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나물-메주 그리고 두부
돌모랭이네서 두부를 가져왔다. 두부는 풀무원두부-초당두부 등등 가게에서 팔지만 이 두부는 손수 만든 것이다. 한 때 손 두부-촌 두부 이런 말이 유행했는데 이 두 부는 집 두부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촌집 손두부라고 해야 할까? 네모나면 모가 졌다고 모두부라고 하는데 나름 알뜰하게 직사가형의 두부덩어리가 큼지막하다. 게다가 올해 거둔 콩으로 손수 길렀으니 우리콩 햇두부인데 덧붙여 순두부까지....
하얀 두부의 고소한 맛! 맛이란 이렇게 순박한 곳에서 생기가 돈다. 새로 집을 지은 지 3년- 田園日記 아니 農村日記를 써보고 싶었는데 농사라고 처음하는 일이 몸 따로 글 따로 여의치 않았다. 글을 쓰려니 노곤한 몸이 따라주지 않고 몸이 따라주면 게을러지고...
2011년 辛卯 : 첫해 공사중에 밭도 집도 어질러졌는데 이장님이 지나는 길에 콩을 심어보겠느냐며 한 움큼 집어주신 게 내 농사의 첫걸음이라면 첫걸음이다. 그 콩은 발갛게 물이 들어있었는데 새들이 쪼아 먹지 않게 香을 발라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 콩알을 두알 세알 집히는 대로 꽃삽[여기서는 모종삽이라고 부른다]을 꾹 찔러서 땅을 헤집고 둑을 따라 묻어갔다. 집이 뼈대를 잡아가면서 콩싹이 트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했다. 거기 꽃이 핀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꽃이 피면 진딧물이 꽃을 갉아 먹어유!’ 지나는 길에 분무기로 약을 뿌려준 것은 환영이 아버지였다. 잡초가 우거져 콩인지 잡초인지 알 수 없을 때는 이사로 바빴고 남이 거두니까 나도 풀숲에 콩을 거둔 것은 늦가을이었는데 깍지 안에 노오란 알이 튀어나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새집은 늘 그렇듯이 이삿짐으로 뒤죽박죽이었고 당연히 텃밭은 뒷전이었다. 틈틈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고무통 위에 각목을 걸쳐놓고 방망이로 콩깍지를 두드리며 콩알을 모아 체로 걸러냈다. 튀어나온 콩알을 머시깽이는 고사리손으로 비닐 컵에 알뜰히도 모았다. 그때 그 아이가 다섯 살이었을까? 그 아이는 추운 줄도 모르고 그만하라고 해도 듣지 않았다. 콩을 줍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줍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고-우리 머시깽이는 콩박사다! 콩박사!’ ‘그래- 엄마는 박사도 못됐는데 나는 팽이박사-그림박사-콩박사-’ 머시깽이는 손가락을 꼽으며 할아버지를 보고 웃곤 했다. 영화촬영장을 방불케 했던 이삿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며 마무리를 위해 처형이 며칠 다녀가셨다. 메주를 쑤고 부추 밭을 만들고 연장을 정리하며 그림자처럼 말이 없이 쉴새없이 움직이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상니들이 참말로 현명하시제...파종을 하면 콩을 세 알씩 심는기라!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혹 안 날지도 모르니까, 땅이 먹고...’ 그렇게 이룬 농사는 내가 먹지 않고 자식 손자에게 먹이고 또 그 콩을 팔아 도시의 자식들 학비에 혼수에...그리고 자신은 마침내 흙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오래 기억하며 첫 해의 겨울을 보냈다. 아무튼 첫해에 콩만은 한 줌이지만 수확이 있었다.
2012 壬辰년이 밝아오고 이제 古稀가 낼모레인데 나도 좀 쉬고 싶었다. 아니 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보다 죽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땅이 풀리고 싹이 돋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또 이웃이 밭을 갈아엎기 시작하자 나도 생각이 달라졌다. 고추도 고구마도 조금 하고...콩은 그냥 묻는 것이지만 포트[계란판처럼 플라스틱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찍어 낸 것으로 모종을 하는 농구]에 부엽토를 깔고 콩알을 두 개씩 놓고 물을 뿌리면 며칠 사이 싹이 트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포트는 25칸-49칸-108칸 등 다양했다. 옥수수-수세미-약콩-서리태 등등 나는 매일 한 판 두 판 모종을 하고 틈나는 대로 밭둑이나 비탈에나 여기저기 모종들을 심어놓았다. 콩은 이 마을에서는 7월10일까지만 심으면 된다는 것도 이때 돌모랭이에게서 배웠다. 그 사이 머시깽이 부지깽이 두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름이 가고 가을걷이할 때는 파김치가 되어 메주도 쑤지 못했지만 튀는 콩을 막으려고 비닐포장을 둘러치며 도리깨질을 하는 것으로 가을을 마감했다.
2013 癸巳 : 무슨 일이든 三代는 해야 눈이 뜨인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막연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내게는 그런 신념이랄까? 盲信이랄까? 그런 의식이 있고 또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입버릇이 되어 기회만 되면 전파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3년이 되었다고 스스로 조급증을 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올해는 쉰다는 말보다는 休耕이랄까? 그런 거창한 용어를 좀 써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고 지난해를 반복했다. 그 사이 머시깽이 부지깽이는 이제 어엿한 농부가 되어갔다. 제법 감자도 나르고 옥수수도 따고 콩도 골라서 콩나물도 기르게 되었다. ‘이건 무거우니까 할머니가 할께...’ ‘아니! 아니! 내가 할거야!’ ‘나도! 나도! 아앙...’ 큰놈 작은놈은 자고나면 쪼르르 달려와 콩나물 뚜껑을 열어보고 틈만 나면 여닫기를 반복했다. ‘콩나물은 잠을 자야- 자라는 거야-캄캄해야 잘 수 있잖아?! 자꾸 깨우면 안 되지?! 그렇지?!’ ‘으음-’ 그래놓고 ‘한번만!’ 하고 손가락을 쳐들어보이고는 또 열어 보기도 한다.
유일한 수확이라면 애들 엄마가 학위를 마쳤다는 것인데 그 말은 애들에게나 어미에게나 지금부터 고난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도 出嫁한 자식이지만 그 因緣의 끈으로 고행의 한 자락에 얽혀 있음을 부정할 길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아무튼 그 사이 나는 인천으로 서울로 농부주제에 어쩔 수 없이 출장 주례를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어정쩡한 말도 없지만 신랑보다 젊은 애가 주례를 하는 법도가 없는 세상이다 보니 늙은 놈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할밖에 도리가 없었다.
五穀六畜 : 콩은 무엇인가? 오곡 가운데 하나다. 우리 식생활이 급변하며 쌀나무 이야기는 제쳐두고, 도대체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상기 위해 먹는 것인지- 아리송한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어떤가? 2천년전 한나라의 교과서인 급취장에는 五穀六畜이 모두 나온다. 실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간단한 설문을 해보았었다. 1) <問> 여러분이 알고 있는 먹거리[食材料] 5가지 이상 쓰시오? <답> 햄버거-핫도그-아이스크림-떡볶이-우유-빵-라면-피자-빼빼로...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래서 이번에는 ...
2) <問>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 5가지 이상 쓰시오? <답>...[마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과 학교 앞의 음식점 메뉴에 TV광고에서 나오는 모든 것 더하기 부모들과 외식한 식당의 메뉴판에서 보이는 것 등등 ]
어디에도 쌀-보리-콩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곡육축[五穀六畜]을 쓰시오 하면서 漢字까지 괄호 안에 넣어 주었는데 거의 백지였다. 군인도 먹어야 싸운다. 오죽하면 식량안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학생들에게 먹거리는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거의 ‘수퍼’라고 대답하고 먹거리는 ‘돈’으로 구한다고 답할 세상이 되었다. 참고로 오곡육축은 쌀 보리 콩 조 기장, 소 말 양 돼지 닭개 이다.
일본두부-중국두부 : 日本 京都에서 점심을 한 일이 있었다. 비단잉어가 蓮잎사이를 헤엄치는 연못을 바라보며 다다미방에서 정식으로 상을 차린 점심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물론 기모노를 입은 중년여인이 버선발로 술과 茶와 음식을 差備하는 자리였지만 ‘對話’가 緊한지라 먹긴 먹었지만 젓가락보다는 펜을 더 많이 움직였던 기억밖에 없다. ‘교토에는 두부요리가 이름났습니다.’ 생선-고기-나물 등등에서 그 말만 기억에 남는데 명주로 걸러낸 두부가 일본의 궁중요리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정작 일본두부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것은 북경에서 였다. 누구나 경험하듯- 중꾸의 식당에서 차이딴이라는 메뉴를 받아보면 이것이 메뉴인지 음식에 대한 학술서적인지 著述인지 부피부터 압도한다. 그러나 크게 네 등분하면 채소-두부-물고기-육고기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이나 만두는 오히려 후식에 속하니까- 두부에는 찜도 있고 말린두부에 튀긴두부에 또 두부에 야채를 곁들이거나 그 유명한 마파두부에다가 지방마다 다르니 운남-광동-상해 등등 그런데 그 끝에 ‘일본두부’도 보인다. 야들야들한 그 명주로 걸러 미끈하게 혀끝에서 녹는...중국사람들은 계란찜 닮은 두부를 케익처럼 크게 만들어 붉은 글씨로 ‘生日快樂’이라고 써놓고 ‘해피버쓰데이’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아침마다 또쟝[豆醬] 한 그릇을 사려고 길게 줄을 느린 사람들을 보면 10억을 먹여 살리는 콩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뿐만 아니라 콩기름이야말로 식재료에서 불가결의 필수품이 아니겠는가? 却說하고 아무래도 콩과 두부 이야기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부체험학습 : 牛乳 보다는 豆乳를, 고기보다는 豆腐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역시 동양의 전통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20년전 이 오동촌에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열 댓명 도시학생들이 부모를 떠나 한 달간 시골학교를 연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방학숙제도 하고 과학실험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신문을 만들고 나무도 하면서 겨울의 시골생활을 익혔었다. 오동촌의 山川과 여러 어른들이 선생님이었던 셈인데 장씨 아주머니가 하루 두부만들기 강사였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아주머니는 순두부가 엉기고 두부를 칼로 잘라 그 맛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 체험은 지금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그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두부와 김치 : 세월은 흐르고 어머니도 이미 이 하늘 어딘가에서 나를 굽어보시고 나도 뜨내기 생활로 오동촌에 자주 들르지 못했었다. 이제야 歸去來辭하고 杜門不出한지 삼년! 돌모랭이가 보내온 햇두부-손두부-집두부를 한칼 베어 김치에 싸서 한입 녹여본다. 숨가쁘게 달려온 근대화-산업화-상업화의 세월...텃밭에 콩을 심어 거두고 참나무불길에 끓여낸 이런 두부를 언제 다시 맛볼 수 있겠는가? 우리 콩박사 머시깽이는 이제 새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 제 어미를 따라 평범한 도시학생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아이가 농학박사가 되었으면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보다 농사를 지으며 피아노도 치고 글도 쓰면서 그림도 그리고 ‘타사의 정원’처럼 살았으면 싶다. 그 어미도 그 거창한 박사를 반납하고 독일 아이들의 동화를 번역하고 그들의 민담과 농학책도 소개하면서 ‘월든’도 읽고 바느질도 하고 아이들을 키웠으면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눈이 내린다. 내일은 몇 년간 벼르기만 했던 우리 동네 名勝 물탕날에 가보고 싶다. <*>
두부와 김장김치
두부 그리고 순두부-햇두부-집두부-손두부...
저녁밥상과 두부
부지깽이 머시깽이는 열심히 감자를 나른다.
할아버지 생일날-아빠는 콩밭을 매고 콩박사는 오랜만에 호미를 내려놓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른다.
이제 가을이니 콩을 걸러야지!
할머니! 한 번만!...검은 모자를 벗은 콩나물을 한 움큼...
2013년 메주...
이제 밭일을 마쳤으니...우리 놀자!
2천년 전 한나라 교과서 급취장에는 오곡이 모두 나와있다.
내년에도 이 농사를 계속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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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막의 등불 원문보기 글쓴이: 양효성
첫댓글 해야쥬~계속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