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5편 군인과 사람들>
⑤다락방 연가-19
천복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단기4291년부터이었다.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 들어가 한문공부를 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 그는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같은 책들은 웬만한 집에 한 권쯤 으레 있을 만큼 흔하였기에, 책을 빌리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나, 통감 첫 권은 서당에나 몇 권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 학동들 가운데 몇 명이 차지하고, 한창 비우던 참인지라, 더는 구할 수가 없어서, 그것을 그날그날 가는 붓으로 일일이 베끼어가면서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얼마 안 가서 책 한 권의 통감을 떼었을 때는 또한 한 권의 책을 베끼기도 끝맺음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날마다 베끼어서 배우다보니,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걸 직접 체험하여보고는 비로소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거였다.
그러한 데다가 날마다 서당을 가고 오면서 오만가지 느끼는 것들과, 서당에서 동문수학하는 학동들과 지내던 일들, 또는 훈장께서 글을 가르치면서 하시던 진귀한 말씀들을 귀로만 듣고 입으로 말하다가는, 얼마 안 가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에서 무심코 사라지는 것들이 못내 아쉬웠던 거였다.
그래서 그는 기록이라는 게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거였다.
그렇다고 생각하였던 그는 당장 지물포에 달리어가서 널따란 백로지를 여러 장 사다가 책장 크기로 원장을 삼십육 절로 자르고 또 잘라서 그것을 가지런히 포개어가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노끈으로 단단히 꿰매서 책처럼 엮어가지고는 일기책을 만들어 거기에 펜으로 잉크를 찍어가면서 날마다 꾸준히 일기를 써왔던 거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는 굳이 백로지를 엮어서 쓰지 않더라도, 책방에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예쁜 양장의 일기책들이 판대서가에 나와 꽂히어있었다. 그 일기책에는 그날그날 양력과 음력의 날짜와, 이십사절기와, 국경일들이 박히어있었고, 어떠한 일기책은 날마다 명언과 금언이 한마디씩 적히어있기도 하여 지식 함양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한가 하면 부록에는 기차시간표나 버스시간표, 세계지도에다 한반도의 지도, 주요행사표도 들어있었다. 장장이 횡선이 가지런히 그어지어 있어서 글씨를 쓰는 재미도 또한 쏠쏠하였다.
하기에 그는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에는 지난해 마지막 장을 쓴 뒤에는 영락없이 책방을 찾아가 새해의 새로 나온 고급스럽고, 예쁘장한 일기책을 사다가 제 날짜에 꼭꼭 일기를 써왔던 거였다.
그가 오늘 뜻밖에도, 타고 온 차안에다 깜박 잊고, 놓고 내린 일기책도 성환에는 책방이 없었기에, 굳이 천안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사온 거였다. 그리고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꼬박꼬박 빈틈없이 채워 써놓은 일기장이었다. 하기에 지금 기억을 살리어 생각하여보더라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끼적거리었던 소중한 일기장이었다
게다가 그 일기 속에는 경산의 말씀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지만, 김 과장과 어울리었던 일들과, 그가 파월명령을 받고 작전과장 자리를 비우는 동안, 상등병 계급장을 달고, 창장 중령에다 소령이 세 명, 중위 다섯 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대위인 속에서 과장을 대리하여 작전참모의 자리를 채우고, 회의에 드나들었던 자못 특이한 일들이 그날그날 기록되어있었다.
또 이따금 정읍댁의 이야기를 쓸 때는 눈시울을 데워가면서 썼기에 일기장의 책갈피에는 눈물방울이 얼룩지어있던 기억도 생생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오뉴월 무렵이면, 으레 기훈의 죽음을 회상하면서 쓴 거들도 있었고, 집에 외로이 홀로 있을 어린 동생 명훈이를 그리며, 뜨거운 애정과 연민에 얽힌 생각들을 써놓은 곳도 더러 있다는 기억이 스치기도 하였다.
그렇듯 써놓은 일기장은 그 소중하기가 다시는 재생시킬 수 없는 보물보다도 더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이 아니라 은금보화로도 감히 바꿀 수 없을뿐더러, 온갖 극진정성을 들인다고 하여도 한번 잃은 거는 오로지 마지막이었다. 하루하루 지나간 수많은 날들의 기록이 되돌아올 수 없다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거와 다르지 않은 노릇이었다.
이렇듯 날마다 써놓은 기록들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두 번, 세 번 일깨었다.
적어도 군대 말년에 있어 삼백일가량이나 되는 사연들을 고스란히 망각의 그늘로 몰아넣고 말았던 거였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이렇듯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거였다.
그렇다고 생각할수록, 천복은 잃어버린 일기장에 아쉬움과 소회가 말할 수 없도록 상실감으로 빠지어들 수밖에 없었다. 뿐 아니라, 미처 헤아릴 수 없었던 안 상병과의 만남으로부터 이어진 매화와 국화와의 해후상봉과, 그리하여 그녀들의 지난날 가슴을 저미는 사연들을 알 수 있었고, 그로부터 고뇌에 빠지기도 하였던 기록은 지금쯤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군대의 작전정보와 그 보존과 활용의 지침에 따른 계획수립을 주된 업무로 취급하다보니, 다달이 또는 분기마다 실시하는 부대의 사병교육에 필요한 차트나 교안을 작성하였고, 김진홍 작전과장의 부재중에는 교관을 대신하여 교육훈련을 실시하여야만 하였던 일들, 또는 여러 작전계획의 비밀문서관리 같은 업무를 다루면서 그 비기(秘記)들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고스란히 잃고 말았던 거였다.
그러한 일들은 천복의 일생을 통하여서 단 한번 지나치었던 희귀한 기록들이었기에 망실감은 더욱 짙게 먹구름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첫댓글 천복(선생님)이 대충 1945년생 정도 되시네요 ㅎ
일기장에 관한 옛 추억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일기장에 에쁜 자물쇠가 달린 것도 있었고
사춘기에 생일선물로도 많이 주고 받았고 절친들끼리는 일기장을 바꿔보기도 했지요
봇따리를 찾도록 빌어드릴께요 ^^*
천복이 필자 자신이라는 자서전적 이미지가 엿보였던가 보네요.
비록 필자가 필자의 사연을 쓰더라도 그런 티가 보이지 않아야하는데?
필자는 신문기자가 되었든 소설가가 되었든 모두가 업서버입니다.
이 업서버 정신이 흩어지면 작품은 실패로 돌아가지요.
이야기야, 소설이든 수필이든 자신이 겪고 체험이란 토대 위에
상상의 집을 짓는데 手記를 쓰듯하면 소설에서는 실패지요.
대우님은 일기책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 한참 뒤 개화시대 말씀이시군요.
여기서 천복의 태어난 해는 이 소설의 첫머리에 나옵니다. 해방되기 3년전이라고 했으니
1942년인가보네요.
말씀대로 자물쇠 달린 일기보았어요. 선물이나 바꿔보긴 나름이겠지요
일기장 보따리를 찾도록 비신다니요.
꼭 찾도록 하겠습니다. 더욱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습득하는 걸로,
그렇지만 지금 같으면 여성들이 습득하고 보내어준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 시대 아가씨들은 ???????
천복이 일기장에 대한 푸념을 너무 많이 늘어놔서도 찾긴 찾아야할 거 같습니다.
저는 그저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ㅎ
단기를 서기로 고치면 1958년인데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면 12~13살
그러면 대충 1945년생으로 나오지요
소설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은 까마귀고기를 먹어서 다 잊어버렸구요 ^^*
@대우 16살 때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