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1)--천안행 기차에서 만난 무명가수

(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1) 천안행 기차에서 만난 무명 가수 송현(무향자연학교장) 1. 오늘은 아내를 만나러 수원에 가는 날이다. (아직도 우리는 나흘 따로 사흘 함께 사는 “나따사함” 방식으로 살고 있음) 사흘 만에 만나는 아내를 빨리 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좀 일찍 출발했다. 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내려 천안(병점)행 열차로 갈아탔다. 아직 퇴근 시간이 일러 그런지 차 안은 그리 붐비지 않았으나 빈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경로석에는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모른 체 하고 경로석에 앉을까 하고 잠시 망설이다 어깨에 맨 가방도 무겁고 손에 든 짐도 무겁도 갈 길도 머니 좀 앉아야겠다고 자위하고 눈 질끈 감고 경로석에 앉았다. 2. 마침 차 안에는 오십대 초반의 아저씨가 낚시용 보조 의자에 앉아 앰프 기타를 들고 육성으로 자기 소개를 하는 중이었다. 충남 청양군 선양면 사람인데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노숙자를 돕기 위해서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하는 게 좀 시원찮더라도 노래 끝나면 박수도 좀 보내주고 백원 짜리 하나 정도 보태 달라고 했다. 내가 타기 전부터 이미 노래를 여러 곡을 불렀던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제 마지막 곡을 부를 차례였다.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열창을 하였다. 노래 솜씨가 대단했다. 아저씨가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가사도 마음에 들었고 곡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누가 부른 노래이며 곡명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저 노래 씨디를 당장 사서 노래를 빨리 배워 내 기본 레퍼토리에 추가하고 싶었다.(참고: 나는 인사동 이모 포장마차 비상근 전속가수임) 3. 자기 말로는 청양에서는 자기 노래 실력을 제법 알아주는데 서울 오니 자기 실력이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고음 처리에 약간 무리가 있었지만 고음 때 걸걸한 음색이 슬픈 정조를 흠뻑 뿜어내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의 노래가 오랜만에 내 가슴을 애잔하게 적셨다. 그의 노래 한 곡에 나는 흠뻑 취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는 손뼉을 마음껏 쳤다. 차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도 손뼉을 치지 않는데 나 혼자만 손뼉을 쳤다. 나 혼자 계속 손뼉을 길게 치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빈 박카스 통을 들고 사람들 앞을 지나갔다. 내가 보기에는 너댓명이 동전을 넣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내 앞에 아저씨가 왔다. 나는 천원 짜리 한 장을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유일하게 손뼉을 쳤고 천원 짜리 한 장을 내 놓는데 고맙다고 굽신 절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노래 잘 들었습니다. 근데 조금 전에 부른 노래 제목이 뭡니까?” “아아, 어르신,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예, 아주 마음에 들었고, 노래를 참 잘 하셨습니다.” “그 노래 부른 가수가 누굽니까?” “이 태호의 신곡 "버팀목"입니다. 저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나는 수원 가면 당장 레코드 가게로 가서 그 노래가 담긴 씨디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 저녁부터 그 노래를 배워서 아저씨처럼 열창을 하고 싶었다. 나는 얼른 메모지를 꺼내서 노래 제목과 가수 이름을 적어두었다. 4. 아저씨는 열차 안을 한 바퀴 돌고는 짐을 챙겨서 다음 역에서 내리든지 다음 칸으로 이동할 눈치였다. 나는 아저씨의 그 노래를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아저씨가 만약 다음 역에 내리면 어쩌나 하고 아저씨 동태를 살펴보았더니 다음 역에 내리지 않고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제사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짐을 들고 아저씨를 따라 다음 칸으로 갔다. 아저씨는 아까처럼 양쪽 출입문 가운데 肉?보조 의자를 내리고 전을 폈다. 이번에는 아저씨 노래를 아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듣고 싶었다. 아저씨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섰다. 가방은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짐을 들고 한손으로는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아저씨 노래를 들을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아저씨는 거기서도 보조용 의자에 앉은 뒤 앰프를 켜고 노래할 채비를 하였다. 아까처럼 자기 소개와 차 안에서 노래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는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노래 시작하기 전에 날리는 맨트 내용으로 짐작컨대 한 두곡 부를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곡을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의 노래를 여러 곡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첫 곡으로 베사메무초를 불렀다. 첫 노래가를 끝난 뒤에 나 혼자만 박수를 보내자 다른 사람들에게도 박수를 좀 보내라고 주문을 하자 몇 사람이 손뼉을 쳤다. 그 다음에는 배호에 대해서 간단한 해설을 한 뒤에 “안녕” “당신” “마지막 잎새”를 불렀다. 그 다음에 “자옥아”를 부르고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아저씨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짜여 있었다. 아저씨가 노래를 열창을 한데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빈 박카스 통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그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내가 제일 열광적으로 손뼉을 쳐 그랬는지 아니면 내 차림새가 좀 튀어 그랬는지 나를 눈여겨보는 듯 했다. 5. 만약 저 아저씨가 좋은 무대에서 좋은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면 훨씬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운 재능을 저 아저씨처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썩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저 아저씨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저런 훌륭한 재능을 마음 껏 발휘하여 대성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내 마음이 아팠다. 아저씨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다면서 팝송을 한 곡 불러보겠다고 했다. 영어 발음이 나쁘고 틀려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대학까지 나와도 외국 사람 만나면 영어 한 마디로 못하고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까막눈이다. 그러니 아저씨의 발음이 어디가 틀렸는지 한 군 데도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팝송을 열창했고 나는 그 열창에 심취했다. 나는 아저씨의 멋진 열창의 폭포 밑에서 감동으로 흠뻑 젖었고 그 순간 참 행복했다. 다만 이런 아름다운 멋진 노래를 아내와 함께 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노래를 여러 곡 부른 뒤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빈 박가스통을 들고 손님들 앞을 한번 돌았다. 내 앞으로 왔다. 나는 아까는 노래 한곡 듣고 천원짜리 한 장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노래를 여러 곡 들었으니 만원쯤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만원이 아까워서는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혹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되어서 오천원짜리를 주었다. “아이구 어르신! 아까 저 칸에서도 돈을 주셔놓고 또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노래를 너무너무 잘 부르십니다. ”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 동전이나 천원 짜리를 넣어주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다음 칸으로 가지 않고 다시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더 하겠다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어르신, 얼굴도 잘 생기시고, 멋집니다. 가수 누구 좋아하십니까? 한곡 신청하십시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부른 버팀목 한 번 더 듣고 싶습니다.” “아아, 이태호의 버팀목? 저도 그 노래 배운지 얼마 되지 않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6.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열창을 하였다. 그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나는 더 크게 손뼉을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환호성을 지르자 저쪽에 있던 여고생 몇 명이 따라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 바람에 열차 안은 작은 음악회를 하는 분위기처럼 되었다.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나이 든 분들 중에 그의 노래에 심취하는 이가 여럿이 있었다. 아저씨는 두어 곡 더 부른 뒤에 나를 보고 물었다. “멋장이 어르신, 가수 누구 좋아하십니까?” “조 용필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어르신을 위해서 제가 노래 한곡 선물하겠습니다. ”상처“를 불러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눈을 감고 전주를 시작하면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감정을 잡는 듯하고는 “상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다. 차 안만 아니었다면 나도 아저씨 옆으로 다가가서 같이 부르고 싶었다. 아저씨의 연륜과 인생역정때문인지 그 노래 가사가 담고 있는 절절함이 고대로 노래에 묻어 나왔다. 어느 새 차가 수원역을 지났다. 나는 다음역이면 내려야 한다. 미리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어르신, 다음에 내리시나봐요? ”예. 세류역에서 내립니다.“ “어르신,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오늘 참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노래를 정말 잘 하십니다. 앞으로 목 관리 잘하시고,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어르신, 참 멋지십니다. 어르신께서도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아내를 만나러가는 길이 아니었다면 천안까지 갔을 것이다. 아저씨의 노래도 더 듣고, 점점 손님들이 줄어들어 나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 머릿수를 하나 채워서 아저씨의 무대가 덜 쓸쓸하게 해주고 싶었다.그래서 아내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아저씨가 가는 데까지 따라 갔다가 올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아내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7. 아저씨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훈아의 “어메”인가를 나를 위해서 열창하는 것 같았다. 이미 아저씨 노래에서 받은 감동과 노래 가사가 담고 있는 애절한 정조에 취한대다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까지 나서 그런지 내 양 볼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알면 민망할 것 같아서 눈물도 닦지 않고 서 있었다. 아저씨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기차가 세류역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린 뒤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양볼에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돌아볼 수가 없었다. 차는 출발하였다. 차가 홈을 다 빠져 나간 뒤에도 나는 뒤 돌아보지 않고 돌비석처럼 그 차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2007. 3. 16) 달님향 2007-03-17 13:59 감사합니다 북두칠성 2007-03-17 13:08 무료한 토요일 오후, 가만히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한 걸 느꼈습니다. 아,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니라 따뜻한 가슴이구나. 하는 걸 느꼈답니다. 여의주 2007-03-17 11:42 감동적인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 합니다...부라보! 김현근 2007-03-17 11:34 송선생님글이 훨씬 더 나에게는 감동적입니다. 글을 읽으며 내내 조마조마했던것이 왜 요즘 분위기 아랑곳 하지 않고 초치는 막 되먹은 인간들 있잖습니까? 혹 송현선생님 감동받으시는데 어느 위인이 중간에서 듣기싫다고 소리라도 지르는 일이 발생할까바 조마조마했단 말입니다^^ 송현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그 열차를 타보고 싶습니다. 로타리 2007-03-17 11:25 투명한 유리 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