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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유기농업기사협회(귀농,친환경농업) 원문보기 글쓴이: 윤기호(좋은날)
▲ 미국 100달러에 찍혀있는 벤자민 프랭클린 |
벤자민 프랭클린은 비누와 양초 제조업자였던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아들 17명 중 15번째로 1706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를 2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형 제임스가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12살 때부터 인쇄공으로 힘들게 일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독학을 해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3개 국어를 마스터했고, 형 몰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유명해졌다. 형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에는 신문사의 발행인이 되어 많은 권력가와 재벌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돈과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20살 때 아주 위대한 결정을 했다. 삶의 목표를 대통령이나 정치가, 사업가가 아닌 완전한 인격자가 되는 데 두었다. 그 목표를 위해 13가지 덕목을 정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처음에는 겸손을 제외한 12가지였다. 한 친구가 그에게 오만하다는 평을 해주었다. 그가 토론할 때 옳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방을 꺾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벤자민은 그 결점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목록에 겸손을 추가했다. 이 덕을 습득하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고픈 유혹을 참고 자신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주장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확실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라는 표현 대신에 ‘내가 알기로는’ ‘내 생각에는 이렇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렇게 태도를 바꾸자 대화가 훨씬 즐겁게 진행되었고 사람들도 쉽게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의회에서 그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습관 덕이었다고 그는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인쇄공 프랭클린’ 이라고 쓰도록 할 만큼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 시간관리와 자기계발에 철저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모습 [ushistory.org] |
그는 인격자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획서를 작성하여 매일 꼼꼼히 체크했다. 그리고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시간관리 계획을 짜고 수첩을 적극 활용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사는 동안 그는 어느 순간에 과학자가 되었고,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고 학교, 우체국, 도서관, 소방서 등을 설립하여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난로, 흔들의자, 피뢰침, 이중초점 안경, 악기 아모니카 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음에도 단 한 건도 특허를 받지 않았다. 이는 발명은 대중에 대한 봉사이며, 공익의 발전에 도모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시간관리와 자기계발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따라서 한다. 그의 시간관리 프로그램은 <프랭클린 플래너 다이어리> 라는 제품으로 나올 만큼 자기계발의 성공지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학교 교육을 안 받았어도, 사회적으로 좋은 직장을 안 가졌어도 자기계발을 통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직 철저한 시간관리와 자기계발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든지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
가난한 견습공에서 미국의 독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벤자민 프랭클린,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그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인성영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