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좀비에 관한 연구 20 외 1편
― 벌집속의 좀비
이동순
여기
똑 같은 크기의
비좁은 육각형 벌집 있다네
좀비들 빌딩이라 부르는
그 벌집 하나하나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바라보는 좀비들 있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오직 컴에만 열중하네
기계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하네
누군가 일시에 그들 조종하는 듯
불만 반항 자유도 모르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네
벌집 벗어나면 바로 넓은 세상이지만
그들은 갇혀서야 편안하네
새장에 길들여진 새
결코 새장 밖 세계에 적응 못하지
앗, 한 좀비 나갔다가
곧 벌집으로 되돌아오네
벌집만큼 편하고 안전한 공간
이 세상에 없지
좀비에 관한 연구 21
― 스몸비
저기 횡단보도에
좀비 걸어가네 거북처럼
쭉 빠진 일자 목으로
지금 스마트폰 보느라 정신 없네
흘러간 날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넋 나간 시체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신호가 빨간불 바뀐 줄도 모르고
폰만 보며 걸어가네
보도블록 턱에 걸려 넘어지는
얼빠진 놈
다른 보행자와 부딪치는 놈
알고 보니 부딪친 그놈도 폰 보고 있었네
폰 보다가
공사 중인 맨홀에 떨어져 죽은 놈
호숫가 낭떠러지에서
실족으로 강물에 빠져 죽은 놈
운전 중에도 줄곧 폰에 빠져있는 한심한 놈
독사와 모기 맹견
교통사고보다 더 무서운 스마트폰
흉기에 깊이 빠진 채
세상의 스마트폰 좀비들
스몸비 되었네
* 스몸비(smombie) :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가 합쳐진 신조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자를 일컬어 스몸비족族이라고도 한다.
이동순 |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등 16권 발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10권), 『백석시전집』 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