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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 상표 / 엄재국
초승달을 당기면 / 심언주 초승달, 몰래 내 목걸이에서 빠져나간 펜던트, 아니 내가 슬쩍 밀어 버린 당신, 손톱 하얗게 세우고 눈 흘기는, 초승달, 하늘 손잡이를 힘껏 당긴다. 찢긴 하늘에서 후둑 후둑 별들이 쏟아진다. 첫울음도 울지 못한 별이랑, 영문 도 모른 채 끌려 나오는 별이랑, 창가로 달려와 이마를 찧고 가던 별이랑, 이제 막 하늘에 뿌리내리며 별이 되고 있을 당신의 아버지까지, ......별의별 별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내린다. 바다 푸른 살이 움푹움푹 파인다. 바다 가 더 부지런히 제 몸을 뒤집는다. 불가사리 한 마리, 바닷가에 식다 만 별 하나가 버려져 있다. 충남 아산 출생 2004년 <현대시학>에 '예감'외 4편으로 등단 2007년 시집 <4월아, 미안하다> 민음사 '시류' 동인으로 활동중 |
달빛이 흔들리는 이유 / 최정례 달빛이 삵쾡이같이 내려와서 지상의 너 강아지풀은 뾰족해진 것 칼과 같이 특이한 식물이 돼버린 것 줄기를 뻗대고 잎을 내밀고 삵쾡이 같은 달빛을 머리 위에 올려 피워보려고 수런거렸던 것 강아지 새끼가 어미젖을 찾아 얼굴을 비비대듯 허공을 비벼 초승달을 상현달을 보름달을 줄기 끝에 차례로 올려 피워보려고 하현꽃에서 그믐꽃까지 그렇게 날마다 서른 개의 꽃을 돌아가며 피워놓으려고 삐죽대고 이죽거리며 흔들었던 것 달빛도 따라 흔들렸던 것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0년「현대시학」에 시「번개」등으로 등단 199년 김달진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햇빛 속에 호랑이』등 다수 |
달과 6펜스 / 최춘희 한 백년쯤 여기서 잠들고 싶다 은피라미 떼 몰려드는 폭설의 겨울호수 목쉰 갈대와 꽁꽁 발이 묶인 고깃배 친구삼아 순한 짐승처럼 앞발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 내 잃어버린 기억 속 어머니도 달의 분화구에서 걸어 나오시고 재를 뒤집어 쓴 아버지도 엉금엉금 죽은 누이를 등에 업고 기어 오신다 고사목처럼 마른 손등에 흐린 햇살 그림자 보여주던 흑백 사진첩 갈피가 접혀지는 시간 세상의 모든 불빛 꺼지고 한 잎 남은 잎사귀마저 떨어져 하늘은 더 넓다 장엄우주의 한 깊이에 얼음구덩이 파고 산채로 나를 염해 묻어다오 1956년 마산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졸업. 1990년 《현대시》신인상에 고등어 외 5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세상 어디선가 다이얼은 돌아가고』, 『종이꽃』, 『소리 깊은 집』, 『늑대의 발톱』, 『시간 여행자』가 있음. |
달처럼 슬픈 기타 / 유미애 옛집 벽장 속에 단풍나무 숲이 있었다 숲의 끝, 누이의 무덤까지 달이 차오를 때 나는 노루보다 겁 많은 사나이 오줌 누러 나온 노루의 눈을 파먹고 풀냄새 나는 누이의 우물을 바닥내고도 허기진 손의 두려움을 메울 수 없었다 단풍나무로 만들었다는 기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노래는 노루가 달을 쫓던 숲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베어내고 얻은 것이니 기타와 함께 자란 어린 건달의 눈에서도 달의 눈물 같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믐에 새긴 꽃 문신에 누이의 얼굴이 겹쳐질 때면 나무의 일생을 따라가던 푸른 손가락을 잘라냈다 나는 끝내, 톱자루 병든 여자 젖이 시큼한 달 어지러운 말로 우리들의 숲을 은폐하고 떠나왔지만 섬세한 내 손톱은 팔뚝에 새로운 꽃이 피어날 때마다 딩딩 뎅그렁, 노루의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산당화, 달빛, 누이의 분 냄새로 가득한 숲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 달처럼 슬픈 기타 : 솔레다드 브라보의 노래 제목. 1961년 경북 출생 2004년 《시인세계》등단 2009년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금을 받음. 시집『손톱』. |
가을, 달, 밤 / 복효근 누가 나를 불렀나 풀섶은 작은 은종 은종을 떼로 흔들어대서는 아무도 없는 내가 뜰에 내린다 없는 그 누가 내 곁에 있다는 말이냐 아무도 나를 울리지 않았으나 나 어깨를 들먹인다 내 아무도 울리지 않음으로 하여서도 또 누가 울었는지 풀잎 이슬마다 달이 지는구나 까닭도 사연도 없이 다정도 깊으면 병만 같아서 때없이 앓아도 좋을 만큼 목은 메어서도 좋을 만큼은 가을, 달, 밤은 그리움은 하나 깊어도 좋겠다 1962년 전북 남원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마늘촛불』등 |
달이 걸어오는 밤 / 허수경 |
붉은 달 / 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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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퍼가기가 안되는군요, 좋은 시 한편을 보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