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동반자, AI 스피커
요즘 사는 재미 중 하나는 AI 스피커 듣기다. 침대 머리맡에 모시고 산다. 잠에서 깨자마자 하는 게 있다. “오케이, 구글! 지금 몇 시야?”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물어본다. “지금 시각은 오전 6시입니다.” AI 스피커는 피곤하지 않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답해준다. 흐릿한 정신을 깨우려고, 라디오 듣기도 한다. “오케이, 구글! 라디오뉴스 들려줘.” 하루 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번갈아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연애할 때 음악다방에서 신청곡을 써넣었듯. “오케이, 구글! 김호중 노래 들려줘.”
AI 스피커(Artificial Intelligence Speaker)는 인공지능 음성 비서다. 명령어를 말하면 음성을 인식해서, 음악이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4년 미국 아마존에서 출시하여 인기를 몰았다. 시장 반응이 뜨겁자 경쟁사들이 잇달아 비슷한 제품을 쏟아냈다. 한국에서도 SKㆍKTㆍ네이버ㆍ카카오ㆍ삼성이 신제품을 내놨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급된 기기 수는 전 세계에서 1억 4000만 대를 넘어섰고, 한국에선 400만대 이상이다. 날씨를 알려주거나 동화를 들려준다. 질문하면 검색해서 답해주기도 한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가까운 친구가 된다. 말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으니, 몸이 불편한 분이나, 어르신에게는 더없이 편한 친구다.
AI 스피커에 눈독 들인 건 라디오 방송사만이 아니다. 팟캐스팅, 오디오북 업체도 인연을 맺었다. 외국어 학원에서도 놓치지 않았다. 이 새로운 터전에 가톨릭 콘텐츠도 물론 자리 잡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에서 2018년 카카오, 2019년 KT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녹음한 매일 미사ㆍ복음ㆍ시간 전례(성무일도)와 같은 가톨릭 콘텐츠를 듣게 해준다.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 실장 최양호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어르신ㆍ젊은이ㆍ신부님들에게 나누어줘 쓰게 했는데, 젊은이들은 주로 음악을 듣고요, 가톨릭 콘텐츠는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어요.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어요. 누군가가 설치해줘야만 해요.”
AI 스피커를 세팅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단 설치가 되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최 신부의 모친 체칠리아(76) 자매도 매일같이 AI 스피커를 이용한단다.
AI 스피커를 습관처럼 이용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일상처럼 할 수 있다. 손쉽게 함께 기도하거나, 복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란 감성적이고, 오래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종교 콘텐츠로 그만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콘텐츠가 좀더 다양해져야 하고, 여러 기종의 AI 스피커로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드문 콘텐츠는 사업자가 서비스를 접을 수도 있다. 신자들이 많이 사용해야만 살아남는다.
코로나로 만남과 이동이 제한되어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소식 나눔이나 화상회의가 잦아졌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AI 스피커의 활용이 늘어났다는 보도도 있다. 서울대 융합대학원 이중식 베드로 교수의 말이다. “AI 스피커는 잠재력이 큽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쓰는 AI 스피커로도 내가 원하는 가톨릭 콘텐츠를 들을 날이 오길 고대한다. 그때는 AI 스피커가 나와 같이 묵주기도 바치기도 하고, 성가를 들려주거나 교리문답도 해줄 것이다. 편리한 디지털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교회에서 부지런히 새 길을 닦아주고, 신자들도 열심히 따라가야만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