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의무론적 직관주의- 의무에 대한 직각
- 의무론, 즉 의무의 윤리는 의무나 도덕적 의무에 대한 이론으로 이루어진다. 의무론이라는 용ㅇ어는 그 어원이 희랍어의 deo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의무 혹은 필연적인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도덕적 필연성을 뜻하는 것이다.
1. 칸트의 직관주의: 의무에의 존중
①선의지
칸트의 윤리설은 선의지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 밖에 의지와 상관 없는 것은 모두 도덕의 영역 너머에 속하게 된다. 인간의 자기 행위의 결과나 혹은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다. 인간은 도덕법칙에 대해서 의무를 갖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책임질 유일한 것이다.
의무는 법칙, 다시 말하면 도덕 법칙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행위해야 할 필연성이다. 의무란 의지, 즉 자유롭고 자율적인 의지의 행위이며 외적인 힘에 의해 강요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 명령을 하는 자기 입법적인 의지의 행위이다.
② 정언명법
도덕적 명령법인 정언명법은 어떤 상황이든, 즉 모든 상황에 있어서 그 자체로서 목적적인 존재인 인간에 대해서 구속력을 갖는 도덕적 명령이며, 득정하게 욕구된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가정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도덕적 명령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그것을 원하거든 그렇게 행위하라”는 식의 가언명법은 어떤 선을 위한 수단이며 그로부터 생겨나는 행위는 어떤 목적을 위한 선인 것이다.
③ 인간의 존엄성과 목적의 왕국
인간은 그 자신이 도덕적 왕국, 즉 도덕적인 적인 세계질서의 한 시민이 됨으로써 무한한 본질적인 가치인 존엄성을 갖는다. “이성적인 자연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으로 존재한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인 까닭에 그는 절대적 가치 즉 존엄성을 소유한다.
목적의 왕국에 있어서 대상들은 가격이나 존엄성 가운데 하나를 갖게 된다. 만일 교환 불가능하다면 존엄성을 갖게 되며 같은 값을 갖는 것에 의해 교활 될 수 있으면 가격을 갖게 된다.
④최고선, 덕과 행복
덕의 개념은 용기에 비교될 수 있다. “덕은 의무에 복종하고자 하는 인간의 준칙이 갖는 힘이다.” 그것은 의무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의 도덕적 힘이며 그 역량이다. 가장 훌륭한 도덕적 완성은 자신의 의무를 달성함으로써 성취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완성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인간의 경향성, 그의 감각적 의지는 그 목적으로서 행복을 추구한다. 그의 도덕적 의지는 덕을 그 목표로 갖게 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경우 최고선이 결과된다.
⑤종교철학
종교도 도덕적 기초 위에 세워진다. 칸트의 신학은 신의 명령으로서의 도덕법칙으로 이루지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의 윤리적 공동체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교회, 신의 도덕적 왕국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제 9장 윤리적 주관주의와 상대성- 주관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주관주의란, 진리는 단지 의견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즉 객관성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개인의 주관적 상태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윤리적 주관주의는 도덕적 진리를, 감정 정서, 개인적 의견, 그리고 개인적 혹은 사회적 시인 등과 같은 주관적인 상태에로 환원한다.
1. 사회적 주관주의: 사회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① 데이비드 흄: 사회적 시인으로서의 윤리
흄은 윤리적 동기를 동정심 혹은 감정 특히 동료감, 즉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을 자신의 거처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삶의 복잡한 관계들,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 윤리의 문제들을 처리에 있어서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주관적인 감정에 의거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복잡하게 얽히어 사회적 여건과 필요를 규명하고 평가해줄 이성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주장한다.
㉠ 감정에 근거한 도덕적 가치-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유용한 것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질을 갖는 것이다. 논의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인데 이는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 대단한 사회적 선이다.
㉡ 이성의 역할- 도덕적인 분별이 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감정이 없이 이성만으로는 우리의 행위를 규제할 능력이 없으며 어떤 행위를 옳은 것으로, 다른 생위를 그른 것으로 만들 능력이 없다. 유용성만으로는 우리가 어떤 형태의 행위는 도덕적이고 다른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결절을 내릴 수 없다.
㉢ 이타심의 감정- 오직 감정만이 도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타심의 감정, 인류의 행복을 위한 감정은 선하고 유덕한 반면 그와 반대되는 감정은 악하고 부덕한 것이다.
㉣ 도덕적 가치의 기준으로서의 사회적 시인- 자신의 사회와 더불어 공유하는 감정, 감정의 일치, 다시 말해 사회적 시인이 인간 공공체가 찬양하는 행위의 형태라 불리는 도덕적 가치의 기준이다. 결국 사회적 시인은 도덕적 가치 기준이다.
㉤ 옳은 행위의 기준으로서 공평한 관망자- 도덕적 행위는 서로 다른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행위의 도덕성은 그 행위가 주어진 사회의 시인 감정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관한 그 집단의 판단에 의존한다. 공공의 의견이 도덕적 분위기를 형성하며 개인의 특수한 행위에 대해서 시인의 보증인을 찍는다.
2. 윌리암 그래함 섬너: 관습으로서의 윤리
- 섬너는 “관습은 관례나 전통이 비록 어떤 권위에 의해 조정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사회 복지에 도움이 되는 판단을 내포하고 개인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따르도록 강제력을 발휘할 경우의 관례나 전통이다.”라고 주장한다. 습속은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개인의 습관이나 솨회의 풍습으로 정의 된다.
습속과 관습은 도덕의 기준을 구성하며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행위가 그른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세력, 관습은 도덕을 이론의 면에서나 행위의 면에서 모두 결정한다. 전통은 옳음을 보증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기 때문이다.
2. 개인적 주관주의: 개인의 의견으로서의 윤리
㉠ 에드워드 웨스터마크: 윤리적 상대성- 도덕의식은 결국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도덕판단은 객관적 타당성이 없고 도덕적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표현하는 감정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다. 웨스터마크는 “도덕판단이란 결국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도덕개념은 감정적 성향의 일반화이다. 도덕 판단이 감정적인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로 인해서 곧바로 우리는 상식이나 규범 윤리론에 의해 도덕 판단에 부여된 객관적 타당성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감정에 바탕을 둔 도덕 판단- 도덕적 진리란 존재 하지 않으며 모든 도덕판단의 술어는 결국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도덕 판단의 객관적 타당성은 입증 될 수 없다는 논리적 결론이다. 결국 도덕적 진리나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두 가지 도덕감정: 시인과 비난- 감정이나 정서의 주관적 상태, 마음의 산태 혹은 도덕감정이 라고 설명되는데, 다시 말해서 그것은 “옳고 그르며 좋고 나쁘다는 개념들 및 모든 다른 도덕개념을 형성하게 하는 특수한 감정”이다. 도덕 판단과 도덕 개념은 결국 그 기원이 응보적 유형의 감정, 즉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마음의 상태로 추적해 갈 수 있다. 여기서 원한감정과 보은감정을 발견하는데, 분노, 보복, 도덕적 비난은 원한 감정 유형이고 감사와 도덕저거 시인은 보은 감정의 유형이다.
웨스터마크는 “도덕의식은 결국 감정에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 판단에는 객관 타당성이 없고 도덕적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감정에 따라 상대적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제 10장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
1. 벤담: 양적인 쾌락주의
-벤담은 좋은 법과 나쁜 법을 구별하기 위해서 최대선 혹은 최대행복의 원리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 이론을 개진했다. 벤담은 공리 원리를 “우리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느냐 감소시키느냐에 따라 어떤 행동을 승인하고 거부하는 원리”라고 규정한다.
벤담의 쾌락주의는 쾌락은 한 가지 종류밖에 없으며, 양적으로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양적인 쾌락주의이다.
① 쾌락의 계산법
-벤담은 과학적 방법에 영향을 받아 윤리학에 적용 시키려 하였다. 그는 양적인 차이만으로 쾌락을 평가 한다고 주장한다.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도, 생산성, 순수도, 파급범위 등 7가지 원리에 의해 평가 된다.
벤담은 쾌락계산법에 덧붙여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가 공공의 복리를 해칠 것을 우려해서 4가지 제재 방법을 제시한다. 즉 신체적 제재, 정치적 제재, 도덕적 제재, 종교적 제재가 그것이다.
②도덕의 기준
- 벤담은 민주주의에 2가지 원리를 제공한다. 한 가지는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어야 하며 아무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어서는 안된다는 원리이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개인적인 공리주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공리주의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카알라일: 이타적인 공리주의
-카알라일은 최대 행복의 원리를 최대 고결의 원리로 대체시켰는데, 이 원리는 우리들에게 각자의 행복을 스스로의 일에서 찾도록 지시하는 원리였다. 그는 정신적인 쾌락이 육체적인 쾌락보다 우월하며 교양이 관능적인 탐욕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말한다.
3. 밀: 질적이 쾌락주의
- “단하나의 명확한 행동의 준칙, 혹은 도덕의 기준은 최대 행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행복의 철학적인 평가가 요청된다. 행복의 양 못지 않게 질의 문제가 고려되어야 하며 질적으로 높은 소량의 쾌락이 질적으로 낮은 다량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다.”
① 밀의 두 가지 제재
밀은 벤담의 4가지 제재를 내적인 제재와 외적인 제재의 두 가지로 줄였는데, 이 중 내적 제재를 중요시 했다. 외적인 제재란 자신에 불리한 여론이나 신의 응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외적인 힘을 말하며, 내적인 제재란 내적인 의무감 혹은 의무의 요청을 말한다.
4. 시즈위크: 보편적인 쾌락주의
- 시즈위크는 밀의 윤리학적 쾌락주의의 타당성에 확신을 가지고 행복은 의문의 여지없이 인간의 윤리적 모교라고 주장했으며, 동시에 칸트의 정언명법의 진실성에 설득되어 인간은 누구나 보편적인 행복을 증진시킬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① 상식의 계산과 정의의 원리
시즈위크는 쾌락계산법 대신에 이성 혹은 상식의 계산법을 제시했다. 그는 “만약 나의 행복이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도 똑같이 바람직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최고선으로서의 행복
그는 자신의 이론체계를 보편주의적인 쾌락주의라고 이름 붙이면서 최고선이 인간의 공통된 목표인 행복의 증진에 있다고 주장한다. 옳은 행위는 궁극적인 선인 행복에 의해 결정되며 덕은 이 궁극적인 선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5. 라쉬달: 좋은 결과의 최대한 산출로서의 윤리
① 결과의 계산법
이상적인 공리주의자들에게는 옳은 행위란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말한다. 악이란 비록 쾌락 혹은 행복과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지만 행위의 결과를 전제로 파악하여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② 라쉬달의 공평의 원리
쾌락이 선한 것에 포함된다 하여도 선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결과를 쾌락에 한정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인 선은 타인의 희생을 통해 얻어져서는 안 된다. 정의란 진정한 선을 분배하는 것, 덕이란 사회적인 선에 기여하는 제반 인격적 요소, 이러한 이상적인 훌륭한 삶의 구성요소를 지키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
6. 무어: 정의 불가능한 실재로서의 선
① 윤리학적 질문의 본질
무어의 윤리학은 어떤 것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존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우리들은 어던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두 가지 질문에 관련된다.
무어에 있어서 윤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선이란 어떻게 정의되는가이다. 어떤 것이 선인가가 문제안 것이 아니라 선 그 자체의 정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② 자연주의적 오류
선은 정의 돌 수 없고 어떤 사람이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는 도저히 선을 알 수 없다. 선은 쾌락성이나 욕구의 대상이 되는 성직과 같은 자연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일 뿐이다. 선을 어떤 종류의 자연적인 성질이라고 주장 한다면 그것은 자연주의적인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③ 무어의 이상적인 공리주의
옳은 행동이란, 기대되는 가장 좋은 결과에 달렸다거나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 혹은 가능성이 있는 가장 좋은 결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난 가장 좋은 결과에 달린 것이다.
7.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
행위공리주의자들은 개인의 행동을 그 행동의 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규칙공리주의자들은 윤리학적 원리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가져올 어떤 행동인가를 결정하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이 최대의 공리를 갖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행동의 규칙이 최대의 공리를 갖는가라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