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읍 신봉리 산111
서봉사(瑞峰寺)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고 절터의 크기로 보아 아주 큰 규모의 절로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절에서 떠내려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와 왜적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곳은 탑비의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있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서봉사(瑞峰寺)의 옛터임이 밝혀졌다.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보통 부도와 함께 건립되는데 절터에 부도의 흔적은 없고 이 비석만 남아 있다.
화강암의 비받침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비몸돌이 놓여있는 단촐한 모습이다.
비받침부분의 윗면은 4변을 비스듬히 잘라내었고,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에도 윗부분의 양 귀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명종(明宗) 원년(元年, 1171)에 그에게 좌세(佐世)의 호(號)를 내리고 내전(內殿)에 불러 만수가사(萬繡袈裟)를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현오국사(玄悟國師)는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浮石寺)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1178)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國師)로 삼고 시호를 ‘현오(玄悟)’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그 외에도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명칭변경; 서봉사 현오국사 탑비 →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 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