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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먹을 게 풍년...)에 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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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부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식당 조리장이 음식을 잘해서, 모두들 거기서 밥 먹는 걸 좋아합니다.) 제 숙소에 돌아와, 평소 대로 낮잠을 잤던 건데요,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래서 비몽사몽(잠이 든 얼마 안 돼서 걸려온 전화였던 듯) 일어나 받아 보니,
오전에 농장견학을 했던 바로 그 강사님이드라구요.
"선생님, 몸은 좀... 어떻습니까?"(아까, 침 맞은 곳에 대한 확인 전화였던 것입니다.) 하고 묻기에,
"아, 예... 좀 가벼운 것 같은데요......"
"아, 그렇습니까? 혹시 부작용은 없는지, 전화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가지고는 바로 나을 수가 없을 테니, 더 맞으셔야 할 겁니다."
"그런가요?"(저는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약간 멍- 한 상태였지요.)
"예, 그러니... 제가 거기 '소천'에 갈 일이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자주 가는 곳이니까요."
"아, 그러세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하는 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여전히, 잠시 멍- 하고 있었던 저는,
'근데, 그 양반... 오전에 침을 놔주고는, 본인이... 직접, 이렇게 확인까지 하네?' 하면서, '성의가 대단하네... 그리고 굉장히 적극적이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뜻밖이었고, 더구나 자다 일어나 받았던 전화라... 겨우 그러고 있었는데,
제가 앉아 있던 바로 옆(숙소 정면 대형 창) 블라인드를 살짝 들춰 보니(밖을 내다보려고),
어?
비가 내리고 있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가을비였는데, 많이 내리는 건 아니었지만, 숙소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기 데크에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참... 축축한 분이기드라구요.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 한 잔 하기 딱 좋은 날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그와 동시에,
'아, 아까 그 양반... 그 분도 혼자 살던데, 오늘 같은 날은... 뭘 할까?' 하면서는,
'내가 아까 전화를 받을 때 비가 오는 줄을 알았다면, 여기로 오라고 초대했을 텐데... 그때는, 비가 오는지 해가 떴는지 알지도 못한 상태여서......' 하다간,
'그냥, 한 번... 오라고 초대할까?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면 좋을 테니까. 어차피 그 양반도 혼자 사는 사람이니, 이렇게 비가 추질추질 내리는 날... 멋쩍게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하는 생각이 미치면서는,
이번엔 제 쪽에서 전화를 걸었답니다.
"예, 선생님..."
"혹시 거기도(상운면) 비가 내립니까?"
"예."
"그래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화를 끊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리기에... 선생님도 혼자 계실 거 아니에요?"
"예."
"그러면, 마땅히 하실 일이 없다면... 여기로 오세요. 이렇게 비도 내리는데, 막걸리 한 잔 합시다! 일단 저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한... 다섯 시 정도까지 오시면, 간단하나마... 술 한 잔할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했더니,
"저는 술을 못하는데요. 그렇지만, 좀 기다려 보세요. 제가... 다시 전화 드리고, 가 뵙겠습니다. 가서, 거기 공동체의 다른 선생님들도 뵙고요(아까 서로들 전화번호 등을 교환하고 그랬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전화를 끊긴 했는데,
'술을 못하신다고?' 저는 갑자기 김이 새는 기분이었답니다.
사실 제 생각은,
'침'을 맞는 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날씨도 그런데... 아까 오전엔 공식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개인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기에, 막걸리라도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면 좋겠기에 했던 '초대'였는데, 술을 못한다니......
마침, 군산에서 왔던 친구가 내 부탁으로 사왔던 '군산 보리 막걸리'가 세 병이 있어서,
'김치부침개'든 '두부김치'든(나중에 전화가 다시 오면, 오는 길에 두부 좀 사오라고 할 생각으로) 만들어서... 술을 한 잔 한 뒤,
(그 막걸리가 부족하면... 얼마 전 우리 공동체에서 실습으로 만들었던 '동동주'도 있었기에, 모자라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도 차를 몰고 올 터라, 그러면(음주운전을 하면 안 되니)... 여기 내 숙소 다락방에서 하룻밤 자고 가도 될 터라(혼자 사는 사람이니, 누군가의 허락 같은 게 필요없을 자유로운 몸일 터라), 맘 푹 놓고... 비오는 오후(저녁)를 함께 즐기자(?)는 생각이었는데......
뭔가 알맹이가 쏙 빠진 느낌이드라구요.
그러니, '내가 '초대'를 하긴 했는데,
'이것도... 초댄가?' 하고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얼마 뒤에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춘양'에 와 있는데요... 지금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근데요, 술도 못하신다니... 그럼, 술 대신... 저녁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찬은 없지만, 그래도... 간단하게나마......" 하자,
"아닙니다. 저녁은 못하고요... 대신, 제가 다른 한 사람과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하기에,
"예? 그래도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럼, 그 분과 술을 한 잔 하면 되겠네요?" 하고, 오히려 잘 됐다며 제가 묻자,
"이 분도 술은 못합니다. 그러니, 준비 같은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되고, 일단 찾아 뵙는 걸로 하겠습니다." 하는데,
제가 마땅히 할 말이 없드라구요.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니었겠습니까?
아무튼, 오라고는(초대는) 했는데,
술을 못한다지, 밥도 안 먹는다지......
'그럼, 내가 할 일은?'
정말, 애매하기 짝이 없었답니다.
아니, 손님들은 온다는데, 뭔가 대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것인데,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그렇다고 뭐, 특별한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커피'도 없고......
그러니...
'하는 수 없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까 그 집에서 가져온, 포도와 복숭아는 얼마든지 있으니, 그런 과일이라도 먹으면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기까지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드라구요.
그런데 그 때, 밖에 108호 '0 선생님'이 지나가기에,
저는 얼른 문을 열고 그 분을 세웠습니다.
"0 선생님, 아까 그 분요... 오늘 오전에 갔던......"
"예!"
"그 분이 온다거든요? 이미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 함께 하시죠!" 했더니,
"그래요? 근데... 제가 집에 있을지 나갈지 잘 모르는데......" 하기에,
"아무튼, 그 분이 오면 연락을 할 테니... 함께 합시다!" 하자,
"예, 상황이 되는 대로 합시다." 하는 약속까지를 잡아두었답니다.
그리고 그 얼마 뒤, 두 사람이 도착했는데,
나는 그 선생님이 자신의 트럭을 타고 올 줄 알았는데, 승용차를 타고 왔더라구요. 아마 다른 분의 차로 바꿔타고 왔던가 봅니다.
아무튼 두 분을 숙소에 모셨고,
0 선생님한테 연락을 했더니, 지금 밖에 있다고 해서...
셋이서만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뻔하잖습니까?
내 숙소에 들어오면 벽면에 그림들이 붙어 있자,
새로 오신 분(젊던데)이,
"화가세요?" 하고 물었고,
"예..." 하면서,
일단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 자신 소개를 하고, 그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밖에 나가선... 제 스스로 '화가네, 글을 쓰네...' 하는 얘기는 않지만, 이렇게 제 방을 공개하게 된 사람들에겐, 그런 얘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제 책도 몇 권 이 숙소에 있다 보니, 그런 얘기까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근데요,
그렇게 어쩌면 초면일 수도 있는 손님들이 둘이나 왔는데도, 맹숭맹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과일이라도 좀 내올까요?" 했는데,
"저는 과일은 먹지 않습니다."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에? 아니, 그런데... 그 많은 과일 농사를 짓는 분이, 과일도 안 드신다니......"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본인 체질이 과일을 먹으면 안 된다면서, 대신 육식만을 한다더라구요.
그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럼, 여기 새로오신 분은......" 하는데,
"저는 과일은 먹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하기에,
"그럼... 이제 저녁이 돼 가니, 뭔가... 식사라도 준비해야 할 거 아닌가요?" 하자,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으세요." 하고, 둘 다 손사래까지 치니,
"그렇다고 이렇게 맹숭맹숭하게 앉아서 얘기만 하기가..." 하는데도,
"괜찮습니다." 하기만 하니,
아니, 사람들이 탁자에 뭔가를 두고 마시거나 먹으면서 얘기하는 것과, 그저 멀뚱멀뚱 얘기하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원래 그러려고 그 분을 초대했던 건데,
그 상황은 제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오히려 불편하기 짝이 없드라구요.
아니, '건강'이라든지, 제 얘기라든지(책도 있었으니까), 그 분들의 얘기라든지... 를 하면서도,(새로온 분은, '씨름선수'였다네요. 아닌 게 아니라 덩치가 컸는데...... 그리고 그 강사님은, 뭔가 동양사상에 젖어... 그러면서 침도 놓는 등, '사람의 체질' 연구를 한다는데, 본인은 '육식 체질'이라, '채식'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히 숙소의 난방을 틀어놓았기에, 방바닥은 따뜻했고(고실고실한)...뭔가 안정감은 없었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밖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는데(5시 반이 넘었을까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0 선생님이 냄비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던데......
그러니까 그 분은 밖에서 일을 보고 들어오다가, 여기 내 숙소에 불이 켜 있고(블라인드를 올려놓았던 상태) 안에 몇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았기에,
자기 집에 가서 뭔가 음식을 준비해 온 모양이었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이미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걸로 알고, 본인도 빈손으로 오지 않고 뭔가를 준비해 왔던 건데요.)
알고 보니, 김치찌개와(맛있었습니다.), 브로콜리를 찍어먹자고 가져 왔는데,
그 자리의 상황파악을 하면서는(그 분도 깜짝 놀라면서),
"그럼, 식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했는데,
그 강사님은 밥도 안 먹는다고 했지만, 씨름선수는 그것까지는 부정을 않자,
"내가 지금이라도 밥을 해야겠네요."하고 제가 일어나자,
"아니, 그럴 필요 없이... 제가 우리집에서 가져오지요." 하더니 금방 나가,
저는 '지호씨' 숙소에 가서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가져왔고,
0선생님은 자기 숙소에 가서 '초장'에 '플라스틱 통에 든 밥'(식은밥)을 가져와,
여기 '전자렌지'에 돌리고...
금방, 뭔가 식탁이 차려지긴 했답니다.
근데요, 그것도 이상하잖습니까(웃기지 않습니까)?
손님들은 아무 것도 안 먹는다고 하고(그 강사님),
집 주인(저)은, 뭘 어찌 할 줄 모르고... 어정쩡하게 있고,
제 3자였던 0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가져오니......
씨름하는 분은, 그제야... 밥은 먹겠다고 해서,
제가 한 것은, 얼마 전에 본부에서 얻어왔던 '열무김치'를 내온 것이 전부였답니다.
그렇게 상이 차려지자,
그제야... 0 선생님이,
"그럼, 우리 둘만이라도... 막걸리 한 잔 합시다." 하기에,
저와 0 선생님은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씨름하는 분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는데(맛있게 먹드라구요. 물론 그게 정상일 텐데......),
그 강사님은, 그 무엇도 입에 대지 않은 채(물 한 모금)... 그 '이상한 자리'는 이어지고 있었답니다.
뭐, 0 선생님이 자리에 끼니(?)... 또 얘기는 한참을 이어지게 되었는데요,
좌우간, 우리(나와 0선생)는 막걸리 두 병을 비웠고...
일단 사람들이 모여(네 사람이나) 한참을 떠들었는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얼마 뒤에, 여전히 비가 오는 밤에... 두 분은 차를 타고 돌아갔답니다.
그래서 뒤처리를 하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자리'였답니다.
(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큰, 이해 못할 자리였다는 거지요.)
그 모두가, 내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 분도 혼자 사는 사람이라, 그럴 줄 알고.... 내 편한 생각만 했던 결과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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