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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의 이름은 한상혁이었다. 상혁이는 그 이름보다 혁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웠다.
완장을 찼다고 잰체를 하지도 않고 궂은 일도 마다 않는 성실한 아이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꼬리에 상냥한 말씨는 단번에 그를 좋은 사람이라 인식하게 했다.
종일 교실을 메우는 '혁아' 소리를 유일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리는 친하지도 않은데. 내 이름은 알고나 있는 걸까.
" 이 추운 겨울에 아침 청소는 아무리 내가 반장이라도 좀 가혹한 것 같아."
그렇지, 여시야?
처음으로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새 이름을 갖게 된 기분이었다.
빨갛게 언 손을 호호 녹이면서 칠판을 열심히 닦는 등은 귀여운 얼굴과는 사뭇 다른 다부진 모습이었다.
아무 대꾸도 못하고 바라보던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그날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평생 후회했다.
" 반장은 우리 반 모두의 생일을 꼭 알고 있어야 해. 그래서 외웠어. 넌 2월 생이더라."
챙겨 주지도 못하게 왜 겨울일까. 다른 애들은 다 생일 파티도 했잖아.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혁이 너만 있으면 돼. 낯 간지러운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일 년이 다 채워지는 동안 반장 상혁이는 내게 혁이가 되었다.
같이 점심을 먹고, 해가 가장 잘 드는 한 시 쯤엔 교실에 단 둘이 남아 낮잠을 잤다.
나는 네 동그란 뒷머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너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채 잠이 들었다.
사진기가 갖고 싶었다.
너와 나의 청춘을 기록할 수 있는 것만큼 벅찬 일이 또 있을까.
부담스러울 것을 알아 말을 삼켰던 것도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네 마음이 내 마음보다 훨씬 깊었다는 걸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알 수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랬다.
"졸업 사진 참 잘 나왔다. 그렇지, 여시야?"
아마도 그날 그 자리에 혁이가 있었더라면 코가 빨갛게 얼어 훌쩍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을 것이다.
퉁퉁 부어서 못난 얼굴을 보고도 너는 웃을 수 있었을까.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는 네 자리가 너무 좁았겠지.
예쁘게 웃는 얼굴이 하얀 꽃들 사이에서 시리게 빛낯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졸업앨범 속 네 마지막 인사는 너무 야속했다.
"혁이가 남기고 간 거야. 열어 보는 거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네 이름이 있었어."
내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비보가 날아들었다.
꽝꽝 얼어버린 도로에 차가 미끄러졌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던 차림 그대로,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혁이는 그렇게 떠났다.
겨울 빙판길은 꼭 조심해야 한다고 한 일주일 전에도 말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내 말이라면 잊지 않는 아이가 왜.
[여시야. 생일 축하해. 이건 반장 혁이가 아니라 네 남자친구 한상혁이 주는 선물이야.]
카메라 안에는 다 찬 필름이 들어있었다.
인화를 맡긴 사진관 아저씨가 아무 말씀도 않고 건네 주신 사진 속에는 온통 같은 사람이 들어 있었다.
군청색 떡볶이 코트를 입은 작고 통통한 체구의 단발머리. 뒷통수, 옆얼굴.
초점이 잡히지 않은 마지막 사진 속에 나는 웃고 있었다.
네가 떠난 분식집 앞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친구와 함께.
2.
"야, 짝지. 수학 교과서 있나."
그 해 여름은 몹시 더웠다. 그래서 별것 아닌 일에도 조금 더 짜증이 났었다.
머리 꼭지에 열이 나도록 옆구리를 찔러대는 양아치는 그날도 어김없이 정답지로 쓰려던 교과서 한 권을 가져갔다.
빌려가란 말도 안 했는데. 허락이 떨어지길 애초에 기다리지도 않았겠지만.
무어라 빽빽히 정답이 적힌 교과서를 보고 한소리 하시는 선생님 앞에서도 느물거리며 웃어 넘기는 건 예사였다.
고맙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 한마디와 함께 알사탕 하나를 던져 놓고 갔다.
그게 김태형 나름의 표현이었다.
"야, 새로운 헤어스타일. 인자 부산 시내서 다 이라고 댕긴다이. 두고 봐라."
지랄을 해라.
시덥잖은 소리를 하는 녀석의 까까머리를 한 대 쳐도 별 탈이 없을 지경으로 우리는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됐다.
녀석이 주는 사탕을 가방에 따로 넣어야 할 만큼의 시간이 쌓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주임 선생님의 손에 아까운 머리칼이 다 잘려나갔는데도 허허실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깎을라 했는데. 니가 만날 꽁지 짤라삔다매. 어떻노. 예쁘제. 어?
보란듯이 꽃받침을 하고 귀엽게 구는 녀석을 보고 이제 나는 미간을 구기지 않았다.
따라서 멍청하니 웃는 것이 일상이 되어 내 나날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니는 공부도 한 개도 안 하고. 대체 뭐 될래?"
"와, 니 먹여 살릴람 앞길이 구만 리 같나."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조용한 길목에서 우리 둘이 큰 소리로 떠들면 조금이나마 두려움이 가셨다.
장난스레 투닥거리면서도 태형이가 있어 나는 든든했다.
그는 옷깃만 스쳐도 모든 이는 인연이라고. 우리가 만난 것을 인연이라고 했다.
우리는 같은 반의 일원이고, 짝을 한 학기 내내 하고, 같은 동아리도 들었고, 집에 가는 길도 같다고.
그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그 인연을 만들기 위해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내뱉던 한 마디에 수줍은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조차.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니… 진짜 어데 가가 패고 맞고 이라는 거 아이제."
"야, 내가 팼으면 팼지 맞지는 않는다 안 하나. 가오 떨어지게 질 수야 없지."
어느새 저녁 바람이 쌀쌀한 초겨울이었다.
여느 날처럼 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손을 흔들던 태형이는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내가 아는 신문사와 방송국의 기자들이 학교를 들쑤셨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앞자리의 여자애가 나를 위로했다.
착한 아니까. 좋은 데 갔을 끼다.
하늘을 원망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겁도 없었는갑다. 진짜 대단한 아네. 목에 칼을 들이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한 기라."
처음에는 우발적으로 시작된 스토킹이었다.
조용한 밤거리에 인기척도 없이 달라 붙는 그림자. 녀석은 눈치가 빨랐다.
아마도 끈질기게 가방을 뺏어가면서까지 함께 집에 갔던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못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거의 매일을 눈을 마주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집 주소를 파악한 것도 한참이었으니 다분히 고의적으로 알렸을 수 있다고 했다.
태형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학생 교복 안에 이게 있었는데. 줘야 할 것 같아서."
낯선 서울 말을 쓰는 아저씨가 투박한 손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먼지같은 끈적한 것들이 잔뜩 붙어서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는 그것을 열자 단내가 끼쳤다.
볼품 없는 싸구려 반지 두 개. 끼워 보지도, 제가 끼어 보지도 못한 채 교복 마이에 간직하고 있던 선물.
다른 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종이에 쓰여있는 글자는 차마 읽을 수가 없어 외면했다.
'알사탕 백 개 천 개 받으면 시집 와 사귀자'
3.
"돼지, 오랜만. 넌 커도 커도 그대로인 것 같다. 아, 옆으로 크냐? 옆으로?"
만날 때마다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이 매를 버는 소리만 해대는 저 입은 언제쯤 꼬맬 수 있을까.
오빠를 처음 본 건 내가 아주 어릴 적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아이스께끼를 당한 것도 오빠의 소행이었고,
처음 여자가 된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놀라 울고 있을 때
덩달아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슈퍼에 다녀온 것도 아빠가 아닌 오빠였다.
오빠에게 있어 나는 친동생보다 더 강한 혈연의 정으로 묶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 호박에 줄 그어서 수박 됐다? 화장도 할 줄 알아?"
창문을 내린 채 멋쩍게 선 얼굴을 노려 보고 뒷자석에 앉으려 하자 '오늘은 상석에 앉으시죠' 하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던 오빠는 솔직히 조금 멋졌다.
짧은 치마도 개의치 않고 앉은 내게 외투를 던지는 이유가 다리에 난 상처가 보기 싫어 그러는 줄 알았다.
학교까지 가는 내내 헛기침 한번 하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차 안의 정적이 싫어 오디오를 켰고,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가 울려퍼지자 귓가가 벌개지는 오빠의 옆 모습이 그저 운전대가 낯설어서일 거라 생각했다.
"저녁에 일찍 들어와. 갈 데 있어."
그가 군에 다녀오는 기간 2년, 내가 해외에 나가 있던 시간 1년을 제외하고
오빠는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매일 내 등하교길을 책임졌다.
그동안 단 한번도 살갑게 챙기는 소리 해 본 적이 없으면서. 어쩐 일로 다정한 척을 하는 건지
사실은 미워서가 아니라 맘이 설레서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내가 거는 약 일 퍼센트의 희망과 같은 마음을, 그 대답을 하려는 게 아닐까.
자문하고 자답하기를 그날 저녁 백 번이 넘도록 했다.
첫댓글 찌통...상혁아......
2222ㅠㅠㅠ찌통
상혁아.....
처음 부터 혁이 보고 심쿵ㅠㅠㅠㅠ슬퍼ㅠㅡㅠ이거 슬퍼ㅠㅠㅠㅠ
첫사랑느낌 일번쩐다ㅜㅜ
찌통ㅠㅠㅠㅠㅠㅠㅠㅠ
태형아.... 8ㅁ8...모아야아아ㅏ.새벽에찌통오자나 ㅠㅠㅠㅠㅠㅠㅠㅠ흐어어어엉ㅇ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방탄!!
효기ㅠㅠㅠㅠㅠ 어떻게 잊어 진ㅉㅏ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글쓰닙니당 여시들이 이해한 게 맞아요 ㅎㅎ
어이쿠ㅠㅠㅠㅠ이거 다 슬픈데ㅠㅠㅠ난 고르자면 1....킂....
상ㅎㅎ혁이ㅠㅠㅠㅠㅠㅠㅠㅠ
1번ㅠㅠㅠㅠㅠㅠ 절대못잊겠지
아왜나울게만들어ㅜㅜㅜㅠㅜㅜㅜㅜㅜㅜㅜㅜ죽어도 셋다못잊는다 그것도 내눈앞에서 죽은 사람은..나때문에 죽고 나 보다가 죽고 나랑 같이있다가 죽고...
혁아ㅠㅠㅠㅠㅠㅠㅠ이이잉 찌통 ㅠㅠㅠㅠㅠㅠㅠ아 ㄷㅏ슬픈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셋다못잊어ㅠㅠ이야기만놓고봤을때 111헝헝
진짜 셋 다 못 잊겠다ㅠㅠㅠㅠㅠㅠ
나한테왜ㄱ래...슬프단말이야..
아 어덯게 하면 좋아...ㅜㅠㅠㅜㅠㅜㅡㅜ다 못 잊어 ㅜㅜ
혁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어떻게 잊어 난 죽어도 못잊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대왕연어인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못잊어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평생 사랑하는 감정을 갖긴 어려울듯ㅠㅠㅠㅠㅠㅠㅠㅠㅠ 1 진짜 첫사랑 다시 열수없는 상자같고 2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못잊어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3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 삶에 일부분을 그사람이랑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