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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 수봉 배달메
삶이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사는 게 힘들다고들 하나 구태여 인수분해가 필요 없는 것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경우있게 하면 되는 것
사는 게 살벌하다고들 하나 구태여 미적분이 필요 없는 것 내가 먼저 상대에게 더하기 곱하길 되도록 많이 하고 빼기와 나누긴 안 하면 되는 것
오 삶이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욕심을 줄이면 되는 것
내게는 더하기 곱하길 덜하면서 빼기 나누긴 많이 하면 되는 것, 그래야 내 나무가 잘 크는 것.
2013. 8/25
*위에서, 더하기, 곱하기: 배려, 칭찬, 관대, 이득 빼기, 나누기: 엄격, 평가, 냉정, 비난, 손해 수봉 배달메의 본명: 김상철(대야초 38회) |
미국에 사시는 서울대출신들이 만든
'뉴욕에서 만나요' 카페 회원인
우리 한국 교포들이여,
선생들께서도 아래 시쓰기 공부해보세요.
시는 정서적으로 좋고, 사람의 품격을 높여 줍니다.
시(詩) 작법에 있어 기초 중에 기초, 그리고... / 수봉 배달메 요즘 선물받은 시집의 詩들을 보면, 더러 일반적인 문장에 불과한 긴 문장이나 산문, 또는 추리소설의 문장 일부를 행(즉, 줄)만 바꿔 아랫줄에 연이어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거나, 연(즉, 행의 묶음)도 그런 식으로 돼 있어 겉모양만 詩의 형태를 갖춘, 詩아닌 詩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것은 시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詩라고는 볼 수 없다 일반인 조차도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 시집들을 보면 기본이 안 갖춰져 있어 행의 배치에 있어 신춘문예 등단인조차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기본을 공부하지 않고 바로 시 쓰기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본만은 알아두자. 즉, 무게감(또는, 강조)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관형사(또는 관형사형)와 그 뒤 체언(관형사의 수식을 받는 체언)은 반드시 같은 행에 써야 함 말이다.
아래 어느 시의 일부를 보기로 하자.
위에서, 좌측은 부엌에 연기가 가득함을 강조하기 위함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양호한 배치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부엌에” 라는 말 뒤에 “쪼그리고 앉은” 이라는 같은 행의 말이 강조를 방해 하기 때문이다. 만약, 부엌에 연기가 가득 차있음을 강조하고자(부엌에 를 강조) 한다면, 행의 변화를 아래처럼 하는 게 좋겠다. 즉,
연기 가득한 부엌에 쪼그리고 앉은 엄마의 등 뒤로
위 시의 요지와 흐름을 정확히 알아야겠지만, 대체적으로 위에서의 배치는 “앉은 엄마의”와 “등 뒤로”는 늘 같은 행에 배치해야 좋다 하겠다. 그리고 아울러 만약 또한, “쪼그리고”를 무게 있게 의미부연 시키고자 한다면 그때는 행에 있어 다음과 같이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즉,
연기 가득한 부엌에 쪼그리고 앉은 엄마의 등 뒤로
위에서, 앉은: “엄마”라는 체언을 수식하는 관형사형으로 쓰임(앉다 동사의 관형사형) 엄마의: “등” 이라는 체언을 수식하는 관형사형으로 쓰임(명사+의).
그러나 무게감이나 강조를 너무 염두에 둔 나머지, “관형사(형) +체언” 은 같은 행에 써야 함을 잊고, 같은 하나의 시에서 행을 이탈하여 너무 많이 무게감이나 강조표현 하는 것도 좋은 시의 작법이 아니라 하겠다. 그러한 표현이 많게 되면 그 목적이 희석되고, 또한 일반적인 긴 문장을 아무생각 없이 행만 바꿔 단순히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읽는 이에게 주기 때문이다.
또한 詩에서는 문맥상 어떤 관형사는 체언 앞에서 뒤의 체언을 직접 수식하는 표현을 삼가해야 하는데, 아직도 노래 가사나 수필 등의 散文처럼 그러한 표현을 한 경우도 볼 수 있다. 그건 노래 가사나 수필 등 산문에서나 가능한 일인 데 말이다(소설, 희곡 포함).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詩에선 수식어가 많으면 일단 감점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물음표와 마침표가 주는 차이
가)최여사, 그대는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아는가? (질문성의 표현) 나)최여사, 그대는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아는가. (질문보다는 많이 사랑하고 있음에 중점 둔 경우로,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상대방에 나타낸 표현)
위 가)를 도치법으로의 표현하는 방법 예
1)최여사, 그대는 아는가?(질문성의 표현)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여운을 남기고자 할 때) <또는 위를 아래와 같이 한 행으로 표현해도 됨> 최여사, 그대는 아는가?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2)최여사, 그대는 아는가?(질문성의 표현)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여운보다는 강직한 맛) <또는 아래와 같이 한 행으로 표현해도 됨> 최여사여, 그대는 아는가?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위 나)를 도치법으로의 표현하는 방법 예 1)최여사, 그대는 아는가.(조용하면서 깊은 맛의 표현)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여운을 남기고자 할 때의 표현) <또는 아래와 같이 한 행으로 표현해도 됨> 최여사, 그대는 아는가.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2)최여사, 그대는 아는가.(조용하면서 깊은 맛의 표현)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여운보다는 강직한 맛) <또는 위를 아래와 같이 한 행으로 표현해도 됨> 최여사여, 그대는 아는가.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그러나 위 2)는 상하 또는 좌우의 정서가 상반되는 맛이 있어 2)의 표현은 잘 쓰지 않음. | ||||
<심층 시로 가는 데 있어 알아 둘 것과 자세에 대해 요약하면>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 하는데. 詩의 이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와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옛 유명 시인들 및 현 도종환, 안도현, 이해인 등의 유명인 시가 서점가에서 인기 있는 것은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의 시가 쉬운 표현으로써 행과 연의 짜임에 신중에 신중하는 등, 문채가 월등히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체험 및 보고 느낀 것과 오랫동안 꾸준히 연마한 습작이 국물처럼 녹아져 개성적 깊이 있는 시를 쓰게 한 것이다.
詩 아닌, 일반적인 글은 대체적으로 뜻과 사실, 배경을 일반 표현으로 전달하지만, 시는 농축된 창의적 구절 및 시어로, 리듬으로 글쓴이의 마음과 기분, 그리고 정서와 멧세지까지도 순간순간 은근히 풍기도록 해야하기에, 그 걸 은유와 상징 및 여러 비유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는게 특징이다 또한 그러면서도 시는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시란 주관적으로 나타내는 농축된 문학으로 진리, 상식, 과학을 초월하며, 때론 시사 및 철학적 맛이 있어야 한다. 또한, 시는 다른 문학과는 달리 농축된 표현으로 대부분 보이지 않는 리듬(내재율) 및 보이는 리듬(옛 정형시)이 있기에 시는 음악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 등, 타 문학보다 흥분과 기쁨, 조용함, 차분함, 격렬함 등을 순간순간 더 자아내게 하는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詩는 음성(노래)이었다. 만약 카페에 올린 詩가 배경음악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글쓴이가 리듬(내재율)을 생각하지 않고 썼다 생각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시가 아니라 행만 바꿔 쓴 일반적인 애절한 편지 글이나 산문을 행만 바꿔 詩의 형태로 꾸민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읽는 이에게 줄 수 있다. 리듬(내재율)도 시의 일부로 정서를 나타내는데 있어 매우 탁월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또한,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기에 우리 모두가 잘만 연구 홍보하면 우리의 이 리듬의 詩는 세계에 우리의 시를 알리는 데 있어 큰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덧붙여 참고로 말하면, 우리나라 詩 지도자들은 시작법에 있어 오래 전부터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당인처럼 서너무리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그건 주로 산문시, 그 중 난해시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좋은 평을 받아여할 신춘문예에 당선된 詩는 생각처럼 일반 독자들로부터는 사랑을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주된 이유는 그 詩들이 너무 난해, 불해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 당선자들을 지도한 국문학과나 문예과 교수라 해서, 다 시쓰기에 자질이 있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도교수들의 詩가 제자인 대학생 詩보다도 못한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 그 중엔 시쓰기에 자질 없으면서도 젊은시절 대학 입시 때 오직 그 대학(특히 명문대)만 고집한 나머지, 오직 그 학교 합격만을 위해 비교적 합격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를 선택해 합격한 자로서, 나중에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시다운 詩공부를 하지 않아 그럴 것이다 라 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런 교수라면, 그 문하생들은 교수 잘 못 만난 탓으로 좋은 시쓰기에 있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詩를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게 다분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교수들은 알아먹지 못하는 시(자칭, 수준 높은 시)만 고집, 지도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문하생들은 자연적 알아먹지 못하는 시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 쓰고서, 그 문하생들과 그 지도자들은 알아먹지 못하게 쓴 그 詩를 수준 높은 詩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질과 통찰력 및 정직, 끈기만 있다면, 어렵지만 쉬운 표현으로도 시사나 철학을 내포, 수준 높은 詩를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또한 현재 훌륭한 시인들로부터 실제로 詩다운 그런 수준 높은 시적 詩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전현직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분으로서, 경쟁을 의식한 나머지 문하생에게 시지도 목적이 詩에 해박한 훌륭한 시인조차도, 시를 쓴 당사자조차도! 알아먹지 못하는 난해 시(자칭, 수준 있는 시)를 쓰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이 나라 시문학 발전을 저해 한다면, 그건 용서 못할 행위요, 다수의 훌륭한 詩지도 교수님들께도 큰 누를 끼치는 매우 나쁜 행위인 것이다. 또한 영향력을 볼 때, 그러한 것은 주로 신춘문예 심사자인 교수들과 그 해당 신문사에 책임이 더욱 많은 것이다. 지금의 신춘문예 당선자의 시들 중엔 너무 난해, 불해하면서도 도저히 시라 할 수 없는 괴물 시들이 많기에 하는 말이다. 발행부수가 500여부수도 못 되는, 심지어 300부수도 못 되는 신문사들이 몇 천만원을 들여 해마다 신무춘문예 행사를 거행하는 것에는 그 교수들의 교섭으로 그런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 한다. 또한, 많은 시인들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러한 신춘문예 당선된 난해시에 대해 시적인 느낌조차 안든다고 말하는 데 말이다. 서점을 가보라 - 그 교수나 그분들의 문하생 및 그가 소개한 시인들의 시집이 더러 팔리기는 하나 그건 잠깐이고 독자층 또한 매우 얇다. 오히려 이해인, 서정윤, 용혜원, 원태연, 공광규, 도종환 시인 등... 비신춘문예 출신들이 훨씬 더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왜 그러는가? 다 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건 신춘문예 출신들은 여러 지도자들의 객관적 지도는 따르지 않고, 오직 그러한 한두 교수로부터 시의 본질을 져버리고 편식적 으로 배웠기(그것도 주로 난해, 불해 시) 때문이다. 또한 그 문하생은 그 편식에 익숙해져 그 교수의 시작법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설령 신춘문예에 당선됐더라도, 그들은 오랜 시일이 흐른 후에야, 3일 천하 시인였음을 깨닫고서 대부분 이 본인이 주장하는 시로 돌아서지만. 이미 독자에게 흔적을 잘못 남긴 그 시인은 후에 쉬운 표현으로 수준높은 훌륭한 시를 썼더라도 극히 일부 말고는 독자들이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詩도 초기 흔적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일부겠지만, 그 지도자 중엔 "문하생에게 자기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보이게 할 한 방편으로! 아님, 인기를 목적으로! 난해시를 독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는다. 신춘문예는 천여명의 많은 응모작을 한두 사람이 선정하기에 설령 잘 된 작품이라도 그 심사자와 詩성향이 다르거나, 시작법에 대한 논리가 다르면 누구나 거의 당선될 수가 없게 돼 있다. 그래서 신춘문예 당선은 그 심사자나 그 심사자와 시성향이 같은 지도자의 문하생들이 유리한 것이다. 그러니 탈락자님들은 신춘문예에 탈락 됐다 하여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미래의 시인 후보자들이 그 심사자들의 강의를 쫒아 다니거나 아예 그분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건, 다른 이유(시쓰기를 보다 잘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그건 그 심사자들의 시성향과 시작법을 알아내어 그 지도자에 맞는 맞춤시를 신춘문예에 제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도 알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한국의 영화와 음악 등의 예술은 지대한 발전을 해 세계인들로부터 매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만 뒷걸음질이다. 그건 위의 졸 지도자들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의 시문학 발전엔 안중에도 없고 자기 명예나 장사를 위한 것 뿐이라 의혹을 받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시는 본래 音聲으로 태어났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서인지 다행스럽게도 시낭송 행사가 수년 전부터 곳곳에서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글을 직접 읽어보고도 이해 못하는 난해, 불해 시는 더욱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러한 詩는 시낭송에도 써먹을 수 없는 폐단도 따른다.
詩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신춘문예는 이벤트성이다. 그러니 나이 30대나 그 이하가 아닌 이라면, 그것에 목매다 시피 말라. 그거에 당선 안 돼도 실력만 갖춘다면 얼마든 성공할 수 있다. 편식하지 않게 되니, 맘만 먹으면 오히려 더 시 실력을 올릴 수 있다. 배울 때 편식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지도자를 접해야 하고, 시를 보다 다양하게 접해보면서 습작을 열심히 해야 한다. 배울 맘만 먹으면 문예지도 많다. 문학카페도 많다. 그리고 시작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알아먹게 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독자가 많아진다. 추리소설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그런 난해불해한 詩는, 그래서 쓴 이도 알아먹지 못하는 詩는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그걸 선동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국가의 시문학 발전을 위해 붓을 지금 당장 꺾어 버려야 한다. 쓰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 詩를 쓰고자 늘 고민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때론 철학적 및 어떤 시사성 내용으로, 그것도 농축하여 단문으로 시를 알기 쉽게 제대로 쓰기란, 비교적 장문 형식인 산문시, 그것도 산문시 중 신춘문예에 관계되는 교수 의 지도만을 의식하며, 알아먹지 못하게 쓰는 난해, 불해 시보다는 쉬운 표현으로 제대로 쓰려면 그 게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시를 알아먹기 쉽게 쓰기란 어렵지만, 시는 어떠한 시든, 반드시 독자가 알아먹기 쉽게 써야 하는 것이다. 심지 있는 시일수록 그래야 한다. 또한 詩란, 때론는 그 시대를 말하고(늘 그런 시를 쓸 수 없지만) 그 사회를 말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하며, 표현에 있어 독창성이 생명임도 잊지 말하야 한다. 그러면서, 때론 역사적 책임의식 갖고, 詩로 대한민국의 현 모습(시 쓴 당시의 시대상, 사회상 등)이나, 나라와 세계 정세 등에 대해서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와 셰계가 장차 나갈 바를 시사하는 시까지도 말이다. 또한 문학이 다 그래야하겠지만, 그 중 특히 詩만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시대의 생활상이 변하더라도 詩의 본질(시적 본질)을 벗어난 시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위는 초보자들이 산문시(난해 불해 산문시)로 인하여 우왕좌왕하는 분들이 있기에 그들에게 시에 대한 헷갈림을 막으면서, 시쓰기 공부에 다소나마 도움 주고자 소인의 생각을 개략적으로나마 두서 없이 써 보았다. 위에 다소 불미 불손한 점이 있다면 이해를 바란다.
2013. 6.10. 프로필(2014년 현재) 본명: 김상철 출신: 전북 군산 대야. '08년, 전국 공모 고은시인 등단 50주년기념 시부문 신인문학상 당선(자유문예). '14년, 전국 백일장 대회 시부문 최우수상(한노년봉사회). 시집: 『봄이오면』『임이여』외 800 여 시 발표 활동: 문학의 뜰 회원(전, 자유문예),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회원, 문학의 집 회원, 목란문학회 회원. 소유: 문화관광부발행 시부문 예술인증 소유(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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