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강 2023.12.31일) 말씀/ 사 43: 1-28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 19 )
이제 2023년 한 해도 저물고 내일이면 2024년 새 해가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아침에 시작하지 않고 그 전날 저녁에 시작한다고합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밝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합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2024년을 오늘 미리 시작합니다. 지난 한 해도 많은 성장과 변화를 주셨지만 2024년도 더욱 새로워지고 발전 진보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하면 소망이 소망으로 결단이 결단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바램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 확고한 근거를 말씀에서 찾고, 독서에서 실천력을 기르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사야 43장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새 일, 새 구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미래의 구원과 새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세 가지 핵심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2024년 우리 모두 다 소원하는 바 각자의 비전을 이루는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두려워 말라(1-13) 새로운 역사를 도전하고 이루려고 할 때 극복해야할 가장 큰 것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우면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야곱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며 하 나님의 택한 백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움은 누구나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강물이 침몰하는 위험과 불꽃이 사르는 위험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과거 홍해 바다의 사건과 같은 바벨론 포로의 불시험을 가리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물 시험, 불 시험을 겪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구원을 목격하기 전에 반드시 만나는 시험들입니다. 물질의 시험, 질병의 시험, 사고의 시험, 장래 문제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시험을 만나게 되면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새 역사와 구원의 역사의 비전을 이루려면 이런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비전을 품고 출애굽을 하였을 때 이들에게 부딪혔던 첫 번째 관문인 홍해 바다 앞에서 부딪힌 것이 두려움 이었습니다. 검푸른 홍해가 너무나 두려워서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이때 지도자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게 함으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이 마르고 전갈이 우글거리는 광야의 길에서 수없이 넘어졌고,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도 장대한 가나안 족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메뚜기 같은 심정으로 주저앉으려 하였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 갈렙은 이들에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올라가서 취하자”고 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물,’ ‘불’시험 등 이런 직접적인 문제들이 아닙니다. 사건 사건을 타고 들어오는 이런 두려움의 문제들입니다. 세상은 물과 불 천지입니다. 어디로 가도 물과 불은 겪어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근본 문제는 내면의 문제입니다. 두려우면 꼼짝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런 두려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문 밖에 사자가 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해결해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인 사자가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을 두 아이의 모습을 비교하며 보여줍니다. 두 아이는 문 밖에 사자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두 아이 모두 사자가 무서워합니다. 무서워서 나갈 수 없는 한 아이와 그래도 나가고 싶어 하는 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사자는 크고 뾰족한 이빨이 있고 날카로운 발톱도 있다는 것을 두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고 다른 아이는 사자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사자가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저 문을 나가지 않는다면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절대로 알 수 없겠지? 나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알고 싶어! 이렇게 집 안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밖에서 으르렁대는 사자를 보고 한 아이는 지레 겁부터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는 "지금이 기회다!" 라고 말하며 고기를 굽고 문밖으로 내던 집니다. "야호! 드디어 나왔다!" 아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여전히 두려움의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잉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조성하신 창조자 이시며 나의 구속 자입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고 나의 앞길에서 나를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무엇이든지 나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기지 않고 내어주셨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1b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출 19장 5, 6).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확신한다면 어떤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경기 침체를 고물가를 많이들 두려워합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두렵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 세게 도처에 전쟁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미래가 준비되어있지 못하면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수많은 젊은 대학생들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염려하고 두려워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근본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0-31). 하나님이 택하신 너희들인데 무엇이 두렵느냐는 것입니다. 말씀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우리도 과거에 많은 것을 두려워하였지만 지내놓고 보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신8:4). 이제까지 어려울 때마다 염려하고 두려워하였지만 굶은 사람이 없습니다. 옷이 헤어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장도 주셨고, 사업도 일으켜주셨고, 결혼도 이루셨고, 자녀도 주셨고, 역사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4).”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유된 자녀들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자녀들이 동방, 서방, 원방, 땅 끝에서 있을지라도 이끌어오겠다고 하십니다(5,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들로 반드시 영광을 돌릴 자들입니다(7). 8-13절을 보면 ‘증인’ 이란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증인이요.” 하나님의 소유물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증인들입니다. 증인은 남아서 영광을 증거 할 자들입니다. 절대 잘못 되지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둘째,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 우리가 앞으로 나가가야 할 때 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옛 적 일 과거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옛 적 일도 은혜스럽고 좋은 일들, 잘 간직하고 기념해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전 것들에 묶여있어서는 안됩니다. 본문에서 이전 일, 옛적 일은 출애굽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대적을 홍해에 수장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스라엘의 기념비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너희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사건을 영원히 잊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새로운 차원의 크고 놀라운 새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좋았던 것도 더 좋은 일을 위해서 잊어야 합니다. 과거에 좋았던 것에 매이면 새로운 것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노인들의 특징은 옛 날의 일을 기억하며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일을 생각하다가 거구로 어린아이가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노인들도 꿈을 꾸고 . 미래가 있는 청춘이 됩니다. 학문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열심히 공부해서 인정을 받았고 교수가 되어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면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 과거 것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알고 있는 것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배워나가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니체는 철학을 망치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전 것을 부수면서 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느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작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의로 주님의 생명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과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옛날도 좋았지만 세계화 자유의 물결, 하나님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옛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도 버릴 것이 있는데, 하물며 부정적인 일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에는 우리 자신을 묶어놓았던 율법적인 사고가 있습니다. 상처받은 기억하고 싶지 사건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온 부정적인 생각들, 불신의 관계들도 있습니다. 2024년 시작하기 전에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깨끗이 청산하는 것, 그것이 용기입니다. 이렇게 할 때 새로운 세계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보라, 내가 새 일을 이루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마지막으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일’입니다. 이 새 일은 우리가 이루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루실 일을 말합니다. 우리도 전에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새 일을 해보고자 애를 쓰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잘 이룰 수 있었습니까? 결론적으로는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해도 하나님은 새 일을 이루시는 분 이십니다. 내가 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이루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복종치 않았다고 하였습니다(롬10:3). 내가 앞서서 열심히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그릇 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일을 기대하려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라 ,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곧 나타낼 것이라”.( See, I am doing a new thing!) 문제는 하나님의 일을 바라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겉으로 드러나고 나타내어져야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시는구나!”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겉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타내는 것보다도 물밑 작업으로 역사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밑으로 역사 하시다가 때가 찬 경륜으로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새 일을 민감하게 볼 수 있습니까? ‘보라’는 것은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도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건 이었습니다. 모세는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바라본 결과 마침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일의 성격입니다. 믿음의 눈이 없으면 당장에 광야와 사막의 상황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장차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로 엎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고, 70년 바벨론 포로 가운데 고레스를 구원자로 보내셔서 기적적으로 귀환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도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새 일은 이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 바벨론 귀환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예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하실 새 일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만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저를 믿는 모든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뿐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주님께 나아와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 들어오게 됩니다. 택한 자녀들의 배 속에서는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할렐루야! 들짐승 시랑과 및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위대한 역사가 실현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 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새 일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의 싸인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새 일, 징조의 표지를 보고 있습니까? 저는 2002년 개혁 후 <주님이 하십니다> 라는 책을 쓰고, 수는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지향하며 빌라델비아 교회를 롤모델로 삼고 기도할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 하나도 없이 거의 10년이 흘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교회 모습을 보일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후 또 10년이 넘게 저는 많은 책도 읽고 색소폰도 얀습하면서 주어진 일 속에 최선을 다하며 보내주시는 중국 유학생들 중심으로 말씀을 역사를 섬겼습니다. 유학의 붐을 타는 역사라 언제끝날지 모르는 일이지만 10 동안 70가량의 양들에게 세레를 주고 네팔의 우즈알 형제 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이런 시골 작은 교회에서 크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역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에 많ㅇ느 중국 학생들이 돌아가고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이루실지 막연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현옥 집사님, 박경숙 집사님을 보내주시며 신선한 말씀 공부와 독서모임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처음 몇 분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모두가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큐티 말슴과 매주 수요일 독서 모임을 하면서 꾸준히 배우며 성장해 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은혜를 많이 허락하셨습니다. 사유의 시선을 넗히고 시야를 학장하게 하시고 돌로미티도 도전하여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종식 형제와 김성권, 신순주,정양숙 샘님들이 꾸준히 독서모임을 참석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독서모임을 통해 이루실 새 일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실제로 한 분 한 분 소감을 들으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 보며 너무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번 성탄은 어느 때보다도 은혜스런 나눔과 교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성탄 사진과 더불어 지난 한 해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카스토리로 만들어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답글로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라고, 아름다운 교회를 보며 소망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 아름다운 교회 이것이 단지 꿈이 아닌 현실로 실현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우리의 교회 지체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보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예수를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한가지 고민은 12명이 넘으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서울의 이두인 장로님이 참석하고 은혜 받고 갔습니다. 다음에 또 오실 분들이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정찬균 목사님이 독서모임에 ckad하고 싶다고 하엿는데 기꺼이 오시라는 말을 못햇습니다. 수가 늘어나는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걱정을 할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가 납니다.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결론적으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적은 무리지만 열심히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성장하고 나누며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이루실 우주교회의 새 일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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