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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단(韃靼)족의 고향, 반도(半島) 함경도 함흥 땅일까?
달단(韃靼)은, 말갈의 유종(靺鞨遺種)? 몽고의 유종(蒙古遺種)?
○ 원전(原典) 사서(史書)마다 다르게 기록(記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말갈(靺鞨)의 유종(遺種)이든, 몽고(蒙古)의 유족(遺族)이든 간에, 이들은 한반도(韓半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자(者)들이고, 대륙(大陸) 땅이라고 하는 현재(現在)의 중국(中國) 서(西)쪽 지역(地域)인 신강성(新疆省) 일부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와 관계(關係)가 있는 자(者)들이다.
그런데 한반도(韓半島)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을 보면 : 이러한 달단(韃靼)족의 고향(故鄕)인 달단동(韃靼洞)이 함경도(咸鏡道) 땅에 있다는 것이고, 실제 해설서(解說書)를 보면,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고조(高祖) 이안사(李安社) “목조(穆祖)”의 릉(陵)인 덕릉(德陵)이 함흥부(咸興府) 의흥부(義興府) 달단동(韃靼洞)에 옮겨 장사하였으니, 곧 덕릉(德陵)이다.」라고 하였다.
반도(半島) 함경도(咸鏡道) 땅이 ‘달단(韃靼)=타타르(Tatar)’족의 고향(故鄕)이 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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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백과 / 타타르스탄(Tatarstan)
볼가 강과 카마 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볼가 강 중류유역에 있다. 수도는 카잔이다. 1992년 3월 신연방조약에 따라 자치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승격했다. 대부분의 지대는 기복이 있고 낮은 평야이며, 볼가 강 서쪽 지역은 235m까지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우랄 산맥 기슭으로 이어진다. 대륙성기후로 길고 매우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특징이다.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타타르인은 투르크계 민족이다. 경제는 석유생산·공업·농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브레주네프에는 세계 최대의 트럭 공장이 있다. 농산물로는 밀·옥수수·기장·콩·감자·사탕무·대마·담배·사과·낙농제품·축산품 등이 있다. 대형 화물선이 강을 항행하며, 정기여객선이 타타르스탄의 하항들과 모스크바 및 볼가 강 유역의 전 지역을 연결한다.
볼가 강과 카마 강이 합류하는 지점 부근, 볼가 강 중류유역에 있다. 40개의 도시가 있으며, 그 가운데 대도시로는 부굴마·젤료노돌스크·알메티예프스크·치스토폴·레니노고르스크·니주네캄스크·나베레주니예첼니와 수도 카잔 등이 있다. 1992년 3월 신연방조약에 따라 자치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승격했다.
볼가 강은 남북방향으로 공화국의 서쪽 끝을 가로질러 흐르고, 볼가의 가장 큰 지류인 카마 강은 대략 동서방향으로 넓은 지역을 흐른다. 그밖에 카마 강의 주요지류인 뱌트카 강, 벨라야 강이 흐른다. 대부분의 지대는 낮고 기복이 있는 평야인 가운데 볼가 고지의 최북단을 이루는 볼가 강 서쪽 지역은 235m까지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우랄 산맥 기슭으로 이어진다. 남동쪽으로는 해발 338m의 부굴마벨레베이 고지가 펼쳐져 있다.
대륙성기후로 길고 매우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특징이다. 연강수량은 420~510㎜이며, 여름에 가장 많다. 적설량은 610㎜에 이른다. 대부분 지역이 침식되거나 포드졸화된 체르노젬토의 삼림-스텝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토의 약 16%가 삼림이다. 강 유역에는 넓은 범람원 목초지가 펼쳐져 있지만, 볼가 강과 카마 강 하류의 목초지는 2,849㎢ 이상을 뒤덮고 있는 니주네캄스크 저수지와 사마라 저수지에 잠겨 없어졌다.
오늘날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타타르인은 투르크계 민족이다. 이들은 몽골족의 후예로 13세기 중엽 불가르 토착민을 흡수하거나 물리치고 이 지역에 정착했다. 15세기에 킵차크한국이 쇠퇴하면서 여러 소집단으로 분리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북쪽의 집단이 카잔한국이었다. 카잔한국은 오랫동안 모스크바 공국과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1552년 뇌제 이반 4세가 카잔을 포위, 공격하여 점령함으로써 싸움이 끝났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반란이 있었으나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러시아가 카잔을 정복한 뒤부터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공화국은 1920년에 수립되었다. 경제는 석유생산·공업·농업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1943년 최초의 유정이 세워진 이래 유전이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송유관은 알메티예프스크에서 동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니주나야 막타마를 중심으로 천연 가스가 개발되고 있다. 화학공업은 주로 카잔·멘델레예프스크·니주네캄스크에서 행해지며, 선반·기화기·농기구·의료기구·시계·타자기 등을 생산하는 기계공업은 카잔·젤료노돌스크·치스토폴 등 볼가 강 및 카마 강 유역의 도시들에서 이루어진다.
브레주네프에는 세계 최대의 트럭 공장이 있다. 마마디슈와 인근 도시들에서는 종이와 펄프가 제조되며, 비누를 비롯한 유지제품은 카잔의 주요생산물이다. 농산물로는 밀·옥수수·기장·콩·감자·사탕무·대마·담배·사과·낙농제품·축산품 등이 있다. 대형 화물선이 강을 항행하며, 정기여객선이 타타르스탄의 하항들과 모스크바 및 볼가 강 유역의 전 지역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미비한 편으로 모스크바와 우랄 산맥을 잇는 2개의 간선철도가 이 공화국의 북서부와 남동부 지역을 통과하고, 또 다른 철도가 볼가 강의 오른쪽 기슭을 지나 남북으로 뻗어 있는 정도이다. 주요도로가 카잔에서 부굴마·멘젤린스크, 치스토폴에서 누를라트까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문화생활은 다양하다. 국립대학교와 전문대학을 포함한 12개의 고등교육기관과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지부를 비롯한 연구소가 많이 있다. 1,800개가 넘는 도서관, 9개 극장(몇몇 극장은 타타르어로 공연함)이 있으며, 약 135종의 신문이 발간된다. 면적 68,000㎢, 인구 3,755,000(1995). (다음백과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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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타타르 공화국(Tatarstan Cömhüriäte : 타타르어) :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러시아어)
※ 타타르 공화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타타르스탄 공화국 / Tatarstan Cömhüriäte (타타르어) /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러시아어) / 수도 : 카잔 / 수립일 1920년 5월 27일 / 면적 68,020.3km²/ 인구 : 2010년 어림 3,786,488명
타타르스탄 공화국(타타르어: Tatarstan Cömhüriäte / Татар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타타르스탄 죔휘리애티 / 타타르스탄 레스뿌블리까스,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Татарстан 레스푸블리카 타타르스탄[*], 조선말(북): 따따르스딴 공화국)은 러시아의 공화국이다.
국명은 타타르스탄 공화국으로,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레스푸블리카 타타르스탄, 가끔 타타르어에서는 Tatarstan Cömhüriäte(라틴, cömhüriät는 공화국이라는 뜻)이라는데 이것은 아랍어의 줌후리야(Jumhuriyya)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공식 이름은 아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전에 타타르 공화국은 소비에트 연방의 자치 공화국이었다.(타타르 ASSR) 다른 러시아어 이름은 Тата́рия (타타리야)로, 소비에트 연방의 자치 공화국이었을 때 불렸던 이름이었다. 타타르어는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로 쓴다.
지리 : 동유럽 평원에 접해 있다. 볼가 강과 카마 강 사이에 접해 있고, 우랄 산맥이 위치해 있다. 수도인 카잔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797km 떨어져 있다. 타타르스탄 공화국 면적의 16%는 삼림으로 덮여 있다. 이 중 참나무, 박달나무, 사시나무 등의 활엽수가 대부분이며, 침엽수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주로 자란다. 타타르스탄 공화국에 서식하는 생물은 430종이다.
벨라야 강…이크 강…카마 강…볼가 강…뱌트카 강…아랴 강이 추바시 공화국의 우르마르스키 군과 타타르스탄 공화국을 통과해서 흐른다.
호수 : 가장 큰 호수는 카반 호이다.
기후 : 기후는 대륙성 기후를 띠고 있다. 가끔 이곳에 가뭄이 들기도 한다. 1월 기온: -16 °C / 7월 기온: +19 °C / 강수량: up to 500 mm
주민 : 타타르족(51.3%), 러시아인(41%), 추바슈인(3%), 우크라이나인(0.6%)이 거주하고 있다. 모르도바인, 우드무르트인, 마리인, 바슈키르인도 타타르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공식 언어는 타타르어와 러시아어이다. 2002년 러시아연방법에 따르면 공식문자는 키릴 문자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타타르 측에서는 라틴 문자도 쓰고 있다. 인구는 377만 9,265명(2002년)이다.
역사 : 타타르스탄의 역사
대불가리아
하자르 카간국
볼가 불가르
킵차크인
몽골의 침입
킵차크 칸국
카잔 칸국
모스크바 대공국
카잔 현
이델-우랄국
타타르 소비에트 공화국
타타르 공화국
타타르인들은 카잔 땅에 카잔한국을 세웠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살아왔으나, 1552년 이반 4세의 러시아 제국에 정복되었다. 일부 타타르인들은 정교로 개종하여, 크리아센(Kriashens)이라는 하위민족을 이루게 되나, 대부분의 타타르인들은 개종을 거부하였다. 현재의 타타르 공화국은 1920년 5월 27일 소비에트 연방의 자치 공화국으로 성립되었다. 1990년 8월 31일 주권선언을 한 타타르 공화국은 체첸을 제외하면, 1992년 연방조약을 거부한 유일한 공화국이다. 공화국 대통령 샤이미예프(Shaimiyev)는 1994년에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여, 석유자원 및 산업시설에 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대부분의 세입에 대한 권리·독자적인 대외 무역 정책을 추진할 권리 등을 얻어냈다. 이 협약은 다른 공화국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연방정부가 공화국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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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학설(旣存學說)인용(引用)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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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단(達靼) 또는 달단(韃靼)이란 말은, 오대사(五代史) 이전(以前)에는 없는 말이다. 아마도 오대사(五代史)에 처음 등장(登場)하는 무리 명칭(名稱)일 것이다.
新五代史, 四夷附錄第三 / 達靼 : 《達靼.靺鞨之遺種,本在奚,契丹之東北,後為契丹所攻,而部族分散,或屬契丹,或屬渤海,別部散居陰山者,自號達靼.中略. : 달단(達靼) : 말갈(靺鞨)의 유종(遺種)으로, 본래 해(奚)와 글란(契丹)의 동북(東北)에 있었는데, 뒤에 글란(契丹)이 공격하자, 부족(部族)은 혹은 글란(契丹)으로, 혹은 발해(渤海)로, 여기저기로 흩어졌는데(分散), 음산(陰山)으로 흩어져 산 자(者)들은 별부(別部)로, 달단(達靼)이라고 부른다. 중략(中略). 其後李國昌,克用父子為赫連鐸等所敗,嘗亡入達靼.後從克用入關破黃巢,由是居雲,代之間. : 그 뒤로 이국창과 극용 부자는 혁연탁(赫連鐸)등에게 패하자, 망인(亡人)들이 달단(達靼)에 들어갔다.其俗善騎射,畜多駝,馬.其君長,部族名字,不可究見,惟其嘗通於中國者可見雲. : 그 풍속에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것을 좋아하고, 가축으로는 낙타(駱駝), 말(馬)이 많다.》고 하였다.
달단(韃靼) : 말갈(靺鞨)의 유종(遺種)이다. 음산(陰山)에 기대어 산 자(者)들은 별부(別部)로 “달단(韃靼)”이라고 칭했다. 음산(陰山)이 어딘가? 중원(中原)대륙(大陸)이나 또는 그 동북방(東北方)의 삼성지대(三省地帶)나 반도(半島) 땅에는,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은 산(山)의 이름이다.」 곧 천산(天山)의 다른 이름이다.
달단(韃靼)들에게는 낙타(駱駝)와 말(馬)이, 아주 많다고 했으니, 낙타(駱駝)란 어떤 동물(動物)이며, 어떤 환경(環境)에서 자라고, 어느 곳에서 야생(野生)낙타(駱駝)가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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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백과 / 낙타[camel, 駱駝] : 낙타과 낙타 속 동물의 총칭
※ 출처 : 두산백과 / 쌍봉낙타
학명 : Camelus
서식장소 : 사막과 초원
분포지역 : 아프리카, 아라비아, 고비사막, 몽골, 알타이산맥
※출처 : 다음갤러리 단봉낙타
등에 큰 혹을 가지고 있는 동물로, 발가락은 2개이며, 발바닥의 척구(蹠球)가 커서 접지면적이 넓기 때문에 모래땅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다. 또 콧구멍을 막을 수가 있고,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먼지를 막아준다. 오랜 시간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다. 등의 혹은 물이 아닌 지방이 저장된 것이며, 영양 상태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사막과 초원에서 살고, 나무의 가지나 잎을 먹는데, 가시가 있는 가지도 잘 먹는다. 며칠간 먹이 없이도 활동할 수 있으나, 이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없어진다. 물은 3일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고, 필요한 수분은 혹 속의 지방을 분해시켜 충당한다. 임신기간은 390∼410일이고, 수명은 30∼40년이다.
혹이 1개 있는 단봉낙타와 2개가 있는 쌍봉낙타의 2종류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단봉낙타가 90%를 차지한다. 〈단봉낙타〉는 몸길이 약 3m, 어깨높이 1.8∼2.0m로, 야생이 없고, 아프리카·아라비아반도·소아시아·이란와 인도 북서부 등지에서 사육되어 왔다. 지금은 유럽·오스트레일리아·북아메리카에도 수입되어, 텍사스주(州)·애리조나주(州)·뉴멕시코주(州) 등지에서 야생화되었으며, 승용과 경주에도 이용된다.
화물운반에 주로 이용되는〈쌍봉낙타〉는 몸길이 2.2∼3.5m, 어깨높이 1.8∼2.1m로, 단봉낙타보다 약간 작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고비사막·몽골·알타이산맥 등지에서 옛날부터 사육되어 왔으며, 반 야생 상태에 있는 것도 많다. 야생종은 투르키스탄 동부와 고비사막 중앙부에 극히 소수가 남아 있다.
낙타는 옛날부터 가축화되어 승용·역용(役用)으로 사용되는 것 외에, 젖은 음료로, 고기는 식용으로, 털은 직물용으로 이용되어 사막(沙漠)지대(地帶)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가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타 [camel, 駱駝]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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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지식백과 / 학생백과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 사막을 건너는 배, 낙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정착민과 유목민, 그리고 대상으로 나뉜다. 정착민들은 오아시스에서 농사를 짓고, 유목민들은 풀과 샘을 찾아 돌아다니며. 대상은 무리를 지어 장사를 하러 떠난다. 이때 유목민과 대상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가축이 바로 낙타이다. 낙타는 사막기후를 견딜 수 있는 특이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낙타는 위장이 여러 개이며, 각 위장의 벽은 수백만 개의 미세한 저장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 몇 주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
또 낙타의 혹에는 지방이 저장되어 있어 몇 달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 낙타는 후각이 발달해 몇 ㎞ 떨어진 곳에서 나는 냄새도 맡을 수 있으며, 맹물보다 소금기가 있는 물을 잘 마신다. 낙타의 기다란 속눈썹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가릴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닫을 수 있는 코는 콧속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
사막(沙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낙타는 교통수단이자 고기와 털을 제공하는 유용한 가축이다. 뜨거운 사막 위를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채 320㎞를 갈 수 있는 낙타는, 그 어떤 가축보다 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낙타 /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반도와 북부 아프리카에서,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 지역과 인도에서 볼 수 있다. 쌍봉낙타는 단봉낙타에 비해 털이 굵고 길어 ⁻40℃ 정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막을 건너는 배, 낙타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2011. 8. 29.,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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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사전 / 낙타[駱駝]
실크로드 오아시스로의 중요 운송수단. 낙타는 유목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5축(양·산양 ·소·말·낙타)중 가장 뒤늦게 가축화된 동물이다. 낙타에는 쌍봉낙타(Camelus bactrianus)와 단봉낙타(Camelus dromedarius) 2종이 있다. 대체로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 이동 지역에, 단봉낙타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서아시아 지역에는 간혹 두 종의 잡종도 있다.
낙타는 사람이 직접 타거나 수레의 견인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사막의 배’란 이름에 걸맞게 하역에도 많이 쓰인다. 더위나 추위에 강하며 갈증도 잘 견디는 낙타는 한마리가 100kg의 하물을 싣고 사막을 유유히 주파할 정도여서 오아시스로 교역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小松久男 · 梅村坦 · 宇山智彦 · 帶谷知可 · 堀川徹 編集 『中央ユ—ラシアを知る事典』, 平凡社 2005년. p.522 [네이버 지식백과] 낙타 [駱駝]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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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뮤지엄 / 낙타
낙타는 당대 초기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이 성행하면서 그 수요가 많아졌고 중국으로 전리품, 조공, 상품 형식으로 대량 수입 되었다. 당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낙타를 호인용과 함께 무덤에 부장용으로 매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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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낙타 분포지역 : 낙타(駱駝, 문화어: 락타)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에 사는 포유동물이다. 낙타는 사막을 이동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가축이다. 단봉낙타는 야생이 전멸하고 가축화되었으나 일부 쌍봉낙타는 중아시아 지역 특히 몽골 고비사막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깨높이 1.8-2m, 몸무게는 250-680kg이다. 동아줄 같은 꼬리의 길이만도 50cm가 넘는다. 낙타는 빽빽하게 난 양털 같은 털 때문에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인다. 털은 흰빛에서 검은빛을 띠는 것까지 다양하나 모두 갈색 계통이다. 봄에 털갈이를 하고 가을이면 털이 다시 자라 두툼하게 몸을 덮는다. 하지만 가슴과 무릎에는 털이 없는 부분이 있다. 목과 발은 길며 각 발에 발가락이 두 개씩 있고, 발가락의 앞부분에는 발톱 같은 발굽이 자란다. 두 개의 긴 발가락을 연결하는 넓적한 판으로 땅을 딛는다. 낙타가 땅에 발을 대면 이 방석 같은 판이 넓게 펴져 마치 사람이 눈 신발을 신고 눈 위를 걷듯이 모래땅을 잘 걸을 수 있다. 앞니는 위턱에 있으며 송곳니는 상하 양턱에 있고, 위는 3개의 주머니로 되어 있다. 뿔이 없으며 눈썹은 길고 두 줄로 되어 있어서 모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나뭇잎이나 가지를 먹으며 가시가 있는 가지도 먹는다. 수일 간 먹지 않고 일할 수 있는데, 이때 혹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거의 없어진다. 즉 필요한 수분을 등에 있는 혹의 지방을 분해해서 보급하는 것이다.
낙타는 물 없이도 며칠 심지어는 몇 달까지 살 수 있다. 사막민들은 낙타에게 대추야자 열매와 풀 또는 보리나 밀 같은 곡류를 먹인다. 낙타로 사막을 여행하는 도중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에 띄는 대로 먹이를 먹여 두어야 한다. 선인장 같은 사막식물도 먹는데 입 안에 상처를 입지 않고도 가시가 있는 나뭇가지를 먹을 수 있다. 입 안의 표피는 매우 질겨서 날카로운 가시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동물의 뼈, 물고기, 고기, 가죽, 심지어는 가죽 텐트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낙타는 먹이를 충분히 씹지 않고 삼켰다가 나중에 입으로 되가져와 씹은 후, 위로 보내 완전히 소화 시킨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더울 때 땀을 통해 수분을 증발시켜 몸을 식히지만, 낙타는 몸 속의 수분이 보존되도록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 대신 체온이 낮에는 6℃ 정도 올라가고 밤에는 내려간다. 더운 날씨에 낙타끼리 서로 몸을 비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막의 공기보다 다른 낙타의 몸이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사막지역에서는 운송 수단, 양식, 옷, 주거 재료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고, 농경지에서는 낙타를 밭갈이와 물레방아를 돌리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 쌍봉낙타의 경우 사람에게 침을 뱉거나 발로 차기도 한다. 낙타 털로는 옷감이나 천막을 만들고, 가죽으로는 신발, 가방 등을 만들며, 뼈는 상아처럼 세공하여 값진 물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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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람사전 / 낙타[Camel]
세계 유목문화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아랍인의 특징은 아랍문화의 밑바탕에 가축사육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점이다. 낙타의 호칭으로서는 자말(jamal, 총칭, 수컷), 나까(nāqa, 암컷), 바이르(ba‘īr, 단수총칭), 이빌(ibil, 복수총칭)이 있다. 비아랍권에서는 영어의 camel의 어원이 된 jamal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랍어에서는 사용빈도 및 개념적으로도 나머지 세어휘가 압도적으로 많다. 바이르는 암컷과 수컷의 구별없이 1마리의 낙타를 의미하는데 사용된다.
가축화된(기원전 3000년경) 것도 이 지역이 최초였고, 그 후 짐을 운반하는 용도나, 또는 타는 용도로 폭넓게 이용되는 데다 전투용으로도 훈련시키며 키웠다는 것은 아랍인뿐이었다. 이것은 다른 낙타유목민에 비해 특기할 만하다. 아랍인의 대정복역사도 이슬람화의 역사도 낙타의 존재를 빠뜨려서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아랍낙타는 혹이 하나이며, 추위와 황폐한 지역에 길들여진 혹이 두 개인 낙타와는 달리, 덥고 건조한 기후에 잘 견디어내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물마시고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갈증에 강하다.
그것은 위뿐만 아니라 근육조직사이에도 물을 비축하는 것과 등에 있는 혹의 지방을 공기 중의 산소와 화합시켜 신진대사를 통해 물을 만들어내는 2개의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대한 사막을 건너는 〈사막의 배〉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길고 풍부한 속눈썹, 열고 닫기가 자유로운 코, 평평하고 큰 발바닥은 모래먼지·모래땅에 매우 강하다. 또한 튼튼한 치아·잇몸, 그리고 위가 한번 삼킨 음식을 다시 입속으로 끌어내어 되씹는 것은 질이 떨어지는 식사에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인간에게는 우유와 고기는 식용으로, 털과 가죽은 옷과 주거에 각각 활용한다. 낙타유목민에게는 생활필수품 중에서 낙타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은 곡류와 금속류뿐이다. 사막적 환경에서 상무(尙武)정신을 가지는 낙타유목민의 자립적 세계는 도시중심의 왕조세계와 경합하고 있었다. 낙타가 재화로서는 자카와 피의 보상액을, 또한 낙타화물로 중량을, 낙타가 하루에 가는 낙타일(駱駝日)로 거리측정을 재는 기준단위에 이용된 것도, 낙타가 아랍인의 일상생활에 차지하고 있었던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타 [Camel] (이슬람사전, 2002. 11. 15., 학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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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 / 낙타 전투[Battle of the Camel]
서기 656년 11월 바스라에서 칼리파 알리와 그 반대세력 간에 발생한 전쟁이다. 반대세력의 주축인 무함마드의 미망인 아이샤가 낙타를 타고 직접 전장에 나섰기 때문에 낙타 전투라 불린다.
이슬람 공동체 제 3대 칼리프 오스만(재위 644~656)이 사망한 뒤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가 칼리프위에 추대되었다. 그러나 일부 원로들과 선대 칼리프 오스만 출신가문 우마이야가(家)의 친척들이 알리의 칼리프 추대에 반대하였다.
원로 탈라하와 주바이르(al-Zubayr bin al-Aqam)는 무함마드의 미망인 아이샤와 결탁하여 반(反) 알리 운동을 펼쳤다. 656년 11월 바스라 (Basra, 현 이라크)에서 군사를 일으켜 전투가 일어났다. 이슬람 공동체에서 발생한 첫 내전으로, 아이샤가 낙타를 타고 직접 전장에 나서 군사들을 독려했기 때문에 낙타 전투라 불린다.
7일간 지속된 전투에서 약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칼리프 알리의 승리로 끝났다. 전투 종료 3일 후, 알리는 양측 사망자 모두를 위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탈라하는 전투 중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주바이르는 전투 시작 전에 물러섰으나 적장에 의해 참수되었다. 아이샤는 처벌 없이 메디나로 보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타 전투 [Battle of the Camel]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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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용어사전 / 낙타군단[ 駱駝軍團 , camel corps ]
인도, 이집트 등 영연방군의 하나로 낙타를 수송수단으로 한 2차 대전 때의 군대 편성의 하나.[네이버 지식백과] 낙타군단 [駱駝軍團, camel corps] (군사용어사전, 2012. 5. 10. 일월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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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駱駝)에 대한 현존(現存)하는 유력(有力) 해설(解說)【위 ⒜∼⒣ 까지】들을 인용(引用)해 보았는데, 그 결과(結果)는 거의 똑같은 내용(內容)이다. 곧 낙타(駱駝)는 현재(現在)의 지명(地名)으로 보면 :〈외몽고(外蒙古) 서부(西部)·신강성(新疆省)·중앙아세아(中央亞細亞)·서남아세아(西南亞細亞)·인도(印度)·북아프리카등지(等地)의 사막지대(沙漠地帶)와 초원(草原)과 반사막(半沙漠)지대에서 살았으며, 가축(家畜)화된 동물(動物)이다.〉라는 것이다.
야생종(野生種)은,〈투르키스탄 동부(東部)와 고비사막 중앙부(中央部)에 극히 소수(小數)가 남아 있다.〉고 전한다.
달단(韃靼)들에게 낙타(駱駝)와 말(馬)이 많았고, 음산(陰山)에서 기대어 살았다는 역사기록(歷史記錄)은. 이들이 중원(中原)이나 그 동북방(東北方)지대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다는 것을 증거(證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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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中國)측의 논문(論文)에 의하면 : 현재 중국의 타타르족 인구는 2,000년 현재 4,890명이며,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크기가 52번째이다. (2000년 중국 인구조사통계) / 13억 인구(人口)중에 4,5 천명이라는 말은 ‘타타르’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대부분의 타타르족은 신강위구르자치구에 4,501명이 거주하며 감숙성에 186명이 거주한다.)
‘중국 내 타타르족의 기원과 역사‘란 논문을 보면 : 〈타타르족이 중국의 신강 지역에 이주한 것은,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세기 전반기로서 러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토지를 상실하거나 병역 및 가혹한 세금을 피하려는 타타르인 일부가 볼가강 하류, 시베리아, 카자흐스탄을 거쳐 신강의 포이진(布爾津), 합파하(哈巴河) 등지에 이주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로서 1881년 러시아와 청(淸)왕조 사이에 체결된 ‘페테르부르그 조약’을 계기로 러시아 국적 상인의 청나라 영내 상업 활동에 특권이 부여됨에 따라 당시 러시아 국적을 가진 타타르인들이 상인을 중심으로 중국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즉 “카잔”(喀山) 지역의 일부 타타르 상인이 신강에 이주하여 상점을 열고 타타르족 교육자 및 성직자들과 함께 신강 지역에 정착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1차 대전 시작부터 1930년대까지로서 중소상인, 농민, 수공업자가 주최가 되어 비교적 많은 숫자의 타타르인이 신강에 이주하였다. 이들 대다수는 상업이 위주였고 소수만이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타타르(韃靼)족은 현재(現在)의 중국(中國) 대륙(大陸) 땅에 없었다.」는 말과 같다.
타타르족은 ‘韃靼’(달단), ‘達旦’(달단), ‘達怛’(달달), ‘達達’(달달)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타타르”(塔塔爾)의 음역이다.
타타르어는 알타이어계 투르크 어족의 서흉어(西匈語) 갈래에 속한다. 타타르족은 위구르족, 카자흐족 등과 장기간 함께 거주하면서 관계가 밀접하기에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의 언어와 문자는 점차 타타르족의 일상용어와 통용문자가 되었다. 타타르족은 아랍문자를 기초로 한 타타르 문자가 있으나 극소수만이 사용한다.
타타르족은 고대에는 우주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인식하고 해와 달, 별, 바람, 비, 벼락, 산맥, 수목, 대지, 동물, 식물 등에 경배를 하였다. 후에 늑대에 대한 토템숭배를 하였다. 기원 10세기 이슬람교가 전래되면서 타타르족의 종교 및 문화와 융화되어 이슬람교 수니파가 점차 타타르족의 유일한 종교신앙이 되었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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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설명(說明)대로라면 : 함경도(咸鏡道) 함흥(咸興)은 달단(達靼)의 고향(故鄕)이어야 한다. 그래서 달단동(韃靼洞)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동각 잡기 상(東閣雜記上) /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 지원(至元) 갑술년(甲戌年 1274) 12월에 목조가 경흥부(慶興府)에서 흉(薨)하므로 성 남쪽에 장사하였다가, 뒤에 함흥부의 의흥부 달단동(義興部韃靼洞)에 이장(移葬)하였다.
동명집 제7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89수 : 함경도 관찰사 윤이지 영공을 전송하다(送北伯尹令公履之) : [주D-003] 함관령(咸關嶺) : 함경남도(咸鏡南道) 함주군(咸州郡) 덕산면(德山面)과 홍원군(洪原郡) 용운면(龍雲面)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곳에 이성계(李成桂)가 외적과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는 달단동승전기념비(韃靼洞勝戰紀念碑)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9권 / 함경도(咸鏡道) 홍원현(洪原縣) :【고적】 달달동(韃靼洞) 본 현 남쪽 30 리에 있다.
태조실록(太祖實錄) :〈목조(穆祖)가 죽자 공주에서 장사지내고 후에 함흥부로 옮겨 덕릉이라 하다 : 지원(至元) 원년(1264) 갑자 5월에 황제의 선명(宣命)을 받아, 그대로 알동 천호(斡東千戶)에 충원(充員)되었다. 지원(至元) 11년(1274) 갑술 12월에 훙(薨)하니, 공주(孔州) [곧 경흥부(慶興府)이다.] 성(城) 남쪽 5 리(里)에 장사하였다. 후일에 함흥부(咸興府)의 의흥부(義興府) 달단동(韃靼洞)에 옮겨 장사하였으니, 곧 덕릉(德陵)이다. : 至元元年甲子五月,欽受宣命,仍充斡東千戶句當.至元十一年甲戌十二月薨,葬于孔州[卽慶興府]城南五里,後遷葬于咸興府之義興部韃靼洞,卽德陵.〉라고 한 것을 보면,
● 반도(半島) 북방(北方) 땅, 함경도(咸鏡道) 함주군(咸州郡)에, “달단동(韃靼洞)”이 있으며, 이곳이 “달단(達靼)=달단(韃靼)=[塔塔爾族,Tatar]들의 고향(故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식민사학(植民史學)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이 올바른 역사(歷史)라고 볼 수 있을까?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카자흐스탄 북방지대(北方地帶)·우랄산맥(山脈) 서(西)쪽의 타타르스탄, 동(東)쪽의 서시베리아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함경도(咸鏡道) 땅일 수 있을까? 그렇다. 조선(朝鮮)의 함경도(咸鏡道) 일부 땅이다.>
2017년 05월 28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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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시베리아가 함경도땅이네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셨구요. 대조선을 조작하기 위해 달단을 고지도로 많이 왜곡시켜 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