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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제육(善行第六)11
時에 易疾이 始二日 이러니 醫云 欲知差劇인댄
시 이질 시이일 의운 욕지차극
但嘗糞甛苦이라하여 易가 泄利어든 黔婁가 輒取
단상분첨고 이 설리 검루 첩취
嘗之하니 味轉甛滑이어를 心愈憂苦하여 至夕에
상지 미전첨활 심유우고 지석
每稽顙北辰하여 求以身代하더라
매계상북신 구이신대
그 당시에 유이의 병은 시작된지 이틀이 되었으니. 의원이 말하기를 “병이 낫고 있는지 심해지는지 알고 싶으면 다만 똥이 단지 쓴지 맛보면 됩니다"라고 하였 기 때문에, 유이가 설사를 하면 유검루가 그것을 가져 다 맛을 보았더니 맛이 달고 미끄러워서 마음속으로 더욱 걱정스럽고 괴로워 저녁이 되면 늘 북극성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기가 대신 앓게 해달라고 빌었다.
16.海虞令何子平이 母喪에 去官하고 哀毁踰禮
해우령하자평 모상 거관 애훼우례
하여 每哭踊에 頓絕方蘇하더라 屬大明末에 東土
매곡용 돈절방소 촉대명말 동토
가 饑荒하고 繼以師旅하니 八年을 不得營葬하여
기황 계이사려 팔년 부득영장
晝夜號哭호대 常如袒括之日하여 冬不衣絮하고
주야호곡 상여단괄 지일 동불의서
夏不就清凉하며 一日에 以米數合으로 為粥하고
화불취청량 일일 이미수흡 위죽
不進鹽菜하더라
불진염채
해우현령 하자평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적에 벼슬 을 버리고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짐이 예법을 넘어서 서, 곡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갑자기 기절했다가 얼마 후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대명 말기에 동쪽 지방에 기근이 들고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 8년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밤낮으로 울며 곡하기를 언제나 마치 엊그제 돌아가신 것처럼 하여,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가지 않았으며,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어 먹고 소금에 절인 채소는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所居屋敗하여 不敲風日이어늘 兄子伯興이 欲為
소거옥패 불패풍일 형자백흥 욕위
茸理한대 子平이 不肯曰我는 情事를 未申하니
즙리 자평 불긍왈아 정사 미신
天地一罪人耳라 屋何宜覆리오 蔡興宗이 為會稽
천지일죄인이 옧하의부 채흥종 위해계
太守이라 甚加矜賞하여 為營塚壙하니라
태수 심가긍상 위영총광
살던 집이 허물어져 바람과 햇빛을 가리지 못했는데, 형의 아들 백흥이 지붕을 이어 수리를 하려 하자 하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 하기를 "나는 아직 어머니 장례를 다 치르지 못했으 니. 하늘 아래 죄인일 뿐이라 집에 어찌 지붕을 덮겠 는가?"라고 하였다. 채흥종이 회계태수가 되어 몹시 불쌍하면서도 훌륭하게 여겨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선행제육(善行第六)12.
18.伊川先生家가 治喪에不用浮屠하시니 在洛에
이천선생가 치상 불용부도 재락
亦有一二人家가 化之하니라
약유일이인가 화지
이천 선생의 집안이 상을 치를 때에 불교의 예식을 이용하지 않았으니, 낙양에 있을 때에도 한두 집안을 교화한 일이 있었다.
19.霍光이 出入禁闥二十餘年에 小心謹愼하여
곽광 출입금달 이십여년 소심근신
未嘗有過하더라 為人이 沈靜詳審하여 每出入下
미상유과 위인 침정상심 매출입하
殿門에 進止有常處하더니 郎僕射가 竊識視之
전문 진지유상처 랑복야 절지시지
하니 不失尺寸하더라
불실척촌
곽광이 궁궐을 드나든 지 20여년 동안에 조심하고 삼가서 일찍이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자세히 살펴서, 나가고 들어갈 때 마다 궐문을 내려오면서 나아가고 멈추는데 일정한 지점이 있었다. 낭관과 복야들이 몰래 표시를 해두고 엿보았더니 한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20.汲黯이 景帝時에 為太子洗馬하여 以嚴見惲
급암 경제시 위태자세마 이엄견탄
이러니 武帝가 即位하여 召為主爵都尉하니 以數
무제 즉위 소위주작도위 이삭
直諫으로 不得久居位하니라 是時에 太后弟武安
직간 부득구거위 시시 태후제무안
侯田蚡이 為丞相이라 中二千石이 拜謁이어든
후전분 위승상 중이천석 배알
蚡이 弗為禮하더니 黯은 見蚡에 未嘗拜하고
분 불위례 암 견분 미상배
揖之하더라
읍지
급암이 경제 때에 태자세마가 되어 엄격함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워하였다. 무제가 즉위하여 급암을 불 러 주작도위로 삼았더니 자주 직간을 하여 벼슬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 당시에 태후의 동생 무안후 전분이 승상 자리에 있으면서 녹봉 2천 석에 해당하 는 관리들이 배알을 하면 전분이 답례를 하지 않았더니. 급암이 전분을 만날 때에 절을 하지 않고 읍을 하였다.
上이 方招文學儒者이러니 上曰 吾欲云云하노라
상 방초문학유자 상왈 오욕운운
黯이 對曰 陛下가 內多欲而外施仁義하니 奈何
암 대왈 폐하 내다욕이 외시인의 내하
欲效唐虞之治乎잇고 上이 怒變色而罷朝하니
욕효당우 지치호 상 노변색이 파조
公卿이 皆為黯懼하더니 上이 退謂人曰 甚矣라
공경 개위암구 상 퇴위입왈 심의
汲黯之戇也이여
급암지당야
왕이 그때 막 문학하는 선비들을 초청해놓고 있었으니. 왕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 다”라고 하자 급암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안으로는 욕심이 많으시면서 밖으로만 인의를 베푸시니, 어째서요. 순의 정치를 본받고 싶어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화가 나 얼굴빛을 바꾸면서 조회를 마치니 공경 들이 모두 급암을 위해 염려하였는데, 왕이 조회에서 물러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급암의 고지식함이 심하구나"라고 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14
群臣이 或數黯한대 黯日天子가 置公卿輔弼之臣
군신 혹수암 암왈천자 치공경보 필지신
은 寧令從謏承意하여 陷主於不義乎리오 且已在
녕령종유승의 함주어불의호 차이재
其位하니 縱愛身이나 奈辱朝廷에 何오
기위 종애신 내욕조정 하
여러 신하들이 급암을 책망하자 급암이 말하기를 “천자가 공경과 보필하는 신하들을 두는 것이 어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춰 주군을 불의함에 빠뜨리도록 하려는 것이겠는가? 또 이미 그 자리에 있으니 비록 자신을 아끼기는 하겠지만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黯이 多病하여 病且滿三月이어는 上이 常賜告
암 다병 병차만삼월 상 당사곡
者가 數호대 終不愈이러니 最後에 嚴助가為請告
자 삭 종불유 최후 엄조 위청곡
한대 上이 曰 汲黯은 何如人也오 日 使黯으로
상 왈 급암 하여인아 왈 사암
任職居官하면 亡以癒人이어니와 然이나 至其輔
임직거관 망이유인 연 지기보
少主守成하얀 雖自謂賁育이라도 弗能奪也
소주수성 수자위분육 불능탈야
이리이다 上이 日 然하다 古有社稷之臣이러니
상 왈 연 고유사직지신
至如汲黯하얀 近之矣로다
지여급암 근지의
급암이 병이 많아서 병이 장차 3개월이 다되었는데, 왕이 늘 휴가를 내린 것이 여러번 이었지만 끝내 병이 낫지를 않았으니, 최기를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자 "급암으로 하여금 관직을 맡아 벼슬자리에 있게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가 어린 임금을 도와 왕업을 지켜나감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이나 하육만큼 용감하다는 사람이 오더라도 그 역할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왕이 “그렇다. 옛날에 사직을 지키는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이라면 거기에 가깝다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大將軍青이 侍中에 上이 鋸厠視之하고丞相弘이
대장군청 사중 상 거측시지 승상흥
宴見이어든 上이 或時不冠호대 至如見黯하여는
연현 상 혹시불관 지여견암
不冠不見也이러라 上이 嘗坐武帳이어늘 黯이
불관불견야 상 상좌무장 암
前奏事이러니 上이 不冠이라가 望見黯하고 避惟
전주사 상 불관 망견암 피유
中하여 使人可其奏하니 其見敬禮가 如此하더라
중 사인가기주 기견교례 여차
대장군 위청이 왕을 모시는 동안에 왕이 평상 가에 걸터 앉아 그를 쳐다보았고, 승상 공손홍이 한가할 때에 왕을 알현하면 왕이 이따금씩 관을 쓰지 않았는데, 급암을 만나는 경우에는 관을 쓰지 않고는 만나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군막에 앉아 있는데 급암이 앞으로 나와 어떤 일을 아린 적이 있었으니, 왕이 관을 쓰지 않고 있다가 멀리서 급암을 발견하고는 군막 안으로 피하여 다른 사람을 시켜 그에게 아뢰어도 된다고 하였으니. 그가 공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았다.
선행제육(善行第六)15
21.初에 魏遼東公翟黑子가 有寵於太武하더니
초 위요동공 즉흑자 유충어태무
奉使并州하여 受布千疋이러니 事覺이어늘 黑子
봉사병주 수포천필 사각 흑자
가 謀於著作郎高允日 主上이 問我어시든當以實
모어저작랑 고윤왈 주상 문아 당이실
告아 為當諱之아 允이 日 公은 惟幄寵臣이니 有
고 위당휘지 윤 왈 공 유악총신 유
罪首實이면 庶或見原이어니와 不可重為欺罔也
죄수실 서혹견원 불가중위 기망야
이니라
처음에 위나라 요동공 적흑자가 태무제의 총애를 받더니 병주에 사신으로 가서 베 천필을 받았다가 이 일이 들통이 났는데, 적흑자가 저작랑 고윤에게 상의하여 말하기를 "주상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마땅히 사실을 아뢰어야겠습니까. 당연히 숨겨야 되겠습 니까?"라고 하였다. 고윤이 말하기를 "공은 참모이자 총애 받는 신하이니 죄가 있어도 사실대로 자수하면 아마도 거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니, 거듭 속이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자.
中書侍郎崔 鑑公孫質이 曰 若首實이면 罪不可
중서시랑최 감공손질 왈 약수실 죄불가
測이니 不如姑諱之니라 黑子가 怨允日 君은
측 불여고휘지 흑자 원윤왈 군
奈何로 誘人就死地오하고 入見帝하여 不以實對
내하 유인취사지 입견제 불이실대
한대 帝가 怒하여 殺之하시다
제 노 살지
중서시랑 최감과 공손질이 말하기를 "만약 사실대로 자수하면 죄를 예측할 수가 없으니 우선 숨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적흑자가 고윤을 원망하며 말 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사람을 꾀어 죽을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가?"라고 하고는 들어가서 태무제를 알현하여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자, 태무제가 화가 나서 그를 죽였다.
帝가 使允으로 授太子經하더니 及崔浩가 以史事
제 사윤 수태자경 급최호 이사사
被收하얀 太子가 謂允曰 入見至尊하여吾自導卿
피수 태자 위윤왈 입현지존 오자도경
호리 脫至尊이 有問이어시든 但依吾語하라 太子
탈지존 유문 단의오어 태자
가 見帝言호대 高允은 小心慎密하고 且微賤이라
현제언 고윤 소심신밀 차미천
制由崔浩하니 請赦其死하소서
제유최호 청사기사
태무제가 고윤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경전을 가르치라고 하였더니, 최호가 국사 편찬의 일로 인해 잡혀감에 이르러 태자가 고윤에게 말하기를 "들어가서 지존을 알현하고 내가 직접 경을 데리고 들어갈 테니. 만약에 지존께서 물으시거든 단지 내가 말 한대로만 하시오"라고 하고는 태무제를 알현하여 말하기를 "고윤은 조심스럽고 아주 신중하며, 또직 책이 낮은 사람입니다. 역사기록은 최호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니 청컨대 그의 죽음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16
帝가 召允하여 問日 國書가 皆浩所為乎아 對曰
제 소윤 문왈 국서 개호소위호 대왈
臣與浩가 共為之호니 然浩는 所領事多이라總裁
신여호 공위지 연호 소령사다 총재
而已니와 至於著述하여는 臣多於浩호이다
이이 지어저술 신다어호
태무제가 고윤을 불러서 "국사책이 모두 최호가 지은 것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저와 최호가 함께 지었습니다. 그러나 최호는 담당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총괄하여 결재만 하였을 뿐, 저술과 관계된 일은 제가 최호보다 많이 하였습니다"라 고 하였다.
帝가 怒日 允罪가 甚於浩이로소니 何以得生
제 노왈 윤죄 심어호 하이득생
이리오 太子가 懼曰 天威嚴重하시니 允은 小臣
태자 구왈 천위엄중 윤 소신
이라 迷亂失次耳로소이다 臣이 曏問호니 皆云
미란실차이 신 향문 개운
浩所為라 하더이다
호소위
태무제가 화가 나서 말하기를 "고윤의 죄 가 최호보다 심하니, 어찌 살려둘 수가 있겠는가?" 라고 하였더니, 태자가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폐하의 위엄이 엄중하십니다. 고윤이 하찮은 신하이다 보니 헷갈리고 혼란스러워 앞뒤를 바꿔 말했을 뿐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물어보았더니 모두가 말하기를 최호가 지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帝가 問允호대 信如東宮所言乎아 對曰臣이罪當
제 문윤 신여동궁 소언호 대왈신 죄당
滅族이라 不敢虛妄이니이다 殿下가 以臣이 侍講
멸족 불감허망 전하 이신 시강
日久이라 哀臣하사 欲其生耳언정 實不問臣
일구 애신 욕개상이 실불문신
하시며 臣亦無此言호니 不敢迷亂로소이다
신역무차언 불감미란
태무제가 고윤에게 묻기를 "진실로 동궁이 말한 것과 같으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저의 죄가 일족을 멸하기에 마땅 하므로 감히 헛되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제가 모시고 강의한 지가 오래되다보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저를 살려주십사 빌고 싶으셨을 뿐이지. 실제로는 저에게 묻지 않으셨으며 저 또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 감히 헷갈리고 혼란스럽지가 않았습 니다"라고 하였다.
帝가 顧謂太子曰 直哉라 此가 人情所難이어늘
제 고위태자왈 직재 차 인정소난
而允이 能爲之하니 臨死不易辭는 信也이오為臣
이윤 능위지 임사불역사 신야 위신
不欺君은 貞也이니 宜特除其罪하여 以旌之라하
불기군 정야 의특제기죄 이정지
시고 遂赦之하시다
수사지
태무제가 태자를 돌아보며 말하 기를 "정직하구나. 이것이 사람의 감정으로는 해내 기 어려운 것인데, 고윤이 능히 그렇게 하였구나. 죽음 앞에서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믿음직함이고, 신하가 되어 임금을 속이지 않는 것은 올곧음이니, 특별히 그의 죄를 덜어주어 그를 신임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를 사면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