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이루지 못한 꿈
淸夜無塵(청야무진), 月色如銀(월색여은).
酒斟時(주짐시)·須滿十分(수만십분).
티끌 없이 맑은 밤,
휘영청한 은색의 달빛,
이럴 때 술은 가득 채워야 제맛.
浮名浮利(부명부리), 虛苦勞神(허고노신).
歎隙中駒(탄극중구), 石中火(석중화),夢中身(몽중신).
부질없는 명예와 하찮은 이익,
고생해야 소용없고 마음만 고달프다.
인생이란 문틈을 지나가는 빠른 말처럼,
부싯돌 사이에 번쩍이는 불꽃처럼,
꿈속의 짧디짧은 인생이 한(恨)스럽구나.
*浮名浮利(부명부리) : 명예와 이익이 허망한 것을 강조함
*虛苦(허고) :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 공연한 고생
*勞神(노신) : 정신을 낭비함
*隙中驅(극중구) :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人生一世間, 如白驅過隙, 何至自苦如此乎(인생 한 세상은 마치 흰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음에 이르겠는가).”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유후留侯는 장량을 일컫는 호칭이다. 백구과극白駒過隙과 극구광음隙駒光陰은 같은 말이다.
*石中火(석중화) : 옛사람들은 부싯돌로 불을 켰다. 이때 부식돌에서 생기는 불꽃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린다. 백거이白居易는 「대주시對酒詩」에서 “石火光中寄此身(부싯돌 불꽃 속에 이 몸을 의탁하네)”라고 읊었다.
*夢中身(몽중신) : ‘인생이 꿈과 같다(人生如夢)’는 말의 뜻을 담고 있다.
雖抱文章(수포문장), 開口誰親(개구수친).
且陶陶(차도도)·樂盡天眞(낙진천진).
가슴속에 문장을 품고 있으나,
그 누구와 터놓고 나누랴.
*陶陶(도도) : 매우 화평하고 즐거운 모양. 유령劉伶은 「주덕송酒德頌」에서 “無思無慮, 其樂陶陶(생각도 없고 걱정도 없으며 그 즐거움이 도도하였다).”라고 읊었다.
幾時歸去(기시귀거), 作個閒人(작개한인).
對一張琴(대일장금), 一壺酒(일호주),一溪雲(일계운).
언제나 돌아가서 한가하게 살아갈까.
거문고 하나,
술 한 주전자,
개울에 비친 구름 한 조각 마주하면서.
*一溪雲(일계운) : 하늘에 있는 구름이 시내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마치 시내 전체를 구름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킴
―‘행향자(行香子)·마음을 토로하다(술회·述懷)’ 소식(蘇軾·1037∼1101)
*行香子 : 唐宋시대 詞牌格律의 하나
개혁파와의 알력으로 온갖 신산(辛酸)을 맛보았던 시인, 그 소외감을 술과 호방한 기질로 애써 감추려 한다. 세상 명리에 매몰되었던 지난날이지만, 시인에게는 못다 이룬 ‘가슴속 품은 뜻’이 한가득 맺혀 있다. 젊은 시절부터 다져온 웅지이자 신념이다. 하나 세월은 바삐 흐르고 시계(視界)는 몽롱한데 내 뜻을 토로할 지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인이 진정 자신의 고뇌가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을까. ‘느긋한 마음으로, 맘껏 천진난만을 즐기기로’만 다짐했다면 진작 훌훌 다 털고 낙향하지 않았을까.
지방관을 전전하며, 때로 투옥되고 유배되는 등 부침(浮沈)이 유별났던 시인. 말년에는 멀리 해남도(海南島)까지 밀려났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하게 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행향자(行香子)’는 곡조명.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11월 08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