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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남 부여 계향산 미암사(戒香山 米岩寺)를 찾아서 ①
- 사리친견(舍利親見)과 와불법당(臥佛法堂) -
지난 7월 10일 두 번째 순례지인 정림사지(定林寺址)와 정림사지박물관을 둘러보고, 12시 26분 경 마지막 행선지인 부여 무량사(無量寺)로 향했습니다. 무량사는 정림사지 에서 약 2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니초님이 마부가 되어 백우거를 몰아 무량사로 40여 리쯤 달리다가 미암사(米岩寺) 이정표를 발견하고는 묘법님과 해월님께 미암사를 들러보니 않겠느냐고 하니 모두 쾌히 그러자고 하여 미암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묘법님과 행월님은 초행길이나 우 리는 지난 2009년에 다녀온 바 있어 반가운 곳이었습니다. 제가 미암사에 대한 짤막 한 부연 설명을 드렸습니다. 쌀바위 전설이 있고 와불법당이 있어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 미암사도 덤으로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후 1시경 미암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전에 없던 입불이 도로 옆에 똑같은 모습으로 도열하고 계십니다.
미암사를 찾아오는 기도객이나 탐방객을 부처님들이 정중히 맞이하는 형국입니다. 마치 배꼽인사를 하듯이... ^^
그러면 계향산 미암사(戒香山 米岩寺)는 어떤 절인가? 충남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 21-5번지(성충로미암길 128)에 위치한 대한불교대각종 총본산입니다.
미암사는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 절이지만 《전통사찰종서》에도 나오지 않아 정보를 알기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미암사 홈피에 연혁이 실려 있어 옮겨 봅니다.
「미암사(米岩寺)는 백제 무왕(武王) 4년(602년) 관륵(觀勒)이 창건(創建)하였다. 쌀바위전(殿)에 머물던 백제 삼론학자(三論學者) 관륵이 일본국에 건너가 백제불교를 일본에 전파하여 역법(曆法), 천문둔갑, 방술(方術)들의 일본 승강(僧鋼)의 초석(礎石)을 닦았다.
의자왕 20년(661년)에 당라연합군이 백제를 침범하면서 미암사를 전소(全燒)시켜 버렸 다. 이때 대웅전(大雄殿)에 봉안(奉安)되었던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世音菩薩像)을 인근(隣近)의 야산에 매장(埋葬)하였다고 하나 현재 문헌을 찾을 길이 없고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무학대사(無學大師. 고려 충숙왕 13년 丁卯(1372)에 삼기군에서 출생)는 용문산 혜명 스님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 금강산, 계룡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서산 영암 사에서 나옹(懶翁) 스님을 만나 수년간 머물렀다.
나옹스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따라 왔다가 쌀바위를 면벽하고, 100일간 용맹정진 끝에 무아(無我)에 들어 세상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교화에 나섰다. 이때 쌀바위를 떠나면서 성불기념으로 적송(赤松) 두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단아한 모습은 소진 되어 볼 수가 없고 자손이라 여겨지는 적송들이 계향산 곳곳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후 1356년(공민왕 5년)에 나옹 스님은 왕사(王師)가 되어서 무학을 수좌(首座)로 앉히 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이태조 원년(1392년)에 태조에 의해 송경에 가서 왕사가 되었고, 이조(李朝) 태종(太宗) 5년(1405년)에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入寂)하였다.
이후에도 수차례 화재(火災)로 이하여 전부 또는 일부가 소실(燒失)되어 개,보수(改,補 修)하였고, 근세에는 1903는 윤하영 스님이 수도(修道) 중에도 화재로 전소(全燒)되어 10평정도의 법당(法堂)을 중건(重建)하여 수행 중 1925년 열반(涅槃)하였으며, 그후 여러 스님이 묵어 갔고, 이후 이주희 스님이 입산(入山)하여 1992년까지 수도하였다. 1992년 2월 28일부터 미암사 조실 석만청(釋萬淸) 스님께서 백제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현재까지 대작불사를 일으키며 주석하고 계신다.」
33층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
미암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사리탑을 만나게 됩니다. 2005년 10월에 건립었다고 합니다.
진신사리(眞身舍利) 봉안(奉安) 내역(內譯)
「이 진신사리는 1997년 9월 당년(當年) 13세의 자명린포체(국적은 부탄이며 늄렌린포체의 환생불로 유명함) 스님이 해외만행차 한국에 들렸을 때 옥천거사(玉千居士)가 받아 보관 하고 있다가, 그 해 12월에 옥천거사가 만청(萬淸) 대종사(大宗師) 큰스님을 수행(隨行) 하고 대만에서 주최하는 세계종교지도자 평화통일 기원법회에 참석하고 귀국하여 그 기념으로 1998년 3월에 기증하여 만청(萬淸) 대종사(大宗師)께서 미암사(米岩寺)에 1과(顆)를 봉안하셨다.
만청대종사께서 2004년 납월 한국 최대와불 준공무렵 사리를 친견 당시 3과(顆)로 증 과(增顆) 되었음을 발견하시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라 여겼고, 그 무렵 때가 아 닌 동지섣달에 미암사 주변에 개나리 꽃들이 여기저기 아름답게 만발하여 만청대종사 (米岩寺祖室)께서 옥천거사를 불러서 최상의 길상(吉祥)이라 설명하시며 후의(厚意)를 베풀고 기뻐하셨다.
갑신년 납월 중문학박사 석혜총(釋海叢) 합장」
부처님 진신사리 모습
사리탑에는 누구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도록 사리친견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여 사리를 친견하고 진신사리를 법우님들께 친견할 수 있도록 사진에 담아 보려 했으나 흐릿하여 볼 수 없어 다른 분의 사진을 참고로 모셔와 올려 보았습니다.
해월님과 비니초님의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묘법님 친견모습
언덕을 조금 오르다보면 살짝 드러난 부처님을 뵙게 됩니다.
점점 드러나는 부처님 모습.
와불(臥佛)은 부처님의 열반상입니다.
와불로 유명한 절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의 와우정사에는 인도 스님이 보내 준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열반상이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최대 의 열반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높이가 3m 길이 12m에 이릅니다.
그 다음으로는 경기도 의왕의 청계산 청계사에는 높이 2m, 길이 15m로 조성된 와불이 모셔져 있는데 자갈을 붙여 만든 특이한 열반상입니다.
또 충남 태안의 보타락각사에는 금불로 조성한 길이 10m의 열반와불상이 모셔져 있습 니다.
이밖에 경남 사천의 백천사에는 높이 3m 길이 13m의 와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국에서 들여온 2300년 된 소나무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와불의 몸속은 법당이 있는데 8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 태안의 보타락가사와 백천사는 미답지라 예불하지 못했는데 차차 가 보고 싶습 니다. 그런데 미암사의 규모는 어떨까요?
세계최대의 와불상이라 합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부처님열반상은 오른손을 머리에 대고 누우신 모습인데 비해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우신 모습이 특이합니다. 이는 고요히 선정(禪定)에 드신 모습으로 보 여집니다.
여기에 안내문이 있어 옮겨 봅니다.
세계최대와불(열반상)
「와불(臥佛. 열반상)은 화신불 8상(八相)의 하나인데 세존이 입멸하는 상으로 부처님이 80년간 중생을 교화하고 화연(化緣)이 다하여 중인도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일일 일야(一日一夜)를 대열반경을 설하여 마치고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생각을 바르게 갖는 것을 臥法이라 한다.) 고요히 선정에 드시어 차례로 초선(初禪), 제2선, 제3선, 제4선, 공처정(空處定정), 식처정(識處定), 무소유처정(無所 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드시고 최후에 멸진정(滅盡定)에 드셨다. 그리고 다시 역순으로 멸진정에서 나오시어, 사공정(四空定), 사선정(四禪定)을 차례로 들었다 나오셨으며 다시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정에 드셨다가 제4사선정에 나오시 어 입멸(入滅)하시니 때는 2월 15일의 한밤중이었다.
이때에 주위는 사라쌍수가 꽃을 피어 흰 학의 무리가 모인 것과 같았다. 곧 전륜성왕의 다비식으로 금관(金棺)에 옮기고 모든 대력사들이 구시나가라성을 9번 돈 뒤에 다비소 에 이르렀다.
7일이 지난 뒤에 대전단을 쌓고 향촉(香燭)을 던져 태우려 했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아누루타가 말하기를 "이는 가섭존자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하였다.
이때 가섭이 오백제자와 기사굴에서 있었다. 가섭은 여래의 열반하심을 알고 여래의 최후를 참석하고자 다시 7일이 경과한 뒤에 다비소에 왔다. 그때 여래께서 금관에서 두 발을 내어 보게 하셨다.
그리고 모든 역사들이 칠보의 큰 햇불을 던지니 모두 꺼졌다. "가섭이 말하기를 인천 (人天)의 횃불로써 어찌 여래의 보관을 다비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이때에 여래께서 대비력으로써 스스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심흉(心胸) 가운데로부터 불이 관 밖으로 솟아나와 점점 다비가 되어 7일만에 향루와 보루가 모두 다 타버렸다.
8국의 왕들이 사리를 가져가려고 다투어 모두 군사를 일으키자 도로나(徒盧那) 향성 (香姓) 바라문이 사리를 모든 왕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니 모두 탑을 세워 모셨다고 한 다. 《涅槃經》
길이 27m, 높이 6m, 폭6m 발바닥에는 전륜과 옴字 1만 8천여자가 새겨 있는 동양최대 여래의 와불을 조성하는 동안 미암사 주변에는 때 아닌 동지 섣달인데도 개나리 꽃들이 노랗게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만발했다.
발바닥의 법륜과 옴자를 관(觀)하면서 손으로 만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으며 중생의 번뇌를 쳐부수고 차례차례 교화하며 만복을 얻는다.
충남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 21-5 계향산 미암사 조실 석만청 합장」
이 글을 옮기면서 약간의 손을 보아 올렸습니다. ^^
이제 와불법당으로 향합니다.
불족(佛足) 부처님 발바닥. 법륜상과 옴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32상(相) 가운데 발에 대한 상호가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족하안평상(足下安平相)이니 발바닥이 판판함을 말합니다. 또 수족지두천폭륜상(手足指頭千輻輪相)이니 손과 발바닥에 수레바퀴살 같은 금이 있 습니다. 이밖에도 발에 대한 묘사가 많은데 그 중에 수족유연상(手足柔軟相)이라 하여 부처님의 손과 발은 매우 부드럽다고 합니다.
불상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전에는 사리탑 신앙과 불족(佛足)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 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열반을 실현하신 후의 불자들은 부처님이 몹시 그리워하여 경배 의 대상으로 사리탑과 불족(佛足)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당시에는 위대하신 분을 조각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여 그 상징물로서 불족(佛足)을 새겨 경배했던 것 입니다. 부처님 발은 보통사람과 특이하여 자연스럽게 경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늘 맨발로 길에서 길로 중생을 교화하시러 동분서주하셨기에 부처님께서 남기 신 족적(足跡)은 길이길이 경배될 것입니다.
발바닥에는 1만 8천여 자의 옴자가 새겨져 있는데 발바닥에 손을 대고 문지르면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네요.
와불의 내부는 법당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순례객들은 법회를 봉행하고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환기시설은.... 향ㆍ초는 안 켜야 겠지요?
비니초님이 쌀과 초 공양물을 준비하면서 묘법님과 해월님께 여기는 쌀바위 절이니 쌀 공양을 해야 한다고 하여 묘법님과 해월님이 다함께 쌀공양을 올렸습니다. ^^
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중앙의 본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보처는 관세음보살님이시고 우보처는 보병(寶甁) 을 이고 계시는 대세지보살로 여겨지는데 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석가모니불의 협시 보살로 삼으셨을까 의아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세계에 무슨 걸림이 있을까 싶 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불기 2548년(2004) 8월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미암사에 와서 두 번의 사리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와불 앞의 해월님
미암사는 지금 대작불사로 여념이 없습니다. 미암사의 조실이신 만청(萬淸) 대종사께 서는 1992년 주석하신 이래 미암사 중창불사에 혼신을 다하여 매진하고 계시는 것 같 습니다. 지난 7년 전에 비해 와불법당을 비롯하여 쌀바위 일대는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아래는 일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미암사는 대한불교 대각종 총본산이기도 합니다. 이 절의 조실이신 만청 대종사는 1996년 대각종을 창종하신 대각종 종정이시기도 합니다.
법당을 참배하고 돌아서니 보살님들이 공양을 들고 가시라고 하여 공양간으로 향했습 니다. 일찍이 공양을 든 바 있어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공양을 들라는 한 말씀에 배가 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여 우리는 모두 맛있는 절밥을 들었습니다. 늘 무료공양 을 베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음은 미암사가 존재하게 된 쌀바위와 미암사의 이모저모를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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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암사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 맛있는 공양을 권하시던 보살님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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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정갈하게 준비해 놓으신 점심공양 맛있게 먹었습니다.
보살님들의 표정이 밝아서 좋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공양이 더욱 맛있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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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사 순례기 잘 봤습니다.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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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미암사 다녀왔는데 다시 떠올리게 되는 미암사...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사진은 미얀마 양곤 차욱탓지 파고다에서
미암사에 다녀오셨었군요. 방방곡곡 각지각처의 사찰에 보현님 족적 또한 찍히지 않은 곳이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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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히 남겼던 생각이 나네요. 영암 월출산 도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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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족적을
비오는 날 비니초님과 순례갔었는데 발이 젖어서...
미얀마 양곤 차욱탓지 파고다의 와불상 불족저상은 미암사의 족저상과는 많이 다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