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1. 880년 경의 근위대 장교.
먼 기인 4세기의 비잔티움 출처에서까지 나타나는, 거의 동일한 존재다. 제복을 입은 이 사람은 아마
에테리아나 타그마 연대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이일 것이며, 자수를 놓은 원형 작은 판과 붉은 외투를, 자기가 장교임을 나타내는 튜닉의 스커트 위에 입었다.
E2. 1,017년 경의, 퍼레이드용 갑옷을 입은 황제 바실리우스 2세.
별칭은 불가록토누스(불가르인 학살자).
동시대에 그의 깃발이 보이면 적들이 “달아나라! 황제다!” 라고 소리지르고 도망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바실리우스 2세는 불가리아를 완벽하게 정복했으며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아랍인과 노르만인들에게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고, 제국은 그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어쩌면 이탈리아와 이집트 속주를 수복했을지 모른다.
그의 치세는 두 위대한 정복 군주의 뒤를 이은 것이다. 니케포루스 2세(아랍인에 대한 놀라운 승리로 유명하며 그들에게 “하얀 죽음”이라 불렸다. 혹은 사라센의 저승사자로도 유명하다.)와 요안네스 1세가 그들이며, 이들은 976년에 사망하기 전, 634년에 아랍인들에게 잃어버린 성지를 거의 회복시켜 놓았다. 963-1,025년 사이의 제국은 “정복의 시대”였다.
동시대의 출처가 자주 묘사하는, 전투에서 황제들이 착용했던 왕관과 갑옷은 이와 같지만, 이것이 예술적인 파격이고 실제로는 공식 석상용으로 썼음은 의심해볼 것이 거의 없다.
황제는 아마 군사 작전 중에는 C1에 더욱 가까운 장비를 착용했겠지만,
11세기 전반기의 많은 출처에서는 보다 실용적인 판의 황금 팔보호대-스케일인 경우가 잦았지만 철의 빈도가 그보다 더욱 높았던-가 나타나며, 프테루게스 같아 보이는 것이 새겨진 경우가 잦다.
E3. 880년 경 바실리키 안스로피
바실리키 안스로피-Anthropoi(‘ 황제의 사람들’)는 스파다로칸디다토스, 스파다리오스(스트라티고스의 수행원들과 구별하기 위해 스파다리 바실리키로 불렸다.), 스트라토르, 칸디다토스, 만다토르로 구성되는, 군사적 혹은 준군사적 궁정 수행원들이었고, 이 시기 즈음에는 프로토스파다리오스라 불리는 장교의 지휘 아래 있었다.
우리는 콘스탄티누스 7세를 통해, 그들이 퍼레이드에서 황실 문장을 가지고 다녔으며 스파다리오스와 스파다로칸디다토스 모두 본디는 최소한 그 뜻이 검을 가진 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슬 목걸이나 금 목장식(최소한 11세기 전까진 비잔티움의 근위병들 대부분을 후기 로마 시기와 구분시켜주는 특색)으로 구별되며 하얀 제복을 입었던 이 특이한 인물은 아마도 칸디다토스일 것이며, 검을 가지고 다니는 칸디다토스는 스파다로칸디다토스로 불렸을 것이다.
공식 석상에서는 말을 타고 다녔을 것이며, 번쩍이는 갑옷과 투구를 입었고 하얀 외투와 깃발-Standard-을 지녔다. 칸디다토스들은 아마 바실리키 안스로피의 가장 오래된 요소였을 것이며, 그 구성원들은 본디 스콜라이에서 체격과 완력을 바탕으로 선발되었을 것이다. 칸디다토스와 스파다로칸디다토스에게는, 황궁에 그들만의 홀들이 있었다.

1,002년에 바실리우스 2세가 아바스 왕조를 격파한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Scylitez에서는 클리바노포로스가 패드를 댄 에필로리카를 입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이트 실드를 들고 있지만 여기서는 잘려서 보이지 않으며, 앞의 군인은 마자르인이 쓰던 것으로 유명한 스플린트 정강이받이를 착용하고 있다. 말들은 갑옷이 없다.
D. 970년의 클리바노포로스

이 클리바노포로스는 로마 말기 이후로 사라졌지만, 니케포루스 2세의 치세에서 진정한 '카타프락토이'의 의미로 부활되었다. 니케포리 프라이셉타 밀리타리아는 이 초 중갑을 갖춘 기병의 갑옷을 묘사한다.
일단 팔꿈치까지 소매가 내려오는 클리바니온을 걸치고, 그 위에 두꺼운 패드를 댄 에필로리콘을 입는다. 머리에는 철제 투구를 쓰고 눈을 제외한 모든 안면을 메일 후드로 두세겹을 감싼다. 팔과 종아리는 스플린트 아머로 된 팔보호대와 정강이받이를 착용하며, 모든 빈틈은 메일로 보호된다. 거기에 사슬로 다시 한 번 감싼 건틀렛을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다리는 강철 덧신을 신었을 것이다.
그들의 강건한 전마는 전사와 마찬가지로 중무장했다. 이들은 무두질한 쇠가죽으로 된 클라바니아를 착용했다. 앞쪽은 움직이기 쉽게 하기 위해 트여있지만 갑옷이 보호하지 않는 부위는 오로지 눈, 콧구멍, 아랫다리 뿐이었다. 또 다른 형태의 마갑은 펠트에 각재, 혹은 철재 라멜라, 혹은 쇠사슬을 붙여 이를 두,세겹이나 감쌌던 것으로 보인다. 첸프론(chanfron:말머리를 보호하는 장비)도 착용한 것 같다.
쐐기꼴 대형을 이루에 전장에 나갔고, 맨 첫열 20명, 다음 열은 24명, 28명 순으로 4명씩 등차수열로 증가시켰다. 마지막열은(12열) 64명의 기병들이 대열을 짰다. 이로 추측할 수 있듯, 한 부대가 504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384명이 더 일반적인 숫자였다.(일반적으로는 10열로 짰다.)
앞의 네 열은 일반적인 검과 콘탈리온(장창)과 함께 마르조바르불라(투창)도 장비했다. 몇몇 보병들을 동행했고, 이들은 창기병이 아니라 경장비를 갖추고 활로 무장했다. 300명의 창기병이 있었다면 80명의 궁수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500명의 창기병이 있었다면 150명의 궁수가 동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리바노포리는 비용 탓에 아마도 타그마의 잔여 연대들에만 소속되어 있었을 것이며,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에는 소멸된 것으로 생각된다.
첫댓글 후계는 정하고 돌아가셔야지요 ㅠㅠ
암만 토탈워유저라도 너무자식농사에 신경안쓰셧던 흔한 황제유저......
@카이사르 마그누스 그런데 마법의 활에게도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바실리우스가 토탈워 플레이어가 아니라 크킹2플레이어나 문맹5 플레이어였으면 어떻게 됬을까요[...]
저 클리바노포로스 사진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저거 통풍은 되려나" 인데, 가죽에 체인에 철제 라멜라까지 걸치니 생각만해도 땀띠가 막 돋네요.... 장비 자체 가격말고도 기병들의 건강(피부 및 체력)들을 고루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을거라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ㅎ
저는 ' 아 쟤네 양성하려고 자영농을 갈아버렸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샤르도 보면.. 농노들 갈아서 그런 간지나는 기병이 만들어진거 아니겠슴메..
@데미르 카라한 근데 바실리우스 2세는 저놈들 델고 다니면서도 자영농 잘만 유지했습니다. 니케포루스 2세 시절 이전으로 회귀는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더 악화는 안 되었었던 것 같습니다.
@데미르 카라한 돈이 남아돌아 세금도 몇년씩 안받은 양반입니다 땅도 대귀족꺼 몰수해 나눠주고...자영농에겐 최고의 황제가 아닐까요?
@yuso 하지만 그 이전 이후에도 없고 오직 바실리우스 2세만 가능할 일이죠
비잔티움 최고의 황제
으잌ㅋㅋㅋㅋㅋ 진짜가 나타났다!
는님?
Your Majesty~!!!
글고보면 사생활 깨끗했던 군주들의 후계자들은 병맛인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바실리우스 2세(없어...), 술레이만 대제(주정뱅이 셀림 2세), 홍치제(명나라 암군 시작 정덕제)
셀림2세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