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데나리온의 헌금
(2025.01.26.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 요한복음 12:1-8
주제 : 하나님을 기뻐게 하는 것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고, 말씀대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1. 아름다운 향기는 온 집안에 가득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복음을 보아왔는데, 애초에 우리의 계획은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사복음서를 전체를 두루 보면서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을 자세하게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명확하게 어디서부터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출발점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때 예수님께서 그 사건을 가리켜서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가셨는데 거기서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전부터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기까지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갑자기 마리아가 와서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름다운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이 잔치와 이 향유의 아름다운 냄새로 인해서 일고 있는 그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롯 유다입니다. 그가 ‘어찌하여 이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같은 사건을 마태와 마가도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는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라.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2. 불편한 오해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행적을 이야기할 때, 이 사건을 빼고 말하지 않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 사건을 꼭 말합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충격적이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사건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감동적이라고 하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 사건을 그렇게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마리아가 부은 향유의 값이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올리브유 한 병이나 아니면 참기름 한 병이었다면 사람들이 이 사건을 그렇게 감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향유 한 병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에 보면 삼백 데나리온은 보통 한 사람의 일년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요즈음 대부분 근무자의 연봉이 어느 정도 됩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한 달 월급이 300만원 정도 되면 16개월로 해서 약 4,800만원 약 5,000만원 정도 됩니까? 정말 기름 한 병 값이 5,000만원 정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여하간 그 정도 되는 가치를 한꺼번에 쏟아부었으니 놀랄만도 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도 그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것은 내 장례를 위함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기억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물론 그 값어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가격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말씀하시도록 하셨을까요?
3. 예수님에 대한 사랑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들이 사는 곳은 베다니입니다. 마태복음을 보시면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과 나사로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있는 집은 나병환자의 집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병환자는 일반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나병은 신체 접촉에 의한 전염이 강한 질병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병에 걸리면 무조건 집을 떠나야 합니다. 집을 떠나서 나병환자들만 살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그곳은 나병환자들만 살고 있었던 곳일 것입니다. 그들은 비참한 생활을 했어요. 누구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도 누구든지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주셨어요. 나사로가 병들어 죽기 전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아파서 죽게 되자 예수님에게 전갈을 보내어서 찾아달라고 부탁까지 했을 정도로 그들은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사람대접해주고 죽은 사람을 살려주기까지 했으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요? 단순히 병을 잘 고쳐주는 의사 정도로 보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의사가 죽은 사람을 살립니까? 보통 의사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이 의사 이상입니다. 천사로 보였는지도 모르지요. 아마도 마리아의 눈에는 진정 예수님은 메시야였고 하나님의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어마무시한 사랑이 그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비싼 향유를 쏟아부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았어요. 아마 그때는 그 향유가 오천만원이 아니라 일억이라고 괜찮고 십억이라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 사랑이 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고, 그것때문에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하셨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마리아가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랑이 예수님을 감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4.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랑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렇게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가지고 나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우리가 한 행동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우리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진정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부활에 대한 생각이나 영생에 대한 생각이 희미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고 나서 천국에 가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영생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하는 곳이 있는데 시편 133편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으니 곧 영생이로다.’ 하셨어요. 영생이 무엇인가? 형제가 한데 모여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최고의 축복입니다.
또 하나 있어요.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것을 우리들에게 명령하셨고 그렇게 사는가 살지 않는가 지켜보고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형제와 자매와 이웃과 자녀들과 어른들과 화목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 이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고 예수님을 감동하게 하십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의 가장 큰 명절 설명절이 됩니다. 설이 되면 많은 친척들이 모이고 어른들을 찾아뵙겠지요. 어른들을 찾아가시고 기쁘게 해드리십시오. 평소에 좀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십시오. 자녀들도 기쁘게 해주려고 하십시오. 서먹서먹한 형제 자매 사촌 팔촌을 만나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하십시오. 그렇게 ㅎ 하시면 예수님의 눈에는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보이리라 믿습니다.
5. 내 마음에 있는 우상을 버리십시오.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것, 또 하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성경을 딱 한 마디로 말하면 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요. 내 안에 있는 우상을 버리는 것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없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어요. 분풀이로, 야곱의 아들들이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의 마을을 쳐들어가 그 마을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주위에는 그들의 친족들이 가득 깔려 있습니다. 그들이 그 소식을 들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야곱의 가족들을 전부 죽여서 복수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야곱이 두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도망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때 야곱은 전 가족을 모아놓고 도망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도망을 간다고 그들이 야곱의 가족을 고이 도망을 가도록 놔두겠습니까? 그때 야곱은 전 가족에게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이방신상들을 전부 꺼내어서 땅에 묻어라고 합니다. 그때 그 가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방신상들과 귀고리를 땅에 묻었어요. 그리고 도망을 갔는데 그때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하나도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방신상들을 없애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하시고 감동하셔서 그들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명절에 모이시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방신상들에게 절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십시오. 물론 그렇게 하다가 가족간의 불란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기분좋게 피하려고 하십시오.
이것은 비단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계속해서 경고를 내리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갑자기 왜 세월호 사건이 생깁니까? 세월호 사건이 생겼을 때 우리가 도대체 무엇 하나 반성한 것이 있습니까? 싸우기만 했지요. 조금 지나니까 이태원 사건이 생겼어요. 우상의 짓거리를 기뻐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일아나도 국민적이 각성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것도 유야무야 그냥 가버렸지요. 이번에는 무안 항공기 사건이 터져요.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것도 그냥 넘어가버릴 것 같아요. 그러면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릅니다. 경고는 한 번 두 번으로 끝납니다. 계속 경고만 하지는 않습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들썩 거릴 필요없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어차피 자기들 멋대로 살아갈뿐입니다. 문제는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고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믿는 사람 몇 사람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하나님도 믿는 자녀들을 보고 이 세상을 다스려가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들 때문에 덤으로 살아가는 것일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결심하여 믿음으로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에 감동하셔서 이 나라를 멸망에서 건져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가시면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게 생각하셔서 주위의 사방 백성들이 우리를 무서워하여 감히 우리를 건드려 보려고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