕래하는 복을 누리는지!
나도 샛바람이고 싶고 나도 하늬바람이고 싶고
나도 마파람이고 싶고 나도 높바람이고 싶은데 … 이생에 무슨 복을 지어야 하는지….
토굴 앞에서 바라 본 정서쪽 방향 풍경인데,
도솔암 풍경 중에 가장 멋있다는 서산낙조를 언젠가는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모연문에 ‘西山落照의 自然風光을 이루어 觀覽人士는 每日 連絡不絶하는 一大의 名勝寺刹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는데,
도솔암 서산낙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끊어지지 않는다(連絡不絶)라는 말입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좋은 암자가 있다는 게 저한테는 큰 복입니다.
도솔암은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의 말사로 등록되어있습니다.
이 글을 받으시는 분 가운데는 봉선사의 또 다른 말사인 양주 불곡산 백화암을 가보신 분도 계실 텐데,
백화암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로라도 포장이 되어있어서 차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도솔암 암주께서는 사진에서 보이는 서쪽방향으로 산중턱까지만이라도 백화암처럼 차가 올라 올 수 있는 길을 냈으면 하시죠.
길이 험하니 신도가 없고 식량 등 일상용품을 등짐으로 일일이 올리는 것도 점점 힘에 부치고
또 언젠가는 도솔암을 개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이유로 그러시는데,
저는 지금의 도솔암이 더 좋지만 어쩝니까 제 권한 밖인 것을요.
보잘것없는 글 솜씨가 오히려 도솔암 부처님께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송구한 마음입니다.
저랑 같이 도솔암 구경가실 분 계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三千大天世界無有芥子許地非是普薩捨身命處爲衆生故
(삼천대천세계무유겨자허지비시보살사신명처위중생고)
삼천대천세계에겨자씨알만한땅이라도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목숨 버리지 아니한 곳이 없다.
눈이 오고 있는 고령산에 갔다가 들려서 찍은 도솔암 사진을 다시 보내드립니다.
비록 싸구려 디카로 찍어서 사진이 이렇게 보여도 저한테는 자랑하고픈 작품입니다.
오늘 도솔암 소개글을 받아 읽으신 분들
이 공덕으로 모두모두 소원성취하시기를 발원합니다.
2004년 8월
방적 합장
첫댓글 감사합니다
말로만 듣던 도솔암..
거사님 따라 갔다온 듯 합니다.
어찌 이리도 글을 잘 쓰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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