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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살아 있는 한 그만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死 : 죽을 사(歹/2)
而 : 어조사 이(而/0)
後 : 나중 후(彳/6)
已 : 이미 이(己/0)
(유의어)
폐이후이(斃而後已)
출전 :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
이 성어는 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살아 있는 한 그만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말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한 말에서 유래한다.
제갈량은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감명을 받고 그의 천하 경략(經略)을 돕기 위해 온 힘을 쏟기로 결심하였다. 이런 결심은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劉禪)에게도 마찬가지로 충의(忠義)를 다하였다.
출사표(出師表) 후편(後篇)에서 제갈 량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한(漢)나라와 위(魏)나라는 절대로 양립(兩立)할 수가 없습니다. 한나라의 왕업은 익주(益州)같은 한 변경에 치우쳐 있는 땅에 안주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위나라를 멸망시켜서 천하를 통일하고, 왕업을 중원에 확립해야 합니다. 신은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국궁(鞠躬)하여 진력(盡力)하고 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 둔다(死而後已)는 각오로 출진(出陣)합니다. 싸움의 승패(勝敗), 일의 성부(成否)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만, 신은 오직 대망을 향하여 매진할 따름입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悴 死而後已), 이 말은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다. 온 마음의 정성으로 몸이 부숴질 때까지 노력하고, 죽음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그치겠다는 뜻이다.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제갈량이 왕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투구한다는 데서 유래하듯이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
제갈량은 군대를 기산(祁山)으로 진군시켰는데, 일단 후퇴했다가 다시 공격해 들어가서 위나라 군사와 대치했다. 위나라 군사의 대장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제갈량의 실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히 싸우려 하지 않았다.
부장 가익(賈翊)이 사마중달(司馬仲達)에게 말했다. “공(公)은 촉(蜀)을 범같이 두려워 하고 있소. 이는 천하의 웃음거리를 면치 못할 것이오.” 사마중달은 할 수 없이 출격시켰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촉나라 군사도 이미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량이 세상을 뜬 것은 그 다음 출진 때이다.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에도 나온다. 효성(孝誠)이 지극하고 노(魯)나라에서 후학 양성에 주력한 증자(曾子)는 선비 본연의 참 모습을 “선비는 인(仁)을 자기의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데, 이것이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일이니(死而後已) 머나먼 길이다.”라고 하였다.
동의어(同義語)는 폐이후이(斃而後已)로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힘쓴다는 뜻이다.
제갈량의 리더십 中에서
세상에 대충해도 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는 100%의 정력(精力)을 모두 쏟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일을 단조롭게 느끼는 것은 당신이 그 일을 하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태도는 당신을 남과 구분 짓게 하며, 때로는 당신의 생각을 열리게도 하고 편협하게도 하고 당신의 일을 고상하게 혹은 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적극적인 태도로 일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분 일초라도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
단번에 성공을 이루려는 사람은 하루 아침에 비범한 자가 되겠다고 허망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성공을 위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결코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빛나는 정상을 갈망하면서도 험난한 산길을 밟으려고 하지 않으며,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꺼리면서도 승리를 원하는 것과 같다.
열심히 일하라.
열심히 일할 때 당신은 성공할 수 있고, 부(富)와 명예도 얻을 수 있다.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해서 신문고(申聞鼓)를 울려대지도 말 것이며, 일을 대강대강 해치우지도 말라. 근면(勤勉)은 당신이 어려운 난관을 건너서 성공에 이르도록 도와줄 것이다. 근면은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당신을 더욱더 빛나게 할 것이다.
사이후이(死而後已)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인간은 숱한 어려운 순간들을 극복하고 성장과 변화를 추구해 간다. 위기에 닥쳤을 때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다. 실패, 아니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신념과 용기다.
사이후이(死而後已)다. 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살아 있는 한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제갈량이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한 말에서 유래한다. 제갈량은 촉한(蜀漢)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감명을 받고 그의 천하 경략을 돕기 위해 온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이런 결심은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에게도 마찬가지로 충의를 다했다.
출사표 후편에서 제갈량은 “한(漢)나라의 위업은 익주(益州) 같은 변경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위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고 왕업을 중원에 확립해야 합니다”라며 “신은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죽고 나서야 그만두겠습니다(臣鞠躬盡力 死而後已)”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
논어 태백편(泰伯篇)을 인용한 문구다. 증자가 선비 본연의 참모습에 대해 “선비는 인(仁)을 자기의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데 이것이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일이니(死而後已) 머나먼 길이다”라고 한 바 있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역병(疫病)에 강타를 당하고 있다. 국민의 불안은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수학여행은 물론이고 대형병원 예약, 문화·체육대회 등 크고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다. 유커(遊客; 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들의 한국여행 예약 취소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불황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보건당국과 의료진이 정성을 다하고 국민이 협조해야겠다. 인류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 성장해 왔지 않은가.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현대판 명재상으로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주은래(周恩來) 총리를 비롯해 중국의 개혁과 실용주의를 가져온 등소평(鄧小平) 주석, 2022년 9월 모택동 이래 최초로 3연임으로 세계 G2 국가를 이끌고 있는 시진평(習近平) 주석 조차도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이며, 심지어 주은래는 이 말을 그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도 취임사나 퇴임사를 할 때 제갈량의 후출사표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많이 인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는 제갈량의 후출사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며, 가장 제갈량다운 글귀이다. "모든 힘을 다하여 나라를 위하고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는 명구(名句)는 북벌을 이룩하고자 하는 제갈량이 자신의 굳은 의지를 스스로 다짐하는 말로서, 이는 제갈량이 1차 북벌에 실패한 후 다시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한 말이다.
주은래나 등소평 역시 1960년대까지 암울한 후진국 중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방화, 개혁화라는 실용주의 정책을 통해 중국의 근대화를 가져오게끔 한 그 강한 의지를 제갈량의 후출사표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린 지 1년이 지난 228년, 오(吳)나라 장수 육손이 위나라 장수 조휴를 대파하자 위나라 군대는 보복을 위해 동쪽 오나라로 출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많은 신하들이 이러한 제갈량의 2차 북벌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찬성하지 않았다. 특히 유비가 죽을 때 제갈량과 함께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언을 함께 들었던 이엄(李嚴)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이 북벌로 성도를 비울 때 후방의 국정 전반의 책임과 군량 조달의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 은근히 제갈량을 질시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익주자사 유장의 사람으로 유비가 익주에 왔을 때 유비에게 투항했었고, 서촉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의 북벌 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갈량은 젊은 황제인 유선에게 재차 북벌의 필요성을 상주하는 표문을 올렸는데 이 글이 후출사표로, 여기에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말이 쓰여 있다. '생명이 끊어질때까지 사력을 다하며 죽은 후에야 멈춘다'는 이 구절은 제갈량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우가 형주를 잃고나서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어렵게 되었다. 형주는 위나라를 침공하기에 좋은 루트였으나 지금 촉나라는 천하의 한 모퉁이에 지나지않는 익주, 즉 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촉나라는 한나라의 황실을 다시 재건하려는 명분이 있었고 그러기에 한나라 황실을 패망시킨 위나라와는 양립할 수 없었다. 제갈량의 북벌은 여기서 시작된다.
위나라와의 국력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 수록 벌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 당시 삼국의 9주(州) 중 위나라가 6주를, 오나라가 2주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촉나라는 1주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서 제갈량은 선황제(유비)께서 자신에게 한(漢)나라를 훔친 역적과는 함께 살 수 없고, 역적을 칠 것을 유언으로 당부받은 입장이었다.
1차 북벌때 가정전투에서의 마속의 경솔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모르겠지만 점차 촉나라 사정이 여의치 못한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불리할 수밖에 없음을 제갈량은 알고 있었다. 한 쪽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촉나라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처지에서 선제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열세에 놓인 국력에도 불구하고 10년동안의 6번의 기산출정은 그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자 절박함이라 할 수 있겠으며, 그것이 바로 제갈량의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정신이다. 가만히 앉아서 망할 것인가 아니면 무리가 가지만 선제적 공격으로 도박을 할 것인가하는 절박함의 행동 개시가 2차 북벌이라 하겠다.
제갈량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결심을 나타내는 데서 '국궁진췌 사이후이'가 유래했듯이 이 말에는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뜻도 있다. 그러기에 공공조직이나 민간조직의 책임자가 취임사에서 자신의 굳은 신념을 나타낼 때 이 명구를 많이 인용하는 것 같다.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은 뒤에나 그만둘 수 있네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자명(自銘)을 남긴 이준(李埈)
(…)
坐石觀書(좌석관서)
挹泉濯塵(읍천탁진)
바위에 앉아 책을 읽고, 샘물 떠서 티끌을 씻네.
難語乎道(난어호도)
粗適於身(조적어신)
도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거칠어도 몸에는 적합하네.
臨鏡悵然(임경창연)
履氷無幾(이빙무기)
거울을 마주하니 서글프고, 얼음 밟듯 늘 조심스레 살았네.
豈敢自懈(기감자해)
死而後已(사이후이)
어찌 감히 게으르겠는가, 죽은 뒤에나 그만둘 수 있네.
위 글은 이준(李埈)의 자명(自銘) 중 뒷부분으로, 그의 문집인 창석집(蒼石集) 권15 명(銘)에 있다. 자명은 자신의 죽음에 앞서 장차 묘지에 묻을 말을 스스로 쓴 자찬 묘지명이다.
그의 본관은 흥양(興陽, 전남 고흥)이고, 고향은 경북 상주 청리면이다.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1591년 대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 승지· 부제학 등을 지냈다. 이준은 죽은 뒤에나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뿐 살아서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후손에게 주는 말이다. 맨 끝 행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자기 완성을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준은 큰 도로 나아가는 공부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점을 자책하였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길을 가다가 쓰러진다는 뜻의 중도이폐(中道而廢)가 있다. 의지는 있지만 힘이 다해 어쩔 수 없이 쓰러진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 거할편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큰길을 걷노라’는 구절이 있다. 공자가 이를 두고 “도를 향하여 걷다가 중도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날이 힘껏 행하다가 죽은 후에야 그만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준은 자손에게 물려주는 유언을 자기 묘표로 삼게 하였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가업을 후손이 지켜나가길 기대했다. 그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정도(正道)를 지키며 일생을 산 문신으로 평가받는다.
혼탁하고 무분별한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집안에는 가르침이 있다. 부모들은 그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살고, 또 자식들에게 가르침대로 살라고 이른다. 필자는 선친으로부터 ‘올바른 일을 하였더라도 반드시 뒤를 돌아보고 다시 성찰하라’는 뜻인 선행필성(善行必省)의 가르침을 받았다.
▶️ 死(죽을 사)는 ❶회의문자로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는 뼈가 산산이 흩어지는 일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죽어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이 흩어져 목숨이 다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변하니(匕) 죽음을 뜻한다. 死(사)의 오른쪽을 본디는 人(인)이라 썼는데 나중에 匕(비)라 쓴 것은 化(화)는 변하다로 뼈로 변화하다란 기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다. ❷회의문자로 死자는 ‘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死자는 歹(뼈 알)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匕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死자를 보면 人(사람 인)자와 歹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시신 앞에서 애도하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해서에서부터 人자가 匕자로 바뀌기는 했지만 死자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죽음’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死(사)는 죽는 일 또는 죽음의 뜻으로 ①죽다 ②생기(生氣)가 없다 ③활동력(活動力)이 없다 ④죽이다 ⑤다하다 ⑥목숨을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죽음을 사망(死亡), 활용하지 않고 쓸모없이 넣어 둠 또는 묵혀 둠을 사장(死藏), 죽음의 원인을 사인(死因), 죽는 것과 사는 것을 사활(死活), 사람이나 그밖의 동물의 죽은 몸뚱이를 사체(死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죽어 멸망함이나 없어짐을 사멸(死滅), 죽어서 이별함을 사별(死別), 죽기를 무릅쓰고 쓰는 힘을 사력(死力),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 저버리지 않을 만큼 절친한 벗을 사우(死友),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목숨을 내어 걸고 싸움 또는 그 싸움을 사투(死鬪), 죽음과 부상을 사상(死傷),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태어남과 죽음이나 삶과 죽음을 생사(生死), 뜻밖의 재앙에 걸리어 죽음을 횡사(橫死), 참혹하게 죽음을 참사(慘事), 쓰러져 죽음을 폐사(斃死), 굶어 죽음을 아사(餓死), 물에 빠져 죽음을 익사(溺死), 나무나 풀이 시들어 죽음을 고사(枯死), 죽지 아니함을 불사(不死), 병으로 인한 죽음 병사(病死),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부전목(死不顚目),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사중구활(死中求活),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는 사차불후(死且不朽),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는 사생지지(死生之地),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사회부연(死灰復燃), 이미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든다는 사생결단(死生決斷),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사생동거(死生同居), 죽어야 그친다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이라는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已(이미 이)는 ❶상형문자로 본디 지지(地支)의 巳(사)와 같고 뱀 모양을 본떴으나 그와 구별하여 已(이)라 쓰며, 그 음(音)을 빌어 이미, 그치다, 따름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已자는 '이미'나 '벌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已자는 己(자기 기)자와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已자는 己자보다 삐침이 조금 올라와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已자는 본래 다 자란 태아를 그린 것이었다. 已자에 '이미'나 '벌써'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배 속의 아이가 다 자라 이미 출산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已자는 '이미'나 '벌써'라는 뜻 외에도 '매우'나 '반드시', '이것'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已(이)는 ①이미, 벌써 ②너무 ③뿐, 따름 ④매우, 대단히, 너무 ⑤반드시 ⑥써, 써서 ⑦이, 이것 ⑧조금 있다가, 그 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⑨병이 낫다 ⑩말다, 그치다, 그만두다, 끝나다 ⑪용서하지 아니하다, 불허하다 ⑫버리다, 버려두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미 기(旣)이다. 용례로는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왕(已往), 이미 결정했거나 결정됨을 이결(已決), 지나치게 심함이나 정도에 지나침을 이심(已甚), 이미 준비하여 마침을 이계(已戒), 이미 과거에 급제함을 이과(已科), 국가에 대하여 진 빚을 탕감하여 주는 일을 이채(已債), 이미 통과하였거나 통과됨을 이통(已通), 이미 오래 됨을 이구(已久), 이미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이귀(已歸), 이미 지나간 일을 이사(已事),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욺을 이서(已西), 벌써 앎이나 이미 앎을 이지(已知), 이미 다하거나 끝남을 이진(已盡), 이미 기재를 완료함 또는 이미 적재를 완료함을 이재(已載), ~할 따름이나 ~뿐임 또는 ~일 따름임을 이이(而已), 마침내 이미를 과이(果已), 이미를 기이(旣已), 이미 알고 있는 수를 일컫는 말을 이지수(已知數), 마지못하여 또는 하는 수 없이나 어쩔 수 없이를 일컫는 말을 부득이(不得已), 연으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를 이르는 말을 연이생(緣已生), 마지 못하여나 어쩔 수 없이를 이르는 말을 불획이(不獲已), 마지 못하여 할 수 없이를 이르는 말을 비득이(非得已), 쏘아 놓은 살이란 말로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고치거나 중지할 수 없다는 뜻의 속담을 이르는 말을 이발지사(已發之矢), 이미 깨어진 시루라는 뜻으로 본래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파지증(已破之甑), 이미 지나간 일을 이르는 말을 이과지사(已過之事), 이미 지나간 일을 이르는 말을 이왕지사(已往之事), 이미 그렇게 된 일을 이르는 말을 이연지사(已然之事), 일이 매우 급박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박부득이(迫不得已), 시루가 이미 깨졌다는 뜻으로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증이파의(甑已破矣), 죽어야 그친다는 뜻으로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함을 이르는 말을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