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는 한반도 육지부의 최남단인 해남과 어깨를 맞댈 듯 이웃한 섬이다.
1969년, 해남과 완도 사이에 디딤돌처럼 앉아 있는 뭍섬(陸島)인 달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화되었다.
완도는 크기가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서 안면도보다는 조금 작고, 울릉도보다는 조금 크다
원래 산행 계획은 대구리에서 정상을 찍고, 수목원으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백운봉, 숙승봉까지 종주하기로 바꾸었다
또, 다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원래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상황봉 산행 계획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ㅋㅋㅋ
화이팅을 외치다
전주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약 3시간 반을 달려 완도 대구리 마을에 도착하였다
완도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 '봉퐁'의 영향으로 인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등산 채비를 마친 다음, 항상 우리가 하던 방식대로 화이팅을 오치고 출발하였다
대구리마을
고산 윤선도 선생이 제주도 귀양길에 완도의 산세가 수려함을 보고 뱃길을 돌렸다
가까이 와서 보니 마을 모습이 큰 거북이와 같다 하여 대구미(大龜尾)라 하였다
그런데 글자가 획순이 많고 까다로워서 후세에 대구리(大口里)로 개칭하여 부르고 있다고 한다
영화배우 이보희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골프선수 최경주도 완도 출신이라고 한다
'염장지르다'의 유래
사람들은 흔히 가만히 있는 속을 들쑤시어 괴롭고 힘들게 하는 짓을 두고 '염장 지른다'고 말한다.
더러 염장이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장보고와 오랜 은원(恩怨)관계였으며 한때 부하였던 염장이 장보고를 살해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신라 신무왕이 장보고의 딸을 차비(次妃)로 들이려 했으나 귀족들은 그가 해도인(海島人, 섬놈)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이듬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중앙정부는 무력으로 그를 토벌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閻長)을 자객으로 보내 그를 살해하게 했다.
청해진의 세력은 그뒤에도 얼마 간 유지되었으며, 851년에야 청해진을 없애고 주민을 벽골군(碧骨郡 : 지금의 김제)으로 옮길 수 있었다.
철없는 동백
동백은 겨울꽃이다
아직 시월인데 철없는 동백이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에게 자기의 붉은 속살을 기어이 보여주어야 할 간절한 사연이 있는가 보다
심봉(쉼봉) 598m
심봉은 원래 '쉼봉'이라 불렸었다고 한다.
숙승봉에서 도를 닦던 노인이 업진봉에서 업을 다한 뒤 이곳 쉼봉에서 쉬고 갔다고 전해진다
심봉의 정상에서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모자가 날아가고, 카메라가 흔들려서 어렵게 셔터를 눌렀다
완도의 오봉산
섬을 바라보며 마주하는 고독감은 견고하다.
억겁의 세월을 파도에 떠밀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단단한 외로움이다.
완도섬의 중앙부의 북쪽에서 남쪽을 길게 뻗은 산맥이 오봉산(五峰山)이다.
최고봉을 상황봉(주봉)이라고 하고, 주봉을 기준하여 북쪽에 능선을 따라 백운봉, 업진봉, 숙승봉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상황봉에서 서쪽에 뻗은 지능선 200~300m정도의 거리에 또 하나의 암봉을 쉼봉이라 하며, 이를 모두 통틀어 5봉(五峰)이다.
완도(莞島)의 지명 유래
장보고가 염장에게 살해당한 뒤, 청해진의 주민들은 김제로 사민(徙民), 즉 강제 이주를 당한다. 반역의 땅이 된 것이다. .
내륙으로 강제 이주당한 청해진 사람들의 고행은 4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고된 노역과 지독한 향수에 시달리던 이들은 견훤에 의해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의 상봉이 이뤄졌고, 조상의 묘에 절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아온 이들은 이 기가 막힌 사연을 <논어> 위정편의 한 구절을 차용해 지명을 지었다.
'거문고와 노랫소리를 들은 공자가 빙그레 웃었다(聞琴歌之聲 夫子 莞爾而笑)'
돌아온 이들은 빙그레 웃는 모양 완(莞)자를 따 돌아온 땅의 이름을 '완도(莞島)'라 하였다고 한다
쉼봉에 오르는 사람들
난대림의 숲을 빠져나오면 답답한 마음이 펑 뚫리며 가파른 바위 능선이 나타난다
거센 바람을 뚫고 바위 능선을 기어오르는 우리 회원들의 모습이 멋져 보인다
바다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산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자연은 바다와 산이라는 두 대명사를 통해 인간을 달궜다가 식혔다를 거듭하면서 담금질을 하여 성장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그럴 때 바다는 인간을 달구고... 산은 식히는 역할을 맡는다
상황봉(象皇峰) 644m
상황봉은 완도의 크고 작은 섬 200여 개를 거느리며 노령의 마지막에 우뚝 솟은 오봉산의 중심 봉우리이다.
상황봉에 올라선 구네군다가 마치 에베레스트에 올라선 것 마냥 포효하고 있다
내가 내년 1월에 오르려 하는 에베레스트는 우리의 마음 능선을 따라 상황봉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상황봉에서 깃발을 펼치다
상황봉에서 올망졸망한 남해의 섬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자랑스런 신산회의 깃발을 펼쳐 들었다
장보고가 해상왕국을 이룩하면서 자신을 비유해서 코끼리(象) 중의 왕(王)이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 남방에 살면서 무역하던 뱃사람들은 이 산에 부처님의 흔적이 있다 해서 ‘상왕(象王)’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부처를 낳은 마야부인은 흰 코끼리가 뱃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지금도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원래는 상왕봉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상황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장수 사람들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이 우리의 발길을 유혹한다
장수 사람들 다섯 명이 완도 상황봉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ㅋㅋㅋ
늘~ 함께 다니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이분들의 모습이 아주아주 부렵다
섬은 바다에 핀 꽃이다
그 꽃들에 배들이 쉬었다 가고, 갈매기가 새끼를 친다
섬은 조류가 흐르다가 멈춰선 곳...그래서 '섬(立)'이다
파도에 맞서 떡 버티고 서있다
파도는 끊임없이 옆구리를 할퀸다
섬은 그러거나 말거나 뭇생명들을 포근히 감싼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고,
섬과 바다 사이엔 사람이 있다..................................................'동아일보'에서 발췌
꿀맛같은 점심식사
상황봉에서 능선을 타고 20여분 내려와 억새가 흐드러진 헬기장에서 도시락을 펼쳤다
육지에서 섬까지 짊어지고 온 상치와 산나물이 구미를 당기었다
쌈장을 깜빡 잊고온 혜자 누님은 낯모르는 민가에 들어가서 쌈장을 얻어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았다
억새꽃과 웃음꽃
오늘 처음 나오신 오재원 마리아, 김효순 젤뚜르다, 박영희 수산나님의 웃음꽃이 억새꽃보다 예쁘다
억새꽃은 죽어서야 피어나는 꽃이지만...웃음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만 피어난다
그것도 행복한 사람에게서만 피어난다
이분들이 오늘 산행을 통해서 우리가 이미 맛보았던 행복과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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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 | 민들레 |
외로운 여인
오래 전에 육지로 떠나버린 첫사랑의 그 남자를 그리고 있는지,
오늘밤 섬으로 돌아오는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지...
외로운 여인의 가슴 속은 배신감과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복잡하기만 하다 ㅋㅋㅋ
하느재에서 내려가다
제1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바로 임도로 내려서 다시 산으로 오른다
나즈막한 둔덕을 하나 넘으니 하느재가 나타난다.
하느재는 완도의 동부 사람과 서부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갯마루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완도수목원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대수골이 나온다.
눈앞에 있는 백운봉과 업진봉이 우리를 유혹하였지만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서 아쉬움을 달래며 내려섰다
흰구름길을 걷다
하느재에서 완도수목원으로 내려가는 임도는 '흰구름길'이라 명명되었다
4km나 되는 흰구름길은 시멘트길로 길게 이어져 지루하고 팍팍해서 정말 싫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가에는 자연스럽게 떨어진 도토리가 지천에 널려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그걸 줍기도 하였다
난대림 숲을 걷다
상황봉 산행의 가장 큰 매력은 사철 푸른 난대림 숲을 걷는 일이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올라도 동백나무, 소사나무,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같은 난대성 상록활엽수로 이루어진 숲길을 걷게 된다
상황봉 일대의 수림은 난대림이 주종을 이루고 중부 내륙지방의 산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완도에 이렇게 숲이 울창하게 된 것은 신라시대 이래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장보고의 죽음 이후 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여 무려 500년 동안 비워둔 섬이니 숲이 울창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완도수목원의 산림박물관
임도의 끝에 있는 완도수목원에 들어서니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 우리를 압도하였다. 산림박물관이다
ㄷ자 형태로 된 박물관 내부를 한 바퀴 돌아나왔는데...실망, 실망, 실망이었다
나무 토막 몇개, 나비 표본 백여마리, 고서적 십여권, 나무 화석 50여개 뿐....수십억 들인 건물이 아까울 지경이다
산딸나무 열매
수목원 입구에서는 산딸나무 열매가 곱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주황색을 띄고있는 앙증스런 열매는 꽃사과 같기고 하였고, 고염나무 열매 같기도 하였다
가을날의 태양볕을 마음껏 빨아들여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성숙되어가는 식물들의 행태가 신비스럽다
완도수목원
완도 난대수목원은 1991년 조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난대수목원이다
전 국토의 15%에 불과한 난대지방을 대표하는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자라는 천연의 산림군락이다
수목원은 규모가 2,050ha에 식물자원은 3,800여 종에 이르며 볼 거리가 넓은 면적에 흩어져 있다
新 완도대교
우리는 완도대교가 보이는 건어물가게에서 미역, 마른 홍합, 다시마 등을 구입하였다
1969년 설치된 낡은 다리는 6.25 당시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한강철교의 잔해를 가져다 만든 것이었다
2012년 개통된 新 완도대교는 해상왕 장보고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는 무역선과 투구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하산주를 마시다
함평천지휴게소에 내려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하산주를 마셨다
최귀임 글라라가 준비해온 황태미역국은 시원하고 담백하면서 개운해서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주었다
전주에 밤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11월의 덕유산 능선에 부는 서늘한 바람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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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섬>완도 상황봉 산행 계획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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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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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망이 좀 아쉬웠습니다
제주도까지 보이는 곳인데
아쉬움이 있으니 추운날 한번 더 갑시다
염장지르다" 의 유래가 그렇군요..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행복해 보이는 장면들
진한 커피향과 함께 음미해 봅니다..
좋은 가을 날씨에 좀 멀어보이듯한 기분은 남니다만, 멋진 가을 섬산행 즐거웠습니다~~~
도토리가 지천에 깔려있어서, 담에 또 주우러 와봐야겠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산행이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산행기를 읽음으로서 10월 정기산행이
쌈장을 얻은 것은 능력이 아니라...... 주책이었다오.
생생한 산행기속에서 한 번 더 완도를 섭렵했네요.
내일을 향하여 또 하나의 화살을 당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