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하세요
조성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눈만 뜨면 핸드폰에 쏟아져 들어오는 "좋은 하루 되세요"를 처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다가, 몇 년을 받아보고 통계를 내 보아도 문자를 더 많이 받았다고 해서 나의 그날이 '좋은 하루'가 된 것이 아님을 알아버렸다. 지겨워졌다. 카톡소리를 꺼 놓아도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어찌 그리도 한결같은지. 오히려 좋아질 뻔한 나의 하루를 망쳐 놓기 일쑤였다.
이에 세월이 더하니 어느덧 생존 본능이 적응의 방식을 찾았다. 문자는 읽지 않되 보낸 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아, 오늘 김 아무개가 외롭구나', '오늘 박 아무개는 시간이 많구나' 등등 심리학 쪽으로 해석하면 그다지 괴로운 일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이해가 된다. 내 편할 대로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전인수식 생활태도는 정신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신체적 문제에도 유용한 것 같다. 방금 전 나처럼 손가락으로 책장이 넘겨지지 않을 경우, 처음에는 '아, 내가 늙어서 손에 찰기가 없구나' 또는 '손가락에 힘이 없어지다니 무슨 병일까'하고 물길이 저쪽으로 흐르게 하는 대신, '겨울철이니 건조한가 봐. 축축하면 습진이지. 그건 아는 병이잖아'하며 이쪽으로 물꼬를 돌리는 게 훨씬 낫다.
감기도 걸리면 몇 날은 더 심해지다가 낫곤 했으니, 뼈마디가 아프든, 위장에 탈이 나든, 두통이 생기든, 아프고 나면 낫는 일이다. 시간의 길고 짧음이 있을 뿐이다. 아무 데도 안 아프면 조만간 아프게 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은가. 건강하면 자만해지지만 병이 나면 저절로 성찰과 겸손이 따라오지 않던가. 건강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가 있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나이 70이 되어서 평생 진정한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망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친구가 배신을 할 경우도 실은 그다지 낙담할 것이 못된다. 피치 못했거나 마음이 바뀌었거나 변하는 인간은 또 그대로 매력이다. 변하지 않는 벗은 또 그런대로 변하는 벗들은 또 그런대로 인간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우정의 대상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나의 밭이니 아무쪼록 물을 댈 일이다. 독자들이 이 글에 대해서도 부디 아전인수하시길.
[전남여고 문집] 10호에 실린 글임.
2024.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