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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양, 사양) 됐어. 안 그래줘도 돼. ”
“어쨌든 만나서 얘기하자니깐? ”
언니의 협박에 못이겨, 난 삼성역으로 향했다. 물론 후줄근한 청바지 찍찍 끌고, 티셔츠
입고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말이다. 물론 이 꼬라지 한 채로 현준이도 만날 생각이다.
역을 나와, 바로 오른쪽에 있는 KFC 앞에서 언니를 만나기로 했기에 그 쪽으로 향했다.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키는 시연이었기에 나도 그에 맞춰서 칼같이 나왔다.
한 편, 시연은 운전을 하면서 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돌아가신 이모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이름에 ‘복’자가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아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집안 때문에 그런지 왠지 그 말을 믿고 있다. 우리 큰 이모, 복수
이모는 워낙 우리가 어려서 돌아가신 터라, 엄마한테 말씀만 들었는데, 결국은 머리가
이상해져서 돌아가셨단다. 복수이모는 머리가 워낙 좋아서, 돈도 잘 벌었단다. 그래서
그 덕에 이모부가 돈 펑펑 쓰고, 또 여자질까지 해서 딴 살림도 차렸단다. 그걸 알게 된
큰이모가 뭐라고 그러자, 큰이모부는 식칼을 이모 목에다 대면서 협박을 했단다.
아무도 몰랐지만, 그 때 이미 이모는 그 충격으로 머리가 이상해 졌다고 한다. 서서히 치매 비슷한
이상한 증상을 보이더니만, 나중에는 우리 엄마가 찾아 갔는데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농장하면서 소치던 이모부가 집에 가둬놓고 밥도 안주고 그래서, 배고파서 장판을 다 뜯어
먹어서 방에 장판이 하나도 없었단다. 엄마가 찾아 갔더니, 엄마가 신고 온 신발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방으로 들어와서는 ‘멍~’하니 쳐다보면서 ‘참, 곱다’만 연발하더란다. 엄마가
이모한테 갔다 와서는 펑펑 울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 이름도 복례, 우리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우리엄마는 대장암으로 돌아가
셨다. 엄마가 병원에 갔을 때, 대장쪽에 작은 종양이 있다고,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그랬
는데, 이런 저런 바쁜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가 그게 대장암으로 번졌던 것이다. 신앙이
그렇게 좋지는 않으셨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나중엔 방언까지 했다고
하는데, 난 그 때, 남편의 전근때문에 일본에 있느라 엄마의 투병생활을 같이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작은이모, 정자 이모는 나중에, ‘그래도, 너가 보지 않은게 다행이야. 엄마의
좋았던 모습만 기억해라’ 라고 하셨다. 엄마가 투병생활 하시면서 정말 많이 수척해 지셨고,
그런 모습을 남한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울한 생각을 하면서 가다보니,
벌써 삼성역에 도착했다. 요원이한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쓰윽 눈물을 닦고, 다시
한 번 거울을 보았다.
요원은 대충 건들거리며 서 있다가, 왼쪽을 무심코 쳐다 봤는데, 샛노란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보라색과 빨간색의 짝짝이 스타킹을 신은 시연이가 손을 번쩍 들고 화알짝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요원은 시연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어깨 너머로 보이는 어떤
키 큰 남자를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
“왜 그래? 아는 척도 안하고”
가까이 온 시연이 얼른 뒤로 돌아서는 요원이의 어깨를 돌리려 하며 말한다. 그러나
요원이는 더 힘을 주어 몸이 돌려지지 않게 노력한다. 그리고 손으로 얼굴도 가린다.
“왜 그래?”
“잠깐만…잠깐만….”
멀뚱하게 바라보는 시연을 놔두고, 사알짝 얼굴을 가렸던 손가락을 벌려서 아까 본 그
사람이 있는 쪽을 확인한다. 다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확인한다. 그 사람은 이미 없다.
“왜 그런데?”
“어..아는 사람이 있어서.”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인사를 해야지, 왜 그렇게 숨어 있어?”
“그게….그 방동호 대리여서 말이야”
“방대리? 어디? 어디?”
하면서 시연은 그 말로만 듣던 방대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됐어. 됐거든?”
“에이..아쉽다. 얼굴 한 번 봤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난 뽀록나서 끝장이야. 안 그래도 현준이한테 협박당하는 것 때문에 머리털
빠지겠는데, 양쪽에서 협박받으면 확 죽어버리는 수가 있어..쯧.”
“어 그래? 근데, 그럼, 여기서 만나면 안되는 거네?”
“그렇지 뭐.”
“그래도 안되겠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이리와.”
“어딜?”
“그렇게 만나면 안되는 사람이라면 니가 변장이라도 해서 피해야 할 거 아니야. 방금 전에
이 앞을 지난 간 사람을 너가 또 안 만나라는 법 있니? 빨랑 와 빨랑..”
이렇게, 시연이는 어어어…하는 요원이의 손목을 잡아 채서 질질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난 언니가 잘 안다는 의상실로 끌려갔다. 들어가자마자 약간 도도하고 귀품있어
보이는 원장이 나와 반갑게 맞는다.
“어서 와.”
“안녕하셨어요? 저, 제 사촌동생 변장 좀 시켜주려구요.”
“그래? 이리들 오세요.”
안쪽으로 안내를 받으며 언니는 살짝 나한테 귓속말로 속삭인다.
“내가 잘 아는 언니야.”
하면서 눈을 찡긋한다.
“근데 여기 좀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 나 요즘 돈 남아돌잖아. 그리고 오늘 하루만이니까.”
“(원장에게) 얘가 워낙 남자애 처럼 이러고 다녀서요, 진짜 여성스럽게 한 번 코디 좀 해
주세요.”
언니는 간곡하게 부탁한다.
“그래? 어디 보자..”
하면서 내 얼굴이나 전신을 쓰윽 한 번 훑어보는 원장의 시선이 왠지 부담스러웠지만, 아까
거기서 다시 또 방대리를 만날 걸 생각하면 좀 꺼림직 했기 때문에 잔소리 않고 그대로 그
시선을 견디며 서 있었다.
“자, 그럼 이렇게 하죠.”
하면서 긴 곱슬머리 가발을 가져와서 내 머리에 맞춰 씌우기 시작한다. 가발 하나 쓴 걸로
내 얼굴이 정말 참 딴 사람같이 변하는 걸 보고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원장이
가지고 나온 의상 (그것도 치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연이 언니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화장품까지 대동…내 얼굴에 화장질을 하기 시작했다. 난 조금씩 변신해가는 나의 모습에
기가 턱 막혀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언니는 화장도 안하면서 남은 잘 해주네?”
“내 얼굴은 안하지만, 남 해주는 건 잘 해. 자 다 됐다.”
마지막 눈 화장때문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던 나는 언니의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살짝 눈을
떠 거울속의 나를 보았다. 와~ 나는 터져나오는 함성을 겨우 참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난 정말 무슨 공주처럼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길고 굽슬굽슬한 머리가 어깨와
허리로 늘어져 있고, 그리고 그 밑으론 자연스럽게 한 화장빨 잘 받은 하얀 얼굴…. 내
안에 마치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멍하니 거울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려니, 시연이 언니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건다.
“왜 맘에 안들어?”
“아니, 맘에 안들긴. 이렇게 꾸며보는게 처음이어서..”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황홀하게 언니한테 말을 했다. 언니는 안심했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얘기한다.
“그럴 줄 알았어. 다행이다. 너 정말 예뻐. 너가 평소에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자 그럼 이제
나갈까? ”
거의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다고 해야 맞나? 그런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으려니 마치
내 몸이 휘청거리는 것 같아 처음엔 넘어질까봐 불안했으나, 긴장하고 걸으려니까 또 나름
적응이 금방 되는 듯하다.
“옷은 천천히 돌려줘도 돼요. 즐겁게 보내요.”
선심쓰듯이 원장이 얘기하고 우리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시연이 언니도 그 마담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같이 의상실을 빠져나왔다.
거리를 걷는다. 언니가 차를 세워둔 길건너 주차장까지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지나가는 남자들이 날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꼬라지를 하고 길 걷는게
처음이라, 과연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 지 너무 걱정되고 불안해서 감히
얼굴도 못들고 나는 고개 푹 숙이고 언니 뒤만 졸랑졸랑 따라가고 있었다.
“왜 그래?”
언니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한테 묻는다.
“응? 뭐가? ”
“지금 고개 푹 숙이고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걷고 있잖아.”
“어….좀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내 지금 모습?”
“무슨 소리야? 너 너무 예뻐. 아.름.다.워! 주차장까지 오면서 널 힐끗거리며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단 말이냐? 에그~ 이런 순딩이~”
언니는 내 머리에 살짝 꿀밤을 먹인다. 사실, 순딩이는 아니다. 나도 알건 다 안다. 물론
시연이 언니가 맨날 전화해서 형부와의 잠자리 얘기까지 아낌없이 퍼들려준 것도 큰 몫을
했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니가 그렇게 까지 말하는데야, 나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제 허리 쫙 펴고 그냥, 이왕 이렇게 된거, 오늘 하루를 신데렐라처럼 즐겨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맘을 먹고나니, 왠지 또 마음이 가벼워 지고, 약간 자신감마저 생긴다.
다시 삼성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현준이의 전화를 받았다.
“어. 지금 삼성역이거든? 좀 일이 있어서. 너도 이리로 나올래? 응….”
전화를 끊고, 좀 늦어지긴 했지만 언니랑 저녁을 먹었다. 현준이도 이 이탤리 음식점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언니는 갑자기 장난기있는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더니만 한마디 툭
던진다.
“좀 기다려봐. 여기에 복병을 심어놓았으니까. ”
난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 우리의 미션을 도와줄 도우미언니를 하나 불렀다구!”
“도우미언니? 그게 뭔데? ”
첫댓글 원래 시연이도 변장하는거 좋아했었군요.
왠지 기대됩니다. 두근..
읽을만하니 끊어지구... 미워할꼬야. 빨랑 올려 주세용
노력하겠습니다. 이잉...
빨랑 담편 읽으러 가야쥐... 휘리릭..
왠지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