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기후대응은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온난화로 인해서 영구동토층과 심해에 묻혀 있는 메탄이 대기 중으로 풀려나서 지구온난화가 손쓸 수 없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위험을 전 세계 440여 기 원전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일에 비견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많은 지역, 특히 남반구에서 전쟁의 참화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재난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인류, 특히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무기를 들지 않고도 일상적으로 전쟁에 가담해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약탈적 관계 한가운데에 기후변화와 군국주의가 맞물린 위기가 놓여 있는 것이다.
(25)
환경정책은 실종되고 오로지 산업정책만 난무한 이번 정부의 폭주는 고작 1년 만에 국토 곳곳을 난도질하며 짓밟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지구적 합의에도 빠른 걸음으로 역행하는 정부다.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대통령은 환경부에서 산업부처가 되라면서 대한민국의 환경과 우리의 미래를 시나브로 팔아먹고 있다. 다만 무엇을 대가로 받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환경부가 아주 기본적인 존재의무도 저버리고 반(反)환경 정권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나열해보겠다.
(28-29)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환경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으로 이미 지난 정부 때 불허했음에도 막가파식 억지 논리를 받아들여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주었다. 한국환경연구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등 5개 전문기관이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냈지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무조건 통과다.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의 자연보전지구,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핵심구역,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호지역 카테고리II(보전 중심 관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국내외 법제도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 국토 중 관광용 케이블카가 놓이지 못할 곳은 없다.
(37)
우리가 2050년 탄소중립을 하려면 2021년 6억 8000만t이 넘는 총배출량을 2050년에는 8000t(시나리오 A) 수준으로 줄이고, 8000만t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는 총배출량 5억 1200만t으로 줄여야 한다. 앞으로 7년여 동안 1억 6800만t을 줄이는데, 그다음 20년은 4억 3200만t을 줄여야 하니 감축부담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가장 큰 특징도 2030년 감축목표량을 윤석열 정부 임기 이후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동안 2030년까지의 총감축량 25%를 줄이고, 다음 정부는 3년 만에 75%를 줄여야 한다.
(95)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환경부 등이 전쟁 9개월쯤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계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쟁 7개월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억tCO2eq에 달하고, 이는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가 같은 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투는 우크라이나에서 재생에너지 단지가 밀집한 지역 위에서 벌어지고,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이 운영되던 시설 인근을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경제활동보다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한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 성과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147)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지만 주민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묵살당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13년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은 원전에서 출발하는 송전선이었고, 반핵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지금 재생에너지 때문에 다시 똑 같은 일이 벌어질 상황이니 기가 막히지요. 발전원이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전단지나 송전선 인근 주민들에게는 똑 같은 폭력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전남 영광에 계신 분과 통화를 했는데, 영광에는 원전이 6기나 있고 방폐장 때문에도 주민들이 고초를 겪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신안 앞바다에 8GW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면서 또 송전선을 건설한다는 것인데 이게 영광을 지나가요. 게다가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라고 한빛원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업폐기물을 소각하는 발전소도 추진되고 있어요. 도대체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탄식하시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158)
한번 훼손되고 오염된 땅을 농지로 복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농지에 불법폐기물 투기하는 일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도 빨리 해결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지목이 농지인 것 외에도 간수할 방법도 찾아야 됩니다. 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사회마다 텃밭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아직 남아있는 농지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207)
지금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의 삶(生) 자체의 종언에 맞닥뜨리고 있다. 생물종, 바다, 숲, 호수, 강이 퇴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이 지구의 생물지구화학 체계들을 교란하고 있다. 우리는 마비가 된 것 같다. 아니면 매혹되어 있는 것일까. 지금 인류는 더할 나위 없는 규모로 죽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있는 힘껏 거부하고 있다. 어차피 맞게 될 죽음을 이토록 애써 부정하거나, 언젠가 닥칠 죽음을 예고할 뿐인 얼굴의 주름 같은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토록 돈을 퍼붓는 문화는 없다. 기술에 의해서 우리의 두려움은 더욱 확대되었고, 죽음과 대면하는 일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한편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력과 죽음을 묘사하는 영상물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몰두하고, 약물, 알코올 중독은 만연해 있으며, 사람들은 운전을 거칠게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 죽음에 추파를 보낸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면서 또 거기에 끌린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