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 / 지안스님
사람이 일생동안 자기 일에 바치는 노력은 한이 없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수고하시오”라고 하는 인사말처럼
인생이란 결국 수고의 연속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남다른 목적을 가지고 평생을 바치는
수도자의 세계에서는 내면적으로 기울이는 자기 정진의 도수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날씨에 따른 기온의 차이처럼
사람마다 자기 인생에 기울이는 수고의 도수가 다르다.
이 수고를 자기 인생에 기울이는 정성의 도수로 본다면
정성의 도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위대한 인간 승리자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노력을 지혜가 선도해 줘야 한다.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이 결과에 가서 어리석음의 소치로
평가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또 목표가 잘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노력하는 행위 자체에
하자가 있으면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는 수도 있다.
목표 있어도 노력 않으면 잘못 형식에 치우친 어리석음 경계
중국 당나라 때 마조(馬祖, 709~788) 선사의 일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마조스님이 법당 앞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스승인 회양선사가 물었다.
“거기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좌선을 무엇 하려 하는가?” “빨리 깨달아 부처가 되어야지요.”
다음 날 마조는 또다시 같은 장소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때 회양선사가 마조가 앉아 있는 앞으로 와
돌 위에 기왓장을 갈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쳐다본 마조가 물었다. “무엇에 쓰려고 기왓장을 갈고 계십니까?”
“이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해.”
“아니, 스님 기왓장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누구는 앉아서 부처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앉아서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마조가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가 멈추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마음은 소고 몸은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선(禪)이 되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이 되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을 망각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지금도 중국 형산에 가면 이 고사에 얽힌 유적이 남아 있다.
‘마경대(磨鏡臺)’란 글을 새겨 세워둔 비석이 있다.
글자의 뜻은 거울을 갈았다는 뜻이지만
앞서 설명한 설화대로 마조가 마음을 깨달아
도를 이룬 것을 기념하는 비(碑)이다.
불교신문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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