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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성도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느8:13-18
오늘 주님 주신 말씀 느8:13-18말씀을 통해 성도가 먼저 해야 할 일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주시는 은혜 받고자 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명절을 앞두고 분주하시지요?
차분하고 경건하게 추석명절을 맞이하시길 바라며, 명절이 전도의 기회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가 되기 원합니다.
본문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포로귀환 이후 이루어진 이스라엘 공동체의 언약갱신 이전에 7월 절기 준수에 대하여 즉 초막절 준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핳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벽이 재건되기까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기로 다짐하였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다음 세 가지 멧세지입니다.
첫째로 부단히 연구하고 연구하라 하십니다. (13)
둘째로 초막에 거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라.(14)
셋째로 순종으로 믿음의 날을 예비하라 (15-17)
성경은 성도들의 삶의 지표이므로 성경을 부단히 연구하고 연구하여 광야에서 보호하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초막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절기를 지키라는 주님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멧세지를 말씀을 따라가며 듣기 원합니다.
첫째로 부단히 연구하고 연구하라 하십니다. (13)
13절에 보면 나팔절을 지킨 다음날 족장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나아왔습니다. 나온 이유는 율법의 말씀을 바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에스라가 나팔절때 율법 선포와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모든 율법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초막절 규례를 알기 위해 나왔습니다.
물론 이때서야 초막절 준수 명령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초막절 절기를 알고 있었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스3:4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무서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녘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문광장에 모인 것은 나팔절과 속죄일 초막절등 모든 절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초막절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으나 세부적인 규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팔절 준수와 함께 더욱 신앙적으로 고양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도 지도자 계층이었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초막절을 율법의 규례에 맞게 제대로 잘 준수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에스라에게로 나와서 초막절 규례를 상세하게 알아보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 과정을 거쳐 초막절 준수 규례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진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율법의 규례에 따라 초막절을 잘 준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의 부단한 연구가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록하여 주신 책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게 하기위한 삶의 척도로 주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성경에 대한 부단한 연구를 통해서만 바른 신앙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대한 연구 없이는 누구도 바른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알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뜻을 알 수 없고 , 구원의 바른 길을 알 수 없으며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바른 삶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에 대한 연구 없이는 교회에 출석해도 기독교 기본교리조차 알지 못하고 ,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지 알지 못하기에 교회에 와서 축복만을 부르짖는 기복 신앙자가 됩니다.
성경에 대한 부단한 노력 없이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족장들까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기 위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나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율법을 밝히 알기 위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갔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역시 율법의 전문가이긴 하였지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지식에 자만하지 않고 율법에 대하여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에스라에게 나아간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참으로 겸손한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져야 할 자세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행8:30-31“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수년간 신학을 하고 성경공부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수 십 년간 장로로 교회학교 부장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자신의 무지의 소치일 뿐입니다.
성경은 심오한 진리를 인간의 언어로 기록했을 뿐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꿰뚫어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전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연구하면 할수록 새롭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배울수록 더 나은 사람을 통하여 겸손하게 배우는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교에서 선비가 죽은 후에도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 해서 학생이라 합니다. 에스라도 당대 최고의 학자였지만 만족하지 않고 율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인줄 믿습니다.
둘째로 초막에 거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라. (14)
여기서 칠월 절기란 초막절을 의미합니다. 초막절은 7월 15일-22일까지 그리고 8일째 되는날 성회로 모였으니 8일간의 절기입니다.
이 초막절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저장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초막절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7월 15일부터 7일간 초막에 거하도록 명령하신데서 유래했습니다.
레 23: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하셨을까요?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하는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인도해주신 것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에는 먹을 곡식을 추수할 것이 없습니다.
광에는 마실 물을 주는 샘이 없었습니다.
온갖 위협 낮의 뜨거운 태양 밤엔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독사와 전갈 그리고 맹수들 도적떼가 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 별문제 없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인구와 가나안땅에 입성한 인구가 범죄한 1세대가 다 죽었음에도 비슷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초막절을 지키게 하여 광야 생활 중에 그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거나 거기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도록 하기 위한 목족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막이 아닌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키도록 했을까요?
광야의 장막생활을 기념하려면 장막을 짓는 것이 더 필요했을 텐데요 왜 초막을 짓도록 했을까요?
초막은 일주일정도면 풀이 마르고 나뭇가지들이 시들어 그 안에서 햇볕을 더 이상 가려질 수 없고 이슬을 막아줄 수 없는 정도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며 절기를 지키라고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 세상의 것들이 다 초막과 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의지하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초막의 나뭇잎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초막절을 지키진 않아도 한해 추수의 감사함 앞에서 하나님께 겸손해져야 합니다.
고전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행적은 지나감이니라.”
한해의 풍성함을 주신 명절 앞에서 늘 초막에 거하는 것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것들은 다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고 ,우리에게 영원한 천구의 풍요로 축복하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풍요의 계절에 추수할 것이 없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4절에서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레 23:33-43 )그것을 지키는 세부적인 방법까지도 세세하게 명하셨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율법에 초막절을 지키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무엇을 하고 행하지 말 것을 아주 자세히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길 원하신다면 주저하지말고 성경을 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
성경을 가까이 두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게 되지만, 성경을 멀리 하는 사람은 그 반대의 생황에 익숙해집니다.
셋째 순종으로 믿음의 날 참 안식의 날을 예비하라.(16-17)
16절을 보면 백성들이 율법의 규례를 좇아서 나뭇가지들을 취하였다가 자신들이 집 지붕 위나 뜰 안, 하나님의 전 뜰, 수문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 등에 초막을 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달아 알게 된 초막절에 관한 규례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백성들의 순종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믿음은 지식과는 다릅니다.
누가 성경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한다고 해서 그가 믿음의 사람이라든지 믿음이 좋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재는 잣대는 순종이지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아나 아브라함등 믿음이 위대했던 사람들은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함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지식을 자랑해선 안 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할 뿐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참된 성도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니 ...”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수종들던 하인들은 주님의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에도 그대로 순종하여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요2:1-11) 이는 그들에게 순종이라는 믿음의 증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뱃새다 광야의 제자들은 순종하기 어려운 지시에 순종함으로써 오병이어의 이적에 동참하고 주님을 향한 자신들의 믿음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성도의 표이자 믿음의 증거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자신이 성도인 것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진실한 것임을 증거 하시기 원합니다.
17절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형언 못할 큰 기쁨의 날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회중들이 기뻐한 이유가 초막절이 여호수아 이레로 최대로 성대하게 준수된 데 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을 살펴 볼 때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며 장막에서 거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고 마침내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셔서 그곳에서 안정된 집을 짓고 정착하여 살면서 안식을 누리게 하셨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하여 기업으로 삼고, 초막절을 준수하였을 때 , 하나님께서 자신들로 하여금 험악한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에서 안식하게 하신 사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자손도 이와 같았다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광야와 같은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아무 소망이 없는 것 같이 보였으나 그 와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 다시 회복시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은 물론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까지 재건케 하심으로 안식하게 하시며 , 율법의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키도록 은혜 내려 주심이 감사해서 여호수아 이레로 가장 큰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초막절이 그 규모면에서 초라했을지라도 그 의미면에서는 성대하고 화려한 초막절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과 저는 느헤미야 시대의 시민들이 누리지 못한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스런 삶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장차 영원한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심으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을 누리시게 하실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안식은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낙원에서 누린 그러한 안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게 되면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이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안식은 완전한 안식이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이제까지 3가지 멧세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말씀을 부단히 연구하고 연구하라 하십니다. (13)
둘째로 초막에 거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라.(14)
셋째로 순종으로 믿음의 날 참 안식의 날을 예비하라 (15-17)
성경은 성도들의 삶의 지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살게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성경을 알되 밝히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 족장과 제사장 레위인들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밝히 알기 위한 노력과 연구를 지속해야 될 줄 믿습니다.
성도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부단히 연구하되 그 말씀의 뜻을 깨달았으면 속히 순종하며, 초막에 거하는 마음으로 열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면서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