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조선】<초불초 , 성서조선 第 95 號 (1936年 12月)>
초(肖)불초
성서조선 第 95 號 (1936年 12月)
옛날 사람들은 그 스승의 인격과 학문을 본으로 삼고 배우되 자주 꿈에 보기까지 하였다. 만일 꿈에 그 스승을 만나는 횟수가 뜸해지면 이는 자기가 늙고 정신이 흐려진 까닭이라고 심하게 탄식까지 했다.
학문과 덕행뿐만 아니라 될 수만 있으면 그 용모와 음성과 거동까지라도 그 스승을 본받는다면 이로써 분에 넘치는 소원으로 알았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그 스승만치 크게 되면 만족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을 살펴보건대 ‘닮을 초(肖)’ 라는 글자는 사전에서 아예 지워 버린 것 같다. 꿈에라도 그 스승을 사모하기는 고사하고 의식 세계에서도 그 스승을 본받으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다.
될 수만 있으면 저들의 스승과는 반대 방향을 본받으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일이다. 만일에라도 무의식 중에 그 스승의 것을 한 가지라도 본받은 것이 있었다면 기어코 그것을 깨끗이 지워 없애지 않고는 안심하지 못하는 듯하다.
남의 자녀를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하여 본 사람은 오리 알을 깐 암탉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을 안 닮으려고 하는 일은 오히려 용납할 수도 있는 일이다. 본래 오리알이었으니 오리가 자기의 물로 가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다. 달걀이 오리알로 변화하는 일은 더욱 비참한 광경이니 그것은 근래의 자녀들이 그 부모에게 대하여 하는 일이다.
옛날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시대까지도 자녀 된 자의 제일 큰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부모의 어디인가 한 가지를 닮았다는 인식을 받을 때의 자랑이다.
옛날 아들들은 그 눈썹이 관우의 눈썹 같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아버지의 눈썹 같으면 만족이요 자랑이었다.
옛날 딸들은 그 입술이 양귀비의 입술과 같아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어머니의 입술 같으면 만족이요 자랑이었다.
하물며 그 심정과 재주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자식들이 편지마다 ‘불초자식’이라고 써 온 것은 어버이를 닮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가슴 아픈 탄식이요, 닮고자 하여 뛰는 몸부림이 글자 안에 들어찬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자녀들은 어떤가? 자기 아버지 얼굴보다도 러시아의 이마 벗어진 인물이 아니면 이태리의 집 지키는 개같이 생긴 자의 초상을 좌우에 걸어 놓고 닮기를 노력하는 아들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자기 어머니가 황인종인데 만족하지 못해서 얼굴에 회칠을 하지 않고는 불안하며, 여배우를 따라 유선형의 눈썹을 그림으로써 그 어머니의 눈썹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지 않고는 수치를 느끼는 딸들이 어찌 그리 많은가.
세상의 제자들은 스승을 본받지 말고 자녀들은 부모를 닮지 말라. 우리는 옛사람이어서인지 사도 요한과 같은 것을 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 (요한1서 3:2)
부모를 닮으려고, 특히 영의 아버지를 닮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평생 사업일진저.
첫댓글 불초(不肖)는 '아니 불(不)'과 '닮을 초(肖)'가 합쳐진 말로,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훌륭한 부모를 닮지 못해 못나고 어리석은 자식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낮추어 부모님께 겸손을 표할 때 쓰는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