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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잘 먹고 잘 놀다 매봉(756m) 오르는 길
우리는 마찰이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잘못 들어섰다.
어떤 의미에서 그 조건은 이상적이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땅으로 되돌아가자!
――― 비트겐슈타인(강신주,『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8월 2일(토), 맑음, 염천
▶ 산행인원 : 11명(중산, 드류, 金錢無, 대간거사, 온내, 사계, 메아리, 산그림애, 해마,
제임스, 상고대)
▶ 산행시간 : 8시간 36분
▶ 산행거리 : 도상 11.5㎞
▶ 교 통 편 : 서울 남춘천 간은 전철을 이용하고, 남춘천역에서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 이동은
음식점 버스(25인승) 이용
▶ 시간별 구간
07 : 28 – 상봉역, 춘천행 전철
08 : 50 – 남춘천역
09 : 10 –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原昌里) 관거리, 산행시작
10 : 00 – 임도, 안부
10 : 14 – 데크전망대
10 : 24 - ┫자 갈림길, 왼쪽은 원창고개 2.6㎞, 직진은 수리봉 0.5㎞
10 : 32 – 수리봉(守里峰, △644.9m), 남진하려다 길 헤맴
10 : 52 - 644m봉
11 : 40 ~ 13 : 06 – 계곡, 점심
14 : 12 – 매봉(756m)
14 : 50 - 응봉(761m), ┬자 능선 주릉
15 : 54 – 연엽산(蓮葉山, △851m), 서진
16 : 40 - 임도
17 : 38 – 원창저수지 위 주차장
17 : 46 – 원창리 쉰동골, 산행종료
1. 수리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제임스, 산그림애, 상고대, 대간거사, 사계, 중산, 金錢無, 해마,
온내, 메아리 대장
▶ 남춘천역
오늘도 상봉역 춘천 가는 전철은 출발부터 만원이다. 출발시각(7시 28분)이 멀었지만 미리 승
강장에 올라가 줄서야 한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커피가게 옆에서 노닥거리다가는 춘천까지 1
시간 20분 남짓을 꼬박 서서가야 한다. 비가 내릴 듯 꾸무럭하던 날씨는 갠다. 달리는 전철 안
에서 창밖의 파노라마 실경 감상한다. ‘울리는 경부선’은 전봇대가 하나하나 지나가고 지나온
다지만, 경춘선은 산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지나온다. 인수봉, 영봉, 불암산, 천마산, 천보산, 월
두봉, 등선봉, 삼악산, 계관산 …….
남춘천역 역사 출구 전면에 내건 한림대 광고가 눈에 띈다. 누가 사과를 베어 먹는 인재가 되
겠느냐는 문구 옆에 애플사 로고 닮은 사과를 그려 넣었다. 무슨 뜻일까? 일견 미국의 걸출한
기업가인 스티브 잡스(Steve P. Jobs, 1955~2011)를 연상케 한다. 애플사 설립자인 그는 매
킨토시 컴퓨터,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그리고 스마트폰의 대명사인 아이폰 등 테크놀로지의
혁신을 선도한 대표적인 디지털 시대의 거인이다.
아니면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을 염두에 두었을까?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의 암호정보학교
에서 일하면서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수수께끼라는 뜻의 독일어)를 완전히 해독
했고, ‘콜로서스’로 불리는 기계식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앨런의 말년(?)은 매우 비참했다. 1952년 뜻밖의 사건이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앨런은 맨체스터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남성과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 직후 맨체스터 교외에 있는 앨런의 집이 강도에 털렸는데, 그 강도가 다름 아닌 앨
런과 사랑을 함께 나눈 남자였다.
당시 동성연애는 위법이었다. 앨런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정부연구소에서 해임되었으며,
앨런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배려로 형무소에 가는 대신 정신병원에 가서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앨런은 여성 호르몬 주사로 그 부작용과 더불어 심한 우울증
으로 시달렸다. 1954년 6월 8일 아침, 병원의 청소부가 침대 위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앨런을 발견했고, 침대 옆에는 청산가리가 묻은 먹다만 사과가 뒹굴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앨런이 죽은 지 13년이 지난 1967년에 동성애 금지법을 폐기했다. 천재 물리학
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해 전 세계 과학계가 앨런의 명예회복을 위한 청원을 쏟아냈고, 결국 영
국 정부는 2009년 동성애 유죄판결로 앨런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
013년 12월 23일 영국 법무장관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사면권에 의해 앨런을 공식 사
면한다고 발표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문 애플사의 로고가 컴퓨터 과학의 초석을 만든 앨런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
를 표하기 위한 스티브 잡스의 뜻이라는 설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안진환 옮김, 민음사, 2011)에 따르면 그런 설과 사뭇 다르지만 심증은 간다.
“그 로고는 (…) 간단한 사과 모양의 두 가지 시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온전한 사과 그림이었
고, 다른 하나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이었다. 그냥 사과 그림은 마치 체리처럼 보였기 때
문에 잡스는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을 택했다. (…) 메케나는 애플 Ⅱ 팸플릿 상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문구를 찍어 넣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그리고
이후 이 말은 잡스가 지향하는 디자인 철학의 핵심 뼈대가 된다.”
2. 경춘선에서 창밖의 풍경, 인수봉(810.5m)
3. 경춘선에서 창밖의 풍경, 불암산(509.7m)
4. 경춘선에서 창밖의 풍경, 오른쪽은 등선봉(632.3m), 삼악산(654m), 멀리 가운데는 계관산(736m)
▶ 수리봉(守里峰, △644.9m)
남춘천역 근처에 있는 우이정에서 산행 후 음식을 먹는 조건으로 들머리와 날머리까지 차량을
제공한다 하니 굳이 춘천역까지 가서 돈 들여가며 차량을 대절할 필요가 없어졌다. 25인승 버
스가 곧바로 온다. 오늘 우리처럼 우이정 차량을 예약한 등산팀이 20개나 된다고 한다. 내일
은 비 온다고 하여 한 팀도 없고.
차는 사계 님이 한때 사과서리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두며 복무한 군견대를 지나고 준령인 원창
고개를 넘는다. 원창고갯마루에 수리봉 오르는 길은 훤히 뚫렸고 고도 또한 317m이어서 이상
적인 등산조건이겠지만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언대로 인적 없는 거친 땅으로 내려간다. 사
방공사한 지계곡 오른쪽 사면을 오른다. 간밤에 내린 비로 풀숲은 축축하게 젖었다.
이어 가파른 잣나무 숲속을 오른다. 침엽 낙엽이 푹신하여 오히려 발걸음 떼기가 거북하다. 때
이른 염천 비지땀 한바탕 걸게 쏟아 361m봉을 넘고 가파름 한결 수그러들어 산들바람 부는
한갓진 숲속 길에서 탁주 입산주 분음하는 여유를 즐긴다. 등로 주변은 재선충(?)에 감염된 소
나무를 토막 내고 비닐포대 봉분 만들어 훈증 처리하는 공동묘지다.
528m봉 내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등로는 지능선 수집하여 인적 모은다. 내내 하늘 가린 숲
속은 널찍한 데크전망대가 창이다. 활짝 열렸다. 반공의 하늘금은 사명산 일산에서 천마산 백
봉까지 뚜렷하다. 왼쪽으로 원창고개(2.6㎞)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완만하게 0.5㎞ 더 가면
수리봉이다. 데크전망대 아래 조그만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이 수리봉의 한자 표기가 ‘守里峰’이다. 산 이름에서 수리봉은 매
봉이나 응봉에서처럼 새인 독수리나 참수리 등 수리를 일컬을 것인데 ‘守里’는 얼토당토않은
한자 표기일뿐더러 한자라 해도 ‘守里’라는 말은 없다.
수리봉 약간 내려 ┤자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 왼쪽이 임도로 이어지는 주등로고 직진 70
0m 전방은 ‘조망끝’이라는 644m봉이다. 우리는 매봉 자락 계곡을 겨냥하여 남진하되 542m
봉을 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방향을 틀었다. 가시덤불숲 헤친다. 우악스런 가시덤불에
는 토시와 긴 바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방 난자 당한다.
사태 난 절벽지대 돌고도 그렇게 뚝뚝 떨어지는데 GPS로 다시 측정한바 방향착오란다. 뒤돈
다. 후미였던 내가 선두가 된다. 능선마루로 올라서서 644m봉 가까이 간다. 생오지를 20분 헤
맸다. 마른 지계곡인 협곡을 내린다. 특히 오른쪽 능선은 암벽 길게 두른 성채다. 너덜 길. 바
위가 젖어 미끄럽다. 쏴아 하는 소리가 바람소리인가 물소리인가 다 내려와서 그 정체를 확인
하니 물소리다.
오늘 산행의 콘셉트인 알탕 할 현장이다. 그늘 짙게 드리우고 단풍취 암벽 두른 물도리동이다.
땀 식기 전에 서둘러 알탕 애벌 한다. 물이 깊은 데는 가슴께까지 찬다. 수온이 딱 알맞다. 계
류 옆 자갈밭에서 불고기 볶고, 닭백숙 삶는 중에도 계류 들락날락한다. 원시시대로 돌아간다.
혹자가 왜 그때를 인류의 황금시기라고 하는지 알겠다. 술이 다 떨어져서 자리 파한다.
5. 수리봉 오르는 초입의 잣나무숲
6. 수리봉 가기 전 데크전망대에서 바라본 춘천 주변, 왼쪽은 금병산(652m), 그 오른쪽 춘천
시내 가까운 산은 안마산(306m), 멀리 오른쪽은 응봉(1,436m), 그 왼쪽은 화악산(1,468m)
7. 왼쪽은 금병산, 가운데는 등선봉과 삼악산
8. 등선봉과 삼악산(오른쪽)
9. 큰제비고깔(Delphinium maackianum),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7~8월에 가지 끝
에 고깔 모양의 짙은 보라색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여러 개 피고 열매는 골돌과(蓇葖果)로
10월에 익는다. 씨는 약용한다. 높은 산지(山地)에서 자라는데 경기 이북에 분포한다. 골돌과
는 열과(裂果)의 하나로 여러 개의 씨방으로 이루어졌으며 익으면 벌어진다. 작약 열매, 투구
꽃 열매 따위가 이에 속한다.
10. 춘천시내와 봉의산(301.5m)
11. 멀리 왼쪽으로 흰 암벽이 보이는 산이 용화산(878m), 가운데는 일산(1,207m), 오른쪽은 사명산(1,195m)
12. 수리봉 내려 계류, 알탕 장소
13. 수리봉 지난 644m봉, 수리봉과 이 644m봉 사이의 남쪽 협곡으로 내려야 계류다.
▶ 매봉(756m), 연엽산(蓮葉山, △851m)
매봉 오르는 길이 있을 턱이 없다. 모수 듬성듬성 남겨두고 벌목한 사면을 오른다. 불볕 작열
하는 사면이다. 풀숲에 코 박고 오르자니 얼굴을 숯불 이글거리는 화로에 처박은 꼴이다. 여기
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라는 데 이견이 없다. 산판 길도 가파르다. 등로 옆 원추리가 응원
한다. 이 땡볕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 흩트리지 않아 그에 큰 힘 받는다.
벌목지대 지나고 숲속 그늘에 들자마자 널브러진다. 모두 땀으로 멱 감았다. 매봉 정상은 아직
멀었다. 숲속 길 가파름은 그 기세를 계속 유지한다. 사면 풀숲 쓸어가며 오른다. 매봉 정상.
너른 공터다. 시원한 바람은 수대로 도열하여 거풍하기 좋다. 등로는 매봉 정상을 한차례 뚝
떨어졌다가 평탄하다. 왼쪽 골 건너로는 대룡산 녹두봉이, 오른쪽 골 건너로는 연엽산이 준봉
의 위세를 부린다.
주릉인 ┳자 능선 분기봉은 응봉이다. 이제 연엽산 가는 길은 더욱 훤하다. 726m봉 넘고 안부
지나 등로 한가운데 있는 땅벌 집을 앞서가는 상고대 님이 알려주어 간신히 사면 돌아 피하고
연엽산 턱에 이른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이 사면 살짝 돌아 직등하는 길이다. 거의 수직절벽이
다. 연엽산의 멋이고 맛이다. 가느다란 밧줄이 달려 있다. 달라붙는다. 고개 드니 천지 한가운
데다.
산불감시초소 지나고 바윗길 잠깐 가면 연엽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내평 316, 2005 복구. 북
쪽으로 대룡산과 녹두봉, 남동쪽으로 구절산 들여다보고 나서 남진하는 주등로 버리고 서진한
다. 인적은 물론 수적조차 없다. 암릉 날등을 피해도 낙엽 덮인 슬랩이라 쭉쭉 미끄러진다. 넙
데데한 사면에서는 더덕대형 펼치고 임도 임박해서는 마루금 절개지가 절벽일 것이므로 왼쪽
골짜기로 틀어 내린다.
임도. 영진지도는 산모롱이에 쉰동골로 내리는 등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정표도 산행표지기
도 인적도 없다. 우리 가는 데가 곧 길이다 하고 생사면 치고 내린다. 태곳적 밀림 지나 골짜기
에 다다르고 너덜지대다. 고로쇠 채취용 파이프일까? 이정표 노릇한다. 한참 재잘거리던 계류
는 우당탕 와폭으로 뭇소리 평정하고 뜸한 인적이 보인다.
계류 건너고 또 건넌다. 거목인 소나무 쓰러진 풀숲 지나기가 뜻밖의 고역이다. 소나무 몸통
올라탔다가 부둥켜안아 내리고 낮은 포복하여 지난다. 계류 옆 암반에 피서객 보여 다 내려왔
음을 짐작한다. 개활지 나오고 주차장이다. 원창저수지 맨 위다. 우이정 차를 부르려는데 전화
불통지역이다. 전화가 걸릴 데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산자락 도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오지 산길 걷기보다 더 힘들다.
쉰동골. 더 못가고 근처 농장 경영한다는 아주머니가 나누어 주는 삶은 찰옥수수 뜯어 기력 보
충한다. 메아리 대장님과 상고대 님은 전화로 차 부르러 진작 고갯마루로 올라갔다. 기운 차려
뒤따른다.
14.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한 원추리
15. 원추리(Hemerocallis fulva),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16. 매봉 정상, 서래야 박건석 님의 정상 표지가 있다.
17. 연엽산 가는 길에서 북동쪽 조망
18. 대룡산 연봉인 녹두봉(870m)
19. 멀리 가운데는 가리산(1,051m)
20. 가운데는 매봉(865m)과 백우산(895m)
21. 앞은 구절산(750m), 그 뒤 멀리 왼쪽은 공작산(882m)
22. 녹두봉과 대룡산(899.4m)
23. 온내 님, 연엽산 정상에서
24. 쉰동골 도로 주변에 만발한 칡꽃, 한방에서 갈화(葛花)라고 하며, 술독을 풀고 갈증을 멈
추게 하며 비위를 든든하게 하여 혈변을 다스린다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첫댓글 金錢無 님이 실수로 지워버렸다 하여 다시 올립니다.
소중한 댓글은 복원할 수 없어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