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성을 위한 새로운 글자
‘백성들이 쓰기에 한문은 너무 어려워.
한문을 대신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야 해.’
세종은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학문을 전하는 것은 물론
왕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 쉽게 알릴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세종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어요.
마침내 1443년
28자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냈어요.
새로 만든 글자는
우주를 이루는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모음과,
소리를 낼 때 보이는 입 모양을 본뜬 자음으로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새 글자를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알리는 일이 남아 있었어요.
세종은 먼저 한자의 음을 통일시키도록 했어요.
당시에는 같은 한자라도 읽는 소리가 달랐어요.
그렇게 되면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한 새로운 글자를 쓰기가 어려웠던 거지요.
세종은 이 일을 집현전 학사(學士)들에게 시켰어요.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개 등
젊은 집현전 학사들과
두 왕자(수양 대군, 안평 대군)가 이 일에 참여하고
세자가 총책임자가 되었어요.
그러자 예전부터 한문을 중요하게 여기던 선비들이 세종의 뜻에 반대했어요.
“전하, 우리가 중국의 학문을 따르고 있는 이상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옵니다.”
“백성들이 쓰기 쉬운 문자라면
이미 신라 시대에 설총이란 학자가 정리한 이두가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문자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제학 최만리와 몇 명의 집현전 학사들이 상소까지 올렸어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세종은 이들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어요.
새로운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뜻은 그만큼 강했지요.
왕자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세종의 뜻을 받들어 새로운 글자를 백성에게 알릴 방법을 찾는 데 몰두(沒頭)했어요.
특히 중국을 열세 번이나 다녀온 성삼문이나
밤낮 없이 연구에 온 힘을 기울인 신숙주 등 집현전 학사들의 노력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여기에 언문청까지 두어
아낌없는 뒷바라지를 해 준 세종 덕분에
우리의 문자는 1445년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어요.
조선의 왕들에 관한 이야기를
새로 만든 문자로 엮은 ‘용비어천가’가 나온 거예요.
이어 다음 해인 1446년
이 새로운 글자를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백성에게 알렸어요.
이로써 세종의 최대 업적(業績)인 한글이 완성되었지요.
2. 백성이 넉넉히 살 수 있는 나라
“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우고,
농사를 짓게 하여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하는 게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세종이 백성들과 직접 만나고 있는 전국의 지방 관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이었어요.
당시에는 농사를 짓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서
농작물을 심어도 많은 수확을 얻지 못했고,
곳곳에는 노는 땅이 많았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종 때에는 중국의 〈농상집요〉와 같은 책을 참고해
농사짓는 기술을 알려 주는 책을 펴냈어요.
그러나 〈농상집요〉는
중국의 날씨와 땅의 성질에 맞게 쓰여진 책이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 많았어요.
‘우리의 사정에 맞게 쓴 농사책이 필요해.’
세종은 땅고르기, 씨뿌리기, 김매기, 수확 방법 등을 조사해
우리 나라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도록 했어요.
정초가 지은 〈농사직설〉은 그렇게 쓰여졌어요.
〈농사직설〉은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방법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세종의 노력으로 농사를 짓는 기술이 널리 보급되고,
나라에서도 힘껏 도와 주자 수확은 급격히 늘어났어요.
이러한 농업의 발달은 나라를 안정시켰고
백성들은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어요.
3. 여진을 몰아 내다
세종의 어진 정치는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했어요.
그러나 나라 밖에서는 다른 민족이 자주 침입해 백성을 괴롭혔어요.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에 살고 있는 여진족은
걸핏하면 국경을 넘어왔어요.
세종은 이들을 몰아 내기 위해 김종서 장군을 불렀어요.
“김종서 장군은 여진족을 물리쳐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시오.”
세종의 명을 받은 김종서 장군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여진족을 몰아 냈어요.
그리고 그 곳에 군사들이 경비를 서는 6진을 설치했어요.
또 압록강 주변에는
최윤덕, 이천 장군을 시켜 4곳에 새로운 관청을 세웠어요.
북쪽 국경 부근에 세운 이 4군과 6진은
영토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라를 튼튼히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백성을 위한 세종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시험을 쳐서 관리를 뽑아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했으며,
음악이나 과학에도 관심을 두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어요.
이렇듯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존경을 받고 있지요.
4. 내용 정리
세종 대왕은
우리말은 있는데 우리글이 없어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세종 대왕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쉽고 편리한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반대하는 학자들도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편 농업을 발달시키기 위해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고 농사책을 지어 백성들에게 보급했습니다.
세종 대왕은 두만강변에 6진을,
압록강변에 4군을 설치하고
벼농사에 익숙한 남쪽 지방의 백성들을
이 곳으로 옮겨 와 살게 함으로써
북방 개척의 길을 열었습니다.
- 천재교육, 스토리텔링 한국사