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갈팡질팡하며 살아온 나의 신앙생활
어떤 젊은 사람이 부모가 남겨줄 재산을 미리 받아서 모두 써버렸습니다. 성서에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여색에 취하고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달랑 외투 하나 뿐인데 어느 날 그는 그 외투에 의지해서 며칠을 굶었더니 너무 배가 고파서 모든 사물이 먹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철이 되기도 전에 날아든 제비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아직 꽃샘추위도 남았는데도 그는 생각하기를 '앗 드디어 여름이 왔구나!’ 생각하고 그 외투마저 팔아서 배를 채우고 술을 잔뜩 마셨습니다. 그 후 즉시 꽃샘추위가 몰아쳐서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오들오들 떨다가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쉬려고 하니 얼어 죽은 제비가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쯧쯧 딱한 것아, 네가 너를 죽이고 나도 죽였구나!”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흔히 ‘제비 한 마리가 여름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비는 봄에 와서 여름에 날아간다는 경험으로 제비 한 마리를 보고 추위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외투를 팔아서 술과 음식을 사먹어 버렸으니 올바른 경험적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론과 귀납법이라는 철학적 논증 방법이 있는데 요즘, 이 논증 방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같이 어떤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날 때, 그 사건을 판단의 준거로 삼고 판단하고 시행하였으나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날아다니는 제비가 많이 관찰될 때 여름이 왔다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 귀납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귀납적 방법에 의존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귀납적으로 습득한 지식이나 현상을 과연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시호삼전’(市虎三傳)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세 사람이 말을 퍼뜨리면 거리에 있지도 않은 호랑이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근거도 없는 헛소문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우겨대면 듣는 사람도 곧 믿게 된다는 뜻이지요. ‘여러 사람들이 한 사람을 바보 만들기는 아주 쉽다.’는 말처럼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로 둔갑될 수 있는 것이 경험에 의한 방법이니 귀납적 방법이 가지고 있는 함정입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증참(曾參)이라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 중에 가장 효행이 뛰어난 사람으로 효경(孝經)의 저자인 증자(曾子)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증참의 어머니가 집에서 길쌈을 하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와서 증참이 살인을 해서 관원이 잡으러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증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었고, ‘아들이 절대로 그런 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또 한사람이 달려와 ‘증참이 살인했다.’고 하여도 믿음이 확고하였지만 어머니는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더랍니다. 뒤이어 다른 사람이 와서 ‘빨리 피하십시오. 관원이 증참을 살인 현장에서 잡아서 관청에 끌고 갔다.’고 하니까 증참의 어머니도 믿고 뛰어나가더랍니다. 그래서 ’동공이곡‘(同工異曲)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기술은 같아도 만들어 내는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라는 뜻이지요. 같은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믿게 되고, 전하는 사람의 말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전할 수 있으며, 전하는 사람들에 의한 믿음 또한 다르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고 악령을 쫓아내시니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몰려듭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치여서 서 계실 수도 없고 식사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악령들은 계속해서 그분에 의해서 쫓겨나니까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떠들어댑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키고,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룻배를 빌려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설교를 하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예수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님께 악령이 들었다고 거짓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 말이 지금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시호삼전(市虎三傳)으로 또한 동공이곡(同工異曲)으로 성모님과 친척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예수님이 미친 줄 알게 되었고, 난폭한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잡으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나 친척들은 악령이 든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이 경험은 그들의 마음을 불안하고 당황하게 하고, 예수님을 보호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몸이 허약해서 그렇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너무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가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귀납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아주 많은 헛소문에 현혹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얘기들을 들으면 귀납적으로 그 모든 것을 증명해보고,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정확하다.’ 또는 ‘진실이다.’라고 판단해서 정확성과 진실성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신앙은 어떠한지 반성해보면 얄팍한 경험과 지식으로 헛된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잘못된 예측과 억측으로 무성한 사람들의 말의 휩쓸려 정신 못 차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여야 하겠다고 새롭게 결심합니다.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 쓰러졌는가?>
▥ 사무엘기 하권의 시작입니다. 1,1-4.11-12.19.23-27
그 무렵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축일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노 (Sebastian)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 지역 : 로마(Roma)
활동 연도 : +288년경
같은 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인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283년경에 로마에서 군인이 되었고, 성 마르첼리아누스(Marcellianus, 6월 18일)와 성 마르코(Marcus, 6월 18일)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던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성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 7월 7일)가 있었고,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월 5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7월 7일),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이 있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카스툴루스(Castulus, 3월 26일)의 미망인인 성녀 이레네(Irene)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에 던져 버렸다. 그의 죽음과 용기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서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지하묘지에 묻혔다. 그는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염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로마인들이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1575년에 밀라노(Milano), 1599년에는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세바스티아노 (Sebastian)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전염병의 수호자이신 성 세바스티아노 (Sebastian)의 전구로 코로나 19 감영 병과 새로운 변이 감염병들이 하루빨리 소멸되기를 소망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