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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 환웅천왕 ( 기원전 3,898 년 ~ 기원전 2,381 년 ) 존속 1,600 년
환웅은 환국 7세 지위리 환인의 아들로 서아시아 돈황에서 동진하여 바이칼 오난하지역 구다천국 지역을 개척하였는데, 그영향력이 만주와 대륙, 반도와 열도에 까지 미치며, 남하 하여 황하 중상류 서안 태백산을 중심으로 신의 도시 신시를 마련하고 배달국(기원전3,898~기원전2,381년)을 세워 1세 거발한 환웅~18세 거불단 환웅 재위로 천황의 지위에 올라 홍익인간을 통치이념으로 선포 하였으며, 서서히 동천하며 번창하였습니다.
개천 1,200여년이 지나 14세 자오지 치우천왕(기원전2,706~기원전2,597년)시 태백의 신시에서 산동의 청구로 수도를 옮겨, 이른바 신시시대를 마감하고 청구시대를 맞이하여, 신농국을 쇠퇴시키고 12제후국 등을 평정하였으며, 유웅국 왕 헌원의 반란을 10여년 간에 걸쳐 진압 시키고 내치에 힘쓰는데, 치우천왕은 염제 신농국의 후계자로 쑥, 달래, 마늘, 등의 약제를 쓰는 우수한 의술을 갖추었고, 18세 거불단환웅(기원전2,380~기원전2,333년)에 이르러 단군조선(기원전2,333~기원전238년)의 개국 창업을 이루웠으며, 이시절 반고 한족의 창세신화도 감숙 납림 동굴에 무리와 함께 이르러 반고가한이 됩니다.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셋을 받은 환웅은 부도, 삼신의 전통대로 신격인 풍백, 우사, 운사, 삼사와 새를 숭배하는 무리3천으로 개국 후 삼사로 하여금 유목 어로 목축 내 외치에 이르는 일을 맡기고, 고시에게 농사인 주곡을 담당케하여, 삶, 형벌, 선악, 인간 360사를 두루 주관하여 국인을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바이칼지역을 연고로 하는 화백제도를 소도를 중심하여 발전시켰는데, 육지에서 하는 영산화백이 있고, 호수에서 하는 배달화백이 있었으며, 회합을 통하여 커다란 사안을 통합을 먼저 결정하고, 작고 부차적인 사회의 사안들을 통합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사례 기록으로 단군조선과 주나라는 배달화백에 의해서 기자에게 낙랑군을 봉토를 주었다. 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홍산문화권에서 가장 높은 산이 난하와 서요하의 북쪽 가지가 발원하는 대광정자산(2,067m)인데, 요사지리지고에 의하면 옛 요락수인 지금의 영금하가 하북성 위장현 위장의 도태산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니, 도태산이 곧 대광정자산이고 환웅의 태백산이고, 또는 불함산이 됩니다.
또 삼한관경본기에서 태백산은 비서갑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대일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인데, 천왕이 순수하던 곳이라고 하였으며, 그후 웅녀군이 세습하였다고 하였고, 대일왕은 웅녀군과 대비되는데, 대일왕을 지명으로 찾아보면 오늘날의 대일한산을 의미하여, 케스케덴 서부 지역 달라이누얼, 즉 달일호수변의 화산입니다.
그러므로 1세 거발한 한웅(기원전3,897~기원전3,803년)은 일명 배달 환웅으로, 환웅의 첫 수도는 백산과 흑수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데, 백산은 대광정자산이었고 흑수는 지금의 노합하로서 마우산(1,729m)에서 발원하며, 마우산은 옛 우이산이면서 고대에는 흑산이어서 흑수라고 하였을 것이고, 흑수는 뒤에 도하와 토하를 거쳐 노로하라고 불리게 되는데, 노로하는 나라하, 즉 낙랑하에서 비롯된 말이어서, 환웅의 배달국은 백산의 물과 흑산의 물이 만나는 적봉시 동북에 있었던 것이됩니다.
적봉시 녕성현에서는 팔가를 몽고말로 보리가라고 이중으로 표기했는데, 보리가의 음독을 비교하여서 발가라는 우리말의 차음으로 보아, 석성의 석石까지 당겨서 읽으면 발가달성이 되므로, 즉 밝달성, 배달성이 되며, 거란고전에는 바다와 사막의 형상이 변하고 땅은 서쪽으로 오그라들었으며 뒤쪽 모서리는 바다가 되었고 하늘은 동쪽으로 멀어졌으며, 또한 홍수와 화재를 경험한 뒤에는 서쪽의 족속들이 점차로 들어왔다. 하고,
일설에 소의 머리를 신으로 삼는 자들과 뱀의 몸을 신으로 삼는 자들이 우리의 신자에 대한 호칭을 속여 복희와 신농과 황제와 소호와 도당과 우순을 지어냈다. 하고, 문란하게 번사를 명하였고 스스로 나는 '거룩하고 안녕하며 박식하다' 고 말하였다. 요와 순은 동족의 시보이다. 혼혈족에는 하국의 우로부터 시작된 군장이 있다. 비록 그러하다 할지라도 우는 운에 지나지 않고 하국은 견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주위에는 신정, 상정, 삼안정, 동삼안정, 동신정, 이도정, 삼도정, 사도정, 등 정井자 지명이 매우 많으니, 환웅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하여 우물을 중심으로 정착촌을 만들어 자정, 여정, 등을 획정하고 3,000인을 살게 한 것이 되며,물이 성읍 건설의 중심이 되는 것은 확실하게 농업 위주 문명 시대인 것을 의미하고, 동팔가석성을 지나는 물이름은 대광정자산의 음하에서 비롯되는 영금하인데, 음하나 영금하는 둘 다 우리말 임금과 관련되는 임금하의 차자로, 음하를 한제족 발음대로 인하로 읽으면 인금하의 인하가 되는 것이고, 음하 상류 삼좌점 부근에 청동기 시대 석성이 20여좌, 왕가점 부근에 5좌, 초두랑진 부근에 12개좌 석성이 있으며, 그중에 지가영자 석성이 최대의 원형석성으로서 면적이 약 10만㎡로 지름이 350m가 됩니다.
영금하를 후대에는 요락수라고도 하고 또 낙수라고도 했으며, 적봉시 북쪽 영금하 변에는 지주산이라는 홍산문화 유적지도 있으며, 적봉 남쪽에 팔리포가 있는데, 적봉이나 홍산은 우리말로 붉은달이며 밝달이고, 팔리포는 밝성의 밝포로 추정되며, 1세 환웅의 이름이 거발한인데, 고구려 고국천왕이 고국천에 묻힌 것처럼 거발한 환웅은 발한하즉 팔리한하에 묻혔을 것이며, 발한성에 묻힌 것인데 이는 영성현의 남산근 유적지와 관련되며, 배달시대 첫 도읍 청구국 천평성인 동팔가달성과 거발한 환웅이 묻힌 팔리한진 발한성의 거리는 120km내외가 됩니다.
종합하면 환웅 세력은 천산의 신시로부터 태백산의 청구 땅 배달국으로 내려온 세력이며, 예족을 구축하고 웅족으로 대신하였으며, 마늘과 쑥으로 은유되는 대기근이 웅족의 남진을 초래하였을 것인데, 비서갑은 해발 1,000m의 고지고, 적봉은 해발 500m 정도입니다.
참고로 천부인 셋이란 마고가 후세에 전한 북두칠성, 해, 달, 이 새겨진 도장을 말하는데, 이것을 배달국이 전승받아 재세이화의 세계를 펼치는 신물로 쓰이며, 이 제도가 정책으로 발현할 때는 전원참석에 전원찬성의 원칙인 화백제도로 가, 부, 를 결정하고, 이를 뭍에서 하면 영산화백이라 하고, 호수에서는 배달화백이라 하였으며, 이곳을 발정이라 하고, '가'한 정책을 치덕이라 하여 덕을 최상가치로 두는데, 치덕은 책화가 원칙으로 일종의 자기책임제이므로 임금조차 재해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지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때는 빗살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의 사용과 돌무지 무덤, 솟대, 고인돌을 축조 사용하던 인구 팽창 시대로, 홍익인간 사상이나 국가기본 5법 등을 만들어 사회 질서와 교화를 위해 시행하였으며, 이것은 대대로 국가통치체계로 전승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방 문명 개척으로도 쓰여지게 되었는데, 사방에 널리 퍼져있는 이족들의 순화와 공생에 크게 이바지하게 됩니다.
또 이 시대는 인류문명의 시초로 불과 초기문자의 발견과 함께 청동기나 철기문화의 시초로 보기도 하는데, 산동 무씨사당 화상석에 수례를 타고 있는 환웅상이 후대에 만들어지는 사례이나 치우천왕을 묘사하는 기록에 그러하고, 치우천왕의 성무와 동이 명칭에서도 초기 동이의 '동' 자는 철을 만드는 동쪽의 사람이라 하는 고어 글자 뜻과 함께, 동두철왕 치우천왕의 외모 표현이나 큰 활에서 따온 '동'자가 이때 동이란 말의 시초가 됩니다.
기록에 삼끈으로 묶은머리 상투를 한 묘족들을 구리 구려라 불렀다 했는데, 치우천왕을 시조로 삼았으며, 후예로는 산동 대문구문화(기원전3천년경)의 소호 새토템의 집단이 있는 동이족 거주지였으며, 이러한 치우천왕은 배달국 우가 신농과 같은 강씨이며, 후에 붉은색 기운를 상징하여 진, 한나라 백성들까지 해마다 제사를드렸고, 전쟁을 상징하는 유습이 지금껏 남아있어, 스포츠에서도 붉은색 사용이 경쟁 대상이 되기도합니다.
또 배달국 초기 기원전 39세기에 신하 사관 신지가 만든 '녹도문'은 이집트 상형문자, 수메르 점토문이 기원전 30세기, 에 비해 9세기 앞선 것으로, 제의에 주로 사용하지만, 천부경에도 쓰이며, 이러한 문자 발명과 함께 배달국의 제후국 은, 상, 주, 나라의 점술문자 갑골문은 후에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와 한자의 기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한자의 漢이란 자는 주나라 청동기 명문에 물이나 강의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일, 월, 산, 등의 인위적 단음절이 쓰이기 이전 고대 한제어들은 거의 소멸되었고, 그 흔적들은 동이계어 주류어로만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이 한漢자는 본래 크다는 뜻으로 제족의 명칭이나 강이름에 사용하였으나, 한나라 이후로 어느틈엔가 한제족의 이름으로 쓰게 되었으며, '중국'이란 말도 서주 주공이 처음쓰고, 공식적인 국호로는 1,842년 남경조약때 영국과의 문서에서 처음 사용되다가 지칭어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가록산 소한산의 서쪽 한산(1,936m) 또는 새한산은 흑산이라고도 했는데, 소한산의 서쪽 골은 흑수라고 했으며, 흑 수가 서요하로 들어가는 길목에 홍산유적 나리사대 유적지에서 옥도끼와 더불어 마노로 만든 석도도 등장하고, 옥기 조각이 매우 다양화되며 각종의 옥패식이 구름형 옥대, 옥구, 물고기형 옥패식, 용형 옥결, 부엉이형 옥패식,옥관 등이고, 도기는 빗살무늬 토기가 여러 첨가 기법으로 다양해지면서 뱀무늬의 채도문도 등장합니다.
나리사대 문화의 가장 주요한 발굴로서 남자와 여자의 돌조각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남자는 35cm 높이에 미간까지 보호하는 투구를 쓰고 의자에 걸터앉아 있고, 여자는 높이 19cm에 안면을 머리칼로 팔자 형태로 가리고 머리 위에는 3층의 족두리 장식을 얹었으며,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을 꿇었으며, 여자상과 함께 발굴된 석수상은 높이 9cm, 남은 길이 14cm의 작은 곰의 형상으로, 환웅, 웅녀의 만남은 이미 반만년전에 실재로 존재했던 사실이 이 나리사대 돌조각품으로 증거되며, 이 석조물들처럼 곰 부족의 여자가 소원하여 환웅의 씨를 얻어서 득세를 하고 호랑이족 예의 영역을 획득해 갑니다.
그리고 그 서쪽의 임서현 쌍정 백음장한 유적지에서는 35cm 높이의 임신한 여신상이 나와, 고구려까지 모시던 부여신일 수도 있으며, 웅녀족이 환웅과 함께 예맥의 땅을 빼앗아 옮겨간 곳으로, 신석기 홍산문화의 정수격인 요녕성 능원시 우하량 유적지가 있는데, 유적지 최상단의 여신묘를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 6개 지점에 걸쳐서 약 20개의 대형 적석총과 제단 등이 있으며, 남쪽에 금자탑이라는 제사 건축지는 3단 원형 제단으로서 아랫단의 직경이 60m, 윗단의 직경이 40m에 이르고 그 위에 봉토를 하였고, 북쪽에는 200m X 200m 규모의 신석기 석성 터가 남아있습니다.
우하량 적석총에서 발굴된 유물은 거의 홍산문화 유물이며, 청동기는 일체 없지만 제단의 규모, 왕릉의 규모가 개세적이라서 한제족 역사학계에 역사적 쇼크를 주었는데, 우하량 적석총 홍산문화는 시기적으로는 약 5,500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산되는데, 한제족들은 이 우하량 지역을 웅산이라고 추정하면서, 유웅씨와 그 후예인 황제 헌원 그리고 황제의 손자 고양왕 전욱 등의 조상으로, 그리고 최상부의 여신묘는 복희와 부부였던 여와신이라고도 해석하는데, 그러나 여와신은 복희와 함께 뱀으로 형상화되기는 했어도 곰은 아니고, 이곳 여신묘에는 특별하게도 곰의 턱뼈가 부장되어 있어, 이 홍산문화 적석총의 주인은 환웅과 웅녀가 될 수밖에 없게됩니다.
이러한 홍산문화 특유의 적석총 묘제는 요동반도와 압록강의 적석총, 서울 송파의 적석총, 경주의 적석총으로 이어지며, 우하량유적지는 유적지의 분포가 넓고 많아, 유적지가 20여개 지점이며, 그중에 5개 지점의 적석총군이 대표적이고, 적석총 2지점은 150 x 80m 규모로, 2지점의 제단은 3층 원형의 돌제단이며, 4기의 춘추시대 적석총과 여러개의 석곽묘가 있으며, 3지점은 2지점의 북쪽 200m 거리에 있는데 적석총 1기와 8개의 석곽묘가 있고, 5지점은 3지점으로부터 서쪽 882m 지점이고 2기의 적석총과 발굴하지 않은 석곽묘가 있고, 4지점은 3지점으로부터 577m인데, 미발굴 상태입니다.
또한 3지점 1,000m 북쪽에는 여신묘 건축유적이 있고, 여신묘 북쪽에 규모가 작은 적석총 6지점, 7지점, 8지점, 9지점이 있고, 5지점 남쪽에는 금자탑으로 불리는 직경 100m의 3층 원형 토단이 있으며, 우하량은 홍산문화의 보통 석곽묘제에 더하여 최초로 적석총으로서 산릉을 쌓았고, 여신묘 건축지로서 진흙으로 만든 여신상과 더불어 곰의 머리뼈가 출토되어 곰 토템과 여제사장으로서의 웅녀를 강력하게 시사하는데, 여신의 두상에는 옥으로 눈을 만들었고 그외 작은 여신상인 생육여신 상도 있습니다.
금자탑은 3층의 대형토돈으로서 윗층은 반경 40m이고 하층 외곽은 반경 60~100m에 이르는데 각층마다 8~15m 높이의 석축을 쌓고 중앙을 흙으로 채웠는데, 약 기원전1,500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금자탑은 중국 동남해안, 양자강 하류와 태호 부근의 양저문화의 제단 및 옥기류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양저문화는 치우 청구국의 산동반도 이주로 인해 영향을 받아서 옥기가 번성한 문화입니다.
우하량에서는 홍산문화의 최정수라고 할수 있는 각종 옥기들이 최다량으로 발굴되었는데, 옥조룡이 대표적으로 많고, 구름무늬 옥패, 옥벽, 쌍련 옥벽, 삼련옥벽, 옥종 형기, 옥탁, 옥완, 옥비식, 옥고, 옥고형기, 옥거북이, 새조각, 수
면형 옥패식 등이며, 우하량의 도기는 용린문 흑도, 홍도, 자도, 등 채도가 많이 나오는데 종합하면 매우 강력한 신권국가 체제라고 할 수 있이며, 가까운 객좌현에서도 제사 유적지가 발굴되었는데, 객좌현성에서 서쪽으로 3.5km 지점의 흥륭장향 장경여자촌 대릉하 서안의 동산취 후량 정상부에서 네모난 돌을 쌓아 올린 돌담벽과 쌍두룡 옥황, 녹송석 조각 새 등 장식과 형체특이적 채도기가 대량 발굴되었습니다.
유적지 남부에서는 직경 8m의 원형제단이 발굴되었고, 제단 주변은 석판을 대고 안에는 크고 작은 돌을 덮어 쌓았는데, 북부는 네모 방형이고 남부는 원형이니 전방후원고분에 대응되며, 탄소측정 연대는 대략 5,000년전으로, 여성나체임부조각상, 대형임신부좌성이 발굴되어 생육신상이라 하며, 그외 타격석기, 돌도끼, 세석기, 뼈화살촉 등이 나오고 홍도편, 채도편, 흑도편, 지자문 위주 질그룻이 많았습니다.
기록에 환웅시대는 녹서, 치우시대는 화서가 있었다고 했는데, 녹서는 백분하 계곡이나 음산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고, 옹고트 석붕산의 질그릇에 새겨진 부호는 마치 꽃문양을 보는 것 같으니 화서로 보여, 홍산문화가 소하연문화로 발전할 때에 14세 환웅 치우가 산동으로 도읍을 옮겨간 때입니다.
또, 소하연문화는 내몽고 오한기, 소하연향, 백시랑영자촌,과 옹고트 해방영자향, 석붕산,의 77좌 고묘장에서 나타났는데 그 시기는 약 4,900년 전, 환웅시대 말기로서 치우가 치하로 청구국을 옮겨가기 직전으로,
3,000년전 하북성 중산국왕의 도끼에 나타난 부호글자와 4,900년전 내몽고 옹고트 석붕산 도자기에 나타난 부호글자, 적봉시와 가까운 옹고트 해방영자향 석붕산 고묘에서 원시적인 부호문자가 사슴 그림과 섞여서 출현하는데, 그중 한 도기에서만 7글자의 부호가 나왔는데, 부호로서 田, 卍 이외에 비飛, 연燕, 부斧, 기己, 을乙 등의 고어체가 있으며, 만卍형 글자에 대하여 백적의 부족 족휘라 보여져, 5,000년전 환웅시대 내몽고의 도자기에 새겨진 부호와, 3,000년전의 백적족 중산국(하북성 석가장시 평산현 영수고성) 도끼의 부호 문양이 일치합니다.
이러한 부호 글은 상형문자 한자의 뿌리이며, 백적족은 주나라 때에 주나라 왕실과 통혼한 단군의 장수가 세운 나라로, 훗날에 적翟을 적狄으로 바꾸어서 북적이라고도 하여, 신석기 말기 배달국이 문자를 이용한 기록이 증명된 것입니다.
배달국 초기는 재세이화를 기반한 홍익인간 사상을 실천으로 교화하는 신교와 삼신을 바탕으로 하는 삼일신고를 만들어 경전으로 삼아 삼신의 경배와 개천의 복을 기원하였는데, 이 제세이화 홍익인간 사상이란 간단히 말하면, 하늘의 법칙을 인간세상의 법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일설에는 홍익인간사상이란 제족의 씨뿌리기 사상으로, 일차적인 뜻은 예배와 수련으로 신인화한 제족을 숭배한다는 뜻이 되며, 그들의 우수한 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고대에 제왕들의 신혼 첫날밤에 왕후를 가로채어 초야권을 행사하던 제족의 절대적 지배권을 나타내던 말이였고, 그와같은 동이제족의 지배가 천하에 해독을 끼친것이 아니라 우수한 후세를 통해 천하를 크게 이롭게 하였음은, '익' 이라는 글자가 지금도 이롭다는 뜻으로 쓰이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는 설인데, 피지배자 입장에서는 자신 신체정신 수련보다는 현실을 개탄하는 심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왕들이 제족의 세계지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원화위인의 입학원서 제출과, 수행이라는 시험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세속을 버리고 제족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은 본격적인 인도를 배우게 되어, 신전의 네 영역인 사해에서 유람하며 수련하며, 그 사례로 한제족의 천자가 숙신씨에게서 옷을 받아 입는다는 기록이, 제족국과 한제국과의 관계사를 말해주며, 한제국의 천자는 곧 조선의 오악에서 수도와 수련을 마친 후 통과의례를 치르고 나서, 하강한 신으로 되며, 그런 신이 북악신(숙신씨)이 내린 서품을 받는다는 것으로 화백제의 일환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에는 때에 자부선생이라는 도고한 이가 있으니, 위로 천문을 통하며 아래로 지리를 살피매 도덕이 고상하므로, 한제국의 헌원황제가 와서 수학한 후 내황문을 받아가지고 본국에 돌아가니라. 하여, 자부선생이란 오악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또 내황문은 음서 즉 지계를 다스리는 정치서인 것이므로, 이 문장은 황제가 가람에 들어와 수도한 후 강신하는 장면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이로써 만신을 불렀다. 하고, 황제가 다시 침벽하고 용도를 '하' 에서, 그리고 구서를 '낙' 에서 받는다고 한 것은, 곧 오월의 왕과 왕비의 축제와 강신제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 황제는 가람에서 수도를 마친 후 강신했는데, 그가 용도를 천신 하 에게서, 그리고 구서를 지신 락 에게서 받았다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기록의 문장에서 황제가 자부선생에게서 내황문을 받았다는 기사와 일치하는 것이며, 수경주는 이러한 강신의 사례를 황제에만이 아니라 요, 순, 우, 탕, 에 대해서도 같은 풍경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도 참선수행의 가르침은 삼일신고에 나오며, 지감법, 조식법, 금촉법, 으로, 지감법은 쉬운말로 감각을 그친다는 말로 주로 불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과 유사하며 여러 도품이 있으며, 조식법은 주로 도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과 유사하며 숨고르와 관련하고 여러 단법이 있어 지금의 국선도에서 행하며, 금촉법은 부딪힘을 삼가하라는 것으로 주로 유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과 유사하게 여러 유교 덕목이 있는데, 선도에서는 이 세가지를 동시에 수련하는 것이라 보고 있으며, 일설에 이 신선도와 산삼을 연관짓기도 합니다.
참고 일반적으로 동양은 유, 불, 선, 세가지의 철학과 역학,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설, 이란 과학이 있으며, 이 삼교삼학이 있는데, 역학은 천문학에, 음양오행설은 물리학에, 풍수지리학은 지리기상학의 서양과 비견되고 있지만, 이 동양 학문이나 제족의 유, 불, 선, 세교를 합친 학이 어려운 이유는, 전달되는 말인 언어 이외의 속하는 부분이 많아 그 요체를 쉽게 전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데, 쉽게보면 불교는 마음, 선도는 신체, 유교는 이름에 각각 매달립니다.
일설에 제족의 구성종족, 달리 말해서 동이족의 기본 갈래는 바로 이민족, 저민족이며, 이 둘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은 우이민족(우리민족)인데, 이신(異神)들이 바로 이민족으로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모습을 바꾸어 웅녀와 동침하였다고 한 기록에서, 모습 바꿈이 바로 탈을 써서 바꿈이었으며, 신이 탈을 써서 모습을 바꾸고 신녀와 동침하는 것을 성혼 또는 신혼(神婚)이라고 하는 것으로, 삼국유사의 처용가는 바로 이 탈쓴 귀신이 초야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여, 지금 전해지는 처용의 탈은 실제로는 처용의 아내와 동침하던 역신이 썼던 탈인 것입니다.
갑골이나 골각문이란 거북등껍질과 소뼈 등에 세겨진 문자로 갑골문의 글에는 천, 제, 방이란 말이 등장하며, 해석상 당시는 은, 상, 주,나라 왕들은 일종의 배달국의 제후국이며, 주요 사안들은 천, 제의 허락이 필요했으며, 심지어 왕도 천, 제, 를 직접 대면하질 못하고, 왕의 종실어른을 통해야 한다 하여, 당시 천, 제인 환웅의 존재가 어떠했는가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록은 모두 갑골문을 해석 할 수 있으므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배달국 환웅의 상징성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전환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웅 자와 솟대 그리고 중앙아시아나 한국에 남아있는 남근상이나 곡옥기 등 여러 유물 유적에서 발견 되며, 특히 옥은 당시부터 최고의 보물로 홍산 요하 지역이나 황하중상류에서 채취하며, 돈황에서 중원까지 물길로 이동된 옥은 곡옥, 잠옥, 옥고 등의 여러 모양으로 발굴 되는데, 이 곡옥이 페르시아나 동신라의 금관에도 나타나므로 해서 광범위하게 사용 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잠옥은 이때부터 양잠과 비단의 생산을 유추하게 합니다.
그 외에도 면직물, 삼베, 모시, 양 개털로 짠 모직도 있었으며, 옥고는 상투를 고정할 때 쓰였는데, 배달국 초기(기원전 3,600~기원전3,000년경) 부터 단군조선 전기 한반도 마한 지역에서 밭유적과 함께 빗금무늬토기 파편과 돌화살촉이 출토 되어 본격농경과 농작물을 심은 것으로 추정하며, 특히 한반도 소도리에선 1만2천여년 전부터 볍씨가 경작된 것으로 보고있고, 특히 상투는 제족인들이 하였는데, 진시황 병마갱의 무사들이 모두 상투를 하고 있습니다.
환웅천왕의 가계 중에는 5세 태우한웅의 손 복희씨, 7세 거련한웅 시 수미르국 탄생, 8세 안부련한웅 시 신농 강씨 출현, 9세 양운한웅 시 이집트 왕조 시작, 10세 갈고 한웅(기원전3,070년) 때 신농국을 공상 서쪽으로 계 합니다, 18세 거불단한웅의 아들 단군왕검이 있으며, 후예로 창힐과 고신씨는 천왕에게 부도의 글을 받았으며, 대요 또한 부도 간지의 글을 받았으며, 특히 신하 우가출신 농관 고시씨 후손 중에는 요임금, 소전씨, 황제헌원, 소호금천, 제곡고신, 방계지류 신농씨 등 범아시아의 제 조상들이나 집단 지도자로 여러 역사서에 등장합니다.
특히 신지씨는 대대로 임금의 명을 주관하는 직책을 맡으며, 명령의 출납과 임금을 보좌하는 임무를 관리하였는데, 사슴 발자국을 보고 창안한 최초의 글 녹도문을 만들었고, 그의 부족들은 대륙 북동지역에 정착하였으며, 고시씨는 농사를 관장하였고, 그의 후손에서 배달의 8세 안부련 환웅천왕의 신하 군병감독관이자 유웅국의 임금 소전씨가 나왔는데, 소전씨·염제신농씨·제임괴·제승·제명·제직·제리·제애·제유망에 이르는 계보가 형성되었으며, 소전의 다른 부인 별파 손으로 공손씨, 황제헌원씨계보가 있으며,
오로지 고시씨의 후예들만이 동남쪽과 반도에 넓게 거처하다가 더욱더 이동하여 변진의 뭇 부족들이 되었으니, 후에 삼한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모두 그의 후손들인데, 그때의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의 후손들이 밖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시례 라 하여 예를 표시 하였으며, 또 이 삼씨의 후예들은 또한 아홉 갈래로 자세히 나누어지는데, 곧 견이·우이·방이·황이·백이·적이·현이·풍이·양이, 의 무리들이 모두 같은 조상의 다른 가지일 뿐, 서로 그리 멀지는 않으며, 치우씨의 부족은 서남의 땅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록에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으며, 신농은 소전의 아들로 소전은 소호와 함께 반도의 조상에 해당하는 고시씨는 배달국의 농업장관인데, 신농은 그의 방계이며, 뒤에 10세 갈고한웅(기원전3,070~기원전2,970년)이 신농의 나라와 구역의 경계를 획정하여 하남성 공상의 동쪽이 제족에게 속했다. 하고, 한웅의 자손 중에 소전이란 사람은 8세 안부련한웅(기원전3,239~기원3,166년)의 말기에 소전은 한웅의 명을 받고 강수에서 병사를 감독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 신농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고, 뒤에 열산으로 이사했는데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을 편리하게 했다. 고 하였습니다.
특히 복희씨는 풍이족 풍씨 후예로 환인과 그의 비 항영이 사람얼굴에 뱀으로 그려지는 풍씨의 자손으로, 만물의 이치인 삼극, 삼태극, 홀수원리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궁극의 바탕을 빼고, 인간사에 널리쓰일 음양을 도식화한 쌍어교미문인 태극문양을 만들어, 이 태극의 시초를 만드는데, 이것은 꼬리를 상반하고 돌아가는 모양으로 물고기의 눈을 그려넣은 것인데, 후에 곡옥의 형상이나 태극무늬가 되며, 음양사상으로 전개됩니다.
참고로 소씨 부소보서에는 횐인의 후예 중 강희가 태산 동부 왕이되어 화서를 봉지로 받았는데, 이때 강희와 화서라는 여자의 모습이 인두사신의 원시적 형태로 남은 그림이 있으며, 또 환인 후예 중 위홍이 황하 중류 신정에 나라를도읍한 청원에도 위 인두사신이 새겨진 제기가 발견되어 풍이족의 면면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복희 다의발한웅천왕의 능은 산동성 어대현 부산에 있으며, 어대현은 물고기문양인 쌍어교미문양과 관련이 있고, 마고를 상징하는 오리는 솟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남한강 수계에는 음력 정월 보름 날 바가지에 식구 수대로 밥 한 숱씩을 담아 떠나보내는 어부심(슴) 신앙이 전해 오는데, 복희에게 복을 빌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본래 복희씨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 낙랑을 거쳐 진陳으로 갔는데 산서성을 다스리다가 산동성으로 갔다. 합니다.
내몽고 오이길목륜하 유역 파림좌기 부하구문화는 약 5,300년전에 시작되었는데, 촌락의 방이 원형인 것이 추가되고, 방 중앙에 화로 구덩이가 나타나고 불을 피워서 추위를 막고 음식을 끓여 먹었고, 그외 뼈를 불에 구워서 점을 치는 복골이 나왔는데, 이는 대륙 최초의 복골이며, 은허의 복골 문화가 본래 홍산문화 신시의 복희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여, 은나라 은허 문명은 바로 홍산 문화와 용산문화의 후손아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은나라 갑골 상형 문자도 여기서 발생하여 전래된 것으로, 한자도 한제족들의 독자적인 문화가 아니라 제족이 홍산문화에서 개발한 기호로서 만들어진 양의 문자입니다.
이러한 홍산문화의 특징은 소위 빗살무늬 도자기 시대였던 선홍산문화인 예맥시대의 단순 기하문의 질박한 회색이나 혹은 황색 토기에서, 홍색 토기에 검은 무늬의 새로운 문화 세력이 이입된 것이며, 다양하고 정교한 옥기로, 용, 돼지용, 물고기, 거북이, 매미, 부엉이, 등과 같은 다양한 토템, 그리고 옥벽, 옥환, 구름무늬장식,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돌을 쌓은 적석총도 나타나고 석곽 무덤과 석관 무덤도 나타나는데, 석관무덤은 요녕성 우하량, 하북성 평천, 위장, 당산, 적봉시 홍산과 하가점, 영성, 등에 존재하고, 화로를 이용한 난방과 역시 불을 이용한 복골의 출현이며, 암각화의 기록으로 태백산이었던 대광정자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서요하의 지류인 케스케덴 백분하 계곡를 따라서 신석기 시대부터 암각화가 발달해 있고, 강안을 따라서 100리에 걸쳐서 약 140개의 암벽에 가지가지 주제로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여러곳의 암화와 비교하여 이곳의 암화 주제 중에 사슴이 유독하게 많아, 부여가 원래 사슴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반면에 부루는 늑대를 가리킨다는데, 단군 부루가 산동에 세운 낭사군 낭사대도 늑대의 낭이며, 백분하 암각화에는 수렵화, 부엉이형 인물화, 군무화, 생식화, 천체성수화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토성자에서도 사냥 기마도 같은 암화가 보이며, 대부분은 청동기 시대 예술로 추정하지만, 일부는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현되어 신석기에 암각화가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주제가 주로 사냥과 목축이므로 유목민족의 생활이기에 환웅이 도래한 홍산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홍산문화의 범위는 동쪽으로 요하 유역, 서쪽으로 하북성 장가구시, 남쪽으로 북경과 천진 북으로는 서요하 북쪽까지 광할한 지역이며, 대략 기원전4,800년에서 기원전2,200년까지인데, 기록상의 환웅시대인 기원전3,898년에서 기원전2,333년까지와는 하한이 거의 일치하며, 웅녀족과 같은 곰 토템을 현재도 가진 에벤키 민족은 퉁구스, 또는 색 륜, 등으로 불려왔는데, 그들은 지금 내몽고의 흑룡강 가까운 최북부 하이라얼시와 몽고, 소련 바이칼호변, 그리고 예르니아강 퉁구스카, 사하공화국 야쿠트공화국까지 퍼져 사는 겨우 수만명의 희소 종족이며, 이들은 아직도 사슴을 키우고, 곰, 멧돼지를 사냥하는 유목민이고, 지야지신(치우기)을 경배하고 또 산신과 불의 신, 그리고 곰을 숭상하며, 또한 그들 사회에서 무당은 신분이 높고, 이들로 인해 샤만 연구가 생겨났으며, 아무튼 이들의 유목 생활 풍습이 백분하 계곡의 암각화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6세 다의발 한웅천왕(3,419~3320년) 태호복희씨는 일명 포희라 하는데, 한자 자획으로 보아 포주박 이나 배와 관련이 많으며, 당시로는 새로운 예악이나 수리사상 여러방면의 문화 등을 서방으로부터 가져왔다 하여, 성경에 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시절과 생애가 겹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복희의 옛 인두사신 그림에 복희 손에든 각자 금척이 있는데, 이 금척의 원리가 나중 한글을 만드는 원리로 작용했다는 연구가 있는데, 천부경과 같은 일종의 수의 원리이며, 수는 제족들의 순수한 말이고, 이 수를 가지고 세상만물의 이치를 알았으며, 그 수학적인 맥이란 바로, 금척의 원리로 만물에 관한 근본이치를 수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며, 우주는 물론 인간생활도 이러한 금척의 원리에 맞게 글을 만들고, 수를 세고, 농사를 짓고 하는 것이 세상사에 있는 인간의 근본도리라 하였습니다.
사실 제족은 부도시절부터 세상을 수의 관점에서 셈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환인시절과 환웅시절을 거치면서 천부경을 근거로한 가르침이 폐관되고, 금척이라는 개념으로 뒤를 잇게되는데, 금척이란 사물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계산법은 계승관계가 비공개로 이어져 단절되고, 신라에서 금척이라는 개념으로 신화 전설로 구전으로 이어지며, 세상의 존재를 10이 아니라 11이나 13의 수로 파악해야 정확하다고 하는데, 신라시절에는 한척(약 23cm), 고구려척(약 35.6cm) 및 당대척(약 29.7cm)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로 일설에는 인도 인더스강 하랍 모헨조다로, 짱후다로 지역에서 출토된 인장에는 머리에 뿔이 있고 세 얼굴이 있는 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많은 여성상과 뱀과 같은 야수들에 싸여서 유가를 행하는 좌상이 있어 유가의 기원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고 전하고 있어, 뱀을 상징한 것은 백사부족으로 복희(기원전 3,512년)씨와 동생 여와(기원전3,419)가 뱀 부족임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 황제(기원전 2,679년)와 치우(기원전 2,707년)의 전쟁으로 많은 인명의 피해가 있었고, 제족은 사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이들은 서남쪽인 인더스강 유역으로 유민으로 이동하여 이루어진 동이제족의 문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인도에 이민족의 침입은 고고학적인 증거와 베다에 나타난 찬가에 보면 토착문화민족을 정복한 것은 인드라신의 위력이라고 찬양하고 있는데, 인드라신이란 인타라이며 인타는 동이지역 땅에 살던 제족의 조상이였던 환인을 뜻합니다.
인도에서 유가(요가)행법이 체계화된 것은 사찰이 생기기 전이며, 원시, 고전, 후기, 현대 요가로 발전되어 왔다고 했는데, 원시유가인 우파니샤드는 산스크리트어, 범어라는 고대인도의 문장어로 쓰여졌다고 하며, 우파니샤드라고 하는 것은 베다 최후의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베단타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우주만유의 일원을 설하고, 우주적인 것과 내가 하나라고 설하는 철학서입니다.
따라서 이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극치라고 말해지고, 또한 이 철학서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가까이 앉아 사제간에 전
수된 우주와 인간의 비밀스런 진리를 전해주는 가르침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파라문의 정통 교리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우파새는 변방에 살고 있는 동이인을 뜻한다면 우파이는 우수한 동이인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파니사지는 우수한 동이들이 도를 통하기 위하여 살던 곳을 뜻하며, 이것으로 우파니사지란 말이 인도로 전해지면서 우파니샤드라고 방언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다른 인물로 배달국 농관 신농국 신농씨는 아시아 의술의 태두로 손수 백초를 맛보고 약효에 대한 체계를 잡았으며, 후에 황제내경과 동의보감 등 동양의학을 꽃피우는데, 당시 신농의 초상에는 어께에 모우미 라는 소꼬리 끝을 끈으로 매단것으로, 지위에 따라 가닥의 수로 신분을 나타내었는데, 이는 제사 때 사용한 소와 관련있으며, 단군영정의 것과 같은 것이고, 또 시장서 물물교환 거래를 주관하는 계주임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일설에 환국 12연방 중 수미르국은 환국, 인도, 수메르가 배달국시절 바다를 통하여 교류가 있었다고 단정하는 설로, 인류 말의 이동, 파생, 변형, 으로 소머리는 6,000년 전부터 환님께 제사드리는 제물로 쓴데서 비롯된 말이며, 소머리 민족 즉 수메르 민족이란 환님의 자손으로 조상이신 환님께 제사드리는 천손민족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드리는 산의 이름은 모두 머리산, 마리산이 되었고 이 말은 만주의 우수주, 가야산의 우두산, 일본의 우두천왕, 우두사가 되었고, 제사드리는 소머리를 흰 소머리로 하였기 때문에 흰머리산이 되었는데, 인도지역에서는 힌머리·히머리·히머리아·히마라야산이 되었고, 한국은 후세에 한문을 쓰게 되면서 백두산이라고 하였으며, 인도의 신두강(sind)도 흰머리강(제일의강)흰물 즉 천수라는 우리말이며, 모헨죠달은 밝달의 '달'을 가져간 말이며, 인도의 힌두교는 바로 흰머리교, 백두교, 소머리교 즉 하느님을 받드는 천신교이며 우리민족의 전통신앙이 됩니다.
참고로 만주 길림성 집안 지역의 고구려 환도 산성 아래에서 5,000여 년 전의 피라미드와 서안 일대의 피라미드 백여기는 꼭대기에 7개의 묘장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으며 배달시대의 것으로,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기원전 2,690년 기자 지역의 키오프스의 피라미드 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것으로, 배달의 피라미드 문화가 메소포타미아(기원전3,500-2,600년) 문명을 거쳐 이집트(기원전 3,100년경) 문명으로 전파된 것이라 보며, 그 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쿠푸왕 피라미드(146.5m) 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0m 이상의 것도 있습니다.
참고로 동양의학은 자연과 삶 조화로움을 으뜸으로 치는 선치라 하여 병을 예방하는 양생을 최고로치며, 음식, 호흡, 수면, 활동, 에서 음양의 조화와 목, 화, 수, 금, 토, 의 자연의 다섯가지 요소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므로, 서로 균형을 잡고 신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음식, 약초, 침, 뜸, 부항, 등의 의료행위를 하며, 인체에 대해서는 기, 혈, 경락, 장부, 로 나누어 진단 처방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여 순수히 본래 상태로 돌리게 합니다.
더욱이 새를 토템으로 하는 환웅, 환족무리와 범의 예족, 곰의 맥족, 이리의 실위족,들의 연맹은 환족과 맥족의 혼인을 통한 결속으로 초대 단군왕검이 나타나게 되면서 종족들 간 갈등을 봉합하고, 더욱 확장된 단군조선을 탄생시킵니다.
환국 시대는 광범위한 무리들이 평화롭게 결속 하면서 대자연의 위기을 극복하였다면, 환웅시대는 인간들간 갈등과 더 적극적인 자연극복을 실천하여 온 시대일 뿐만 아니라, 원시에 머물렀던 무리들의 개화 등을 교화하던 집단 지도자나 종족들의 조상들이 출현하던 시대로 집단지성이 시작되었던 시대인데, 구체적으로 의식주에 대한 도구나 무기, 농경과 의료, 문자와 수리, 의복과 장신구류, 등 문명의 시작과 발달이 이루어진 시대이며, 종족들의 상징이 만들어 지고 분화와 번성의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일설에 동이 등 4이에서 분화되었던 한족들의 명칭이 지나로, 후에 땅이나 지명으로도 동지나, 남지나해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지나라는 말은 복희 8괘상 동북방을 가르키는 동북방 사람이란 말 '진' 이여서 붙여진 것이며, 기록에는 하, 은, 상, 주,나라 이전에는 한족과 동이 제족이 구분없이 살았는데, 은상을 멸한 서주의 세력들이 자신들을 '하' 족이라 부르고 다른 제족을 구분 폄하 하면서 부터인데, 사실상 오늘날 까지 그러한 결합성은 내부적으로는 순작용할지 모르지만 외부적으로 동화 팽창성향은 역으로 작용한다 볼 수 있습니다.
또 제족으로 분리하는 일설로는 마고족이 환족의 단계를 거쳐 배달족으로 넘어오면서 배달족에서 웅족이 나와 분열을 시작하는데, 황제의 난이 웅족과 유응족의 분리가 이족의 춘분의 기운과 하족의 하지의 기운간 분리가 되며, 순의 이차 난을 성공하여 순수 조선족과 하 로 불리우는 순족의 결합이 한민족을 생성하게 됩니다.
제족을 의미하는 한 자에는 조선에 반역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중국의 현대 금문학자인 낙빈기가 밝혀냈는데, 우리 국호 한韓자가 순이 조선에 반란을 일으켜 생겨난 말이라는 것으로, 낙빈기는 요에게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를 찬탈한 순에게서 어길위韋자가 생겨났다고 하여, 해돋을 간자에 어길위韋자를 붙여 만든 문자가 한韓자이므로 조선의 조朝에서 월月을 버리고 위韋를 갖다 붙여 한韓자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며, 또 맹자는 요는 북적지인이고 순은 동이지인이라고 하여, 순이 동이인이고 요가 북적인이라면 요가 치우천왕 쪽의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으로 불리는 순수 동이족은 유망의 후예인 어족과 양족과 환인에서 한웅을 거쳐 치우로 이어지는 사족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를 세우고 민족 3족의 시대를 이어갔는데, 이 3족의 시대에는 동이족과 지나족의 진, 한, 송, 명, 으로 이어져 황제를 조상으로 여기는 하족과 함께 두 줄기 인종이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하게 됩니다.
동이족은 양성의 반응으로 작용하였고, 하족은 음성의 반응으로 작용하여, 동이족을 죽이는 일, 화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동이족의 양성 반응을 풍이족의식이라고 한다면, 화족의 음성 반응은 화교족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고, 삼국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되면서, 동이족과 하족 2가지 민족의식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민족의식이 또 하나 생겨나는데, 일본을 구성한 일본족민족의식으로, 가야,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면서, 일본으로 피란한 풍이족의 후예에게서 생겨난 민족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풍이족을 유추하면 성경에 나오는 사탄의 사 자를 뱀으로 본다면 풍이족과 연결되고, 이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서 존경을 받기를 갈망하였다고 창세기에 나오고, 당시 원주민 유태인이 다른 종족인 풍이족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지만, 풍족의 기원 복희씨의 문장이 두마리의 사람머리에 뱀형상의 모습으로 손에는 지혜와 기술을 상징하는 자를 각기 들고 있고, 이 모습이 세계 의학 의료를 상징하는 로고로 쓰이고, 특히 이 금척이라는 자는 왕가 전통의 지혜의 상징처럼 기록에 나오고 보면, 고대 종족의 시원과 깊은 관련이 있을걸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이라는 호칭에는 마고족, 구한족, 풍이족, 배달족, 구려족, 웅족, 호족, 동이족, 조선족,의 인종역사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들의 주류는 풍이적 사고를 형성하였고, 이들의 비주류는 지나적 사고를 형성하여, 민족의 집단무의식에는 이들 두 민족의식이 뒤섞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요인으로 이후 건국되는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 제이족들이 국가였고, 한족이 주축된 나라들이나 제족들과 연합된 한족왕조들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여, 사실상 한족의 실체는 없다고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기록에도 (중국사전사화) "주나라 앞 시대부터 周가 망할 때까지 동이족의 활동 영역이 사실 지금의 산동성과 하북성의 발해연안, 하남성 동남지역, 강소성 서북지역, 안휘성 중북부지역, 호북성 동부, 요령성 요동반도지역, 조선반도 등으로 광대하다.”고 적혀있습니다.
독자적 문화와 청동기문화로 단군조선, 부여, 의 핵심으로 예맥문화권을 가집니다만, 국가에 속하지 않는 많은 예맥인들도 많았다고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만주 서부의 동호, 오환, 선비계, 몽골계, 동부 만주의 숙신, 읍루, 후에 만주족이 되는 말갈, 여진,의 거주지이고, 송화강 요하 유역, 만주 중부평원, 훈강, 압록강, 대동강, 이 예맥의 주요 근거지이지만, 사실 예맥, 숙신, 동호,는 같은 제족입니다.
이 시대 우주 수리 철학 사상에도 적용과 실제의 분화가 일어나던 시대로, 14세 자오지 한웅(기원전2,706~2,597년 일명 치우천황) 조에 기원전2,500년 치우천왕과 황제헌원 간의 탁록대전을 들 수 있는데, 이 전쟁은 거발한 한웅이 환국시절 배달국 개척 당시 구다천국 전쟁에 이은 두번째 전쟁으로, 당시의 제의인 하늘의 역법을 바꾸어 천하를 바꾸어보려는대서 촉발되었으며, 이는 일, 삼, 오,의 홀수와 중심이 없이 상변하고 순환하는 우주법칙의 비의를 안고 있는 배달국 전통에, 정착되고 짝수와 중심이 있는 순환체계를 고집하는 헌원의 도전에서 비롯된 다툼이었는데,
만약 순환되는 것에 중심이 있다면 일종의 중앙집권적으로 왕권강화가 되여 세상에 수많은 다툼과 알력이 생기게 되므로 이를 반역으로 보는 것이 배달국 입장인 셈이며, 날짜를 정하는 달력도 13월 28일인 옛 방식을 고수하는 배달국과 짝수 12달을 주장하는 차이를 보이게 되어 일종의 달력전쟁인 셈이되고, 어쪄튼 그로부터 오늘날 까지 중심에 세력이 있는 세상이 되었고, 해마다 바뀌는 12월이 되었으며, 정쟁은 늘 되풀이 되고 있으며, 참고로 치우천왕과 관계되는 지명으로는 동평과 거야 가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달력이라고 쓰고 있으나, 사실은 태양력을 쓰는 일력이라 하여야 되고, 이 서구가 쓰던 태양력도 온갖 우애곡절을 거쳐 쓰고 있지만, 매년 날짜가 바뀌어 관련되는 모든 것들을 바꾸어야 되는 번잡한 것인데, 마고시절부터의 13개월 28일의 역은, 년도가 지나도 월수나 일수를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여서, 미래 우주역시대가 오면 쓸 수 있게 된다고 보이며, 제족은 단군조나 고구려에서 구집력을 썻으며, 이후 달을 기준하는 태음력을 써서 농사와 어업, 해양업에 편리하게 써왔습니다.
이때의 조형관인 조형원리는 계속 전래 되는데, 수학 기하 조형의 근간으로 전래되었던 수리원리에 입각해 수 자체를 우주의 법칙인 하늘의 이치를 율력의 하나라 보고 수를 해아리는 것이 곧 우주만상을 아는 것과 같다는 실천적이며 현실적이어서, 수의 가감과 변화인 움직임에 바탕을 둔 제족적 조형관으로, 산수화의 공간은 하나의 경지일 뿐이며, 독립적 실체가 아닌 화가의 심상이 반영되어 형태 보다는 의미와 기운을 중시하며, 비례까지 무시한 심상 기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서구의 조형관은 고정 절대공간으로 형태와 현상의 단순한 배경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합니다.
악기의 시원, 그리고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예악을 만든 이 제족이 융족, 하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이며, 종교의식에는 무술과 기도가 있는데 종교가 바탕인 체가 되고 무술과 기도가 용이 되어 생각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본에 포희씨가 슬(거문고)을 만들었으니 줄이 50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행동하는데 순일(순박)하게 하는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생(동쪽에 설치하는 생황)을 만든 것을 따라 여와가 황(관악기 부리에 장치하여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엷은 조각)을 만들었다’ 했다. 하며, 풍씨인 복희가 풍신과 봉신이 되는데, 고대 음악의 신이기도 하고, 악가의 총명이 됩니다.
우리의 전통악기 생황은 여와가 생황을 처음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그 그림이 천수시 복희묘에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악기형태는 우리의 생황과 같지는 않지만 동일한 이름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복희 천제가 흙을 구워 만든 취주 악기(피리)의 하나로 6개나 8개의 구멍이 뚫린 난형의 악기 훈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이명동기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여와씨의 생황과는 달리 지금의 생황은 박통 속에 죽관을 나란히 꽂은 것으로, 대륙시대의 생황이 반도시대로 들어와 변질된 모습이 되는데, 이 종류의 악기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죽관이 아래쪽 외면에 있는 구멍을 막으면 소리가 나고, 열면 안나며, 죽관 하단에 금속청이 달려서 하모니카와 같은 원리로 숨을 내쉬고 들여마실 때 소리를 냅니다. 36개의 황을 가진 우와 13개의 황을 가진 화 등이 있으며, 국악기 중에 두가지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로서 이를 쌍성주법이라 합니다.
봉선서에 태제가 정의에 이르기를 태제는 태호복희를 이르는데, 소녀로 하여금 50현 거문고를 연주하라 했다. 슬프다. 제가 금하여 중지하지 아니하니 파하여 그 거문고가 25현이 되었다. 라 하고, 효경 구명결에 복희악을 일러 가로대 터를 세운 입기라 하고, 하나 가로대, 부래라 하니 또한 일러 가로대 근본이 서는 입본이라 했다. 또 가로대 축융에 여와의 음악을 일러 가로대 촉속이라 한다’ 했다. 하였습니다.
여씨춘추 적음편에 옛날 고대의 주양씨에 의하면 복희 뒤 신농 아래의 갈천씨, 음강씨, 가 천하를 다스렸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양기가 축적하여 만물이 흩어지고 과실이 열지 않으므로, 사달이 오현금을 만들어 써 음기를 가리고 써 군생을 다스렸다. 하고, 갈천씨의 음악은 세 사람이 소 꼬리를 잡고 발을 던져 써 8결을 노래했다. 그 첫째가 재민, 둘째가 현조, 셋째가 수초목, 넷째가 분오곡, 다섯째가 경천상, 여섯째가 달제공, 일곱 번째가 의지덕, 여덟 번째가 총만물지극이라 일렀으며, 옛 음강씨의 시초에 음 기운이 많아 심히 적체되어 쌓여 있으므로, 수의 도가 옹색하고 그 근원이 행치 아니하니, 민기가 가로막혀 적체가 분명하므로 근골, 슬(거문고)의 다스림이 미치지 아니한 고로 춤을 만들어 추게 하여 펼침으로써 이를 통하게 했다. 고 하였습니다.
예악을 만든 이러한 이 족이 서쪽으로 가서 산서성, 섬서성, 감숙성 동부에 이르렀으며, 대다수의 동이족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융, 하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산해경 대황동경을 보면 조 도등족 소호가 전욱을 키운 대학이 있는데 소호가 거문고를 버려 두었다고 나와, 소호씨가 가야금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고, 또 해내경을 보면 제준이 안룡을 낳았는데 안룡이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었으며 제준이 아들 8인이 있어 노래와 춤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고,
대황서경에 보면 음악을 시작한 동이 족으로부터 구변과 구가를 훔친 기록이 사실대로 나오는데, 서남해의 밖, 적수의 남쪽, 유사의 서쪽에 사람이 있어 두 마리의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는데, 이름을 하후개라고 한다. 하고. 개는 세 차례 하늘에 올라가 천제의 손님이 되어 구변과 구가를 얻어가지고 내려왔다. 이 천목야는 높이가 2,000길인데 개가 여기서 처음으로 구소라는 순이 제정한 원본 노래했다. 하여,
논설에는 동이족의 음악교육이 한제족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 이름이 높아서 한제국의 많은 춤과 악기는 모두 동이인이 창안한 것이라 하였으며, 음악은 주로 제사때 오공금 이라는 옥금과 석경 등 타악기가 홍산제단에서 발굴되었고 주로 사용하였겠지만, 공수 또는 두열(두레)이라 해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노래를 불러 삼신을 경배 기원하였고, 조리 주리라 하며, 삼국사기에는 '도솔'이라 하는 명칭으로 일상에서도 불리웠다 하였습니다.
조형에 있어서는 동양 사양의 갈림길은 남아있는 배달국의 인면사신 복희 여와도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그림에서 여와는 컴퍼스를 들고 있고, 복희는 각자 금척을 들고 있고, 이를 유추하여 보면 이상하리만치 여와의 컴퍼스는 서구 조형에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으며, 선분을 분활하기 용이한 도구로 형태와 비례, 구조에 접근하기 쉬운 도구이며, 컴퍼스로 그린 원이란 공간을 한정지우는데 비하면, 복희가 들고있는 금척 곡자 곡척은 수직 수평 평면적 도형을 그리기 용이하며, 그 선분들이 끝까지 늘어나서, 되려 무한한 추상적 공간을 시간과 함께 유추하게 만들고, 복희의 다른 이름이 포희라 하였고, 이 자획을 풀어보면 대홍수때 배를 타고 왔다란 뜻을 추정하게 만들며, 응축된 문명이 분화되고 체계가 깆추어지고, 퍼지며 교화되는 시기입니다.
단락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