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20250214
나는 18년 인생에 로맨스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 음악에 관한 영화 보려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로맨스 영화를 보고 말았다.
“동욱이랑 영화 보고 올게요.”
“무슨 영화 볼 거니?”
“‘말할 수 없는 비밀’ 리메이크요.”
“남자 둘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네.”
“헉….”
의문의 1패를 당하고 간 영화관에는 생각보다 커플이 많았다. 왠지 내 기대와 다르게 음악에 관한 내용이 아닐 것 같아 시작부터 불안했다.
영화 전체에서 피아노와 음악의 비중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광선검이 차지하는 정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도 완전 영화에서 나올 법한 사랑이었다. 주인공 유준과 정아는 오래된 피아노 연습실에서 처음 만나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서로에게 설레서 잠도 못 잔다. 또 잔잔한 호수 옆길을 걸으며 대화한다. 노래 가사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강해 전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에는 설렘뿐 아니라 도움과 기다림도 있다. 그래서 더 영화 같다. 유준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지만 정신적 문제로 유학 중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뒤로는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영화는 유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음을, 또 어머니가 가정보다 피아노에 신경 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아는 피폐한 유준을 도와준다. 유준은 정아와 대화하고 같이 피아노를 치며 마음을 추스른다.
또 그들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정아는 때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전화번호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준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정아가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캐묻지 않는다. 오히려 정아를 기다린다.
영화관을 나서며, 내 친구는 “이런 사랑은 현실에는 없지”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었어.” 정아는 유준에게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정아의 말처럼 설렘과 도움, 기다림까지 갖춘 그들의 사랑은 기적이다.
그런데 그 기적은 유준과 정아가 만든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정아가 사라지며 그들은 서로 떨어진다. 그때 그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 연주회를 팽개치고, 심지어 무너지는 건물에 뛰어들며 삶을 건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 유준과 정아가 처음 만난 것도, 떨어진 후 다시 만난 것도 진짜 마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가만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유준과 정아처럼 삶을 걸면서까지 달려가 잡아야 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 유준과 정아의 사랑은 우리가 바라는 기적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했을 때 가능했다. 어쩌면 우리는 나에게 맞는 기적 같은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연인 관계뿐 아니라 가족 관계,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며 아름다운 관계라는 기적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꾸는 것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