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향후 과제
우리나라는 지난 70년 동안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룬 경제성장의 업적은 전 세계 어디에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953년부터 2017년 사이 440배 남짓한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1950년대 100달러도 안 되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은 3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물가수준 등 구매력평가기준으로 한 소득수준은 조만간 일본도 앞지를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수출하는 품목도 1960년대에는 철광석 등과 같이 땅에서 캐는 광물과 누에를 키워 실을 뽑는 생사, 바다에서 잡는 오징어였는데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스마트폰 등 최첨단 제품들입니다. 수출입과 경제 규모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1) 세계 1위 한국의 산업 경쟁력
18세기까지만 해도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중국에는 서양 상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종이를 사기 위해 상인들이 다니던 길을 ‘실크로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단과 도자기,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비단과 도자기, 종이는 황제와 귀족들이 앞다투어 구하려는 ‘명품’ 대접을 받았습니다.
도자기 겉면에 그림을 그릴 때 코발트로 만든 물감으로 그려야 가마에 구울 때 물감이 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코발트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고려의 도공들이 개발한 창의적 기법이 도자기 표면을 살짝 파내 하얀 흙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상감기법’ 청자입니다. 이 청자는 아랍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종이도 중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의 송나라 시대에는 “고려에서 만든 종이는 부드럽고 질기며 먹이 잘 번지지 않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에 좋다.”며 문인들이 이른바 ‘고려지’를 가장 좋아하였습니다. 중국의 종이는 갈대나 짚을 잘게 썰어 만드는데, 우리는 우리 산에 잘 자라는 닥나무 껍질을 벗겨 섬유질로 종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 종이보다 훨씬 튼튼하고 매끄러웠습니다.
비단도 신라시대부터 우리 비단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실을 뽑아 비단을 얇게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광택이 좋아 비단 대신 ‘명주’라는 이름으로 다르게 불렸습니다. 인쇄술도 중국에서 발명이 됐으나, 우리는 목판 인쇄를 넘어 중국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손기술이 뛰어났고, 외국에서 들여온 기술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부족한 자원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능력을 보여 줬습니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에 뒤처지면서 발전이 늦어졌습니다. 35년 동안의 뼈아픈 식민지배에 더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반도는 문자 그대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은 경제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반세기 만에 기술력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서야 비로소 시작한 대형 화물선을 만드는 조선 산업은 불 40년 만에 세계 1위가 됐습니다.
곡물, 광석을 나르는 ‘벌크 화물선’은 전 세계 등록 선박의 13%가 ‘메이드 인 코리아’이고, 원유, 나프타 등 석유를 나르는 유조선(탱커)의 52%, 화물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의 56%가 한국산입니다. 특히 화물선 중에 가장 비싼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은 68%가 한국산인데, 이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물선 분야에서 세계 1, 2, 3위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 기업입니다.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자동차를 만들던 것이 불과 60년 전인데 지금은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생산국가가 됐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1위는 독일의 폭스바겐, 2위는 미국의 GM, 3위는 프랑스와 일본의 르노닛산, 4위는 일본의 토요타이고 5위가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입니다. 특히 미래 자동차인 전기차 분야에서도 현대기아자동차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수소자동차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화학산업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도 놀랄 만한 일입니다. 석유는 자동차, 선박, 비행기와 같은 운송 수단에 넣는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외에도 플라스틱과 섬유, 약품 원료로 쓰이기 때문에 현대 산업 발전의 필수적인 자원입니다. 한국의 석유 제품 가공 능력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1988년만 해도 한국의 석유화학제품은 원료 수입액이 제품 수출액보다 5배 높았으나, 2008년에는 수출액이 수입액의 3배가량에 이릅니다.
예전에는 원유를 100만 원어치 수입하면 가공해서 70만 원어치를 쓰고 수출해서 30만 원을 벌었으나, 지금은 1,000만 원어치를 수입하면 이를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어 3,000만 원어치를 수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이지만,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입니다.
철강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 포항 영일만 모래사장에 제철소(현 포스코)를 짓기 위해 한국이 돈을 빌리려 하자 세계은행(WB)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후진국일수록 지도자의 동상과 제철소를 짓고 싶어 한다.”고 조롱하면서 돈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리하여 우리 스스로의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했는데 한국이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생산국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포스코는 생산 1년 만에 흑자를 내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1981년 철강 생산량이 1,000만 톤이었는데, 지금은 생산량이 7,000만 톤을 넘습니다. 전량 수입하던 철강제품도 지금은 1년에 3만 톤 넘게 수출합니다. 무엇보다 양질의 고부가가치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기술력을 갖춰, 2017년에는 철강업체 경쟁력 지수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하청 생산기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전자 산업은 일본을 앞질러 지금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부품을 구해다 쓰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단순 조립해 파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TV, 냉장고, 에어컨 등 전통적인 가전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1위일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최첨단 제품은 처음부터 독자개발에 나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TV나 스마트폰의 화면 표시 부품인 ‘디스플레이’ 분야는 2004년부터 14년 동안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진 뒤에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라고 불리는 자체발광화면표시장치(OLED)를 개발해 세계시장 점유율의 90% 이상을 한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의 전자회사들도 OLED TV나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산 부품을 써야 합니다. 반도체 분야는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외에도 자동차, 냉장고, 거리의 가로등까지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쌀’이라 불립니다. 반도체 중에서 데이터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 품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 됐습니다. 워낙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중국 업체들이 추격하기도 어렵습니다. 한때 일본에서 핵심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하여 위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우리 업체들은 1년 만에 대체 부품과 소재를 개발하면서 뛰어난 기술력과 위기 대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만화(웹툰)와 같은 문화 분야에서까지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부터 무엇을 하든 대충대충하지 않고 최고를 만들고 마는 열정이 오늘날 세계 산업 선도국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군부가 권력을 쥐고 오랫동안 집권하는 독재국가였으나 민주화를 이룩해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국가가 됐습니다. 국민들 삶의 질도 차원이 다르게 높아졌습니다.
1960년대에만 해도 나이 쉰만 넘겨도 오래 살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습니다. 앞으로는 ‘100세 시대’라고도 합니다. 2020년 초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 민주적인 시민들의 협조,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경제력으로 세계적인 방역 모범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2) 세계를 휩쓴 한류 - K드라마에서 K팝까지
1990년대 초 한국에서는 ‘X(엑스)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1980년대 고도성장기에 TV와 영화, 잡지 등 대중문화의 혜택을 받으면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란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1950~60년대에 태어나 가난하게 자란 부모 세대들과는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것들이 달랐습니다. 가난 극복이 최우선 과제였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자유분방하고 과거의 아픈 경험이 없는 이들 젊은이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때 외국 문화를 좋아하고 여기에 돈을 쓰는 젊은 층을 ‘오렌지족’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 경험과 교류는 더 많은 가능성을 낳았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나오자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해외여행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들을 직접 돌아보면서 다양한 해외 문화를 접하고 창의적인 재해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해외 선진국의 문화를 직접 접한 젊은이들이 음악과 패션, 영화,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극장에 상영되는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TV를 켜면 미국 드라마가 나왔으며, 라디오를 틀면 미국 대중가요인 팝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우리 드라마와 영화, 가요(K팝)의 경쟁력이 올라가면서 점점 국내 영화와 드라마, 가요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도 우리 문화 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90년대 초반 공산권이 붕괴하자 정부는 적극적으로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북방 정책을 펼쳤습니다. 1992년에는 중국과도 수교를 맺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기업인들이 있습니다. 한 방송국 직원은 미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업무만 하다가 “왜 우리는 외국에 우리 드라마를 팔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과 수교가 되자 드라마 선전 책자를 만들어 무작정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다행히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드라마에 흥미를 보였고, ‘대장금’ 같은 몇몇 드라마는 중국 전역에 방영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중국에 남한의 드라마가 수출이 되자 자연스럽게 북한에도 남한의 드라마가 퍼져 나가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실상을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겪어 일본과 경제적 교류는 했지만 문화적 교류는 철저히 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력이 커지자 2000년부터 일본과의 문화 교류도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일본 문화가 한국을 압도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거꾸로 한국 문화가 일본을 더 빠르게 침투했습니다.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이래 한국 드라마가 일본의 가정에 많이 방송되기 시작하여 인기몰이를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한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중국과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남미의 볼리비아, 페루, 브라질 같은 곳에서도 현지인들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한글을 공부할 정도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수준 높은 작품성까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음악 분야의 한류는 더 극적입니다. 1990년대에 팝송과 힙합 등 해외 음악 장르에 눈뜬 젊은이들이 지금은 장년이 되어 해외로 한국 음악을 역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과 실력이 쌓여 ‘싸이’, ‘BTS(방탄소년단)’라는 전 세계적 스타를 낳았습니다.
해외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자란 우리 젊은이들이 직접 그 나라에 가서 보고 듣겠다며 해외여행을 갔는데, 지금은 역으로 해외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으로 여행을 오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통한 ‘문화 한류’ 붐 덕분에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국산 자동차와 스마트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접하게 되고, 한국의 스타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졌습니다. 문화 산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다른 산업에까지 퍼지는 효과가 상당합니다.
문화의 힘이 국가의 위상도 높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 나가면 현지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보고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고만 물어봤는데, 이제 “한국인이냐?”를 먼저 묻는 시대가 됐습니다.
3) 한국경제의 향후 과제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경기와 산업은 잘 될 때가 있고 잘 안 될 때가 있는 등 주기적으로 변화합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지속적인 성장을 결코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한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여러 위기 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빈부 격차를 비롯하여, 자산 격차, 디지털 격차 등 사회적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값이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올라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도 내 집 마련이 어렵습니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불만은 사회 통합을 해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디지털 격차도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경제의 특징은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 등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직장, 소득, 생활의 편의성 등 온갖 측면에서 갈수록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고 하는데, 이 같은 격차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적극적으로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
둘째, 일자리를 늘리고 그 질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 고용을 보장하던 회사들이 줄어 들었고, 임시 기간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반도체와 통신, 디지털 기술 기반산업이 증가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나 컴퓨터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컴퓨터와 인간이 공존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복지 체계 확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셋째, 한국의 가장 큰 위기는 ‘저출산·고령화’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반까지는 집마다 아이 서넛은 낳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2000년 이후 결혼이 늦어지거나 결혼을 해도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증가하여 합계출산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활발하게 일을 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한 해 30만 명씩 생산 현장에서 사라져 인구절벽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저출산 현상과 함께 고령화도 큰 위험 요인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데 노인 인구를 부양할 젊은이들이 줄어들면 복지 지출이 많아져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인구가 줄면 경제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누구나 아이를 낳아 기르기 편한 환경을 만들고 적정 인구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입니다.
넷째,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 및 기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큰 도전입니다. 양적인 부문에서는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이 빠르게 추격해 오고 있고, 질적인 부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제조업 시대의 각종 기술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현재 한국이 우위를 보이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전기차와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되면 과거의 기계식 엔진이나 부품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각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기술변화를 예측하고 관련 규제를 해제하며 기업들의 연구개발 노력과 창의적 생산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미리 준비해야 더 나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모든 위기와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며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가난, 외환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해 왔던 것처럼 미래의 도전에 대해서도 잘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의 리더십, 기업들의 개척 정신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온 국민 개개인의 피땀 어린 노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바탕이 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누구든지 노력에 따라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실패에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기본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맛보기도 하겠지만, 과거 한국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실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지식자산이 됩니다. 실패를 디딤돌 삼아 성공할 때까지 언제든 재도전하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지금, 도전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언제든 기회는 찾아올 것입니다.
[출처 : KDI, 한국개발연구원]
※ 사실 한국경제 발전사에 대한 자료를 게시하기 전에 저작권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너무 좋은자료라서 모두가 널리 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어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시 게시물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