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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자의 아내
이 기 영
1
세상에서는 지금 그의 이름을 민족(民足)이라고 부른다. 그를 왜 ‘민족’이라고 부르는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신문 기사나 정탐이 아닌지라 남의 비밀을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또한 그런 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유명한 ‘민족’에게 대해서는 다만, 그의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라도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몇 ‘다스’라도 될 줄 안다. 그것은 우선 ‘민족’이라 하면 아동주졸¹까지라도 모를 이가 없으리만큼 그는 너무도 유명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명한 ‘민족’의 이야기를 쓰기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나. 왜 그러냐 하면 이렇게 온 세상 사람이 다 잘 아는 사람의 사석을 쓰기란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그것을 쓰기보다도 어려운 법이다. 워낙 그가 유명한 만큼 그는 일화도 많을 것이요 행적도 많을 것인데, 그것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쓰자면, 우선 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될 것이요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전기(傳記)를 쓰는 마당이 아닌 바에야 일동일정을 모조리 써놓아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복잡다단한 행동 중에서 가장 뼈대가 굵은 것만을 소설적으로 추려서 그것을 정확하게 또한 재미있게 써야만 되겠는데 그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란 것은 남이 잘 모르는―아주 처음 듣는 것을 해야 어시호² 흥미를 끄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이 다 아는 ‘민족’의 평범화한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민다면 어떻게 독자 대중에게 백 퍼센트 이상의 흥미를 끌게 할는지 도저히 나와 같은 서투른 솜씨로서는 감당치 못할까봐 저어한다. 그것은 어느 의미로 보아서 마치 저 중국의 노신(魯迅)³이가 『아큐정 전 (阿Q正傳)』⁴을 쓰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니만큼 나는 더욱 나의 외람한 것을 후회하고 은근히 두려워하기 마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미 벌인 춤이 되고 말았다. 이 땅에서 ‘민족’ 이야기를 나보다도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물론 있을 것이요 또한 그것을 하루바삐 써주기를 나는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일인지 아직까지 그것을 써주는 사람은 하나도 나서지 않는다. 내가 이러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부족을 느끼면서도 굳이 이 붓을 들게 된 동기도 실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어릿광대와 같이 등장하기를 주저치 않고 나섰다. 웬일인지 나는 그런 충동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누구의 말마따나 이 역시 신비의 원리라 그런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데 나는 아직 ‘민족’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모흔다. 하긴 그를 ‘민족’ 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서 그의 성이 민가(閔哥)나 아닌가 하는 추측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그의 성이 정말로 민가인지 아닌지 그것은 나는 모른다.
듣는 말에 의하면―물론 이것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꼭, 믿을 수 없는 말이나―그는 본시 미천한 몸으로 저 함경도라든가 어디라든가 어느 궁벽한 산골에서 출생 하자 조실부모하고 의지가지 없이 돌아다녔다는데 그가 열 살 전후까지도 어떤 시골 장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중노미⁵로 심부름을 하고 있으며 봉놋방⁶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조부모가 누구인지 그것은 남도 모를 뿐 아니라 당자인 ‘민족’이 자신도 아마 모를 것이라는 억측까지 있는데 모르면 모르되 이것은 아마 그가 너무도 유명하다니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지어내서 그가 한미한 출생이라니까 이렇게까지 훼방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와는 정반대로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자고로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한미한 출생으루서 어려서는 갖은 고초를 겪다가 장성해서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마치 고대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그를 만들고자 하는…… 이를테면 기적을 만들고자 하는 나머지에 그 역시 성명도 없이 개구멍받이로 나온 것처럼 지어낸 말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의 성이 정말로 민가라든지 다른 성이 있다든지 하면 그는 반드시 그 성명을 써야만 할 터인데 그는 왜 ‘민족’ 이란 별명을 하필 부르게 하는가? 이것이 그에 대한 수수께끼요 그래서 그는 성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듣게 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에게 대한 별별 억측과 중상이 있게 하는 것인데 원래 그는 유명하니까 세상 사람들의 이따위 평판쯤은 개의치도 않을 것이다. 하여간 그의 본성이야 알든 모르든 지금은 그의 본성보다도 이 ‘민족’이란 별명이 더 훌륭히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현 사회에서는 지전장이 금화보다도 훌륭하게 더 잘 유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그의 총명한 두뇌로 백성왈 지극히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이나 아닌가 싶다. 그러면 족(足)은 또 무엇이냐 할 것인데 이 ‘족’이란' 것도 물론 훌륭한 의미가 있는 글자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도 적자(赤子)⁷의 발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가. 민은 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나 왕은 이민위천(王以民爲天)⁸이란 말로만 보더라도 자고로 지배 계급이 민중으로 근본을 삼았던 만큼 우리 민족 선생도 꼭 그런 의미에서 ‘백성의 발’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거룩한 생각에서 착취한 별명인지도 모른다. 즉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백성을 사랑한다는―가장 향토애 (鄕土愛)를 강조하자는 의미에서一다시 얄하면 ‘민족주의’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나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도 물론 나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니까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구태여 그것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불가불 ‘민족’인 당자한테 물어보아야만 할 것인데 그는 이때까지 거기 대해서는 한 번도 발표한 일이 없고 나 역시 듣지도 못한 바이라 이 이상 더 말할 거리가 못 된다. 그야 하여간 그가 유명한 민족개량주의자라는 것만은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면 그의 그런 볕명쯤이야 아무렇든지 미주알고주알 캘 필요가 없을 줄 안다.
그러면 이 유명한 ‘민족’의 별명에 대해선 고만 막설하기로 하고 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자!
2
○○ 동 개천가를 끼고 올라가자면 왼손 편으로 돌다리를 건너서 수통 물고동이 놓인 막다른 골목 안에 새로 지은 문화 주택이 붉은 기와를 덮고 있는데 그 집 안에서 조석으로 드나드는 양장 미인은 이 근처의 수통물을 짓는 사람들의 입에서 벌써부터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여편네 예쁘게도 생겼다!” 고 부러워하는 축도 있고.
“아주 모단결인걸! 아주 말쑥한걸!” 하고 그의 첨단적 신식을 기발하게 보는 축도 있고.
“아이구 망측해라 여편네가 더펄머리⁹를 하고 넉 살 좋게 어디로 싸대노!” 하고 구식으로 욕하는 축도 있고.
“어떻든지 그 여편네는 잘두 났다. 남들이야 뭐라든지 잘 먹고 잘 입고 제멋대로 쏘다니니 그 위 더 상팔자가 있나 넨장할 것!”
하고 그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축도 있다:
“그 여편네 눈가죽이 괭팽하고 가로 쪽 째진 걸 보니 독살이 나면 여간 암상¹⁰쟁이가 아니겠는걸!”
“저런 계집을 데리고 사는 놈팽이는 대개 부처 아래 토막 같다. 그래 내주장¹¹이겠다.”
“아마 그치도 그런가 봐. 그러기에 여편네가 밤낮없이 난질을 다니지.”
“그 계집애 눈매를 좀 보지. 여간 색골로 생겼나 하하하·…….”
지금도 그 여자가 눈이 부시는 흰 양복에 분홍색 파라솔을 받고 뒤굽 높은 되똑한 흰 구두를 신고 비단양말 위로 미끈둥한 장딴지를 드러내놓고 갸우뚱거리며 지나갈 때 그들은 한마디씩 이렇게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유명한 민족의 집안 내용을 비로소 자세히 알기는 얼마 전에 이 집 행랑어멈의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였다.
이 양장 아씨는 행랑어멈을 두어도 인물이 반반한 여자를 골라 두었다. 그것은 첫째로 남 보기에 추하지 않고 손님 앞에서 심부름을 시킨대도 남우세 부끄럽지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마는 그보다도 행랑어멈은 음식을 다루는 까닭에 인물이 못생기게 되면 어쩐지 음식 맛까지 추해진다는 것이 이 얼굴 이쁘게 생긴 주인아씨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골라 둔 행랑어멈은 다행히도 이 신식 아씨의 마음에 꼭 들어맞았는데 한 가지 병통은 그도 인물값을 하느라고 누구만 못지않게 주전부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아씨는 비록 행랑방이라도 그렇게 난잡한 행동이 있게 되면 자기의 신성한 스위트 홈(理想的家庭)까지 추해진다고 하루는 행랑어멈을 조용히 불러서 주의를 시킨 일이 있었다 한다.
그때 행랑어멈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말이 “쇤네가 뭘 어쨌어요! 누가 한술 더 뜨나 어디 두고 볼까요·…….”
하였다나.
그 뒤부터 행랑어멈은 주인아씨를 흉보기 시작하였다 한다. 이것도 그가 소문을 낸 말인지 누가 소문을 낸 말인지는 모르되 지금 세 살 먹은 주인아씨의 아들이 웬 까닭인지 이 집 선생님을 조석으로 문안을 다니는 ○○ 잡지사 주간인 피개량(皮皆良) -(이것도 물론 그의 본명 이 아니요 별명 이다) ―선생의 발가락을 닮았다나 손가락을 닮았다는 풍설이 있다.
그 러나 또 웬일인지 이 신식 아씨는 행랑어멈의 그런 말전주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지 그를 쫓아낼 생각도 않는 것이 이상하다. 이것도 신비의 세계라 그러한지 그들의 비밀을 또한 남들이 어찌 알까 보냐?
다만 행랑어멈의 말을 들으면 이 집 양장 아씨 함희정(咸戱貞)씨는 일찍이 이 집 주인 민족 선생이 동경 유학을 할 때부터 시쳇말로 ‘연애’를 속속들이 했다 한다.
그래서 당시 유학생계에 수재이던 ‘민족’씨도 이 ‘모던걸’ 인 함희정에게는 어쩔 수 없이 홀딱 반해서 아들까지 낳고 아무 죄도 없는 전실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버렸다 한다. 그것은 말똥 같은 쪽을 찌고 봉건적 구도덕에 젖은 구식 여자의 언제든지 ‘날 잡아 잡수’ 하는 동양식 부인보다는 육감적이요 열정적이요 활발하고 요염하고 또 이성 (異性)을 끌어당기는 지남철 같은 마력이 있는 근대적인 신여성인 함희정이가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하고 붉은 키스를 보낼 때 그의 소부르적 자유사상과 부합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유연애의 고비를 넘어서 연애지상주의 (戀愛至上主義)에까지 막다른 그는 비록 변절은 할지언정 이 ‘경국지색’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새끼에 맨 돌멩이처럼 해외에서 끌려 들어 왔다.
*
그게 바로 기미년 만세통이 벌어진 판이었다.
이에 민족 선생은 하루아침에 다시 새로운 의미로서의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말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것은 마치 차돌 같은 얼음 덩어리가 금시에 녹아서 냉수로 된 것처럼, 함희정의 불갈은 사랑에 민족의 절개도 아니 녹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가 해외에 있을 때는 열렬한 × ×운동자가 아니었던가? 하기는 일개 여자의 유혹을 못 이긴 그를 무슨 열렬한 × ×운동자로 볼 것이냐? 그가 진실로 열렬한 운동자일 것 같으면 그보다 더한 유혹에라도 결코 사로찹히지 않을 것이라 할는지는 모른다. 아니 그보다도 그의 본바탕을 캐어본다면 재래 봉건사상에 중독된 소위 영웅 심리를 잔뜩 가진 × ×˙주의자라는 것들의 갈 길이란 것은 조만간 원래 이렇게밖에는 더 될 나위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하여간 그가 한참 당년에 × × ×'의 × ×' × × ○ ○로 있을 때 그의 붓끝과 혀끝에서는 피가 끓고 고기를 뛰게 하는 불덩이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던 뎐}큼 그것은 이 땅의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먹을 쥐게 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게 하고 또한 끓어오르는 의분을 참지 못하게 하여서 많은 젊은 사나이들은 큰 뜻을 품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내달리었다. 그만큼 그마적의 민족의 성명은 우레같이 사해에 진동하여 그를 존경하고 칭찬하고 숭배하고 탄복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렇던 민족이가 하루아침에 자기의 주의 주장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버리고 일개 아녀자의 뒤를 따라서 마치 도수장에 들어가는 짐승처럼 풀기가 없이 어슬렁어슬렁 목을 늘이고 기어들어옴을 볼 때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과히 괴이치 않을 줄 안다.
한데 민족이가 이 땅으로 들어온 것은 자기의 사상에 전환이 생신 까닭이라고 한다. 그가 별안간 왜 이런 사상으로 급변을 했는지는 모르지마는 그의 새로 변한 사상이란 것은 참으로 온건 착실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상 만물은 모다 힘으로 움직인다. 한울의 일월성신(日月星辰)도 힘의 운행이요 산천초목의 변화도 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산다는 것도 모다 힘의 발동이고 따라서 적은 힘은 큰 힘에게 희생된다. 실 한 겹과 두 겹이 서로 싸우면 반드시 한 겹이 먼저 끊어지고 말 것이다. 고양이가 호랑이와 싸워서 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힘이 적은 까닭이다.
그러면 지금 이 땅에는 무엇이 있느냐? 무슨 힘이 있느냐? 과학이 발달되었느냐? 지식 이 보급되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남의 나라와 같이 산업이 발전되었느냐? ……아모것도 없다! 어시호 우리들은 먼저 힘을 길러야 하겠다. 호랑이와 싸우랴면 우선 호랑이 만큼 힘을 준비해야 되겠다. 우리는 지금부터 실력을 양성하자! 학자를 양성하고 기사를 양성시키자! 청년을 수양시키고 교육과 문화를 보급시키자! 그것이 십 년이 되든지 내지는 백 년이 되든지 그만한 힘을 기른 연후에야 비로소 남과 한번 견주어볼 것이 아니냐? 그런데 우리의 현상은 마치 고양이가 호랑이에게 덤비는 셈이다. 아니 계란으로 바윗돌을 깨치랴는 형국이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실력양성론(實力養成論)의 골자였다.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이런 튼튼한 이론(?)을 실천에 옮기려면 그는 물론 이 땅으로 들어와야 될 것인데 이와 같이 온건한 군자식의 이론이라면 또한 누구나 그의 행동을 조금도 위험시할 것 조차 없겠다.
이 만큼 그는 자기의 안전한 생활을 합리화시키기에 총명하였다.
일방 함희정은 민족이가 × ×로 건너간 그동안 홀로 떨어져서 안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정들자 이별이란 웬 말이냐! 옷고름에 차고 다녀도 부족한 내 사랑을 만리타국에 생이별을 시키다니…… 그는 참으로 일각이 삼추같이 임 그리워 못살 지경이었다.
한데 민족의 소식은 한번 간 후 묘연하였다. 그때 통은 국내도 소란한 판인지라 더구나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의 신상을 염려하기 마지않았다. 그는 참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또한 앞으로도 무슨 일이 닥칠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함희정의 간장은 타고 녹았다. 그는 밤마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 그럴 때마다 그의 애인 민족이는 피를 흘리고 부르짖는 모양과 육혈포를 맞고 거꾸러지는 거동이 보이었다.
“사랑하는 희정씨! 나를 구원해주소서. 나는 다시 또 당신을 못만나고 죽을 것 같소이다. 오, 거룩하신 당신은 이내 몸에 구원의 손을 내미소서…….”
하룻밤에는 민족이가 전신에 피투성이를 하고 이렇게 부르짖으며 별안간 자기의 품안으로 달겨들 때 그는 기겁을 해서 마주 얼싸안으며
“에그머니나 당신이 이게 웬 일이오!”
하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 바람에 고만 가위를 눌렸던지 희정은 그길로 내처 울기 때문에 안방에서 자던 친정어머니가 쫓아와서 깨운 적까지 있었다 한다. 이만큼 그도 민족을 사랑하였고 그러니 만큼 그도 자기의 주의 ― 연애지상주의에 충실하였던 것이다!
이에 그는 천사만려(千思萬慮)¹²한 끝에 마침내 한 꾀를 생각해냈으니 그것이 또한 민족의 사상 전환과 똑같은 온건 착실한 묘책이었다. 과연 함희정이도 민족이의 아내 되기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천생 배필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함희정은 변으로 일찍 일어나서 분세수를 곱게 하고 오랫동안 폐하였던 화장을 유달리 한 후에 새 옷을 갈아입고 체경 속으로 자기의 몰골을 들여다보았다.
“이만하면 됐지! 그렇다. 왜 진즉 그런 꾀를 못 냈을까!”
그는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제 옷맵시에 제가 홀려서 그윽이 만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그길로 요로의 어떤 인물을 심방하였다.
“……민족씨는 지금 병환으로 편치 않으신 것 같애요. 그이는 그전부터 폐병이 있답니다. 이역 풍토에서 그의 본병이 더치고 보면 그의 생명은 퍽 위험해서요……”
하고 그는 그때 다시 간곡히 청하였다.
*
그래서 그는 마침내 뜻한 바 계획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때 희정이가 그처럼 소란한 통에도 탄탄대로로 애인을 만나러 가려고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얼마나 기쁘던지 자기 모친에게 이렇게 자랑하기까지 하였다.
“어머니! 나는 민족씨를 만나러 갈래요. 이번 길에 그이를 아주 데불고 오겠여요!”
“아니 어떻게 만나러 간단 말이냐? 거기는 그렇게 험난하다는 데를!”
모친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운 듯이 물었다.
“다, 무사하게 되는 수가 있으니 어머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시오!”
그때 희정의 입에서는 점도록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희정은 그길로 × × 에를 들어갔었다. 과연 그는 어렵지 않게 민족을 만날 수 있었다. 타국에서 오래 그리던 애인을 만나는 기쁨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애인을 얼싸안고 한참 떨다가 오장이 녹을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나는 당신이 병환이 나셨나 보아서 불원천리 찾어왔어요!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어요?”
하고 붉은 입술로 장미꽃 같은 키스를 던졌다. 별안간 두 눈에는 눈물이 팽 돌았다.
뜻밖에 희정이가 찾아왔다는 통지를 받고 허둥지둥 달려온 민족은 이 바람에
“아! 당신이 여기를 어떻게 왔소?”
하고 혼불부신¹³하여 놀라운 표정으로 쳐다보았으나 급기야 진정한 후 그의 말을 자세히 듣고 보니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같이 유쾌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민족은 그길로 바로 몇몇 동지와 의논을 한 후에 희정이와 손목을 마주 잡고 마치 신혼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신랑 신부처럼 고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는 길로 서울 한복판에다 시쳇말로 스위트 홈을 신설하고 재미있는 새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들이 자기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는 민족의 전처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쫓겨 가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도 그대로 희생시킬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민족의 실력주의(實力主義)로 보든지 연애지상주의로 보든지 조금도 죄악이 되지는 않는다 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적은 힘은 으레 큰 힘에게 희생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므로.
과연 구식 부인인 민족의 전처는 그들이 너무나 신식이요 신사숙녀로 유명한 서슬에 감히 대항할 생의도 못 해보고 애꿎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는 오직 어린 아들이 모락모락 자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하염 없이 눈물만 샘솟고 있는데 민족과 희정이는 이와 같은 남의 눈물로 연못을 파고 선유배 위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새 생 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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